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깔끔하고 영롱하다.
마석 상점의 내부를 둘러본 내 평가였다.
집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마석 상점의 내부는 지나치다고 느껴질 정도로 깔끔했다.
새하얀 벽면에 무수한 색깔의 마석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먼지 한 톨도 보이지 않았고, 아주 작은 얼룩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 자, 잠시만요!”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라탄이 황급히 막아서며 입구에서 벽면을 눌렀다.
그러자 새하얀 수증기가 툭 튀어나와 몸을 감쌌다.
치이익-
나와 백예린이 놀라 몸을 흠칫, 떨 때 다른 상점 주인들은 그게 익숙한 듯이 가만히 받아들였다.
“이제 들어오셔도 돼요.”
라탄이 상점에 발을 들이기가 무섭게, 그의 하반신이 뱀의 그것으로 바뀌었다.
거기다 맨들맨들하던 머리에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카락이 생겨나고, 평평하던 몸에 굴곡이 생겼다.
“어, 어어···!”
그 모습을 바라보며 백예린의 눈이 화등장만 해졌다.
남자의 모습을 하던 라탄이 한순간에 여자로 바뀐 것이다.
“뭘 그렇게 놀라? 라미아 처음 봐?”
라미아라면, 뱀의 하반신에 인간의 상체를 가지고 있는 그 몬스터?
무엇보다 라미아는 여자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는 남자가 아니었던가.
“하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그, 아니 그녀는 몸이 바뀌면서 성격까지 같이 바뀌었는지 그 소심했던 분위기가 사라졌다.
소심함이 사라지고 요염한 분위기가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슥- 스륵-
뱀의 하체가 꿈틀거리며 그녀를 계산대 뒤로 이동시켰다.
그녀는 뱀의 다리를 꼬아 의자처럼 만들어 그 위에 몸을 눕혔다.
그리고 익숙하게 계산대 밑에서 담뱃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래서 내 가게에 오겠다고 한 이유가 뭐지?”
그녀가 담배 연기를 후욱, 뿜어내며 나를 바라본다.
주점에서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어서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그녀의 눈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마치 값비싼 보석을 마주하는 것 같은··· 저것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맴돌았다.
왠지 모르게 숨소리가 거칠어지며,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경고··· 경고! 마석 상점 주인 ‘라탄’은 지금 당장 하던 행동을 멈추십시오!]
-저 요망한 년이 어디서 감히···!
시스템의 메시지와 반지의 그녀가 동시에 소리쳤다.
반지에서 흘러나온 보라색 연기가 내 머리를 휘감았다.
“어···?”
몽롱하던 정신이 확, 돌아오며 내가 어느새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도대체 뭘 한 거지···?
황급히 그녀에게서 떨어지며 주위를 둘러보니,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상점 주인들과 내 팔에 매달려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게 하려던 백예린이 보였다.
어쩐지 팔이 따갑다고 했더니, 그녀가 내가 홀린 것처럼 보이자 꼬집었던 것이다.
“흐응, 보호책이 두 개.”
알 수 없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라탄이 제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그래도 시스템이 직접 경고를 줄 줄은 몰랐는데.”
도대체 무슨 관계냐는 그녀의 말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불쌍해 보이던 그녀가 한순간에 위험인물이라고 머릿속 각인되었다.
내게 무슨 짓을 하려고 한 건지는 모르지만, 나를 현혹하려 했다는 것부터가 문제다.
‘어떻게 이렇게 한순간에 사람이 바뀔 수가 있는 거지?’
그녀와 함께 이곳에 오겠다고 한 것부터가 문제였던 걸까.
차라리 주점에서 얘기를 했어야 했나.
온갖 잡생각이 머리를 아프게 했다.
“그러고 있지 말고, 뭐라도 말을 하지? 이곳에 오자고 했을 이유가 있잖아.”
그녀가 상체를 내게 가까이 당겨,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그 담배 연기에 나는 꽤 오래 담배를 피지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
‘담배 피고 싶다···.’
머리를 살짝 저어 상념을 떨쳐냈다.
담배가 땡기기는 해도 지금 당장은 아니다.
“우선 그 전에 주변인들이 좀··· 이건 저희들만 들었으면 하거든요.”
내 말에 그녀가 담뱃대를 쥔 손으로 턱을 톡톡 두드리더니, 자신들과 함께 온 상점 주인들을 향해 말했다.
“들었지? 나가 봐.”
“···알았다.”
한 번쯤은 싫다고 반발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쉽게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독 수인이 선두로 상점 주인들과 함께 마석 상점을 빠져나갔다.
나가는 불독 수인의 뒷모습을 보니, 그의 몸이 옅게 떨리고 있었다.
꼬리를 만 게, 마치 겁먹은 강아지처럼 보여 의아했다.
도대체 뭐가 그를 저렇게까지 두렵게 만드는 걸까.
주점에서 보였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자, 그럼 이제 말해 봐.”
모든 상점 주인들이 나가고, 허공에 손을 저어 문을 닫은 그녀가 턱을 괴며 나를 바라봤다.
나는 손목에 시계를 만지며 그녀에게 말했다.
“아까 주점에서 제가 했던 얘기를 기억하십니까?”
“어.”
“저와 사업을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사업? 무슨 사업. 내가 너와 할 만한 사업이 있을까?”
“있습니다.”
말해보라는 듯이 손을 까딱이는 그녀에게 내가 구상했던 것을 꺼냈다.
“제가 있기 전에만 해도, 거래 방식은 마석으로 이루어진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그런데 그것도 이제 바뀔 것 같은데. 네가 나타났잖아. 코인을 직접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네. 그렇죠.”
마석에 비하면 태산의 티끌이라고 여겨도 될 정도로 적은 비용으로 거래를 할 수 있는 방식이 생겨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은행을 이용할 거라는 건 이미 정해진 일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은행을 이용한다고 확신을 할 수는 없다.
귀찮아서, 당장 급해서 마석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을 터.
“화폐를 하나 만들려고 합니다.”
“···?”
“은행이 좋기는 하지만, 편한 건 아닙니다.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은행을 방문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죠.”
성좌들이 어떻게 방문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렇게나 은행에 들어올 수 있는 건 아닐 게 분명했다.
그랬다면 성좌가 아닌 그 차원에 거주하는 다른 주민들도 찾아왔겠지.
지금은 오직 성좌들만 이용할 수 있는 문이 따로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에 비해 마석은 다릅니다. 비록 비싸기는 하지만, 당장에 거래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죠.”
“흠···.”
그녀가 담뱃대를 내려놓으며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그게 얼마나 허황한 이야기인지 알고 하는 건가?”
“글쌔요. 제가 없었더라면 허황된 얘기였겠지만, 지금은 다르죠.”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단독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어. 시스템의 허락이 필요하다.”
“아, 안 그래도 그 동의를 구하려고요.”
“···그렇지. 네가 시스템과 사업 파트너라는 걸 잊고 있었네.”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당장에 결정하기에는 힘들어 보여 그녀에게 여지를 주고 자리를 비티기로 했다.
“지금 당장 결정하라는 건 아닙니다. 그저 당신과 사업을 하고 싶다는 거니까요. 하지만 이건 분명 좋은 기회입니다. 마석을 가공하여 만든 화폐는 분명 큰돈이 될 테니까요.”
“좋아.”
내 말을 듣던 그녀가 결심한 듯 나를 바라봤다.
“네가 뭔 말을 하려고 하는 지 알겠어. 그게 얼마나 터무니 없는 일인지도.”
“···.”
“다른 놈들이 이런 얘기를 꺼냈다면, 볼기짝을 때려 쫓아냈겠지만···.”
그녀가 담뱃대를 들어 나를 가리켰다.
“너라면 다르겠지. 아니, 시스템이 먼저 나서서 움직인 거라면 네게는 그만한 가치가 있을 거야. 나는 너를 믿기보다는 시스템의 그 선택을 믿겠어.”
“그럼 저와···.”
“단!”
그녀가 담뱃대를 들어 하늘을 가리킨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그녀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저 위에서 건방지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놈들에게 동의를 받아와. 그놈들이 하겠다고 하면 나도 할 테니까.”
그녀가 말하는 그놈이 시스템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반응이 너무 의미심장했다.
내가 시스템의 동의를 받을 수 없다고 확신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좋습니다. 그 말, 잊지 않으시길 바라죠.”
“그런데 어떻게 얘기를 할 거지? 아무리 네가 시스템의 관심을 받는다고 해도, 저놈들을 부르려면 꽤 고생해야 할 텐데.”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나는 어째서 그녀가 그런 태도를 보인 건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애초에 내가 시스템을 부를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내게 관리자를 호출하는 호출기가 있다는 걸 모르기에 할 수 있는 반응이기는 하지만, 그 반응을 통해서 시스템이 그들에게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나와는 다르게 부르고 싶어도 부르지 못하는 게 현재 그들의 위치였다.
나라로 따지면 시스템은 대통령 혹은 그에 준하는 위치에 있는 자들이니, 그저 상점을 운영하는 이들이 그들을 만날 수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들의 능력이 엄청나거나, 나처럼 코인과 밀접한 관계를 띄고 있는 게 아니라면 더더욱.
“아, 그거라면 괜찮습니다. 저는 부를 수 있는 방법이 있거든요.”
“···?”
그녀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오른다.
나는 그것까지 그녀의 의문을 풀어줄 생각이 없었기에, 상점을 나오며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했다.
[00:01:21]
어느새 시간이 흘러 이관이 끝나는 시간이 다가왔다.
은행 앞에서 입구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옆에서 백예린이 긴장한 얼굴로 우물쭈물거리고 있었다.
“왜 그럽니까? 뭐 불편한거라도 있나요?”
“아, 아니요!”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너무 편하게 있다는 말까지 덧붙였지만, 그 말이 무색하게도 그녀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말하세요. 당신이 지금 이상하다는 건 제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아, 그게··· 제가 잘할 수 있을까 싶어서요.”
그녀의 말에 나는 팔짱을 꼈다.
그녀는 나와 같이 하는 일에 있어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지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터라 무슨 말을 해주면 좋을지 고민했다.
“긴장하는 건 좋은 거죠. 그만큼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지나친 긴장은 하던 것도 못하게 만듭니다.”
“···.”
“그리고 당신이 실수를 한다고 해서 뭐라할 사람은 없습니다. 일을 처음 하는 사람에게 실수 한 번 했다고 욕할 정도로 저는 무지하지 않거든요. 원래 사람은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커가는 존재니까요. 그 실수를 양분 삼아 나중에 더 잘하면 됩니다.”
“···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솔직하게 말해서는 나는 위로란 걸 잘 못했다.
최동수에게도 위로보다는 협박을 했던 것처럼, 차라리 직접 겪어보고 느끼게 하는 게 내 스타일이었다.
그러니 그녀에게도 그렇게 할 생각이다.
엘더 리치가 있으니 그녀를 잘 가르쳐주겠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이관 시간이 전부 지났다.
[차원 은행의 이관이 완료되었습니다.]
[입구의 통제가 해제됩니다.]
[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환한 빛과 함께 건물의 외형이 변했다.
차원 은행이라는 간판이 생기고, 차원과 은행의 글자 가운데 둥그런 황금색 코인 모양이 생겨났다.
“들어가죠.”
“네!”
기합을 주는 그녀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은행장님!”
쿠웅!
그리고 그대로 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