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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28화 (28/113)
  • 제28화

    여자아이가 내 눈치를 봤다.

    그녀의 손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마석이 나를 유혹했다.

    “흠···.”

    이걸 어떡해 해야 할까.

    마석 자체는 좋기는 한데, 이 마석이 어느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보니까 그녀에게 있는 마석은 이게 전부인 것 같고, 추가로 코인을 지불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이 마석이 2,000코인의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

    마석을 바라보고 있으니 살짝 흥분했다가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여자아이의 행동이 당돌한 게 마음에 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내가 손해를 보고 싶다는 건 아니다.

    마음에 드는 건 마음에 드는 거고, 내 자산에 있어서는 다른 문제였다.

    계속 마석을 들고 있어서 팔이 아픈 건지,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손에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마석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 마석,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어···.”

    그녀가 눈을 데구르르 굴리며 고민했다.

    내게 부탁을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마지막 보루와 같은 마석을 함부로 주기는 망설여지는 것 같았다.

    “아, 안 돼!”

    “예린아! 안 된다! 그걸 어떻게 얻은 건데!”

    뒤에서 그녀의 일행들이 시끄럽게 떨었다.

    그들도 고객이기는 했지만.

    ‘죽이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면 입이라도 다물고 있던가, 저게 뭐하는 행동인지.

    나도 모르게 그런 괴팍한 생각을 할 정도로 그들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처럼 마석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아니지. 그래도 내 고객인데. 위협을 가하는 건 좀 그렇겠지.

    하지만 저 입을 함부로 열지 못하게 할 필요는 있다.

    저놈들 때문에 내 고객마저 떠날 지경이니까.

    “사, 살펴보세요!”

    그녀가 내 코앞에 마석을 내밀었다.

    마석을 한 손으로 잡으며 그녀의 뒤에 있는 이들을 노려보려 하는데, 어째서인지 그녀가 자꾸만 내 시야로 마석을 움직였다.

    마치 자신의 일행들을 해치지 말아달라는 것 같았다.

    뭐하는 짓인지 그녀를 향해 인상을 쓰니, 그녀가 황급히 자신의 뒤를 향해 소리쳤다.

    “아저씨들 제발, 제발 좀 조용히 해주세요.”

    “하, 하지만 예린아! 그걸 우리가 어떻게 얻은···!”

    “이건 제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고 약속하셨잖아요!”

    대화를 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싸우기 시작한 그들의 모습에 볼을 긁적였다.

    -감이 예민한 아이군요. 어? 저건 설마···.

    “왜 그러시죠?”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잘못 느낀 것 같네요. 다만 저놈들은 확실히 짜증나는 군요. 그녀의 몸과 다르게 너무 깨끗한 게··· 쯧. 남에게 눌러붙어 살아가는 기생충 같은 놈들이었나 보군.

    “그게 정말입니까?”

    -네. 행색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녀의 몸에 남아 있는 전투 흔적과는 다르게 놈들에게는 그런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그저 나뭇가지나 돌로 인해 생겨난 상처뿐이군요.

    “음···.”

    -그런데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그들을 지킬 정도로 그녀에게 재능이 있다는 걸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녀의 말에 이를 악물었다.

    내가 잘못들은 게 아니라면 이 여자아이가 싸울 때 그들은 멀리서 지켜만 보고 있었단 말이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어린아이에게 전투를 맡기다니.

    “알겠습니다. 한 번 살펴보죠.”

    저놈들은 좀 지켜봐야겠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저들이 내가 만든 모닥불에서 불을 쬐고 있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내가 그녀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거다.

    “이걸로 스켈레톤 세 마리를 운영할 수 있는 거면,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 겁니까?”

    -대략 하루 정도 되겠네요.

    “스켈레톤 말고는요?”

    -음··· 잠깐이지만 제가 실체화할 수 있습니다.

    “···!”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몸을 빌려 쓰는 것만으로도 자이언트 스파이더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본인의 몸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얼마나 강할까.

    -한 5초 정도.

    “아···.”

    그런 내 기대는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상실되었다.

    그래도 괜찮다. 어쨌든 이 마석의 질이 나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

    스켈레톤이 얼마나 강한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엘더 리치가 부리던 언데드들을 떠올리면 그리 나쁘지 않은 전력일 것이다.

    아니, 어지간한 경우에는 나를 지켜주겠지.

    ‘조금은 손해를 보더라도 얻는 게 낫겠어.’

    그리고 무엇보다 한 번쯤은 마석이 어떤 건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내가 몬스터를 사냥해서는 마석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라도 마석을 사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내 고객들이 마석을 사기 위해 코인을 얼만큼이나 소비했는지 들었으니, 그들에 비하면 나는 비교적 싸게 마석을 사는 것과 같았다.

    “괜찮군요. 이 마석이라면 석탄 등급의 계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내 말에 그녀의 얼굴이 밝아진다.

    마석을 잠깐 바라보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좌를 만들어주세요.”

    “알겠습니다.”

    시스템을 조작하여 그녀에게 계좌 개설 동의서를 띄었다.

    그녀가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읽더니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져 나를 바라봤다.

    “이, 이거···!”

    “쉿.”

    놀란 그녀에게 뒤에 있는 이들에게 보이지 않게 신호를 보내며 작게 말했다.

    “이건 제 선물입니다. 그러니 다른 이들에게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그녀가 뒤를 슬쩍 돌아보며 눈이 흔들린다.

    어른들은 뭐가 그리도 불만인지 이쪽을 바라보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을 바라보다 굳게 결심한 얼굴로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동의를 하시겠습니까.”

    “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백예린’이 구리 등급의 계좌 개설을 동의하였습니다.]

    [‘한정우’님의 개인 계좌에서 5,000코인이 소모됩니다.]

    [계좌 개설비 5,000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

    이건 생각에 없던 일인데.

    내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코인이 돌고 돌아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차원 은행이 내 것이니, 결국 나는 소비한 코인이 없었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살짝 당황스러웠다.

    ‘좋은 일이네.’

    생각해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시스템이 차원 은행에 세금을 매긴 것도 아니고, 내가 코인을 소모해봤자 결국에는 차원 은행으로 돌아왔다.

    아주 조금의 소비도 없이.

    결국에는 무료로 그녀에게 계좌를 개설해준 것이다.

    ‘이건 생각도 못한 건데, 이득 봤네.’

    공짜로 마석을 얻은 일인데 어찌 기쁘지 않을까.

    그저 그녀가 마음에 들기도 하고, 반지의 재능이 있다는 말을 믿고 그녀에게 투자한 것이었는데.

    이게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건가.

    “감사합니다!”

    그것을 모르는 그녀는 단순히 내가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음···.”

    고맙기는 하지만, 미안한 마음도 깃들어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팔짱을 꼈다.

    잠깐 그녀를 상대해 본 결과 나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아직 어리기는 하지만, 오히려 어리기에 그녀에게 가치가 있었다.

    내게는 짧은 시간일지 모르는 나흘의 시간이지만, 그녀에게는 하루가 일 년 같은 긴 나흘동안 짐덩어리나 다름없는 몬스터들에게서 살아남았다.

    그것만으로도 그녀를 높이 사줄 만한데, 반지가 그녀를 칭찬까지 했다.

    나중에 크게 될 거라며.

    ‘그냥 내가 고용할까?’

    내 도움을 받아 고객이 된 그녀를 저런 놈들로 인해 개죽음을 당하는 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데리고 가고 싶었다.

    은행원이 아닌 경비원으로 고용하면 될 것 같았다.

    싸움에 재능이 있는 것 같으니 엘더 리치에게 교육을 맡기면 되겠지.

    가뜩이나 내게는 인재들이 필요했다.

    성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기 시작했고, 만남의 광장으로 은행을 옮기면 필연적으로 직원이 모자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직원을 고용하는 것도 문제였다.

    바빠지기 시작하면 일일이 돌아다니며 인재를 찾기도 힘들 테고, 최동수처럼 순수히 내 제안을 들어줄 리도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아직 긁지 않은 복권과도 같았다.

    “정말 재능이 있는 겁니까?”

    -네. 단순히 주먹질이라면 제가 이런 말을 하지 않겠죠.

    “그렇다면···.”

    -처음에는 착각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단전에 오러가 쌓여있습니다.

    “오러라 하면···?”

    -네. 그 오러가 맞습니다. 인간이란 종을 초인으로 만들어주고, 파괴적이며 그 어떤 것도 부술 수 있는 힘 말입니다.

    말을 하는 반지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믿을 수 없는 상황을 겪은 사람처럼, 그녀의 목소리에는 흥분, 부러움, 질투 등의 감정이 섞여 있었다.

    -저런 재능은 제가 살아생전에도 보기 힘든데··· 제가 한 가지 의견을 내도 되겠습니까?

    “네. 하세요.”

    -저 아이는 꼭 붙잡으셔야 합니다. 지금은 약해 보이고, 별거 아니라 생각이 될지 몰라도. 훗날에 달라질 겁니다. 어쩌면 지금 잡지 못한 것을 후회할 정도로.

    엘더 리치의 간부가 이런 얘기를 할 정도였다.

    어차피 내게는 직원이 필요했고,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그녀라면 내가 고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한 가지 제안을 해도 되겠습니까?”

    “예?”

    “갑작스럽기는 하겠지만, 저는 당신을 고용하고 싶습니다.”

    “···?”

    그녀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도 잠시 그녀의 두 눈이 점점 커지며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저, 저를요?!”

    “네.”

    “어, 어째서죠? 어째서 저를···.”

    “마음에 들었으니까요.”

    간단한 내 대답에 그녀가 당황했다.

    “하지만 저는 어리고,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괜찮습니다. 지금이야 그렇다 해도 그건 배우면 되는 거니까요.”

    “음···.”

    그녀가 입을 꾹 다문채 고민을 했다.

    나는 얼마든지 그녀의 대답을 기다려줄 의향이 있었다.

    그녀가 수락을 한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음식들과 옷 등으로 그녀를 보살필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어떤 대답을 할지 기다리고 있는데, 방해꾼이 찾아왔다.

    “지, 지금 뭐하는 겁니까!”

    “예린이는 저희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약속했다고요!”

    “예린이는 저희가 지킬 겁니다!”

    뒤에 멀찍이 떨어져 있던 어른들이 황급히 달려와 그녀를 껴안았다.

    절대 빼앗길 수 없다며 내게 버럭버럭 소리쳤다.

    -죽일 까요?

    잠잠히 지켜보던 반지가 보라색 연기를 피어 올리며 서늘하게 말했다.

    나는 그녀를 진정시켰다.

    지금은 안 된다. 여기서 그들을 죽이거나 하면, 그녀가 내게 겁을 먹거나 부정적이게 될 수 있다.

    적어도 그녀가 긍정적인 답변을 할 때에 치워야 한다.

    “아저씨, 저 숨막혀요.”

    “예린아 대답하지 말 거라!”

    “어딜 감히, 우리 예린이를!”

    답답해하는 그녀를 꼭 붙잡은 채 그들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풀어다라며 바둥거리는 손까지 붙잡으며 그녀를 품에 안았다.

    나는 그들을 무시한 채 그녀를 바라봤다.

    방금전 보였던 생기가 사라지고, 어두워진 그 얼굴을.

    “저는 당신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뭔데 우리 예린이를 데려가겠다는 거야!”

    “예린이는 우리 거란 말이야! NPC면 NPC답게 할 일만 하라고!”

    사람을 물건처럼 자기 것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그들의 수준도 알만 했다.

    “예린아, 어서 말해라! 안 가겠다고!”

    “그래! 우리와 약속했잖니! 우리를 지켜주겠다며!”

    “예린아 우린 너만 바라보고 있어. 네가 가면 안 된다.”

    그들의 말에 구역질이 나오려 했다.

    그들을 전부 치워버리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그녀가 거절을 하면 그대로 헤어지려 했는데, 저것을 보고 있으니 그럴 마음이 훅 사라졌다.

    어떻게 해야 그들을 떨어뜨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힘겹게 어른들을 밀어내며 백예린이 입을 열었다.

    “저는···.”

    그녀의 대답에 나와 그들의 반응이 극명히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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