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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30화 (30/113)

제30화

지구가 빚을 다 갚지 못하고 파산했을 때.

시스템이 지구를 무법지대로 선포했을 때.

세상에 만남의 광장이 내려오기 전, 세계의 대륙은 변동을 일으켜 무너지고 합쳐졌다.

나라의 국경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미국이 중국과 땅이 이어지고, 일본이 한국에 붙고, 아프리카가 오세아니아와 달라붙는.

세상의 땅이 떨어져 있는 건 절대 용납못하겠다는 듯이 만남의 광장을 중심으로 세상이 모여들었다.

정부가 군대를 일으킬 시간도 없이 세상의 변화는 순식간에 이뤄졌다.

정부는 어떻게든 정부의 권위와 나라를 유지하려 했지만, 연이어 등장한 몬스터들과 균열, 직업 등으로 인해 힘을 잃어버렸다.

세상에 혼란이 찾아왔고, 사람들을 살기 위해서 코인을 벌어야 했다.

유일한 안전지대인 만남의 광장으로 가기 위해 움직였다.

만남의 광장은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만남의 광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코인이 필요했고, 사람들은 그에 여러 가지 반응을 보였다.

전투직을 얻지 못한 이들은 만남의 광장의 입구에서 거지처럼 다른 사람에게 구걸하거나 자신의 특기를 사용해 전투직에게 빌붙었다.

전투직을 얻은 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코인을 벌어들이고, 그것으로 왕으로 군림하려 했지만, 그것도 어려웠다.

사람들끼리의 거래는 마석으로만 가능했고, 그 마석의 가격이 살 때와 팔 때가 너무 많은 차이를 보였다.

그래서 정말로 코인이 넘쳐나는 이들이 아니라면 마석을 사 남을 주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개중에 몇 사람만 선의를 가지고 남에게 베풀려 했지만, 그들조차 눈여겨 보던 다른 이들에게 습격을 당해 소지품을 빼앗기기일 수였다.

남에게 선을 베풀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의심만 해야 하는.

그 모든 일이 일주일도 안 돼서 일어났다.

*

중간중간에 자잘하게 몬스터가 등장한 것을 제외하면, 만남의 광장으로 가는 길은 순탄했다.

차가 없었다면 오래 걸어야 했겠지만, 차가 있으니 그 시간이 매우 단축되었다.

삼 일.

딱 삼 일에 걸쳐 만남의 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글우글.

만남의 광장 앞에는 감히 셀 수도 없을 정도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무래도 지구상 내에서 유일한 안전지대이니, 그러려니하고 생각했다.

사람이 많던 적던 그건 내게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아니, 굳이 말한다면 사람이 많은 쪽이 내게 낫다.

그만큼 고객이 많아진다는 거니까.

‘하지만 저들 중 몇이나 내 고객이 될 수 있을까.’

그들 중 몇이나 되는 사람이 최하위 등급의 코인을 마련할 수 있을지.

크게 기대는 되지 않았다.

지금은 저들보다 성좌라는 아주 돈이 많은 고객들이 있으니까.

부우웅-

만남의 광장의 입구로 차를 몰았다.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차의 등장에 당황하면서 옆으로 비켰다.

“저거 뭐야?”

“와, 미치지 않고서야 저런 큰 소리가 나는 차를 몰 리가 없는데.”

창문을 닫았다고 해서 그들의 목소리가 안 들리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노래도, 내 옆에 있는 그녀와 대화도 하지 않았기에 차 너머로 숙덕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잘 들렸다.

나는 그들의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였어도 그들처럼 행동했을 테니까.

세상에 몬스터가 나타나고, 몬스터의 귀를 자극하는 엔진 소리는 위험하다.

정말로 실력에 자신이 있지 않은 이상, 몬스터를 끌어들일 수 있는 확률이 큰 차를 모는 건 자살행위였다.

만약 나도 저들과 같은 입장이었다면, 차를 끌기는커녕 한 자리에서 섣불리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만남의 광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입장료 50코인을 지불···.]

[차원 은행의 은행장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차원 은행의 관계자는 앞으로 입장료 없이 만남의 광장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저희 만남의 광장은 은행장님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시스템이 이쪽에 손을 쓴 것 같은데 아무래도 좋았다.

50코인은 내게 그리 큰 금액이 아니었다.

5억이 넘는 코인이 있는 50코인이 눈에 들어오는 게 더 이상하지.

“내 옆에 있는 사람도 내 일행인데, 내가 대신 내는 건 안 됩니까?”

다만 여기에는 나 혼자 있는 게 아니었다.

백예린이 함께 있었다.

시스템은 차원 은행의 관계자라면 누구든 면제를 해주겠다고 하지만, 슬프게도 백예린은 아직 차원 은행의 직원이 아니었다.

[은행원/경비원 고용은 차원 은행 내에서만 가능합니다.]

내가 차원 은행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파견 근무라고는 하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가능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이건 모르는 일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내가 은행장이니, 훗날에는 차원 은행 안이 아니더라도 내 직권으로 임명할 수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실제로 그렇다는 게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예상이고 바람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그녀를 직원으로 임명하기 위해서는 차원 은행에 들어가야 하는데, 나는 그 은행을 만남의 광장 내에 차릴 생각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에 그녀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녀에게 물어보니 현재 그녀가 가진 코인으로는 만남의 광장으로 들어가기 힘들다.

내가 직접 코인을 줄 수도 있지만, 그것도 차원 은행 내에서만 가능하다.

[시스템은 은행장의 손님을 환영합니다.]

[편안히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시스템은 흔쾌히 내 요구를 들어줬다.

코인을 낼 필요 없으니 편안히 들어오란다.

나는 고맙다 말하며 액셀을 밟았다.

우우웅-

만남의 광장으로 들어가니, 마치 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기묘한 느낌이 신기했는지, 백예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돌아봤다.

[시스템이 은행장의 방문을 확인하였습니다.]

[시스템이 차원 은행의 건설부지로 은행장을 안내합니다.]

황금색 화살표가 눈앞에 떠올랐다.

자신을 따라오라며 화살표가 꿈틀거린다.

그 화살표가 내 눈에만 보이는 게 아닌지, 백예린이 그 화살표를 가리키며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저, 저거 뭐에요? 갑자기 나타났는데.”

“별거 아닙니다. 그냥 네비게이션이라고 생각하세요.”

“아··· 네.”

대답을 했으면서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지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럴 때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더 빨라, 나는 화살표를 따라 차를 몰았다.

그렇게 50km의 속도로 3분 정도 가니, 2층 건물이 하나 보였다.

현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상가 건물이었다.

그 옆으로는 임대 대기중··· 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건물들이 여러 개 있었고, 조금만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여러 종족들이 맡고 있는 가게들이 있었다.

물약 상점, 대장간, 정육점 등등···.

화살표가 가리키는 건물은 그 모든 건물들 사이에서도 가장 눈에 띄고, 만남의 광장의 중심과 가까운 명당 그 자체였다.

내가 차에서 내려 그 건물에 다가가니, 자신들의 가게를 지키고 있던 주인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어··· 이번에 들어온다는 VIP가 저 사람이었어?”

“이야··· 코인 많이 벌었나 보네. 저쪽 1구역은 왠만해서는 엄두도 안 나는 곳인데.”

“그것뿐이야? 시스템과 긴밀한 사이가 아니면 코인이 아무리 많아도 허락하지 않는다고! 도대체 무슨 관계인 거야?”

“보니까, 이쪽 세계의 주민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그들이 수군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 시선이 마냥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건 시기도 질시도 아니었다.

선의의 질투였으며, 시스템과 좋은 관계를 형성한 나라는 존재의 대한 동경이었다.

절대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었기에, 그것을 불편해할 이유가 없었다.

[만남의 광장 1-5가 은행장을 확인하였습니다.]

[무료 이관권 1매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무료 이관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나는 바로 ‘예’를 눌렀다.

[이관을 위해서 12시간이 필요합니다.]

아, 역시 바로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12시간이라는 적은 시간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던전에 차원 은행을 건설할 때에 무려 3일의 시간이 걸렸다.

이번에도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그런 건 아니니 마음이 편안하다.

[차원 은행의 이관을 시작합니다.]

[차원 은행 내부의 관계자를 제외한 모든 고객들을 추방합니다.]

[12시간동안 차원 은행의 입구를 통제합니다.]

아무래도 은행을 옮기는 거니, 저것도 당연한 거라 볼 수 있겠지.

“자, 그럼 12시간동안 뭘 해야 하려나.”

문제는 내게 주어진 12시간이라는 긴 시간동안 뭘 해야 하는지였다.

3일에 비하면 적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12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기에는 무척 길었다.

적어도 고객이라도 상대하고 있으면 시간이라도 빨리 갈 텐데.

[만남의 광장의 내부에서는 등록되어있는 건물 내가 아니라면 어떠한 영업 행위도 금지합니다.]

여기서는 그러기도 힘들었다.

차원 은행이 열려있는 것도 아니고, 설령 열려있다고 해서 내가 직접 밖으로 나와 영업을 할 수도 없단다.

[일정 코인을 지불하시면 만남의 광장에서 일정 기간 동안 홍보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도 돈이기 때문이다.

만남의 광장을 나가면 가능하지만, 안에서는 불가능하다는 말에 나는 일을 하는 걸 잠시 그만두기로 했다.

어차피 차원 은행도 12시간동안 운영을 멈췄는데, 내게도 휴식시간이라는 게 필요하지 않겠는가.

차를 통째로 아공간에 집어넣으며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으니, 저 멀리 고기 꼬치를 파는 집에서 내게 손짓했다.

“어이, 형씨! 일로와! 여기 맛있는 거 있어!”

그가 시작이었다.

“아니야! 이리로 와! 내가 직접 만든 보들보들한 빵이 있다고!”

“이리로 와서 나와 얘기 좀 해줘! 도대체 어떻게 그 깐깐한 시스템 놈들을 구워 삼은 건지!”

“형씨는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어? 내가 공짜로 대접할 테니까, 이야기 좀 풀어봐!”

근처에 있는 모든 상점의 주인들이 나를 향해 손짓한다.

급기야 내게 무료로 해주겠다며 소리치는 이들도 있었다.

“무슨 일이야?”

“뭔데, 저놈들이 저렇게까지 환호하는 거지?”

“우리한테는 저러기는커녕 웃어주지도 않는다고!”

그들의 모습에 만남의 광장을 돌아다니던 지구의 사람들이 황당해했다.

만남의 광장을 몇 번이나 이용한 그들로서는 저들의 반응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자신들에게는 코인이 없으면 꺼져라,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내 것을 함부로 만지지 마라, 네 깟 놈들에게 팔 건 없다 등등.

온갖 욕이란 욕을 하며 내쫓았던 이들이었다.

개중에, 정말로 개중에 착한 이들이 아니라면, 만남의 광장에 겨우 들어온 그들을 환영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코인이 적다는 이유로 배척했다.

“아이씨, 이놈들 왜 이리 통이 작아! 무려 시스템을 구슬린 놈이란 말이다! 겨우 그딴 걸로 얘기를 꺼내라니. 에잇! 어이 거기!”

술집을 하고 있는 불독 머리를 한 수인이 복슬복슬한 손으로 나를 가리켰다.

“내가 네가 원하는 만큼 술과 음식을 대접할 테니까, 이리로 와라! 다른 놈들도 같이 오고 싶으면 뭐라도 가지고 와!”

내가 무슨 대답을 하기도 전에 내 손을 덥썩 붙잡더니 끌고 간다.

나는 그에게 끌려가는 와중에 황급히 백예린의 손을 붙잡았다.

멍하니 있던 그녀가 삼정 주인들의 틈새에서 낑겨 나를 따라오지 못했던 것이다.

“자, 이제 시스템을 어떻게 구슬린 건지 꺼내봐.”

내 앞에 몇 리터는 되어 보이는 잔에 맥주가 가득 담아 내게 내려 놓으며 불독 수인이 씨익 웃었다.

나는 나를 바라보며 눈을 빛내는 상점 주인들을 훑어보며 팔짱을 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그들도 내 고객으로 맞이하자 결정했다.

나는 경험담을 말해주는 거지, 영업을 하는 게 아니니 시스템에 걸리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저는 차원···.”

내 말을 듣는 그들의 눈이 점점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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