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저들이 내 고객이라고?
헤지고 헤진 옷이며, 여기저기 상처가 나고 며칠은 씻지 않은 몰꼴의 사람들.
그들은 자신들에 비해 한없이 깨끗한 나를 아예 다른 종을 대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불이 필요해 불을 따라온 것 같음에도 이상하리만치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내가 저기 저 흉폭하게 고성을 내지르는 몬스터와 같다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같은 인간이다. 비록 낯선 사람을 조심해야 하기는 하지만, 그게 저렇게까지 경계를 하는 건 좀 이상했다.
다가온 건 그들인데, 마치 내가 그들에게 다가온 불청객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어째서 저렇게까지 경계를 하고 무서워하는 걸까.
‘아, 내 옷차림 때문인가?’
그렇게 고민을 하다 보니 한 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이 격변의 세상에서 놀라우리만치 깨끗했다.
나만은 저 격변의 세상과 관련이 없는 것처럼, 몬스터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불을 피우고 차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태연하게 그들을 바라보는 것까지.
같은 인간이라면 반지의 힘으로 다치지 않고 이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내가 안심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그들에게는 내가 이상하게 보였으리라.
그들은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저들끼리 속닥거리고 있는데, 주변이 워낙 조용하다 보니 그들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주 잘 들렸다.
“도, 도대체 뭐에요 저 사람.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죠?”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여기에 자리를 잡고 불을 피운 건 나거든.
“그런데 인간은 맞는 거야? 도대체 뭐하는 놈이지.”
그냥 단순한 은행장입니다.
“저 사람 너무 깨끗하잖아. 자기만 그런 것들에 영향을 안 받는 것처럼. 아마 인간이 아닐 거야.”
인간 맞습니다. 이건 깨끗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는 거고.
나를 향한 그들의 추측은 점점 산으로 갔다.
나중에는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든 나쁜 놈 아니야? 하는 말까지 나오고 있을 때, 그들 중 가장 나이가 어려 보이는 여자가 입을 열었다.
“그, 저기··· NPC아닐까요?”
NPC?
내가? 설마 다들 저 말에 공감하는 게 아니겠지.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그들을 스윽, 둘러보니 내 생각과는 다르게 그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 그럴 수도 있겠네. 아니, NPC가 아니면 저 모습이 설명이 안 되지!”
“맞아!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태연하게 앉아있을 수는 없다고!”
“그럼 여기가 안전지대인거야?”
“그렇지 않을까? 게임이나 소설에 보면, NPC가 있는 곳은 안전했잖아.”
그들로 인해 어느새 나는 NPC로 둔갑해 있었다.
그들에게 나는 같은 인간이다라고 말하려 하던 나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굳이 그들의 생각을 고칠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나를 NPC로 생각하면 더 좋은 게 아닐까.
‘내가 시스템과 연관되었다고 생각하면 허튼 생각을 하지 않겠지.’
내가 같은 인간이라는 게 밝혀지면 여러모로 불편해질 거라는 게 눈에 훤했다.
사람은, 인간은 그런 생물이다.
한 번 도와주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달라붙는 존재.
다만 그것을 막으려면 나와 그들이 다른 존재라고 인식해주면 된다.
도움을 달라고 하고 싶어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존재.
‘NPC가 그런 존재지.’
정해진 틀에서만 움직이는 게임 속 인공지능.
실제 게임에서 그들은 오직 정해진 대사만을 내뱉고, 정해진 패턴으로만 움직인다.
그렇기에 게임 유저들도 NPC, 즉 게임 속 주민들에게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NPC라고 믿었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슬그머니 다가와 불을 쬔다.
“···.”
나는 조용히 그들의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들은 내 눈빛에 몸을 움찔 떨면서도, 모닥불의 따뜻한 온기에 얼굴이 풀렸다.
“그런데 어디서 고기 냄새나지 않아?”
“여기서 누가 고기 구워 먹은 거 같아.”
저들끼리 중얼거리며, 그들이 모닥불을 샅샅이 살폈다.
그리고 모닥불 안에 버려진 고기를 포장하고 있던 비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원래 NPC도 밥을 먹어?”
“그, 글쌔···.”
“게임이랑 다르겠지. 우리만 봐도 그렇잖아. 게임과 같은 시스템을 얻었는데도 이렇게 지친 걸 보면.”
“하, 하긴 그건 그렇네요.”
저들끼리 의문을 토하고, 저들끼리 의문을 해결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 모습에 운전석에 비스듬히 걸치듯 앉아있던 나는 슬며시 일어나 문을 닫았다.
타악-.
문이 닫히는 소리에 뭐라뭐라 소곤거리던 그들이 고개를 휙 돌려 나를 돌아봤다.
“···.”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들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내 행동을 지켜봤다.
내가 왜 차에서 내렸는지, 어째서 모닥불로 다가오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경계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그중 오직 단 한 사람.
나를 NPC라고 칭한 그 여자아이만이 흥미 가득한 눈으로 내 행동을 지켜봤다.
‘뭘 그렇게 바라봐. 이 모닥불도 내껀데.’
그렇게 쳐다보면 내가 그들의 영약을 침범한 거 같아 기분이 좀 그렇잖아.
속마음을 꾹 눌러 담으며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그들 앞에서 아공간을 열어 간의 의자를 꺼냈다.
“···!”
“저, 저거 허공에 이상한 게···!”
내 행동에 그들이 격한 반응을 보였고, 그들이 그럴수록 나는 만족스러워졌다.
내가 그들과는 다른 사람이란 것을 인식시켜줘야 한다.
아주 작은 틈이라도 주면, 그 틈을 파고들테니까.
턱, 털썩.
그들과 나 사이에 모닥불을 둔 채로 간의의자를 펼쳐 그 위에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차원 은행의 은행원입니다.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최대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그리고 업무적인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그 행동에 그들이 안도했는지 크게 한숨을 내셨다.
“NPC가 맞네.”
“그런데 차원 은행이라고 했지? 설마 시스템이 말한 그건가?”
“그런 것 같은데요. 최근에 갑자기 차원 은행을 찾아가 계좌를 만들라고 했잖아요.”
그들의 말에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시스템이 얼마나 약속을 잘 지키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차원 은행이라··· 조금 아쉽기는 하네요. 상인이었으면 먹을 거라도 샀을 텐데.”
“그러게. 이틀을 굶었더니 배가 아플 지경이야.”
“그래도 안전지대에 온 게 어디야. 다른 곳이었으면 위협 속에서 벌벌 떨어야 하는 거잖아.”
그들이 아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그렇게 나를 본다고 해서 내가 아공간을 열어 그들을 도와줄 건 아니기에 그 시선을 가볍게 무시했다.
내가 그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조용한 가운데 여자아이가 내 앞으로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계좌를 만들려고 하거든요. 가능할까요?”
가능하다 못한다를 묻는 거라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파견 근무]
차원 은행에서 외지로 은행원을 파견 보낸다.
-파견 나온 은행원은 차원 은행에서 할 수 있는 대부분에 기능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새로이 개방된 능력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그들에게 계좌를 개설할 만한 코인이 있는지였다.
성좌조차 최하위 등급인 석탄 등급의 계좌 개설비 2,000코인을 내지 못했다.
그런데 그보다 낮은 평범한 인간이 그 코인을 낼 수 있을까?
아무리 시스템의 도움으로 직업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시스템을 얻은 건 아직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그사이에 그만한 코인을 모을 수 있을 련지.
그래도 벌써부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었기에 나는 사무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합니다.”
“음··· 계좌를 만들라고 했으니, 그걸 만들려면 코인이 필요하겠네요?”
“네.”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서 나와 대화를 하고 있는 그녀를 걱정스레 지켜보는 어른들을 한심하게 바라봤다.
어른이라는 작자들이 어린아이보다 못하는 게 한숨이 나온다.
나도 어른이기는 하지만 저건 좀···.
“계좌를 만드시겠습니까?”
“네.”
그녀가 당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멀찍이 서서 지켜보는 어른들과 다르게 결단력이 넘치는 그녀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계좌의 등급에는 여러 개가 있습니다. 석탄부터 다이아까지.”
“다이아가 가장 좋은 거겠네요?”
“그렇죠. 지금 할 수 있는 것 중에는 가장 좋습니다.”
그 위에 등급도 있다는 건 굳이 꺼내지 않았다.
벌써부터 그녀의 기를 죽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럼 등급이 높을수록 코인의 양도 더 늘겠군요···.”
시무룩한 그녀의 말에 나는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
“그렇죠.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등급이 높다고 해서, 그리고 너무 낮다고 해서 불이익을 받는 건 없으니까요. 지금은 그 등급들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차원 은행에 숨겨진 기능들이 풀리기 시작하면, 그 등급들의 대한 격차가 점점 벌어질 것이다.
나중에는 빈익빈부익부가 뭔지 제대로 보여주겠지.
지금으로서는 현재 거래할 수 있는 코인의 한도가 다르다는 것 정도가 다였다.
‘아, 그러고 보니 적금이 개방되었었지.’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서 쓰지 않고 있는 기능이 하나 있었다.
‘적금’ 일부러 드러내지 않고 있는 기능이었다.
왠지 이걸 드러내는 순간 이렇게 돌아다닐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바빠질 것 같아서.
“정말요?”
“네.”
“그, 그럼 석탄 등급으로 할게요.”
“알겠습니다.”
은행원 직원인 최동수는 은행원이 되면서 자동적으로 석탄 등급의 계좌를 얻었다.
그리고 그 등급은 그가 직급이 올라갈수록 계좌의 등급도 같이 올라간다.
일종의 은행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 거치고는 엘더 리치는 직접 만들기는 했지만, 은행원과 경비원이 다르기에 그러려니 넘어갔다.
“어··· 이, 이천 코인이나 드네요?!”
내가 그녀에게 보낸 메시지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하니 그 정도로 많은 코인을 지불해야 할지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기껏해야 몇 백 코인으로 생각했겠지.
“미, 미친 이천 코인이라니!”
“우리가 몬스터를 사냥해도 얻을 수 있는 건 마석이 다인데!”
“애초에 처음에 받은 코인을 제외하면 추가로 얻을 수도 없다고!”
뒤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일행들이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그런 반면 그녀는 처음에 놀란 거 외에는 의외로 침착했다.
“저, 제가 지금 그 정도의 코인이 없어서 그런데요.”
그럴 것 같았다.
그렇기에 큰 기대를 하지도 않았고.
여기서 포기하려는 걸까 싶었는데, 그녀의 뒷말이 뭔가 이상했다.
“혹시 마석으로 대체할 수는 없을까요?”
“···?”
그녀가 품에서 영롱한 빛깔을 뽐내는 붉은색 보석을 꺼내들었다.
그녀의 행동에 일행들이 당황했는지 황급히 그녀를 말리려고 했다.
나도 그녀에게 불가능하다고 말하려고 할 때였다.
-오, 상당히 질 좋은 마석이네요. 저 정도면, 못해도 스켈레톤 세 마리를 부릴 수 있겠어요.
반지에서 흘러나온 말이 내 입을 다물게했다.
스켈레톤을 부릴 수 있다는 말과 그리고 카셀린이 마석으로 코인을 대체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성급히 대답하지 않고 차원 은행을 떠올렸다.
그리고 내가 묻고자 하는 것을 속으로 생각했다.
‘혹시 내가 코인을 지불하여 계좌를 대신 만들어줄 수 있을까?’
차원 은행에 물었다.
남들이 보면 뭐하는 거냐고 물을 정도로 황당한 행동이기는 했지만, 이 방법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게 있으면 의문을 해결해주는 메시지를 믿었다.
[차원 은행의 은행장의 권한을 사용하시면 가능합니다.]
차원 은행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