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11화 (11/113)
  • 제11화

    여자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내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그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녀의 반응에 순간 실수한 줄 알고 몸을 움찔 떨었다.

    “흐음···.”

    그녀가 내 얼굴을 훑어봤다. 뭔가를 고민하는 듯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혹시라도 그녀의 기분이 상한 게 아닐까 싶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재미있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무척이나 흥미로운 걸 발견했다는 듯이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얼마까지 알아봤냐고?”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에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네. 얼마까지 가능한데?”

    얼마까지 가능하냐라.

    그녀가 정확히 뭘 원하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계좌 개설이 다였고,

    「계좌 개설.

    석탄 등급:1~10만 코인

    구리 등···

    ···

    다이아 등급:501~5,000만 코인

    미스릴 등급:5,001~100억 코인(조건:1억 코인 거래시 해제.)

    아만타디움 등급:101~500억 코인(제한)

    VIP 등급:무제한(제한)」

    그조차 미스릴 이상부터는 제한이 붙어 있었다.

    지금의 내게는 턱도 없는 엄청난 제한이었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코인은 10만 코인이 다였다.

    코인을 버는 것조차 막막한 지금, 1억 코인이라는 저 제한은 내게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우선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계좌를 개설해 드리는 게 전부입니다.”

    “계좌? 그게 뭐지?”

    아, 거기서부터 막히는구나.

    하긴 현대에 살지 않은 사람이라면 계좌라는 개념 자체를 모를 수도 있다.

    ‘계좌를 모르는데 은행을 알 수가 있나?’

    애초에 시스템도 은행을 지은 게 내가 최초라고 했다.

    그 말은 그전까지 은행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는 건데, 은행에 대해 아는 것처럼 말하는 그녀의 행동이 의아하기는 했다.

    ‘아니지. 은행에 대해 안다기보다는 코인··· 아, 몰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파졌다.

    은행에 대해 알면 어떻고, 모르면 어떤가.

    어차피 내가 그녀에게 설명해줘야 하는 건 똑같은데.

    “계좌는 다른 이와 거래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종의 보관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게 다야?”

    “네?”

    “계좌로 할 수 있는 게 그게 다냐고.”

    “아니요. 그것 외에도 많죠. 대출부터 적금까지. 그 중 대표적인 게 이체라는 기능이죠.”

    “이체?”

    “아. 이렇게 말하면 모르실려나. 이체는 코인 거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은행을 통해서 코인을 다른 이와 주고 받을 수 있어요.”

    “흠···.”

    그녀가 팔짱을 낀 손가락으로 팔뚝을 두드렸다.

    “거짓말 아니지?”

    “어떤 거 말입니까.”

    “네가 말하는 그 이···.”

    “이체요?”

    “그래. 이체. 그게 가능하다는 거 말이야.”

    “네.”

    내가 그녀에게 거짓말을 해서 어디다 써먹는다는 말인가.

    거짓말이란 게 들통나서 좋을 게 없는데, 진짜 중요한 게 아니라면 그녀에게 솔직하게 말할 생각이다.

    “시스템도 하지 못하는 걸, 은행이란 게 할 수 있다는 건가.”

    “시스템이 할 수 없다니요. 그게 무슨 소리죠?”

    “모르는 건가? 시스템 사용자는 서로 코인 거래가 불가능 해. 코인을 거래하려면 시스템 상점을 방문하여 마석을 사서 주는 방법밖에 없지. 사용하는 비용에 비해 줄 수 있는 코인이 얼마 없기는 하지만.”

    순간 그녀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게 은행장이라는 직업을 준 것도, 은행을 만들어준 것도 전부 시스템이 해준 것이다.

    은행 자체를 만든 시스템이 그 간단한 걸 하지 못한다는 건 분명 이상했다.

    “어째서 거래를 못한다는 거죠? 시스템은 만능이 아니었나요?”

    용기를 내 묻는 나를 바라보며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도 모르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아, 그랬지. 각성한 지 얼마 안 되었었지. 그러면 모를만 하네.”

    이해한다는 듯이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다며 그녀가 어린애를 바라보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에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사람이 모를 수도 없지. 그것 가지고 그런 눈으로 바라볼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시스템이 만능이기는 하지.”

    그 부면에 있어서는 반박할 게 없다며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시스템이 만능인 건 아니야.”

    말장난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녀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

    농담이죠? 라고 묻는 순간 한 대 맞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시스템은 모든 걸 할 수 있기는 해. 자신의 품에 있는 것까지기는 하지만, 힘을 들이면 생명의 창조까지 할 수 있지.”

    “···.”

    “그럼에도 마냥 만능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말 그대로 할 수 없는 게 있기 때문이야. 시스템이 간섭할 수 없는 단 하나, 그건 본질이다.”

    “본질이요?”

    아무리 들어도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시스템이 만능이라면서 만능이 아니라고 돌려까는 느낌이다.

    “너 직업을 얻었지?”

    “네.”

    “너는 그게 시스템이 준거라고 생각하겠지?”

    “네.”

    애초에 내가 직업을 얻게 된 것도 시스템 때문이었다.

    시스템이 있지 않았다면 내가 직업을 얻을 수도 이렇게 은행을 가지게 될 수도 없었다.

    설령 시스템이 준 게 아니라고 해도, 시스템이 아니라면 내가 그 직업을 얻었다는 걸 알 수 있었을 리가 없다.

    “그 직업은 시스템이 준 게 아니야.”

    “그러면···?”

    “원래 네 본질이 그 직업인 거지.”

    “···?”

    “그냥 그렇게 알아둬. 시스템은 본질을 이끌어낼 뿐. 그것을 부여할 수 없어. 네 본질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 시스템은 딱 거기까지인 거지.”

    “···.”

    들으면 들을수록 더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내 본질이 은행장이라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시스템이 그 정도의 능력 밖에 없다는 것도 이상했다.

    본질이 뭔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간단하게 말해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능.

    그걸 말하는 것 같은데··· 시스템이 그걸 꺼낼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는 건, 반대로 시스템도 그걸 사용할 수 있다는 거 아닌가?

    어찌됐든 그 직업을 표시해주고 사용하는 것을 도와주는 건 시스템이었으니까.

    “역시 이해하지 못한다는 얼굴이네. 이건 네가 앞으로를 살아가면 이해할 수 있게 될 거니까, 그리 마음에 담아두지 않아도 돼. 어쨌든 네가 그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건 변하지 않는 거니까.”

    “아··· 네.”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내가 지금 아무리 복잡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모르는 것까지 알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지금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요즘 들어 자주 혼란스러워지는 것 같네.’

    하도 엄청난 일들을 겪다 보니 이리저리 휘둘리는 기분이었다.

    힘들수록 더욱 흔들려서는 안 된다.

    나는 그것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반성해야겠다고 몇 번이나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자, 그래서 다시 본질로 돌아가자고. 계좌를 만들게 되면 다른 사람과 코인을 거래할 수 있다는 게 사실이라고 했지?”

    “네. 다만 그 상대도 계좌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건 당연한 거니까, 상관없어. 그럼 만들어보자고. 내가 뭘 하면 되는 거지?”

    “계좌에는 등급이 있습니다. 그 등급은 가지고 계신 자금에 따라 달라지죠.”

    업무를 본다는 생각 때문인지 두렵다는 생각으로 들끓던 가슴이 진정되었다.

    생각해보니 세상이 멸망하기 전에도 진상이란, 진상은 다 만나봤다.

    술 먹고 들어와 제집 안방처럼 드러눕는 사람부터, 심지어 은행 강도까지 만나봤다.

    그때는 매뉴얼이 있어 침착하게 잘 대처할 수 있었다.

    ‘지금이라고 그렇게 하지 못할 게 뭐가 있을까.’

    그녀와 대화를 주고 받아보니, 그녀가 무작정 폭력부터 사용할 정도로 무상식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의 진상과 비교하기가 힘들 정도로 위험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그녀는 그 진상들과 다르게 말이 통하지 않는가.

    오히려 그녀가 대하기 더 편할 수도 있다.

    적어도 원하는 걸 해주면 피해를 주지는 않을 테니까.

    나는 그녀를 고객으로 보면 된다.

    “아, 그래? 그럼 난 최고 등급으로 하면 되겠네.”

    그것도 아주 돈이 많은 고객.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고객을 통해서였다.

    고객이 계좌를 개설할 때, 계좌를 이용할 때.

    그때 나오는 수수료를 통해 돈을 벌어들인다.

    그리고 그 수수료는 고객의 자본이 많을수록, 계좌의 등급이 높을수록 더 많이 벌 수 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기회다!’

    더 이상 그녀가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돈이 많은 고객으로만 보였다.

    내가 최고 등급이 어느 정도의 코인이 필요한 지 말하지도 않았는데, 최고 등급으로 해달라고 한다.

    그 말은 곧 그녀가 아무리 코인이 많이 드는 일이라고 해도 충분히 웃어 넘길 수 있을 정도의 자본이 있다는 소리였다.

    ‘그러고보면 첫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어.’

    나이트 일행의 말을 들어보면, 나와는 다르게 다른 이들은 몬스터를 사냥하고 던전을 클리어하여 코인을 벌어들인다고 한다.

    그들이 몬스터를 죽이고 마석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코인을 어떻게 버는지 충분히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코인이 적다고 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지.’

    엘더 리치조차 단번에 제압할 정도의 힘이면, 그녀가 못 죽일 몬스터는 없어 보였다.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몬스터를 죽였을 테고, 엄청난 코인을 벌어들였을 수도 있다.

    “등급은 총 8단계가 있습니다. 석탄부터 VIP까지. VIP가 가장 높은 단계입니다.”

    “그럼 당연히 VIP로···.”

    “그런데 제한이 있습니다.”

    “···뭐?”

    그녀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바로 최고 등급을 얻을 수 없다고 하니, 짜증을 낸다.

    나도 그녀와 다르지 않은 심정이었다.

    그녀가 바로 VIP가 되면 단번에 엄청난 코인을 벌어들일 수가 있는데.

    [VIP 개설비: 1,000,000코인]

    한 번에 백만 코인을 벌수 있는 기회다.

    그런데 그 기회가 한순간에 날라가버렸다.

    물론 제한만 해결한다면 되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 제한이라는 게 너무 높았다.

    [미스릴 : 1억 코인 거래시 개방]

    천도 아니고 무려 억이다.

    현대에서도 쉬이 감당하기 힘든 금액이기에, 그것을 말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졌다.

    “뭐야, 간단하잖아.”

    그런데 생각과는 다르게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게 뭐 어렵냐며 당장에 하겠다고 한다.

    “아쉽게도 지금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어째서지? 내가 그 정도 코인도 못 쓸 거라고 생각한 건가?”

    “아닙니다. 코인을 거래하기 위해서는 먼저 계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

    막 화를 내려던 그녀가 순식간에 진정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네. 그래서, 그러면 내가 만들 수 있는 최고 등급이 뭐지?”

    “다이아 등급이요.”

    “다이아?”

    “네.”

    말로 하는 것보다는 직접 보여주는 게 편하기에 행동으로 옮겼다.

    “오!”

    그녀가 허공을 바라보며 작게 감탄했다.

    내가 그녀에게 권한 다이아 등급도 결코 싸지 않았다.

    개설을 위해서 오만 코인이나 든다.

    VIP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었지만, 그건 최고 등급에 비교했기 때문에 그런 거지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은행을 건설한 최초의 보상으로 십만 코인을 받았다.

    오만 코인은 그것에 절반이나 되는 금액이었다.

    내게는 그 코인조차 중요하다.

    “음··· 그런데 계좌를 개설하는 데에 원래 코인이 소모되는 건가?”

    “네. 그리고 그건 계좌의 등급이 높아질수록 더 높아집니다.”

    “뭐··· 네가 나한테 거짓말 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허공에 손가락을 움직였다.

    [‘금을··· error··· error···!]

    “어딜···!”

    메시지가 뜨기 무섭게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내 앞에 뜬 메시지가 그녀의 손에 붙잡혀 구겨졌다.

    힘줄이 솟은 그녀의 손에 메시지는 구겨지고, 또 구겨지다 버티지 못해 산산조각이 나 부서졌다.

    ’저걸 부술 수가 있는 거였어?‘

    그녀의 괴팍한 행각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녀가 허공을 노려본다. 그녀의 입이 벌어지며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났다.

    “내가 어떻게 감춘 건데··· 한 번만 더 이런 개짓거리를 하면 가만 안 둘거야.”

    누구에게 말을 하는 걸까.

    그녀는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부서졌던 메시지 창이 복구되며 새로운 메시지의 내용이 떠올랐다.

    [괴팍한 년.]

    “···?”

    지금 괴팍한 년이라고···?

    [’카셀린‘이 다이아 등급의 계좌 개설을 동의하였습니다.]

    [계좌 개설비 50,000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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