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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33화 (33/113)
  • 제33화

    도대체 뭐였을까.

    묵직한 무언가가 나를 덮친 것 같은데, 그 뒤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뭐가 날 덮친 건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내가 정신을 차리고 본 것은, 눈물콧물 펑펑 쏟아내며 울고 있는 최동수와 그 뒤에서 동물원 원숭이 바라보듯이 바라보고 있는 성좌들이었다.

    “흐허허허헝!”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 건지 가늠이 잡히지 않았다.

    명치는 여전히 욱신거렸고, 막 일어나서 인지 아직 시야가 흐릿했다.

    “그만 좀 해라. 이러다 너 때문에 죽겠어.”

    가만히 지켜보고 있기만 힘들었는지 엘더 리치가 최동수의 목덜미를 붙잡아 잡아당겼다.

    그보다 힘이 약한 최동수가 그의 힘을 버틸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하고자 했던 건 끝난 건가?”

    “네.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게 은행이 닫혔던 것과 관련이 있고?”

    “네.”

    “···그거면 됐다.”

    엘더 리치는 더 이상 캐묻지 않겠다며 몸을 돌렸다.

    연신 내게 달려들려는 최동수를 붙잡아 창구에 앉혔다.

    “저기에 앉아계시겠습니까? 우선 일부터 끝내야겠습니다.”

    “네.”

    멍하니 상황을 지켜보던 백예린을 창구 뒤에 의자를 내어줘 앉혔다.

    성좌들을 상대하는 최동수를 바라보다 나는 이상한 걸 느꼈다.

    최동수가 말을 하는데, 입과 말의 내용이 다른 것이다.

    그건 신기했다.

    내용은 이해하겠는데 괴리가 느껴지는 입모양이라니.

    ‘아, 그러고 보니 그에게는 통역 능력이 없었지.’

    급하게 움직이느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생각해보니까 그는 나와 달리 통역이라 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

    그 말은 곧 내가 없다면 그는 성좌들과 대화를 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그게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 내 의문은 얼마 안 가 해소되었다.

    “아무리 바쁘다고 하지만, 그래도 제 직원은 챙겨줘야 하는 거 아닌가?”

    “···.”

    “아무리 옆에서 일을 보고 배웠다고 해도, 저놈은 너와 다르게 우리와는 대화가 통하지 않아. 저기, 저쪽에 앉아 있는 그녀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지금은 잘만 대화하지 않습니까.”

    내 말에 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당연히 가능해야지. 내가 직접 마도구를 만들어줬는데.”

    “···?”

    “마도구 말이다. 내가 통역 마도구를 만들어 그에게 줬다. 저기 귀걸이 보이지?”

    그가 성좌를 상대하며 진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최동수의 귀를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그의 귀에는 못보던 해골 모양의 작은 귀걸이가 걸려 있었다.

    “조금 모자라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것 덕분에 제법 일을 잘하더군. 내가 만들어주지 않았으면 일을 하지도 못했겠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어.”

    “아, 그렇군요.”

    자신이 잘났다고 대놓고 말하며 그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을 잘했다라, 저렇게 고객을 상대하는 그가 일을 잘하면 얼마나 잘한단 말인가.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큰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비록 내가 일을 맡기기는 했지만, 그는 은행일 자체를 처음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잘하면 얼마나 잘하겠는가.

    그저 고객들이 불만이 안 생기게만 해도 열심히 했다고 할 수 있었다.

    [보유 고객:5621]

    [보유 자금:732,587,321,000]

    뭐지? 지금 내눈이 잘못된 건가.

    헛것을 본 거라 생각해 눈을 마구 비볐지만, 아무리 비비고 또 비벼도 그 숫자는 바뀌지 않았다.

    배로 늘어난 고객은 그렇다 쳐도, 잔뜩 불어난 자금은 말문이 턱 막히게 했다.

    ‘이게 무슨···.’

    거의 조에 달하는 코인이 쌓여 있었다.

    아무리 많은 고객들이 계좌를 개설하고 이용한다고 해도 이건 지나치게 많았다.

    ‘아, 설마···.’

    한 가지 짚이는 구석은 있었다.

    코인이 단 시간에 폭발적으로 늘 수 밖에 없는 이유.

    고객들이 자신들의 계좌에 코인을 잔뜩 밀어 넣는 것이다.

    계좌의 코인은 개인 자산이기도 하지만, 은행의 자본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7천억 코인이라니.

    겨우 6억 코인에 불과했던 내 은행에 7천억이라는 거금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을 느끼게 했다.

    내가 일개 직원이라면 모를까 은행은 내것이다.

    내 개인 소유의 것. 저 코인으로 할 수 있는 건 무궁무진했다.

    ‘진정하자. 진정해.’

    잠시 코인에 눈이 멀었던 나는 황급히 숨을 가다듬으며 정신을 차렸다.

    은행은 내 것이기는 했지만, 나 혼자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 정도의 코인을 밀어넣은 고객이 갑자가 코인을 찾게 되었을 때, 그만한 코인이 없으면 상당히 곤란해진다.

    이 중에서 내가 쓸 수 있는 그 소량의 코인 뿐이었다.

    그마저도 내 개인이 아닌, 은행을 위해서만 사용할 수 있다.

    너무 많은 코인이라 나도 모르게 미친 생각을 했었다.

    ‘그래도 이걸로 수면실하고 샤워실을 지을 수 있겠어.’

    은행은 내 직장이기도 하면서, 또 집이기도 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곳에서 생활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노숙자마냥 바닥에서 자고, 물병에 든 물로 씻을 수는 없었다.

    직원도 생기는 마당에, 여러 시설들을 증축할 필요는 있었다.

    안 그래도 코인이 모자라던 찰나에 참 잘 되었다.

    ‘그리고 코인은 지금도 늘어나고 있다.’

    엘더 리치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이렇게 보니, 최동수 그는 일을 잘하고 있었다.

    비록 고객들의 괴상한 외형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할 말은 반드시 했다.

    거기다 한 고객당 정해진 시간을 초과하지 않았다.

    대부분이 8분에서 9분대에 마무리되었다.

    정말 그 겁이 많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일을 착실하게 잘 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는데?’

    앞으로도 저 일을 맡기면 될 것 같았다.

    저 일이 적성에 맡는 것 같은데, 굳이 잘하는 사람을 다른 곳에 맡길 이유는 없었다.

    일을 잘하고 있으니 더 이상 내가 신경 쓸 이유는 없을 것 같아, 백예린의 옆에 앉으며 차원 은행 건설 상점을 열었다.

    [현재 시스템 특별 할인 행사중입니다.]

    [모든 가격이 최소 거래 가격인 이천 만 코인으로 고정됩니다.]

    [기한은 시스템과의 계약이 해지될 때까지 유지됩니다.]

    “음?”

    [화장실:20,000,000]

    [샤워실:20,000,000]

    [수면실:20,000,000]

    [은행 확장:20,000,000]

    전과는 다르게 가격이 확 줄어버렸다.

    화장실이나 샤워실만 해도 최소 삼천만 코인이 이상이었는데, 시스템의 혜택으로 인해 천만에서 이천만 코인이 줄어들었다.

    파격적인 혜택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거라면 조금은 부담을 덜고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섯 개를 사야 1억이 되니.

    ‘은행 크기도 늘리고, 창구도 늘리자. 아니지, 이왕 이렇게 된 거 내 개인 사무실도 만들어버릴까?’

    모든 게 이천만코인이라는 그 행사는 내게 지름신이 강림하게 하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했다.

    어차피 곧 있으면 은행문이 닫을 시간이 되는데, 이렇게 된 거 마음껏 지르기로 했다.

    이건 나 혼자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었다.

    최동수나 엘더 리치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이제 백예린도 내 직원이 되었는데 여자를 차가운 바닥에서 재울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차원 은행의 마감 시간만을 기다렸다.

    -슬슬 시간이 되었네. 나는 돌아가지.

    -내일 보자고!

    하나둘 고객들이 돌아가기 시작하고, 은행의 마감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후우··· 무서워 죽는 줄 알았네.”

    최동수가 책상에 몸을 엎드리며 한숨을 푹 내셨다.

    그러면서 내게 할 말이 많다는 듯이 나를 돌아봤다.

    나는 그런 그의 시선을 느끼지 못하고, 바로 코인을 사용했다.

    [은행 확장 비용으로 20,000,000코인이 소모됩니다.]

    [화장실 건설 비용으로 20···.

    한순간에 1억이 넘는 코인이 빠져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 잔고에는 큰 타격이 없었다.

    오히려 아, 1억 나갔네? 하는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쿵, 쿠구구궁!

    코인이 빠져나가기 무섭게 은행 전체가 울리기 시작했다

    최동수는 당황하며 나를 바라봤지만, 엘더 리치는 익숙하다는 얼굴을 했다.

    짧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내가 벌인 일이 좀 있었기에 이번에도 내가 한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전체 소요 시간 00:09:32]

    다행히 이번에는 10분이라는 아주 적은 시간이 걸렸다.

    3일에서 12시간, 그리고 이제는 10분.

    갈수록 시간이 줄어드는 게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아, 그리고 이걸 깜빡하고 있었네요. 백예린씨, 이리로 오실래요?”

    “네.”

    그녀가 자꾸만 흔들리는 은행이 신기했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가까이 다가왔다.

    겁에 질려 덜덜 떨고 있는 최동수와는 다르게 그녀는 겁에 질려 있지 않았다.

    오히려 마구 흔들리는 은행이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봤다.

    “앞으로 우리와 함께 일을 하게 될 백예린 씨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는 최동수 씨고. 여기는···.”

    “녹스다.”

    “어, 이름이 있었습니까?”

    “내가 아무리 리치라고 해도, 이름이 없는 건 아니다. 나와 계약을 했던 마왕에게 받은 이름이 있지.”

    “그게 녹스라는 거군요.”

    “그래.”

    “그렇다네요. 여기는 녹스. 서로 인사를 나누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내 말에 최동수와 녹스, 백예린이 서로 인사를 나눈다.

    그들이 그러는 동안에도 은행은 실시간으로 변했다.

    ‘자, 그러면 나는···.’

    그녀를 경비원으로 고용하려 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난관에 막혔다.

    [현재 경비원의 수가 너무 많아 더 고용할 수 없습니다.]

    [경비원을 고용하기 위해서는 그 위의 직급 ‘경비팀장’을 고용하셔야 합니다.]

    [‘경비팀장’ 고용 시 10명의 경비원을 고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해결책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경비팀장을 고용하라고?’

    지금 당장 그 사람을 어디서 찾으라고.

    아, 설마···.

    [현재 ‘경비원 녹스’가 존재합니다.]

    [‘경비원 녹스’를 ‘경비팀장’으로 직책을 올릴 수 있습니다.]

    따로 코인이 들지는 않았다.

    다만 그에게 주어야 할 월급의 금액이 늘어났다. 1,500코인에서 2,500코인으로.

    거기다 두달에 한번씩 만 코인 보너스를 줘야했다.

    ‘코인이 아까운 건 아니지만···.’

    코인이 한순간에 배로 늘어나니 순간 멈칫했다.

    그래도 그녀를 고용하기 위해서니.

    [‘경비원 녹스’의 직책이 ‘경비팀장’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경비원의 자리가 공석이 되었습니다.]

    [‘백예린’을 경비원으로 고용하시겠습니까?]

    “어.”

    [‘백예린’이 차원 은행의 경비원이 되었습니다.]

    [‘백예린’은 경비원으로 있을 시 은행장에게 그 어떠한 피해도 줄 수 없으며 합당하지 않은 명령을 제외하고는 반드시 수행해야 합니다.]

    그녀의 몸이 반짝이더니, 녹스가 그랬던 것처럼 가슴팍에 그녀의 이름이 적힌 갈색 명찰이 달렸다.

    그녀가 제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톡톡 두드리더니 나를 보며 자신이 경비원이 되었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백예린 경비원.”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녀는 나중에 들어왔는데, 어쩌다 보니 최동수보다 직급이 높아졌다.

    그는 아직 계약직이었으니까.

    ‘그와 약속을 한 것도 있으니까.’

    나는 최동수의 직책을 계약직에서 은행원으로 올렸다.

    소모되는 코인이 늘기는 했지만, 내가 신경 써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태산의 티끌 정도.

    [모든 증축이 완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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