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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24화 (24/113)
  • 제24화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고, 나는 그 폭풍으로 얻은 부수입에 입맛을 다셨다.

    발키리를 소환하는 돌부터, 한 차례 내 몸을 보호하는 방어막을 만들어내는 반지까지.

    나를 죽일 뻔한 대가로 꽤 많은 보상을 뜯어냈다.

    그렇게 많이 뜯어낼 수 있었던 건 카셀린도 한몫했다.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내가 위험할 때 찾아온 그녀가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쯤 땅을 뒹구는 시체가 되었을 것이다.

    나를 살렸다는 생각때문인지, 처음의 강렬한 인상이 조금은 옅어진 기분이었다.

    “오늘은 이만 가도록 할게. 이 녀석은 용서해주지 않아도 돼. 그건 네 마음이니까.”

    끝까지 내 편을 들어주며 그녀가 남자의 목덜미를 붙잡은 채 사라졌다.

    -후아, 죽는 줄 알았네.

    -도대체 저분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어후, 기세가 무슨···.

    그들이 사라지기 무섭게 입구에서 들어오지 못하고 가만히 지켜보던 성좌들이 앞다투어 달려와 제 말을 꺼냈다.

    무료 수십명이서 내게 달라붙어 말을 거는 것이다.

    한 명씩 말을 하면 좋았을 텐데, 동시에 얘기하기 시작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귀를 상당히 따갑게 만들었다.

    “동수씨, 지금부터 동수씨가 저대신 일을 해주시겠습니까?”

    “예?!”

    내 말에 최동수가 화들짝 놀라며 기겁했다.

    어떻게 자신이 그럴 수가 있냐며 손을 휘저었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기는 했지만, 제가 하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적당히 말을 받아주기만 하면 됩니다. 한 분당 시간은 최대 10분으로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내가 하는 것을 지켜보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직접 상대하는 건 또 의미가 달랐다.

    그가 성좌들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내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한시라도 빨리 만남의 광장으로 가야 하니까.’

    원래였다면 조금 느긎하게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만남의 광장에서는 시스템이 개입할 수 있어, 지금보다 안전할 거다.

    카셀린이 남자의 멱살을 붙잡으며 내게 해줬던 말이다.

    그녀는 내 은행의 입구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보고 죽기 싫으면 최대한 빨리 만남의 광장에 가라고 했다.

    그곳에서는 이곳처럼 목숨을 위협받을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며.

    아무리 힘이 강한 성좌라고 하더라도 시스템에게는 이길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살기 위해서라도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만남의 광장으로 가겠다고 영업을 안할 수도 없으니.’

    나를 대신해서 시간에 맞춰 그가 일을 해준다면 내가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비록 엘더 리치가 그 남자에게 쉽게 당하기는 했지만, 그건 그 남자와 카셀린이 예외적인 경우였다.

    그들은 강하다. 시스템이 간섭할 정도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성좌들이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성좌들은 엘더 치리보다 약하거나, 혹은 그와 비슷한 수준에 불가했다.

    그러니 그가 있다면 어지간한 경우에서는 최동수를 지켜줄 수 있으리라.

    ‘정 안되면 잠시동안 문을 닫아야겠지.’

    그건 아주 예외적인 일이 되겠지만,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데 문을 열고 있을 수도 없다.

    “동수씨는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하는데 동수씨가 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 그럼 은행장님은요?”

    “저는 가봐야 할 데가 있습니다.”

    “네?! 또 어디를 가시겠다는 거에요!”

    이번 일로 그에게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내가 나가겠다고 하기 무섭게 격한 반응을 보였다.

    가지 말라며, 자신과 함께 있어달라는 그에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저희가 살기 위해 움직이는 거라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고 리치씨가 함께 있으니, 어지간한 위협에도 안전할 겁니다.”

    “하지만···.”

    그가 엘더 리치를 못 미덥다는 눈으로 흘깃 바라봤다.

    ‘거인을 때려 죽인 불멸의 전사’에게 한 방에 나가떨어진 모습이 그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았다.

    자꾸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그를 보며 나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이건 질척거려도 너무 질척거렸다.

    죽을 뻔한 건 난데, 왜 그가 겁을 집어삼키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동수씨, 자꾸 그러면 제가 좀 곤란합니다. 제가 동수씨를 죽이지 않고 고용한 이유가 이것 때문인데. 일을 하지 않겠다면 제가 동수씨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서늘한 내 말에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나와 엘더 리치가 그를 두고 죽일지 말지 상의하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모양이다.

    그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나로서는 그렇게라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나를 놓아주지 않을 것 같았기에.

    “아, 알겠습니다. 그렇죠. 저는 일하기 위해서 살게 되었으니까.”

    서글픈 그의 말에 나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그를 살려둔 이유가 그에게 일을 시키기 위함이 맞았다.

    “식량은 여기에 놔두겠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정해진 시간보다 한 시간을 일찍 일어나 먼저 준비해야 할 겁니다.”

    “어, 얼마나 나가있으시려고···.”

    “음, 그건 아직 잘 모르겠네요. 하루 이틀일 수도 있고 어쩌면 한 달이 넘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만남의 광장으로 향하는 길이 순탄치많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운행수단이 있는 예전과는 다르게 지금은 오로지 내 다리로만 움직여야 했다.

    중간에 은행으로 돌아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니,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만남의 광장까지 바로 갈 생각이다.

    의자에서 일어나 그를 그 자리에 앉히며 어깨를 두드렸다.

    -뭐야, 왜 저 찔찔이가 앉아?

    -은행장은 뭐하고! 은행장! 나는 할 말이 많단 말이다!

    -이번에는 도대체 어디를 가려는 거냐!

    입구를 통해 나가려는 나를 성좌들이 앞다투어 달려와 달라붙었다.

    자신들을 상대해주지 않고 왜 나가냐며 업무 태만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제가 새로 고용한 은행원입니다. 제 옆에서 보고 배웠으니, 저만큼이나 잘할 겁니다.”

    비록 그게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기는 하지만.

    -그, 그래?

    -그렇단 말이지?

    내 말에 성좌들이 최동수를 돌아봤다.

    그들의 얼굴에는 저 찔찔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웃긴 게, 나도 이 일을 한지 아직 하루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나를 뭘 보고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건지.

    “그럼, 저를 좀 놔주시겠습니까? 제가 할 일이 많아서요.”

    그들의 손을 때어놓으며 은행을 나갔다.

    끝까지 나를 붙잡고 놓치지 않으려 하던 성좌들도 은행을 나가는 입구에서는 나를 놓치고 말았다.

    그들이 들어온 입구와 내가 들어오고 나가는 입구는 달랐다.

    나를 붙잡는다고 해서 따라올 수 있는 그런 게 아니었다.

    “후아···.”

    은행을 나와 바라보는 세상은 여전히.

    망가져 있었다.

    은행에 들어와 있던 이틀이라는 그 짧은 시간동안 세상은 더욱 망가지고, 부서지고 있었다.

    절대 복구되지 않을 것처럼 땅이 갈라지고, 파랗던 하늘은 불에 탄 잿가루들로 가득했다.

    은행의 입구 주위로 있던 잔해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끈적한 액체가 묻어있는 알들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었다.

    “어··· 나, 망한 건가?”

    분명 은행을 돌아올 때까지만 해도 알들은커녕 몬스터의 흔적조차 없었다.

    그런데 지금의 이 상황은 뭐란 말인가.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흠, 자이언트 스파이더의 알이군요.

    내가 알들을 살펴보고 있을 때 반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알들의 정체를 안다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모르고 상대하는 것보다는 알고 상대하는 게 더 나으니까.

    “이것들이 뭔지 아시는 겁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숲을 돌아다니다보면 종종 만나게 되는 놈들이죠. 그런데 이렇게 확 트인 곳에는 알을 낳지 않는 놈들인데.

    그녀가 무척이나 의아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꿈틀.

    그때 알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불투명한 막 너머로 검은색의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입구를 둘러싼 알 전체에서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집에 들어온 불청객을 알아차린 듯이 놈들이 마구 움직였다.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사방에서 심장의 고동 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멍하니 그것들을 바라봤다.

    -이건 위험하군요.

    그런 내 귀로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닌, 도망쳐야 한다며 그녀가 나를 재촉했다.

    -놈들이 전부 깨어나면 위험해질 겁니다. 그러니 그 전에 여기서 탈출해야 합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달렸다.

    알들이 모여 있는 곳을 피해, 그나마 알이 적은 곳으로 달렸다.

    내 몸만한 알에서 큰 덩치를 자랑하는 거미들이 태어난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숙이세요!

    그녀의 강한 외침과 함께 날카로운 무언가가 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목소리에 놀라 주저앉았던 나는 볼 수 있었다.

    알을 뚫고 나온 기다랗고 날카로운 다리를.

    “으, 으아아아아아!”

    그 다리를 보기가 무섭게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달린 건지 모르겠다.

    반지의 말에 거미들의 공격을 피해내며 알 소굴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허억··· 허억···!”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숨을 헐떡이며 입구를 돌아봤다.

    어느새 알들 대부분에서 거미들이 알을 깨 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흉측한지 온몸에 닭살이 돋을 정도였다.

    -저건, 저대로 내버려두면 상당히 위험한데. 마법사라도 있었으면 불에 태워죽일 수라도 있지.

    자신이 마법사가 아닌 게 한이라며 중얼거리는 그녀의 말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불이 있으면 되는 겁니까? 불만 피울 수 있으면 저놈들을 전부 죽일 수 있다는 가죠?”

    -네? 네. 그렇습니다. 아주 작은 불이라도 피울 수 있으니 놈들을 전부 불태워 죽일 수 있습니다. 놈들의 알은 기름에 가까우니까요.

    황급히 아공간을 열어 몇 가지 물품들을 꺼냈다.

    이대로 그냥 도망칠 수도 있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본능이 소리쳤다.

    내가 여기서 도망친다고 해서 놈들을 따돌릴 수 없다.

    알을 깨고 나온 놈들이 나를 노려보며 먹이로 인식했으니까.

    아마 알에서 완전히 나오면 나를 쫓아올 것이리라.

    그럴 바에는 여기에서 반지의 말을 믿고 놈들을 처리하는 게 나았다.

    어디서 이런 용기가 솟구쳤는지 모른다.

    하지만 놈들을 처리해야 한다는 충동이 몸을 휩쓸었다.

    -그건 뭡니까?

    “이거요? 화염병이라는 겁니다.”

    소주병을 따 내용물을 비우고, 신나를 채웠다. 어째서 마트에 신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 안에 휴지를 꼬아 밀어넣고 불을 붙이면 화염병이 완성된다.

    영화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비교적 터지기 쉬운 소주 팩으로도 화염팩을 만들었다.

    화르르륵!

    라이터로 휴지에 불을 붙이니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휴지가 타들어갔다.

    “내가 왕년에 야구부 출신이었어!”

    화염병을 있는 힘껏 알 사이로 던졌다.

    콰장창.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깨진 병 사이로 흘러나온 신나에 불이 붙었다.

    “뒤져라!”

    나는 멈추지 않고 두 개의 화염병과 화염팩을 던졌다.

    알속으로 날아간 화염병과 화염팩들은 무사히 터져 불길을 만들어냈다.

    화르르르륵-

    반지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듯, 불길은 알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와···.”

    한순간에 불바다가 된 그곳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키에에에에에엑!

    어디선가 온몸에 소름이 돋게 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자이언트 스파이더!

    불길 너머로 거대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덤프트럭을 보는 것 같은 엄청난 크기의 거미가 나를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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