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15화 (15/113)
  • 제15화

    그건 기묘한 감각이었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그 기묘한 느낌은 두렵기까지 했다.

    이대로 내 몸을 빼앗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키에에에엑!

    피 냄새를 맡은 걸까,

    옆에 있던 나머지 두 놈이 눈을 떴다.

    내 몸의 제어권에 대한 두려움도, 얼굴에서 나는 역한 냄새도 신경 쓸 시간도 없이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키에에엑!

    놈들의 울음소리가 사방에 퍼졌다.

    단순히 그것뿐이라면 큰 상관은 없었을 것이다.

    -동료를 모으려는 건가. 하긴 놈들이 겨우 세 마리밖에 없는 것도 이상하지.

    태평한 그녀의 목소리와는 다르게 그 내용은 살벌하기 그지 없었다.

    동료들을 모은다는 소리.

    -최소 십 여 마리는 모일 텐데. 괜찮겠어?

    괜찮냐고? 아니. 절대 괜찮지 않았다.

    지금도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몬스터이기는 했어도 생명이다. 그것도 조금은 인간을 닮은.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뭐야. 겨우 이거 가지고 그러는 거야?

    그녀가 한심하다며 혀를 찼다.

    -진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그분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지?

    그녀는 연신 중얼거렸다.

    일어나 마구 소리지르던 놈들이 단검을 든 채 내 주위를 맴돌았다.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 듯 퇴로를 차단했다.

    키엑! 키에에엑!

    타다다닥!

    사방에서 놈들의 울음소리와 뜀박질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 차려라. 겨우 이 정도에 정신을 놓다니. 한심해.

    반지를 낀 손가락이 따끔했다.

    무언가가 손가락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마구 두근거리던 심장이 진정되고, 머리가 맑아졌다.

    -보니까 제대로 싸우지도 못할 것 같은데. 나한테 맡기는 거 어때?

    머리가 맑아지는 것과 반대로 귀를 녹일 것 같은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넘기면 이런 위협쯤은 간단하게 해결해주겠다며 나를 유혹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려 할 때였다.

    -···!

    그때 그녀의 목소리가 멎었다.

    무척 당황한 것 같은 기색이 느껴졌다.

    내 몸에 흘러들어오던 차가운 무언가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몽롱하던 정신이 회복되었다.

    투둑, 투두둑-

    피부와 근육이 부식되어 땅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콰드드득-

    땅에서 솟구친 뼈의 창에 고블린들의 몸이 꿰뚫렸다.

    내 철근에 머리가 터진 고블린의 몸이 뒤틀리며, 천천히 일어났다.

    뼈를 제외한 모든 신체 조직들이 떨어져 나간 고블린은 스켈레톤이 되어 있었다.

    -네 이놈··· %$#%@!

    이름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 이름이 들리지가 않았다.

    블라인드 처리를 한 것처럼 그 부분에만 공백이 생겨났다.

    -내 말이 우스운가? 그새 장난질을 치고 말이야.

    -주,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내 눈이 잘못된 건지 왠 묘령의 여인이 보였다.

    흑색의 갑주를 입은 채 고블린 스켈레톤을 향해 엎드려 덜덜 떨고 있었다.

    내가 놀란 건 그게 아니었다.

    묘령의 여인이 보이기는 했는데, 그게 실체는 아니었다.

    그건 환상이었다.

    -나와 계약을 한 자를 무시한다는 건 나를 무시하는 거라고 봐도 되겠지?

    -아, 아닙니다! 제가 어찌 그러겠습니까!

    -그래? 그럼 내가 본 건 뭐지? 빌어먹을 네년 때문에 내가 피해를 봤단 말이다! 이 개 같은 시스템! 내가 한 것도 아닌데 나를 공격하다니!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이미 죽은 년이 뭘 죽을 죄를 지어!

    묘령의 여인은 고블린 스켈레톤에게 쩔쩔 맸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리치씨?”

    -아. 그렇지. 네놈도 있었지.

    내 목소리에 고블린 스켈레톤이 묘령의 여인에서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한심한 놈. 겨우 그런 것도 하지 못해서··· 쯧. 하긴 평화로운 시대에서 살았을 테니. 이래서 젊은 놈들은 안 돼. 투쟁을 몰라, 투쟁을.

    “···.”

    파스슷.

    그가 한창 불평을 토해낼 때, 뼈가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된 건가? 이것조차 막다니. 세계의 조율자라는 놈들이 너무 쩨쩨하군.

    고블린 스켈레톤이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묘령의 여인을 노려보며 경고를 남긴 채 사라졌다.

    -한번더 헛짓거리를 한다면 그때는 영겁의 처벌을 내릴 것이다. 그를 나로 생각하여 대해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네놈도 적당히 즐기고 돌아와라. 아무래도 혼자 있으려니 심심하군.

    “···알겠습니다.”

    뼛가루가 휘날리는 그 자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엘더 리치가 사라진 자리에 침묵만이 맴돌았다.

    나와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묘령의 여인은 나를 힐끔힐끔 눈치를 보고 있었고, 그런 그녀를 보며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키에에에엑!

    그 침묵을 깬 건 고블린들의 울음소리였다.

    동족의 죽음에 분노한 고블린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감히 하찮은 미물들이···!

    마침 잘 되었다는 듯이 그녀가 고블린들에게로 분노를 쏟아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 흐름에 몸을 맡기시겠습니까?

    처음의 무례함은 사라지고, 존댓말을 쓰는 그녀의 부탁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이 그녀뿐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데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더군다나 엘더 리치의 명령도 있었으니 그녀가 허튼 수작을 부릴 거라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몸에 힘을 빼시고 흐름에 맡기십시오.

    반지에서 검은색 연기가 피어오르며 들고 있는 철근을 휘감았다.

    “···!”

    철근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나는 그녀가 흐름에 맡기라고 했던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굳이 몸을 움직이려 하지 않아도, 몸에 힘을 주지 않아도 내 몸이 철근에 이끌려 움직였다.

    키에엑!

    녹슨 단검을 든 고블린이 가까이 달려왔다.

    잠을 자고 있던 고블린과 눈을 뜬 채 달려드는 고블린의 위험성은 다른데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내 가슴은 평온했다.

    저런 놈들은 내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내가 했던 운동이란 헬스에 불과했고, 군대에서의 태권도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무술을 배우지도 않았다.

    이미 고블린을 죽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지금 느껴지는 감정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지금 내가 느끼는 기분은 다른 무엇도 아닌 갈증이었다.

    후웅!

    고블린의 단검이 내 허벅지를 스쳐 지나갔다.

    옷깃만을 배고 지나간 단검을 철근이 후려쳐 떨어뜨렸다.

    -힘을 빼고 흐름에 맡기세요.

    세뇌를 하듯 그녀의 목소리가 내 귀를 자극했다.

    철근을 감싸던 검은색 연기는 어느새 내 몸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심장이 마구 두근거린다.

    두려움이 아닌 흥분으로 인한 두근거림이었다.

    콰직!

    고블린이 떨어뜨린 단검을 주워 고블린의 머리를 꿰뚫었다.

    키에엑!

    다른 고블린이 미쳐 날뛰며 달려왔다.

    머리에서 단검을 뽑아 팔을 뒤로 당겼다.

    후우웅-

    빠르게 쏘아진 단검이 고블린의 미간에 정확히 박혔다.

    푸욱!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고블린 두 마리가 죽었다.

    -일어나라.

    반지에서 흘러나온 검은색 연기가 시체들에 흘러들어갔다.

    달그락, 달그락달그락.

    엘더 리치가 나타났을 때처럼 고블린들의 시체가 부식되며 스켈레톤이 되었다.

    총 두 마리의 스켈레톤들이 만들어졌다.

    조금 특이한 건 스켈레톤들이 뼈로 이루어진 장검과 방패를 들고 있다는 것이다.

    제 몸보다 큰 검과 방패를 든 스켈레톤들이 그녀의 명령에 동족이었던 고블린들에게로 달려들었다.

    키엑! 키에에엑!

    고블린들이 괴성을 지르며 단검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스켈레톤들은 그 단검을 방패로 막거나 장검으로 막아내며 달라붙었다.

    푸욱!

    스켈레톤의 장검이 고블린의 가슴을 찔렀다.

    콰득!

    방패가 머리를 부수며, 그렇게 죽은 고블린들은 스켈레톤으로 되살아나 제 동료들에게 달려들었다.

    -미물은 미물이 죽이는 게 맞습니다.

    이제 내가 움직일 거 없다며 그녀가 내게 구경하라고 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믿고 철근을 내렸다.

    스켈레톤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십여마리가 넘던 고블린들이 5분도 지나지 않아서 전멸했다.

    ‘와···.’

    그저 감탄 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째서 엘더 리치가 이 반지만 있으면 내가 어디에서든 안전할 수 있다고 한 건지 알 것 같았다.

    내가 보는 광경을 본 누구라도 그의 말을 반박하지 못할 것이다.

    파스슷-

    우뚝 서 있는 스켈레톤의 몸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시작해서 발까지 뼛가루가 되어 바람에 날아가는 건 한순간이었다.

    “어, 어어···!”

    저거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내 몸을 휘감고 있던 검은색 연기들이 반지로 빨려들어갔다.

    -그렇게 당황하실 것 없습니다. 제 할 일을 마쳤으니, 무로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저게 당연한 거라며 그녀가 태연히 말했다.

    ‘···그래. 무슨 상관이야. 덕분에 살 수 있었는데.’

    스켈레톤들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다 식품들이 쌓여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산처럼 쌓여 있는 그것은 운반하는 게 더 걱정이 될 정도로 엄청난 양을 자랑했다.

    “일단 뭐라도··· 윽!”

    배라도 채울 겸 움직이려 했다.

    발걸음을 때기가 무섭게 현기증이 밀려왔다.

    -아, 잠시 어지러울 겁니다. 놈들을 움직이기 위해서 정신력을 많이 소모하셨을 테니.

    그걸 왜 지금···.

    반지를 처음 얻었을 때처럼 의식을 잃지는 않았지만, 움직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시야가 반전했고, 빙글빙글 돌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낼 것 같았다.

    상태가 완화될 때까지 기다렸다.

    “후우···.”

    한 시간 정도를 눈을 감고 있으니 울렁증이 많이 가라앉았다.

    “오, 많이도 모아놨네.”

    고블린들은 얼마나 식탐이 심한 지, 마트 전체에 있는 식량이란 식량은 한 곳에 다 모여 있었다.

    덕분에 귀찮게 잔해들을 뒤적이는 일을 덜었으니 내게는 좋은 일이었다.

    “이건 비싸서 못 먹은 건데··· 이렇게 먹네.”

    골뱅이 통조림을 하나 까 입에 집어넣었다.

    이런 일이 있기 전에는 이거 하나를 사 먹으려면 큰 지출을 감안해야 했다.

    하나에 8천원에서 만원이 넘으니, 한 달에 한 번 큰 맘 먹고 지르지 않은 이상 먹기 힘들었다.

    ‘최근에 진급을 해서 좀 풀리나 했는데··· 하필이면 그때 이런 일이 일어나서.’

    불만스러워도 어쩌겠는가, 이미 일어난 일인데.

    “이걸 전부 가져가고 싶은데.”

    배를 든든하게 채우니,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돌아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언제 다시 이런 곳을 찾을지 모르고, 설령 은행에 갔다가 돌아왔다고 해서 이것들이 무사할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이것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의외로 해결책은 가까운데에서 나왔다.

    -그거라면 간단합니다.

    “···?”

    우우웅!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허공에 거대한 구멍이 생겨났다.

    벽이나 땅에 생긴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색 구멍이 나타났다.

    -아공간입니다. 거기에 전부 담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와, 이런 착한 언데드를 봤나.

    나는 크게 기쁜 마음을 억누르며 음식을 들어 아공간에 나르기 시작했다.

    ‘이걸로 1년치 식량은 벌었어. 아니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살림을 차려 보자.’

    마트의 잔해 속에는 쓰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수두룩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필품들이 아무렇지 않게 널브러져 있었다.

    돈을 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아공간이라는 것도 생겼는데 그것들을 챙기지 못할 건 뭐란 말인가.

    고블린을 상대했던 충격은 그새 사라지고 나는 탐욕스럽게 주위를 둘러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