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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19화 (19/113)
  • 제19화

    “허억··· 허억···!”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상처 투성이의 몸이었다. 어디서 무슨 일을 겪고 왔는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저거 뭡니까?”

    “그러게, 저거 뭐냐?”

    나와 엘더 리치가 서로를 돌아봤다.

    살짝 멍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현재 은행의 출입을 막아 놓은 상태였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해야 정상인데.

    설마 카셀린과 같은 강자인 건지 고민도 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다.

    그녀 정도의 강자가 다쳐서 들어올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뿐더러, 침입자에게서는 그녀 정도의 기세가 느껴지지 않았다.

    ‘나보다 약한 것 같지?’

    비록 내가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골격이라는 것이 있었다.

    아무리 운동하고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신체의 한계에서 나는 평범한 축에 속했다.

    몸을 단련해도 그저 그런 평범한 수준.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평범한 체격의 나보다 작은 체구의 남자였다.

    여기저기 찢어진 옷 틈새로 보이는 맨살은 운동은커녕 운동을 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맨들맨들하고 새하얬다.

    “도대체 어떻게 들어온 걸까요?”

    “나도 궁금하군. 아무리 생각해도 시스템을 뚫고 들어올 정도로 강한 놈은 아닌데.”

    입구에서 털썩 주저앉아 있는 남자를 살펴보며, 엘더 리치가 턱을 쓸어내렸다.

    “우선은 말이라도 걸어보는 게 좋겠네요.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는지 알아내야 하니까요.”

    감이 잡히는 게 하나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생각일 뿐인지 실제로 그게 가능할까 의문이 든다.

    “저기요.”

    “히, 히익!”

    천천히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거니, 그가 기겁을 하며 손을 슥슥 밀어 뒤로 물러났다.

    “괜찮습니다. 아무도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

    지금 상태로는 대화가 될 것 같지 않아, 그를 진정시켰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는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다.

    주위를 힐끔힐끔 돌아보며, 몸을 덜덜 떨었다.

    그가 진정이 되는 건 손목시계의 초침이 정각을 향해 있을 때였다.

    “이제 좀 진정이 되십니까?”

    그가 불안한 눈초리로 주위를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어떻게 들··· 아니,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우선 그의 말을 들어줘야, 대화를 해도 제대로 할 수 있으리라.

    “괴, 괴물··· 괴물이···!”

    그런데 묻기가 무섭게 겨우 진정되었던 그의 경기가 재발했다.

    머리를 무릎에 파묻고,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아 덜덜 떨었다.

    겁에 질린 채 아무것도 말하기 싫다는 듯한 그 행동에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그가 어떻게 이곳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냥 편하게 쉴 수가 없었다.

    언제 누가 침입할지 모르는 데 편하게 쉬는 게 더 이상했다.

    아무리 내 옆에 엘더 리치가 있어 나를 지켜준다고 하지만.

    “골치 아프네.”

    작게 중얼거린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그가 몸을 움찔 떨었다.

    “아, 당신에게 말한 거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를 달래주며 엘더 리치를 돌아봤다.

    두 시간동안 엘더 리치는 아무런 말도 없이 내 행동을 지켜보기만 했다.

    “심신을 진정시켜주는 마법은 없습니까?”

    “있다.”

    “···네?”

    “있다고 했다.”

    태연한 그의 말에 나는 황당해졌다.

    그런 게 있었으면 굳이 내가 이렇게까지 고생하지 않아도 됐을 일이었다.

    도대체 지켜보고만 있었던 이유가 뭘까.

    “그런 게 있었으면···!”

    “네가 해달라고 말하지 않았잖아.”

    “···?”

    “네가 해달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뭣하러 너도 아닌 다른 인간에게 내 마력을 낭비해야 하는 거지?”

    “아···.”

    그의 말에 두통이 찾아왔다.

    그는 인간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게이트 키퍼였던 시절, 던전에 들어왔던 인간들은 죄다 그를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인간을 좋게 보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그럼 나는?’

    아니지.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어쨌든 지금이라도 방법을 찾았으니 되었다.

    “그럼 마법을 사용해주시겠습니까?”

    “내가 왜?”

    “예?”

    “내가 왜 그래야 하는 거냐고.”

    “당연히···.”

    “당연하지 않다. 굳이 그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좋은 방법이 있지.”

    그가 몸을 숙여 손을 뻗어 남자의 목을 붙잡았다.

    그 가녀린 목을 엘더 리치의 손이 어루만졌다.

    “죽이면 된다. 나는 죽음에서 돌아온 자이며, 죽음을 다루는 자. 죽여 나의 권속으로 만들어 물으면 된다. 일반 언데드는 이지가 없지만, 나의 권속은 다르지. 생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어때, 이게 더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이지 않나?”

    “끅, 끄윽.”

    목이 붙잡힌 채 살벌한 말을 듣는 남자의 눈에서 눈물이 차올랐다.

    창백해진 얼굴로 엘더 리치를 바라보며 숨을 헐떡였다.

    “지금 이놈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될 수가 없지. 이런 공포조차 이겨내지 못하는 놈은 정신을 되돌린다고 해서 도움이 될 것도 없다. 차라리 힘이라도 좋아진 언데드로 봉사를 하는 게 더 낫지.”

    이거, 은근히 끌리는 제안이었다.

    그의 말처럼 생각해 보면 남자를 도와준다고 해서 그가 내게 뭔가를 해줄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없었다.

    오히려 밥만 축낼 수도 있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리치의 말처럼 남자를 죽여 언데드로 만드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기억을 잃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전력의 상승도 있으니.

    다만 마냥 그를 죽일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

    “당신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습니다. 저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걸리는 게 한 가지 있습니다.”

    “걸리는 거?”

    “네. 제 생각이 맞다면 이 사람에게도 직업이 있을 겁니다.”

    직업.

    내가 얻었던 것처럼 그도 시스템에 의해 직업을 얻었을 것이다.

    그게 최악이 아닌 이상, 그가 가진 직업이 내게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를 죽여 언데드로 만들며 그 직업이 여전히 남아 있을 거란 보장도 없었다.

    ‘직업이 사라질 수도 있다.’

    잘하면 내 밑에서 일할 직업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데, 아직 무엇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 메리트를 버리기에는 아쉬웠다.

    “너···.”

    그런 나를 보며 엘더 리치가 입술을 달싹이다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묘한 눈빛으로 나를 훑어봤다.

    “변했군. 그 사이에 또 변했어.”

    뭘 또 변했다는 걸까.

    뭘 말하는 건지 몰라도, 그의 얼굴을 보면 그게 나쁜 방향은 아닌 것 같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저 남자가 내게 필요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아보는 게 더 중요했다.

    “마법을 사용해주시겠습니까?”

    “···알았다.”

    나를 빤히 바라보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에 보라색 기운이 맺히며, 그 기운이 남자의 목을 타고 머리를 감쌌다.

    {써니티}

    마법이 사용되기 무섭게 남자에게서 빠르게 효과가 나타났다.

    거칠게 몰아쉬던 숨이 안정되고, 덜덜 떨던 그의 떨리 가라앉았다.

    “리치씨, 그 손을 잠시···.”

    내 요청에 리치가 손을 때며 내 등 뒤로 물러났다.

    그를 힐끔 돌아보니 팔짱을 낀 채 내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

    “이제 좀 괜찮으십니까?”

    리치에게서 고개를 돌려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여전히 두려운 듯 주위를 둘러봤지만,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내 말에 대답해줬다.

    그거면 된다.

    그가 유창하게 말을 할 정도까지 바라지는 않았다.

    그저 대화가 통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

    “그럼 제 질문에 답하실 수 있겠습니까?”

    끄덕끄덕.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죠. 당신이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허억···.”

    내 질문에 괴로운 기억이 떠올랐는지 그가 손을 파르르 떨었다.

    그래도 다행히 방금전처럼 패닉에 빠지지는 않았다.

    “괴, 괴물···.”

    그가 손을 들어 제 목을, 제 얼굴을 감쌌다.

    “괴물이 나타났습니다. 그 괴물이 제 가족들을···!”

    “진정하세요. 이곳은 안전합니다.”

    물론 그건 그가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우선 이 물 좀 천천히 마셔보시겠습니까.”

    아공간에서 500ml 물을 꺼내 그에게 건네줬다.

    장시간 물을 마시지 못했던 건지 그가 허겁지겁 물을 마시다 사례가 들려 컥컥 걸렸다.

    그런 그의 등을 토닥여주니, 그가 울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졌습니다. 땅에서 용암이 치솟고, 도시 한복판에 강이 나타났습니다.”

    그 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말을 하는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습니다. 도망을 쳤어요. 저는, 저는 밖에 나와 있어서 가족이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집으로 달려갔는데. 길이 뒤바뀌고, 주변 건물이 무너져 있었어요.”

    그의 말은 뒤죽박죽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횡설수설하면서도 요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이 있었어요. 검을 든 여자가 괴물들을 죽였어요. 어린아이의 손에서 얼음 화살이 만들어져 괴물을 꿰뚫었어요.”

    오, 직업과 관련된 얘기가 나왔다.

    나는 그의 얘기에 더욱 집중했다.

    “그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루? 네. 하루가 다 걸려서 집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제가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 겨우 30분 거리에 있었는데. 그래도 가족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기뻤어요.”

    집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본 집의 모습은 처참했다고 한다.

    반쯤 무너져 내린 아파트. 그의 가족은 304호에 살고 있었기에, 그래도 희망을 갖고 찾아갔다.

    그리고 복도에 진득하게 달라붙어 있는 시체들의 파편.

    “없었어요. 아니, 있었어요. 집의 문은 부서져 있었고 가족들은 없었어요. 피만 있었어요. 그런데 천장에서 뭔가가 떨어졌어요.”

    시체들이 즐비한 아파트의 복도를 건너 집에 들어간 그는 절망했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참혹한 현장만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아니 그랬었다.

    “같이 왔던 예린이가 소리를 질렀어요. 제 어깨를 붙잡고 밖으로 내던졌어요. 혀가, 날카로운 혀가 예린이의 배를 꿰뚫고··· 우욱!”

    말을 하면서 벌벌 떨던 그가 참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그의 눈에서는 쉴 틈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예린이가 죽었어요. 창호가 도망쳐야 한다고, 시간을 벌겠다고, 도망치라고 저한테 소리쳤어요. 저는 무서웠어요. 그들처럼 싸울 힘도 자신도 없었어요.”

    전투 직업은 아니고.

    “달렸어요. 달리고 또 달렸어요.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지만,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어요. 제게 살려달라는 창호의 비명소리에도 저는 멈추지 않았아요. 제가 멈춘다고해서 도와줄 수도 없었어요. 저는, 제가 가진 힘은 싸우지 못하니까요. 그렇다고 경찰에게 도와달라고 할 수도 없었어요. 폰도 없었고, 이런 상황에서 공권력이 정상일 수가 없을 테니까요.”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까지 확인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걸리는 하나 있었다.

    그가 말하는 아파트, 폰, 경찰 등등.

    그건 전부 지구에 있는 것들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성좌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

    나는 혀를 움직여 마른 입술을 적시며 물었다.

    “당신, 어디 소속 아니··· 어느 나라 사람이죠?”

    “네? 저, 저요? 저야 당연히 대한민국···.”

    그가 어떻게 던전에 들어왔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게 그리 좋은 쪽이 아니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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