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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18화 (18/113)
  • 제18화

    오천만 코인.

    1억 코인에 절반이나 되는 엄청난 금액을, 그는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사용했다.

    오만 코인이 큰 금액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감당은커녕 바라보기도 힘든 금액이었다.

    -거래할 수 있는 한도가 이게 최대야? 이건 좀 실망인데.

    그런 것을 그는 오히려 코인의 거래 한도가 너무 적다고 불평을 뱉어냈다.

    갑작스런 물량 공세에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현대에서도 이 정도로 돈을 막 굴리는 사람은 없었다.

    -음? 한 번에 거래하는 것도 한계가 있더니, 하루에도 한도가 있어?

    허공을 향해 손가락을 움직이던 그가 와락 얼굴을 구겼다.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기까지 했다.

    나보고 어쩌라는 말인가.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나는 이미 만들어진 곳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은행장이 되기도 전에 모든 게 갖춰졌기에, 내가 뭔가를 바꾸려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나라고 안 바꾸고 싶겠는가.

    바꾸고 싶다. 개설비와 수수료의 비용을 더 늘리고 싶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건 내 권한 밖이라며 차원 은행이 거부를 했다.

    정해진 틀을 깨부술 수 없다면서.

    “죄송합니다. 그 부분은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안 된다는 걸 내가 뭐 어쩔 수는 없지. 알았다.

    불같은 성격을 보이던 것과는 다르게, 그는 의외로 순순히 수긍했다.

    -내일 다시 오면 되지. 크게 급할 것도 없으니.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하긴 그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이었다. 코인만 충분히 있으면 뭔들 뭣하랴.

    그가 거래를 하면 어쨌든 나도 코인을 얻을 수 있으니 나쁠 건 없었다.

    “그럼 이제 용무는 끝나신 겁니까?”

    -그렇지 뭐.

    “그럼 다음 고객을 위해서 자리를 비켜주시겠습니까.”

    놀라기는 했지만, 놀란 건 놀란 거고 나는 내 할 일을 해야 했다.

    그가 계속 죽치고 앉아 있으면 내가 할 일도 못하게 된다.

    -아, 그렇군. 내가 너무 오랜 시간을 잡아먹고 있었어.

    그가 미안하다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완전히 일어선 그는 무척이나 거대했다.

    2M 남짓한 엘더 리치도 무척 큰 키였는데, 그런 그가 저 남자를 올려다 봐야 할 정도였다.

    거기다 그 몸 또한 엄청났다.

    오밀조밀한 근육들은 칼 하나 박히지 않을 것 같았고, 왜인지 모르지만 광택이 흐르는 그 피부는 쇠보다 단단해 보였다.

    ‘저 주먹에 맞으면 그 자리에서 무덤 파고 들어가야겠네.’

    덩치만큼이나 커다란 주먹은 굳은살과 자잘한 생채기들로 가득했다.

    ‘잠깐만, 저게 다 흉터야?’

    그의 손뿐만 아니었다.

    그가 사용한 자금력에 놀라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체에는 자잘한 상처부터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흉터까지 전신을 빼곡이 채우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생을 살아온 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그의 몸에 새겨진 상처들은 끔찍했다.

    -아, 그렇지. 내일은 언제부터 영업하는 거지?

    “영업시간이요? 음···.”

    그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애초에 고객이 올 거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으니까.

    “영업시간이라···.”

    확실히 그건 한번쯤은 생각을 해두어야 하는 일이었다.

    내가 일하던 은행에도 영업시간이란 게 존재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은행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9시에 시작해서 4시 30분에서 5시면 마감을 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도 그렇게 해야 하는 걸까.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 시간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지구상에 사는 인간들이 전부인 현대에서라면 큰 문제가 없지만, 차원 은행은 다르다.

    은행의 이름처럼 전 차원에서 고객들이 찾아온다.

    그들이 언제 어느 순간에 방문을 원할지 모르는데, 그 시간은 너무 적었다.

    맘 같아서는 24시간 내내 영업을 하고 싶었지만.

    ‘내 몸은 하나니까. 그렇다고 리치에게 부탁할 수도 없고.’

    이럴 때는 내 몸이 두 개이기를 바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몸이 두 개면 12시간씩 나눠서 일을 하면 되니까.

    그러고 보니 소설에서 보면 도플갱어도 있다고 하던데, 기억이나 습성까지 읽는 그런 종족이면 하나쯤은 가지고 싶다.

    내 기억을 읽을 수 있다면, 내가 일하는 방식도 알 수 있을 테니까.

    “영업시간··· 그러면 대략 8시에서 9시까지로 할까.”

    [차원 은행의 영업시간을 AM 8:00~PM 9:00으로 정하시겠습니까?]

    [정해진 영업시간은 공식적인 영업시간이 되어 광고될 것입니다.]

    “아, 아니! 잠시만···.”

    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저 그 정도가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 거지, 그렇게 하겠다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일을 하다가 내가 몸살이 나면, 일을 할 사람이 없어 은행을 닫아야 할 수도 있었다.

    그런 도박은 하고 싶지 않다.

    시간을 정해야 한다면 좀 더 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 후에 그러고 싶다.

    “혹시 임시로는 불가능해?”

    [임시로 정하시겠습니까?]

    가능한가 보다.

    그에 나는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만약 여기서 시간을 바로 정해야 하는 거였다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기업에게는 믿음이 생명이다. 그리고 그건 시간 또한 마찬가지다.

    정해진 시간이 있는데, 그것을 수시로 바꾸거나 지키지 않으면 그 기업의 이미지가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어. 임시로 정하겠어.”

    임시는 말 그대로 임시다. 정해지지 않은 일정 기한 동안만 이기에, 언제라도 시간을 바꿀 수가 있다.

    아마 광고를 할 때에도 임시 영업시간이라고 광고가 될 것이다.

    ‘그나저나, 그들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굳이 시간을 나누지 않아도 24시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테고.

    임시이기는 하지만 시간을 정하고 나니, 카셀린이 죽인 나이트 일행의 부재가 아쉬워졌다.

    그들이 죽지 않고 나와 계약을 했으면, 24시간으로 영업을 할 수가 있었다.

    아니 처음 며칠은 그들을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교육을 다 시키고 나면, 어지간한 일은 그들이 다 해주고 중요한 일만 내가 나서서 해결하면 된다.

    그들이 죽은 게 너무 아쉬운 상황이다.

    ’어쨌든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시스템이 시간을 등록하는 걸 확인하고 ‘거인을 때려 죽인 불멸의 전사’를 돌아봤다.

    “오전 8시에서 오후 9시 사이에 오시면 됩니다.”

    -오전 8시에서 오후 9시 사이··· 알았다. 그 시간 중에 아무 때나 오지.

    그가 내가 말한 시간을 몇 번이고 되뇌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를 뜨려는 그를 황급히 붙잡으며 말했다.

    “이왕이면 오실 시간을 정해주시겠습니까? 그 시간은 비워두겠습니다.”

    -뭐 예약이라도 해주겠다는 건가?

    “전사님에게 그 정도는 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의 자본을 보았고, 그가 자금을 움직이는 걸 봤다.

    훗날 VIP가 될지도 모르는 고객을 방치할 정도로 나는 멍청하지 않았다.

    저렇게 돈을 많이 사용하고 가지고 있는 고객일수록 더 많은 혜택을 줘야 한다.

    -워? 뭐야! 어째서 저 남자만 해준다는 건데!

    -나도 예약해줘! 이건 차별이다!

    그래야 저들처럼 다른 이들도 그와 같은 혜택을 받기 위해서 분발하지.

    -보는 눈이 있군.

    무엇보다 그 본인이 만족스러워했다.

    남들의 질시 어린 시선에 그가 흡족해하는 미소를 지었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간 걸 보니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편하신 시간대가 있습니까?”

    -편한 시간이라···.

    그가 주위를 스윽 훑어보며 말꼬리를 흐렸다.

    -1시쯤이 좋겠군. 훈련이 정오에 끝나니.

    “알겠습니다. 1시에 예약을 해드리겠습니다.

    -좋아.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이 예약은 카셀린님에게도 해드리지 않은 겁니다.“

    -뭐? 푸하하하하!

    조심스러운 내 말에 그가 눈을 화등잔만하게 뜨며 폭소를 터뜨렸다.

    -내가 그년보다 먼저라니. 이걸 들으면 배 좀 아프겠어.

    ”···.“

    어, 나 지금 실수한 건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걸 말해서 그녀의 심기를 건드린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에이씨. 이미 일은 벌어졌고, 뭐 어때. 까짓꺼 죽이려면 죽이라지.’

    이렇게라도 해서 그를 고객으로 붙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가 움직인 자금은 그 정도로 내 마음에 크게 다가왔다.

    언젠가는 그처럼 나도 그만한 자금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가 되고 싶다.

    -너 마음에 들었다. 무척 마음에 들었어.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흐흐흐. 이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

    고개를 흔들며 그가 허리춤에 달린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자, 이건 선물이다.

    ”감사합니다.“

    그가 내겐 건넨 건 브로치였다. 생전 처음 보는 광석으로 가공된 몽둥이를 문 사자 모양에 갈색 브로치.

    -그거 잘 가지고 있어. 언젠가 네게 큰 도움이 되어줄 테니까.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그가 보는 앞에서 브로치를 핀처럼 넥타이에 달았다.

    워낙 잘 만들어진 브로치라 그런지, 넥타이에 달아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그래. 나는 이만 가지.

    그가 손을 휘저으며 자리를 벗어났다.

    -어? 저 브로치. 그거 아니야?

    -맞네. 미친···!

    -저걸 처음 보는 놈에게 준다고? 아니, 애초에 저걸 줄 수 있는 건 몇 없는데.

    -잠깐만 저 모습··· 설마···!

    브로치를 만지작거리며 다음 고객을 부르려 할 때 술렁이는 성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내가 달고 있는 브로치와 막 은행을 빠져나간 전사가 있던 자리를 번갈아 돌아보며 멍한 얼굴을 했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큰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그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거나 말거나, 대기석을 향해 소리쳤다.

    “다음 호··· 고객님!”

    *

    PM 10:00

    오전부터 밤늦도록 성좌들을 상대한 결과 제법 큰 성과를 이룰 수가 있었다.

    [등록 고객:45]

    [보유 자금:1,574,000]

    무려 백만이 넘는 코인을 벌 수가 있었다.

    45명 전체가 다이아 등급을 하지 않은 게 아쉽기는 했지만, 그걸 감안하고 나서도 엄청난 수익임은 분명했다.

    “알찬 하루였다.”

    딱딱한 등받이에 허리를 붙이며 기지개를 켜고 있으니, 그런 나를 엘더 리치가 질린 얼굴로 바라봤다.

    “내가 알던 그놈이 맞는 거냐?”

    “갑자기 무슨 소리입니까. 제가 저죠. 계속 같이 있었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그의 말은 뜬금없었다.

    전쟁같던 시간을 무사히 마친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지 못할 망정 내가 누구인지 묻다니 예의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사람의 예의가 통하지 않는 리치인 걸 알고 있으니 넘어가기로 했다.

    “겁에 질려 벌벌 떨던 놈이, 일을 할 때는 날라다니더군.”

    “음···.”

    그건··· 반박하지 못하겠다.

    솔직히 처음에는 무서웠다.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외형이 대다수였기에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슬라임부터 괴상하게 생긴 괴물까지.

    전 차원에서 모여든 이들이니만큼 그 종족 또한 다양했고,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내게는 충격적인 외형이었다.

    ‘하지만 고객이라 생각하니 나름 할만 했지.’

    그들이 성좌나 괴물이 아닌, 돈이 많은 고객이라 생각하니 두려움이 가셨다.

    오히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뜯어내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리고 이제는 나를 무서워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것도 맞다.

    앞에서 온갖 걸 다 봤는데, 해골일 때라면 모를까.

    사람의 외형을 하고 있는 그를 무서워할 이유가 없었다.

    나를 해치지도 못하는 데 뭐하러 두려워해.

    “후··· 이제 좀 쉬어야겠네요.”

    고객들도 다 나갔고, 시간도 늦었으니 내일을 위해서 푹 쉴 생각이다.

    [허가받지 않은 침입자가 있습니다.]

    나는 쉬면 안 되나 보다.

    땅에 이불을 피려고 하기가 무섭게 침입자가 발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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