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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29화 (29/113)
  • 제29화

    “저는, 저는 아직 모르겠어요.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실 수 있나요?”

    백예린은 바로 거절을 하지 않았다.

    생각을 해보겠다며, 오히려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말에 그녀와 함께 있던 어른들이 격하게 반응했다.

    “예린아!”

    “그게 무슨 소리니!”

    “어떻게 네가 그런···!”

    자신들이 배신을 당한 것처럼 그들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백예린은 그들이 흔드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렸다.

    “생각을 해보겠다···.”

    내 작은 중얼거림에 마구 백예린을 향해 마구 소리치던 그들이 나를 돌아봤다.

    “당신···!”

    나를 향해 소리치려는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파스스슷-

    반지에서 흘러나온 보라색 연기가 창의 형상을 갖춰 내 손에 잡혔다.

    날카로운 예기를 머금은 창이 그들의 목젖을 겨눴다.

    그저 그들이 짜증난다고 생각한 것뿐인데, 불쑥 창이 튀어나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애써 태연함을 유지했다.

    “히익···!”

    그들이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나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이,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아무리 NPC라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우리에게 인권이 있단 말입니다!”

    이런 멸망한 세상에서 인권을 말한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을 얼마나 편협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언제는 나를 NPC로 여기면서 인간이 아닌 놈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인권을 찾는 그들의 모습이 우습기만 하다.

    “입 다물어.”

    더 이상 그들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도 싫었다.

    그들이 나와 같은 어른이라는 걸 인정하기도 싫었다.

    “듣고 있으려니 구역질이 다 나오네.”

    보라색 창을 꽉 쥐었다.

    특이한 감촉이었다. 쥘 수 없는 안개를 쥐고 있는 듯한 특이한 느낌이었다.

    솜사탕인데, 엄청 옅은 솜사탕.

    “이러면···!”

    푸욱-

    소리 지르려는 남자의 앞에 창을 찍었다.

    창의 일부분이 그의 사타구니 앞에 박혔다.

    “으아아아악!”

    그가 거품을 문다.

    그의 옆에 있던 이들이 백예린을 놓고 뒷걸음질쳤다.

    그제야 숨을 돌린 듯 백예린이 힘겹게 머리를 정돈했다.

    그리고 내가 하는 행동을 지켜봤다.

    내가 그녀의 일행을 위협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오히려 조금은 속이 시원해보였다.

    그동안 당한 게 많은 듯한 반응이었다.

    “당신들은 제 고객으로서 자격이 없군요. 제 고객이 아니신 분은 입을 좀 다물고 계시겠습니까?”

    끄덕끄덕!

    내 위협이 통했는지 그들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게서 손을 내리니, 창도 자연스럽게 연기로 화해 사라졌다.

    “자, 그러면 백예린 씨? 아, 제가 이름으로 불러도 되겠습니까?”

    “네.”

    그녀가 묘하게 후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백예린 씨.”

    “네.”

    “정말로 아쉽게도 제게 당신의 대답을 기다려줄 시간이 없습니다. 날이 밝는 대로 움직여야 하거든요.”

    “아···.”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그들을 졸졸 쫓아다닐 수도 없다.

    나는 만남의 광장으로 가야 하니까.

    “적어도 아침까지는 대답을 해주셔야겠습니다.”

    “어··· 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아공간을 열었다.

    “어? 어어! 먹을 거!”

    “음식이다!”

    아공간에서 내가 꺼낸 소시지를 보며 그들이 크게 소리쳤다.

    내가 든 소시지를 보며 눈이 돌아간 듯하면서도 방금전 내가 그들을 위협한 게 떠올랐는지 섣불리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멀찍이 떨어진 채 자신들에게 그 소시지가 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얼굴을 했다.

    타닥, 타다닥-

    나는 그 앞에서 불에 소시지를 굽기 시작했다.

    소시지가 구워지면서 맛있는 내음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꿀꺽-

    소지지의 냄새에 군침을 다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백예린도 다르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소시지를 꺼내 구워 먹으려 하는 내 모습에 그녀가 눈살을 찌푸렸다.

    좋은 분위기에 있다가 마치 자신들을 놀리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이 정도면 됐네.”

    무척이나 잘 익은 소시지를 든 채, 백예린을 향해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그녀의 일행들은 내 소시지에 한눈이 팔려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어, 저요?”

    “네. 일로 와보세요.”

    그녀에게 간의의자를 하나 꺼내 내 옆에 앉게 했다.

    “자, 드세요.”

    “네? 이, 이걸 제가요?”

    “네. 제 고객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짐승을 길들이려면 먹이를 주라는 말이 있다.

    사람에게 짐승을 비유하는 건 좀 그렇지만, 그 정도로 음식은 사람을 설득하는데 큰 효과를 보였다.

    더군다나 그들처럼 며칠을 굶은 거라면 그 효과는 배로 증폭된다.

    “어··· 감사합니다.”

    나는 그녀를 내 편으로 만들고 싶다.

    그녀의 행동도 마음에 들뿐더러, 그녀가 가진 재능은 엄청났다.

    “아, 저들 눈치를 볼 필요는 없습니다. 이건 오직 당신에게만 드리는 거니까요.”

    소시지 하나 가지고 그 얘기를 하기에는 빈약해 보이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그녀에게는 그 말이 감동적이었던 것 같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었다.

    그러면서 슬쩍 일행들을 돌아봤다.

    아무래도 일행을 놔두고 자기 혼자 음식을 먹기에는 양심에 걸리나 보다.

    “음···.”

    그들이 마음에 안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녀의 일행이니.

    “당신들은 이걸로 만족하세요.”

    사탕 몇 개를 꺼내 그들에게 던져줬다.

    그들이 황급히 사탕을 받으면서도 불평을 뱉어냈다.

    “어째서 쟤는 소시지고, 저희는 사탕을 주는 겁니까!”

    “예린아, 설마 너 혼자 그걸 먹을 생각이니?”

    그들의 불만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사탕을 받은 것에 고마워하는 것도 모자란데, 소시지를 주지 않았다고 불평을 하는 꼴이라니.

    이제는 음식 하나하나가 귀한 가치를 가지는 이 시대에서 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오래 살기 힘들다.

    “그게 불만이라면 내놔라.”

    내 말에 그들이 황급히 사탕을 뒤로 감쳤다.

    내 옆에 앉아있는 그녀를 슬쩍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걸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겨우 그거라고? 네놈들이 그녀의 일행이 아니었다면 그것조차 얻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당신은 마석을 받았잖아!”

    “마석? 그 마석이 왜?”

    “그건 우리의 것이기도···!”

    “닥쳐.”

    그들의 말을 듣고 있으니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으려고 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놈들이 양심이란 걸 모르는 지.

    “나를 물로 보는 건가? 네놈들이 그녀와 했던 대화를 내가 못 들었을 거라고 생각해? 이 마석이 그녀의 것이라고 너희들 입으로 말했잖아.”

    “그, 그건···.”

    그들이 변명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닥치고 그거나 먹어. 네놈들에게는 뭔가를 받아내는 것 자체가 짜증나니까.”

    “···.”

    내 독설에 벙어리가 된 채 멍하니 있는 그들을 뒤로하며 얼을 타고 있는 백예린의 어깨를 두드렸다.

    “드시지 않고 뭐하고 있습니까? 식으면 맛이 없습니다. 어서 드세요.”

    “···아, 네, 네!”

    멍하니 있던 그녀가 내 손길에 퍼뜩 정신을 차리며 소시지를 한입 베어물었다.

    그녀의 이빨에 잘린 소시지의 단면에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꿀꺽.”

    “맛있겠다···.”

    멍하니 그녀가 먹는 것을 바라보는 그들은 내 눈치가 보이는지, 그녀에게 무슨 말도 꺼내지 못했다.

    “마, 맛있어요!”

    “네. 천천히 드세요. 소시지는 더 있으니까. 그러다 체하겠습니다. 여기 물도.”

    잘 먹는 그녀를 보고 있으니, 소시지 하나만 먹이는 게 좀 찔렸다.

    그래서 몇 개 더 꺼내 굽기 시작했다.

    이 정도는 괜찮다. 아직 그녀가 나와 일을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는 내게 큰 지출이 아니었다.

    햄스터처럼 입안 가득 소시지를 밀어넣는 그녀에게 물을 건네주웠다.

    ‘내일 무슨 대답을 할지 참 기대되네.’

    누구는 배부르게 먹고, 누구는 사탕으로 배를 달래는 밤이 가고, 아침이 찾아왔다.

    “끙, 끄응.”

    “추워···.”

    백예린의 일행들은 내가 잠든 사이에 모닥불에 달라붙어 있었는지, 눈을 뜨고 차에서 나오니 모닥불 주위로 누워 있던 그들이 보였다.

    -저대로 두실 건가요? 당신의 힘이면 그녀가 모르게 저들을 죽일 수 있습니다.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도 가능하죠.

    “아니요. 제게 직접적으로 해한 것도 아닌데, 그들을 죽이는 건 좀 그렇네요.”

    반지의 그녀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반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보라색 연기가 살짝살짝 내 뒤통수에 아른거리는 걸 보지 못했다.

    그걸 봤어야 했는데, 그걸 봤으면 고블린을 죽이는 것조차 망설였던 내가 어째서 이렇게 빠르게 성격이 변한 건지 알 수 있었을 텐데.

    “예린 씨, 잠시 일어나 보시겠습니까.”

    그들에게서 시선을 때며, 모닥불에 좀 떨어진 차 옆에서 자고 있는 백예린을 조용히 흔들어 깨웠다.

    혼자 소시지를 먹은 벌을 받은 건지, 그녀는 모닥불에 가지도 못하고 덜덜 떨고 있었다.

    “어, 네···!”

    깜짝 놀라 목소리를 높이려는 그녀의 입을 황급히 막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조용히 하라 신호를 보내며 말했다.

    “저들을 깰 수도 있으니, 제 말에 작게 대답해주시겠습니까.”

    “네···.”

    그녀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아직 잠이 덜 깬 눈을 한 채 나를 바라봤다.

    “어제 제가 당신에게 했던 제안에 대한 답을 듣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와 일행을 번갈아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이 흔들렸다.

    나는 지금 그녀에게 대답을 듣고 싶다. 저놈들이 깨봤자 방해만 할 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들이 깨기 전이 가장 좋은 타이밍이었다.

    “어···.”

    그녀가 대답하기를 망설인다.

    그러더니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제, 제가 일을 하겠다고 하면, 저분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여기에 놓고 가겠죠.”

    “음···.”

    아무리 자신을 이용해 먹는다고 해도 그들을 버리고 간다는 게 양심에 거리는 듯한 얼굴이다.

    적어도 그들의 안전이 확인되었으면 하는 얼굴이다.

    이대로면 그녀가 결정을 하기가 어려워 할 것 같아, 그녀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했다.

    “그럼 또 추가로 제안을 하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저를 따라오시겠다고 하면, 저들에게 3일치의 식량과 식수를 주겠습니다. 불도 피워드리죠. 하지만, 거절을 하신다면 저는 이대로 떠나겠습니다. 어떤 게 더 그들에게 도움이 될지 잘 알 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아···.”

    내 말에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가 듣기에도 뭐가 더 좋은 지 알 수 있었다.

    나를 따라가면 그들은 식량을 얻을 수가 있다.

    그 대신 그녀에게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그녀가 그들과 함께 한다고 해도 문제였다.

    그들끼리 움직이다고 해서 식량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가 언제까지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는 많았다.

    차라리 그들을 직접 보호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당장에 굶지 않아도 된다면 그들에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 할게요. 하겠습니다. 하게 해주세요!”

    “좋습니다.”

    그녀의 대답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으음···.”

    우리들 목소리가 컸던 건지 그들이 일어날 기미가 보여, 황급히 그녀를 보조석에 앉혔다.

    잠시 기다리라 말한 채 그들에게 다가갔다.

    “아깝기는 하지만···.”

    그들의 수는 세 명이니, 참치캔 18개를 내려놓았다.

    한 끼에 참치 한 캔씩, 삼일치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것조차 아깝기는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그들에게서 벗어나 차에 올라탔다.

    부르르릉!

    차에 시동을 켰다.

    그 소리에 깬 건지 당황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예린이 그들을 보면 생각을 바꿀 것 같아 바로 액셀을 밟았다.

    “예, 예린아아아!”

    “어, 이거 봐! 참치야!”

    “먹자! 맛있겠다!”

    단 한 사람만이 그녀를 찾을 뿐 다른 이들은 참치캔에 한눈을 팔았다.

    저러면 삼일은커녕 하루도 못 버티겠네, 라고 생각을 하며 백미러에서 시선을 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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