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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12화 (12/113)

제12화

코인도 돈이라고, 오만 코인을 벌어들인 것에 기뻐하고 있을 때 카셀린은 허공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이게 계좌란 말이지.”

그녀는 자신이 얻은 계좌를 자세히 살피고 있었다.

어떤 기능이 있는지 그새 다 파악한 건지 그녀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네.”

그녀의 평가는 그게 다였다.

계좌가 나쁘지 않다. 특별히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나빠보이지도 않는 어중간한 위치.

계좌로 이렇다 할 만한 것을 하지 않았으니, 계좌의 유용성을 아직 모르는 것이었다.

‘첫술부터 만족할 수는 없지.’

이제 막 발걸음을 땐 수준이었다.

현대인처럼 가상화폐에 익숙한 게 아니라면, 계좌라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그건 시간이 해결할 문제였다.

계속 써봐야 계좌의 유용성을 알 수 있다.

“제한이 이거였어? 별거 아니기는 한데, 당장에 하기는 힘든 건 맞네. 하긴, 처음부터 너무 많은 걸 풀어버리면 그것도 또 메리트가 낮아지니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며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확실히 괜찮아 보여. 좋은 능력이야. 계좌에 있는 코인이 적기는 해도 확실하게 보호해주니까.”

“이체라는 것도 마음에 드네. 굳이 귀찮게 마석을 사서 일일이 방문을 하지 않아도 되고, 뭐. 그건 놈들이 계좌를 개설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최초가 아닌 건 아쉽네. 하긴 본인 능력인데, 바로 사용하지 않은 것도 이상하겠지.”

이건 또 무슨 소리지?

그녀의 말속에 한 가지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나는 계정을 만든 적이 없다.

만들 시간 자체가 없었다. 은행을 만들기 전에는 엘더 리치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았고, 은행을 만든 후에는 나를 무시하고 미끼로 던진 놈들을 찾아갔다.

그 가운데 내가 내 계좌를 만들 시간은 없었다.

만들 시간이 어디 있어. 내 생존이 걸린 문제인데.

“뭐야. 왜 그렇게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어?”

“아니··· 그게. 저는 제 계좌를 만든 적이 없거든요.”

“···?”

그녀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통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내가 농담을 하는 게 아닌지 파악하려는 눈빛이다.

그것도 잠시 내가 진심이라는 걸 느꼈는지 그녀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진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떨떠름해진다.

그녀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되려 내게 따졌다.

“그러고 보니 제 계좌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안 해 봤네요.”

코인을 얻을 생각만 했지, 정작 내 것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못한 게 맞지만, 그녀가 아니었다면 생각도 하지 못했을 거였다.

“말 나온 김에 제 것도 만들어야 겠네요.”

“뭐 이런···.”

황당무계한 놈이 다 있냐는 그녀의 뒷말이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듯 했다.

그런데 뭐 어쩌겠는가, 그게 사실인 걸.

“어디···.”

계좌 개설을 눌렀다.

주위에 계좌 개설이 가능한 고객이 한 명 있다고 떴다.

나는 그게 당연히 나라고 생각했다.

이곳에 계좌를 개설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나밖에 없었으니까.

[은행장은 대상자가 아닙니다.]

시스템에게 거부를 당했다.

그것도 은행장인 내가 은행에게 거부를 당한 것이었다.

내가 은행장인데, 아무리 코인이 적다고 해도 그렇지 계좌를 개설하지 못하는 건 있을 수가 없었다.

[은행장은 대상자가 아닙니다.]

[은행장은 대상···.

계좌를 개설하려고만 하면 나는 대상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만 떠올랐다.

나는 이대로 영영 계좌를 개설하지 못하나 우울해지려던 찰나였다.

‘잠시만··· 분명 그녀가 최초가 아니라고 했지.’

다시 한 번 계좌 개설을 누르려던 나는 허공에 손가락을 멈췄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은행장인 내가 대상자가 아니라는 말은, 계좌를 개설하지 못한다는 게 아닌 이미 계좌가 있다는 말이 아닐까 하는.

카셀린이 했던 말도 그렇고, 내가 계좌를 만들 수 없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나와 그녀, 그리고 리치가 있다.’

리치까지 포함하면 대상자가 한 명밖에 없다는 게 이상했다.

카셀린은 이미 계좌가 있다는 가정하에, 대상자는 총 두 명이 있어야 했다.

“뭘 그리 멍하게 있어?”

“자,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어? 뭐, 잠깐은 어렵지 않지.”

그녀가 말을 걸기는 했지만, 지금 그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건 잘못하면 내가 내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가 일어난다.

절대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기에 그녀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다.

그리고 의자가 없는 창구에서 벗어나 창구와 입구 중간에 있는 의자들의 중간에 자리 잡고 앉는 게 보였다.

그녀를 바라보다 다시 시스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은행장은··· 차원 은행을 열어보시기 바랍니다.]

한창 시스템을 바라보고 있으니, 메시지의 문구가 중간에 바뀌었다.

시스템이 귀찮은 놈이라고 말하는 게 어렴풋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차원 은행을 열어보라는 건 또 무슨 소리인 걸까?

내가 들어와 있는 곳이 은행인데, 아직 다 열지 아는 게 있다는 건가.

‘은행을 열라··· 은행을 열어···.’

그 말의 정확한 의미가 뭘까.

“차원 은행을 여···.”

띠링.

허공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니, 이걸 메시지라고 할 수 있을까.

메시지보다는 게임 속 상태창이라 보는 게 더 알맞았다.

「차원 은행

은행장:한정우

보유 자금:50,000

[예금][대출][적금]

보유 고객:2」

무척이나 간략하면서도 핵심적인 것들만 들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은 예금뿐이라고 하지 않았나?

여기에는 예금 외에도 대출과 적금까지 표시되어 있었다.

의아함에 그것들을 눌러봤다.

[현재 대출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현재 적금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두 개다 전부 지금 사용할 수 없다는 메시지만 떠올랐다.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보유 고객이 두 명으로 되어있다.’

내가 계좌를 개설해준 건 카셀린 그녀 하나뿐이다.

궁사에게 계좌를 개설해주기 직전, 그녀에게 죽었기에 두 명이 될 수가 없다.

“확실하네.”

이걸로 확실해졌다.

만든 사람은 카셀린 그녀밖에 없는데 두 명이라는 건, 즉 리치를 제외하고는 그 한 사람에 포함될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내게 계좌가 이미 만들어졌던 거라면 이해가 되지.’

그런 생각을 막 할 때였다.

[은행장에게는 계좌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은행이 은행장이고, 은행장이 은행이기 때문입니다.]

[은행장은 계좌를 개설할 필요 없이 모든 기능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은행은 오직 당신의 것이며 그것은 세계의 시스템이 간섭할 수 없는 권한입니다.]

연속적으로 떠오르는 메시지가 내 궁금증을 해소시켜줬다.

정중함이 잔뜩 묻어 있는 메시지였다.

나 자체가 은행이기에, 은행이 내 계좌나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스케일에 턱이 떨렸다.

‘진정하자. 괴물이 나타나고, 던전이 생겨난 마당에 뭘 더 놀라.’

크게 심호흡하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리치와 함께 밖으로 나가 우환청심환이라도 찾아놔야 겠다.

계속 이렇게 놀라다가는 내 가녀린 심장이 버티질 못할 것이다.

“리치씨?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알았다.”

슬쩍 카셀린의 눈치를 보며 그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를 창구 앞에 세우며 카셀린에게 했던 것처럼 그에게 계좌를 개설하게 하려 했다.

‘잠깐만··· 그런데 코인이 없으면 어떡하지?’

생각해 보니까, 리치는 카셀린과 다르게 계속 던전 안 보스방에서만 생활했다.

그가 코인을 벌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시스템을 이제 막 얻었다.

그런 이에게 코인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저··· 리치씨.”

“왜?”

“코인을 얼마나 가지고 있으세요?”

“뭐?”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를 보며 내 실수를 인정했다.

거지에게 돈이 얼마나 있는지 물으면 기분이 더러워지는 것처럼, 리치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사과를 하려고 했다.

“코인, 코인이라면 이걸 말하는 건가?”

그가 허공에 대고 손을 까딱였다.

“억? 아닌가, 더 있는 것 같은데···.”

‘뭐?’

“대충 이십 억 정도 있는 것 같군.”

“···.”

말을 잃어버렸다.

벌어진 입이 닫혀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닫을 생각을 하지 못한 게 맞았다.

“어, 어떻게···?!”

이제 막 시스템을 얻은 리치가 어떻게 그리 많은 코인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뭘 그렇게 놀라. 당연한 건데.”

멍하니 리치를 바라보고 있을 때, 어느새 다가온 카셀린이 창구를 두드렸다.

“보니까 이놈 게이트 키퍼였던 것 같은데, 맞지?”

“어··· 어떻게 아셨어요?”

“모르는 게 이상하지.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데. 중간에 시스템 그 새끼가 방해해서 못 보기는 했지만···.”

“네, 뭐라고요?”

“아니야, 아무것도.”

‘모르는 게 이상하지’까지 밖에 못 들었다.

그 뒷말은 마치 노이즈가 낀 듯 잘 들리지 않았다.

무조건 들었어야 할 중요한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신경 쓰지마. 크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아닌데, 중요한 거 같은데.

제대로 못 들었음에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신경 쓰지 말라고.”

“네.”

인상을 팍 쓰며 하는 그녀의 말에 나는 깨갱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리치가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제대로 찍혔군, 찍혔어. 불쌍한 놈.”

“아니, 당신까지 왜 그러는 겁니까.”

리치가 나를 보며 불쌍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어떻게 찍혀도 저런 여자에게 찍혔냐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보였지만, 거기에 대고 반박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나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건 지나가던 어린아이도 알 수 있을 테니까.

“뭐, 그건 됐고. 게이트 키퍼였던 놈이니 코인이 많은 건 당연한 거야.”

“어째서죠? 리치씨는 게이트 키퍼였고, 시스템을 이용하지 못했어요.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도 최근이죠. 그런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죠?”

“이걸 하나하나 설명하려면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야할 건데. 음··· 너는 코인을 뭐라고 생각하지?”

“재화 아닌가요?”

아직 코인 가지고 무언가를 산 적은 없지만, 코인이라는 이름부터가 물건을 사고팔 때 사용하는 화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틀린 대답은 아니야. 코인으로 할 수 있는 게 무척이나 많으니까. 다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코인은 너의 가치(價値)이며 격(格)이다.”

“···?”

“시스템은 우리를 볼 때 뭘 보는지 알아?”

“아니요.”

“코인이야. 코인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그것을 보고 그 사람의 위치를 정하지. 코인이 적으면 평민, 많으면 귀족 더 나아가 왕이 될 수 있다고 보면 돼.”

“···.”

“아까도 말했지만, 이건 네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알게 될 거야. 코인이 어떠한 건지.”

그녀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은근히 설명충이네···.’

순간 떠오른 생각을 머리를 털어 빠르게 지우며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아, 그리고. 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

“너 빚 얼마나 있어?”

“어···.”

“그렇게 당황할 거 없어. 이런 사소한 거 하나도 모른다는 건, 네가 이쪽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지 알 수 있으니까. 그리고 대부분, 세계가 시스템에 귀속될 때에는 빚을 갚지 못해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으니까.”

‘계속 지켜보기도 했고.’ 작게 무어라 중얼거린 그녀가 뒷말을 잊으라며 손을 휘저었다.

그녀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어차피 듣지 못했다.

그녀가 작게 중얼거린다 싶으면, 노이즈가 잔뜩 껴 들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네 빚은 얼마나 있지?”

“없는데요.”

“뭐?”

“없다고요. 저는 빚이 없어요.”

은행을 건설하기 무섭게 나는 빚에서 면제되었다.

“빚이 없다고?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럴 수는 없다며 그녀가 손을 뻗어 창구를 강하게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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