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그 남자의 격한 반응에 깜짝 놀랐지만, 애써 태연함을 가장했다.
어떻게 된 게 성좌라는 놈들이 하나같이 다혈질인지.
이러다가 심장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제가 알기로는 코인을 거래하기 위해서 마석을 사용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그런데 어떻게 정가로 판매 할 수 있다는 거지?
그는 한껏 흥분해 있었다.
그동안 쌓여 있는 게 많았는지 울분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내가 그 빌어먹을 시스템 때문에 손해를 얼마나 봤는지 알아? 원가 가격도 안 나와, 재료값을 벌기도 힘들다고!
“아··· 많이 힘드셨네요.”
-흑. 난 장인이다. 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우면서까지 팔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그런데 어떻게, 그러지 않으면 내가 먹고 살기가 힘든데. 개 같은 시스템! 세금은 세금대로 받아 처먹고 부족한 거지!
한참을 떠들던 그는 뒤에서 다른 고객들이 좀 빨리 나오라는 아우성에 겨우 진정되었다.
-그래서, 정말로 정가에 팔 수 있는 건가? 추가로 비용이 드는 거 아니야? 아니면 내가 얻는 금액이 줄어든다거나.
그는 이미 불신에 차 있었다.
하도 당한 게 많은지 내게 묻고 또 물었다.
“마석의 비용이 비싸다고 들었습니다.”
-비싸지. 더럽게 비싸. 그런데 어떻게. 코인을 거래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는데.
“네. 그래서 만들어진 게 이 계좌라는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충분히 들었다.
그럼 이제는 그 힘든 것을 해결해줄 차례다.
“이 계좌를 사용하시면 굳이 마석을 사용하지 않고도 코인 거래가 가능합니다.”
-그, 그게 정말이야?
“네. 정말입니다. 다만 거래비가 조금 필요합니다.”
-아, 하긴 그렇겠지. 무료로 이용한다는 게 있을 수 없지.
밝아졌던 그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절대 공짜는 없다는 말에 무척이나 아쉬운 듯한 얼굴이었다.
“수수료는 100코인에서 최대 1,000까지 듭니다.”
-···?
“한 번의 거래 이용비를 말하는 겁니다”
-···!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정말 그것밖에 안 든다고?
“네. 아, 처음에 계좌를 개설할 때 코인이 좀 필요하겠네요. 그런데 괜찮지 않나요? 마석으로 수만 코인이 나가는 것보다 겨우 1000코인 정도로 내는 게 더 낫잖아요.”
-당연하지! 당연한 걸 말하고 있어! 당장 하지!
“좋습니다. 아, 맞다. 그리고 계좌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다이아 등급을 추천합니다. 거래할 수 있는···.”
-그걸로 내놔!
다급한 그의 말에 나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성좌라는 이가 이렇게 단순할 줄이야.
물론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그의 반응을 유추해서 조금 과장한 건 있어도 이용료와 같은 것에 있어서는 일절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은행도 하나의 기업이다.
기업은 믿음이 있어야 했다. 믿음이 없으면 일을 하기 힘들다.
그 누가 믿음도 없는 곳에 자신의 전재산을 맡기겠는가.
그 기업에 가능성이 없는 이상 그런 미친 짓을 할 사람은 없다.
반대로 믿음이 있으면, 고객들은 마음이 후해진다.
믿을 수가 있으니까, 그만큼 자금을 더 움직인다.
[50,000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50,000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50,0···.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이렇게 많이 코인을 벌어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적어도 지구상에는 극히 드물 것이다.
어쩌면 없을 수도 있고.
-정말 신기해. 이걸로 코인을 운영할 수 있다니.
-이건 시스템도 하지 못한 거잖아. 어쨌든 잘 됐지. 마석 거래가 은근히 귀찮았는데.
-이건 나 혼자 알면 안 되겠네. 돌아가면 애들에게 계좌를 만들라고 해야겠어.
성좌들은 자신들이 만든 계좌를 살펴보며 흥미로운 눈을 했다.
무수히 많은 성좌들이 내 앞에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인외의 존재들을 만나 긴장이 되었지만, 어느 정도 그들을 대하고 나니 그들의 외모에도 익숙해졌다.
-쿠륵, 쿠르륵!
개중에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온몸이 점액으로 이루어져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가 힘들었다.
[많은 ‘성좌’를 상대하셨습니다.]
[‘의사소통’의 격이 상승합니다.]
다행히도 시스템이 제때에 움직여 어려움을 해결해줬다.
-야. 코인 좀 내놔 봐. 코인 거래 된다며!
-내가 좋은 거 줄게, 코인 좀 줄래?
-너 탐난다. 내 거 할래?
말이 통하지 않던 이들 외에도 진상들도 무척 많았다.
무려 천 명에 가까운 고객들이 은행에 들어온 것이다.
개중에 진상이 없는 게 더 이상하다 보면 된다.
예전 은행에서 일했을 때에도 십에 하나는 진상이었으니까.
성좌라고 그리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죄송합니다. 저는 코인 거래를 할 수 없어서요.”
“계좌를 개설하시는 게 제게 가장 좋은 거 같습니다.”
“저는 이미 임자가 있는 몸이라 그건 힘들 것 같네요.”
차원 은행에 귀속된 몸이니 거짓말은 한 건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쥐 밑에 들어가는 건 좀···.’
내게 자신의 거 하라고 한 성좌는 다름 아닌 턱수염이 길게 자란 쥐였다.
그의 몸에서 보라색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창구에 앉은 채 벌써 10분째 저러고 있었다.
내가 그의 요구를 수락할 때까지 비키질 않을 것 같은 기세였다.
-어째서, 어째서 안 먹히는 거냐!
‘그걸 내게 소리쳐도···.’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보라색 연기는 내 몸 근처를 맴돌다가 훅 하고 사라져 버렸다.
지금 그걸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차원 은행에서 은행장의 정신 침범을 발견하였습니다.]
[차원 은행이 크게 저항합니다.]
[차원 은행이 은행장을 건드는 무뢰한에게 크게 분노합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차원 은행 전체가 부르르 떨렸다.
-이거 왜 이래?
-뭐야, 이거 붕괴 현상이잖아?
-도대체 무슨 일인 거야!
은행에 들어와 있던 성좌들이 갑작스레 흔들리는 은행에 크게 당황했다.
[차원 은행이 ‘쌀포대를 파먹는 쥐새끼’를 추방하고 싶어 합니다.]
[추방을 허락하시겠습니까?]
이런 건 또 처음 본다.
추방이란 걸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바로 추방하는 건 좀 그렇지.’
아무리 진상짓을 한다고 해도 고객은 고객이었다.
적어도 추방을 시키더라도 계좌를 등록시키고 추방하는 게 낫다.
“그러지 마시고, 한 번 골라보시죠. 계좌는 석탄부터 다이아까지 다양한 등급이 있습니다.”
-으음.
방금까지 내게 버럭버럭 소리치던 그가 돌연 목소리가 작아졌다.흔들리는 눈으로 계좌의 등급을 보더니, 의기소침하게 한곳을 가리켰다.
[석탄 등급:2,000코인]
다른 성좌들이 모두 50,000코인을 낼 때 혼자서 가장 싼 계좌를 선택해서인지 그의 손끝이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음···.’
앞에서 워낙 많은 코인들을 벌어서인지, 이천 코인이라는 금액은 크게 감흥이 생기지 않았다.
‘아니지. 이천 코인도 코인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다.
아주 적은 코인이라도 그게 계속 쌓이면 무시 못할 정도의 금액이 된다.
‘그런데 왜 이리 떠는 거야?’
그래도 성좌인데, 이천 코인 가지고 그렇게까지 떠는 게 살짝 이해되지 않았다.
“정말로 이 등급으로 하시겠습니까.”
-그, 그렇다니까!
쥐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러면 그런 거지 소리를 지르는 건 또 뭐란 말인가.
귀가 살짝 아려왔다. 몸은 작으면서 목소리는 엄청나게 컸다.
“알겠습니다. 동의를 하시면 됩니다.”
그에게 계좌 개설을 띄운지 5분이 지났다.
어찌된 일인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가 동의를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에 의아해하며 그를 바라보니, 그 작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허공에 떠오른 시스템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안하실 겁니까?”
-하, 할 거다!
할 거라고 소리쳤으면서, 그 손은 동의를 누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대체 뭐 때문인지 그에게 집중하니, 작게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 해야 하나? 하지만 코인이 없는데. 이걸 하면 내일이 힘들어질 수도···.
그의 말을 들은 나는 이마를 탁 쳤다.
그가 동의를 하지 않은 이유가 코인이 부족해서라니.
이건 예상에 없던 일이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코인이 없으면 어쩔 수 없지.’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모르지만, 코인이 없는데 언제까지고 그를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 말고도 고객은 많았다.
그래도 고객인데 나가서 무슨 소문을 퍼뜨릴지 모르니.
“혹시 비스킷 좋아하십니까?”
-···?
“언제든지 기다려 드릴테니, 오늘은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걸 드시면서 가세요.”
-···.
제 몸짓만한 비스킷을 건네받은 그가 멍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런 그에게 빙긋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 뒤를 향해 말했다.
“다음 고객님!”
-비켜, 내 차례야!
거구의 남자가 쥐를 옆으로 밀치며 그 자리에 섰다.
덩치가 어찌나 큰지, 그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도 내가 올려다봐야 할 정도였다.
“네. 어서오세요. 지금 제가···.”
-앞에서 다 들었으니까, 생략하고. 지금 최고 등급이 다이아라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내가 듣기로는 그 이상의 등급이 있다고 하던데.
“···!”
그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거지.
그의 말에 당황하고 있을 때 귓가에 누군가 속삭였다.
-이 은혜는 꼭 갚겠다.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보니, 주먹만한 크기의 쥐가 비스킷을 품에 안고 후다닥 달려가는 게 보였다.
-어딜 보는 거야? 네 고객은 나다. 내게 집중해.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거구의 남자가 창구를 세게 내리치며 나를 노려봤다.
“아, 죄송합니다. 그런데 최고 등급이 다이아 등급인 건 사실입니다. 제한이 있어 아직 그 이상의 등급을 풀지 못합니다.”
-그 제한이 뭔데?
이건 그냥 넘길 수도 없었다. 이런 스타일의 상대를 많이 상대해봐서 아는데, 이런 사람들은 그 이유를 알려줄 때까지 어떻게 달라붙는다.
그렇기에 나는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1억 코인 거래입니다.”
-···뭐?
그가 당황한다. 그렇게 많은 코인이 필요할 줄은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
카셀린만큼 코인이 많지 않은 이상, 억 단위의 코인은 성좌들에게 버거울 수 있었다.
방금 내게 비스킷을 받아 간 성좌만 해도 그랬다.
이천 코인이 없어 석탄 등급의 계좌도 개설하지 못했다.
제한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을 테니, 이제 그가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겨우 그거였어?
내가 생각했던 반응과는 달랐다.
코인의 양이 많아 놀란 게 아닌, 그 반대로 너무 적어 놀란 거였다.
-그 여자가 분위기를 잡고 말하길래 긴장 좀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네.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선 다이아부터 개설해야 한다고 했지? 당장하지.
“예··· 아, 예.”
그의 말에 멍하니 손가락을 움직였다.
[‘거인을 때려 죽인 불멸의 전사’가 계좌를 개설하였습니다.]
그의 이명조차 무척이나 살벌하다.
그는 자신의 이명을 감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 이명 어디선가 본 이명인데?’
신화에서 본 것 같은데 자세히 기억나지 않았다.
-이게 계좌인가. 신기하군. 그럼 코인을 거래하는 걸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거인을 때려 죽인 불멸의 전사’가 ‘카셀린’에게 50,000,000코인을 송금합니다.]
[1,000코인의 수수료를 획득하셨습니다.]
미친!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온몸이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