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화
상점의 주인들은 내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가 하면, 어쩔 때는 감탄사를 터뜨렸다.
“커허···!”
“느허헛, 새로운 직업의 탄생이라··· 확실히 시스템이 관심을 가질 만하네.”
“그것도 코인과 밀접한 관계를 띄고 있는 직업이니. 캬하하!”
그들은 내 말을 들으며 저마다 독특한 추임새를 넣었다.
그들의 반응을 지켜보며 입을 닫았다.
내가 할 말은 다했다.
내가 은행장이며,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그 계좌는 마석을 이용하지 않아도 코인 거래를 할 수 있고, 이용료도 엄청 저렴하다.
그것 때문에 시스템이 나를 찾아왔다.
내 말을 듣는 그들은 서서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더니, 급기야 자신들도 만들고 싶다 말했다.
나는 조금 뒤, 은행 이관이 끝나면 해주겠다고 말하며 그들을 둘러보는데.
이상하리만치 얼굴이 어두운 수인이 보였다.
사람 형태의 얼굴에 초록색 뱀의 비늘이 돋아나 있는 수인이다.
내가 계좌를 말하고, 이용료가 싸다는 말을 할 때마다 얼굴이 굳거나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이 대화가 불편한 듯한 그의 모습에 나는 의아해했다.
이건 상점 주인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시스템에게 바쳐야 하는 세금이 대폭 주는 건데, 좋아해야 할 그가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이 일로 인해 그가 손해를 보는 게 있다는 건데.
“저···.”
내가 그에게 말을 걸려고 할 때였다.
내가 말을 걸기도 전에 불독 수인이 그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어이, 라탄. 왜 이리 죽상이야?”
“아··· 음.”
불독 수인의 말에도 뱀 수인, 라탄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마치 이 자리에서는 꺼내면 안 되는 얘기라도 되는 것처럼 소심하게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고는 슬쩍슬쩍 나를 보며 눈치를 봤다.
내게 불만이 있는데 그걸 말하기 힘든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의 반응에 불독 수인이 뭐 때문에 그러는 건지 깨달은 얼굴로 라탄의 어깨에 두른 팔에 힘을 주었다.
“야이, 소심한 자식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자리에서 그러고 있는 게 말이 되냐? 에라이, 네가 그러고도 남자야?!”
“···미안.”
불독 수인의 말에 라탄이 더욱 소심해져 목소리가 아예 기어 들어갔다.
“우리의 새로운 식구가 들어온 날인데, 얼굴 좀 풀자!”
“으응···.”
일진과 왕따를 보는 듯한 모습에도 다른 상점 주인들은 익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그러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라는 듯한 반응이었다.
“어휴. 미안하다. 내가 이녀석을 생각 못했어. 너도 임마, 너 때문에 분위기가 썩어들어갔으니까, 제대로 사과해!”
“미, 미안합니다···.”
급기야 불독 수인이 라탄의 머리를 붙잡아 내게 고개를 숙이게 했다.
라탄은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그에게 화도 나지 않는 건지 소심한 목소리로 내게 사과했다.
그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데, 되려 분위기가 망가진 건 불독 수인인데 말이다.
불독 수인이 가만히만 있었어도 나는 그에게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거다.
그는 그고, 나는 나니까.
그런데 불독 수인이 나서는 바람에 주위의 시선까지 그에게 집중되어 버렸다.
이 무슨 민폐란 말인가.
라탄에게서 신경을 끄려고 했던 내 생각이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주변의 시선이 느껴진다.
상점 주인들은 말릴 생각도 없이 그저 재미난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눈으로 이 모든 걸 구경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불독 수인이 라탄에게서 팔을 때었다.
그리고 식탁에 음식이 빈 것을 보고, 채워오겠다며 자리를 벗어났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주방으로 온전히 사라진 그 모습에 라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저기, 라탄 씨?”
“네, 네?”
내 부름에 그가 화들짝 놀라 나를 바라봤다.
불독 수인에게 졸렸던 그 부근이 붉게 물든 게 보였다.
그걸 보고 있으니 괜히 그에게 미안해졌다.
내가 아니었다면 그가 위협받을 일은 없을 텐데.
“혹시 제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아니면 마음에 들지 않는 거라도 있는 건가요?”
“아, 아니요! 절대 아니에요!”
내 말에 그가 화들짝 놀라며 두 손을 들어 급하게 저었다.
내게 불만이 없다고 말하면서 슬그머니 주방 쪽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불독이 두려워서 말을 하기가 힘들어 보였다.
그런 그에게 불만이 있으면 말해도 좋다고,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게 해주겠다고 말하니 그가 여전히 주방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게··· 사실, 제 미래가 걱정이 되어서요.”
“···?”
미래가 걱정이 된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 걸까.
의아한 마음을 가진 그의 말을 들어보니, 그가 무슨 걱정 때문에 그런 건지 알 수 있었다.
‘마석 상점 주인이니 걱정이 될 만도 하네.’
사람들이나 성좌들의 주된 코인 거래 이용 화폐는 마석이었다.
아무리 세금이 많이 때인다고 해도, 마석 상점이 얻는 수익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차원 은행이 생겨나면서 주된 수입원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사람들이, 그리고 성좌들이 차원 은행을 이용하면서 마석을 사들이는 것도 그만큼 줄어들 게 뻔했다.
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차원 은행을 접을 이유가 없었다.
나도 살아야 했으니까.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아.’
그나 내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했다.
환전.
아무리 은행이 있다고는 하지만, 모든 지역이나 나라가 은행을 이용하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만 해도 현대와는 동떨어진 원주민이 있었고, 그들은 화폐 대신 물물교환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은행은 최근에 만들어졌지만, 시스템을 이용하는 전 차원의 사람들은 마석으로 주로 이용했다.
아무리 은행의 계좌가 편하고 좋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석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마석을 화폐처럼 사용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 뱅킹처럼 아무데서나 계좌를 이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계좌가 편하기는 했지만, 아무데서나 사용할 수 있는 마석만큼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 계좌의 좋은 점은 이용료가 싸다는 거다.
편리성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마석이 뛰어나다.
‘나중에 어떻게 변할지 몰라도, 지금 당장 마석이 주된 화폐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할 건 하나였다.
그와 공존하는 것.
마석을 지폐처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 그들에게 계속 그렇게 쓰라고 하면 된다.
다만 나는 그 마석을 언제든지 코인으로 환전시켜주기만 하면 된다.
또 반대로 코인을 마석으로 환전시켜줄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석 상점 주인의 힘이 필요했다.
지금 당장 마석이 없는데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이건 된다.’
사업을 구상하니, 이건 될 수밖에 없었다.
살기 위해서 코인이 필요하고, 마석을 사용해야 한다.
오히려 안 되는 게 이상하겠지.
‘아니지.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석을 가공해서 화폐를 하나 만들어 버려?’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떠오른다.
이대로 있다가는 아예 이야기가 산으로 갈 것 같아 급히 고개를 저어 상념을 떨쳐냈다.
그리고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는 그에게 말했다.
“라탄씨, 저와 사업을 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예, 예?”
“지금 당장 하라는 건 아니고, 음··· 나중에 제가 따로 찾아뵙겠습니다. 괜찮겠죠?”
“어··· 네.”
그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옆에서 듣고 있던 이들이 자신들도 끼어달라며 달라붙는다.
“나도! 뭔지 모르겠지만, 코인 냄새가 난단 말이지!”
“치사하게 자기들끼리만 재미보지 말고, 우리도 끼워줘! 우리도 잘할 수 있다고!”
그들의 아우성에 나는 스윽, 그들을 둘러봤다.
가죽 상점, 물약 상점, 식당 등등···.
그들을 쭉 살펴봤지만, 이 일에 도움이 될만한 사람이 없었다.
굳이 찾는다면.
아티펙트 제작가, 대장장이.
이 둘 정도?
화폐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공할 사람들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지금 당장 화폐를 만들 것도 아니고, 라탄과 얘기할 때도 시스템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러니 처음부터 일을 크게 부풀릴 필요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일단은 그와 단둘이 얘기하고 싶어서요.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그때 부탁드리겠습니다.”
“으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알겠어. 하지만, 꼭 도움이 필요할 때는 말해야 해?”
“네. 알겠습니다.”
시무룩해지던 그들은, 음식을 가지고 돌아온 불독 수인에 다시 분위기가 불타올랐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니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불독 수인이 가져온 닭을 닮은 고기의 뒷다리를 뜯어 입에 물고 있으니, 옆에서 고기를 오물거리고 있는 백예린이 보였다.
그녀는 대화 내용을 따라가기 힘들어서인지 아예 신경을 끄고 먹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맛있습니까?”
“우물··· 에? 에에!”
그녀가 황급히 입에 담았던 음식을 삼키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맛있어요!”
여기까지 오는 길에 배를 굶게 하지 않았는데, 먹는 걸 보니 내가 준 게 적은 가보다.
저렇게 잘 먹는데, 음식을 더 잘 많이 줄 걸 그랬다.
‘저렇게 잘 먹는데, 그때는 왜 배부르다고 한 거야?’
좀 더 달라고 했으면 더 줬을 텐데.
“이야, 생긴 것과는 다르게 잘 먹네! 너 마음에 든다!”
어느새 다가온 불독 수인이 그녀 앞에 아기 통돼지 구이를 내려놓는다.
그녀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다, 나와 그를 번갈아 돌아본다.
“어···.”
눈길을 통돼지 구이에 가고 있는데, 이걸 먹어도 되는 건지 몰라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드세요. 드시라고 주신 것 같은데.”
“그래, 먹어. 먹고 싶은만큼 먹으라고!”
그의 호탕한 말에 그녀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리고 그 작은 손을 뻗어 다리를 붙잡아 부욱, 뜯었다.
‘진짜, 잘먹는다.’
처음에는 상점 주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어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그녀의 식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복스럽게 먹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그녀를 보고 있으니 알 것 같았다.
얼굴도 예쁘고 귀여워서 먹방 스트리머를 했으면 제법 인기가 많았을 것이다.
“흠··· 슬슬 시간이 다 된 것 같은데.”
주점에 꽤 오래 있었다.
슬슬 이관도 거의 다 된 것 같은데.
[6:12:32]
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을 비웃듯, 아직도 절반이 넘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제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텨야 할지.
‘쇼핑이라도 할까?’
때마침 주위에 상점 주인들도 있고, 마석 상점 주인도 있으니.
남은 시간 동안 상점들을 구경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마석의 등급도 알고 싶으니까.’
백예린도 배를 든든하게 채운 것 같으니,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저희 상점 구경 좀 시켜주면 안 됩니까? 이런 곳은 처음이라 보고 싶은 게 많은데.”
“가능하지. 어디부터 올래?”
“내 상점부터 가자! 내 상점에 구경할 거 많아!”
“저런 빈약한 곳 말고, 내 상점으로 와. 몸을 든든하게 지켜줄 방어구들이 가득하다고!”
내 말에 상점 주인들이 소리친다.
자기들이 구경시켜 주겠다는 그의 말에 나는 우선 마석 상점부터 들리기로 했다.
그렇게 배도 든든하게 채운 채, 우리는 자리를 옮겼다.
마치 호위를 받듯이 상점 주인들에게 둘러쌓인 채 우리는 마석 상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