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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9화 (9/113)
  • 제9화

    삼 일.

    던전에 갇혀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게 벌써 삼 일이 지났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몸 상태가 위급해지거나, 연약한 사람은 죽을 수도 있는 긴 시간이었다.

    ‘능력치가 높지 않았다면 위험했겠어.’

    그들이 던전을 돌아다니며 힘을 기른 베테랑들이 아니었다면 위험했을 것이다.

    ‘너무 방심했어.’

    던전의 겉모습만 보고 빠르게 끝내고 돌아오자고 생각해 따로 챙겨온 게 없었다.

    균열의 크기도 크지 않고, 느껴지는 기운도 약해 그저 그런 수준의 던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간단하게 먹을 말린 고기 몇 조각과 물 조금을 들고 왔다.

    그것 가지고는 결코 삼 일을 버틸 수가 없다.

    거기다 그들은 보스방에서 도망치기 위해 체력을 잔뜩 소비한 상태였다.

    땀을 잔뜩 흘린 지금은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렇게 삼 일을 버텼다.

    최대한 아끼고 아꼈지만, 물은 순식간에 동이 났고.

    무엇보다 언제 탈출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심리적인 압박도 있었다.

    ‘뭐야, 저놈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그렇게 언제가 될지 모르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그들의 눈에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자신들이 이렇게 된 것도, 그들이 살 수 있었던 것도 어떻게 보면 그의 덕분이었으니까.

    “더러운 무직업자!”

    전에는 자신들이 무슨 말만 해도 위축된 모습을 보였던 무직업자였다.

    능력도 없으면서 이렇다 할 직업도 없는 폐기물.

    ‘뭐지? 분위기가 달라졌어.’

    아주 사소한 움직임에도 크게 반응하던 놈이었는데, 지금은 자신들이 대놓고 화를 내고 있음에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렇다고 태연을 가장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저건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을 때에나 보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너, 뭐야? 도대체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놈에게 윽박지르는 그의 머리가 팽팽하게 돌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하려는 그의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파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놈이 살아 있는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그의 손에 잡혀 보스방에 갇혔다.

    그를 향해 손을 뻗는 놈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보스인 엘더 리치를 떠올리면 놈이 살아 있을 방법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은 거냐고!”

    덥썩-

    놈의 멱살을 잡았다. 비록 삼일을 굶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놈의 모가지를 꺾을 힘은 있었다.

    아무리 지치고 고되다고 해도 나이트의 힘이 어디가는 건 아니었으니까.

    “아까부터 못 들어주겠군.”

    그런데 갑작스레 나타난 남자의 등장에 그의 몸이 굳어졌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사람 같지가 않았다.

    이 흉흉한 기세하며, 저 불길한 아우라까지.

    “리, 리치···?”

    자신이 말하고도 어이없어하는 그의 귓가에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았는데도 그러고 있는 건 내가 우습다는 거겠지?”

    “아, 아닙니다!”

    황급히 놈에게서 손을 때며 뒤로 물러났다.

    그 잠깐 사이에 그의 등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어, 어떻게···?”

    리치가 인간의 육체를 가지게 되었다는 건 둘째치고, 보스가 보스방을 나왔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보스가 아닌 거 아니야? 하고 생각도 해봤지만 그건 아니었다.

    본인이 리치라고 인정하기도 했을뿐더러, 이런 흉흉한 기세는 리치 외에는 느끼지 못했다.

    애초에 이 던전은 보스방까지 일직선으로 되어있는 일자형 던전이었기에, 그들은 보스방 외에 있는 언데드들은 전부 마주쳤고 처리했다.

    “왜? 내가 저 개 같은 곳에서 나와 신기해? 막 이상한가 보지?”

    사악한 미소를 짓는 리치의 말에 그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의 보스가 보스방을 나오지 못하는 건 기본적인 상식이자, 시스템이 정한 규칙이었다.

    시스템의 영향력은 절대적이기에,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진 존재라고 하더라도 시스템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시스템은 뭐하고 있는 거야! 저런 오류 덩어리를 잡지 않고!’

    오류다.

    만능으로 보이던 시스템에 오류가 생긴 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저 손에 맺힌 보라색 기운이 금방이라도 그의 목을 부러뜨릴 것 같았다.

    살벌한 분위기에 그들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무직업자가 입을 열었다.

    “제가···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분위기도 읽지 못하고 말을 거는 놈에 나이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놈이 어떻게 살아 있는지 몰라도, 이 자리에서 말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놈은 그저 구석에 찌그러져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그런 놈이 입을 여니, 한정우가 어떤 직업을 얻었는지 모르는 그가 기분이 나쁜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넌, 닥치···!”

    콰득.

    닥치라고 소리치려던 그의 입이 무형의 힘에 뒤틀렸다.

    “끄아아아아악!”

    나이트가 제 턱을 붙잡고 쓰러졌다.

    그의 우렁찬 비명소리가 동굴을 가득 채웠다.

    “···!”

    옆에서 그 광경을 목격한 나이트의 동료들이 화들짝 놀라면서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자신을 리치라고 칭한 남자의 손이 움직이기가 무섭게, 나이트의 턱이 부러지는 것을 목격했다.

    손이 움직이는 것만 봤지, 따로 공격하는 건 보지 못했다.

    리치는 그저 손을 까딱인 게 다였다.

    ‘이길 수 없다.’

    그 모습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리치와 자신들 사이의 격차를 파악할 수 있었다.

    공격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는데 상대가 될 수가 없다.

    “시끄럽군.”

    리치는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는 나이트에 인상을 쓰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

    비명을 지르던 나이트의 목소리가 음소거 된 것처럼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그제야 마음에 든다는 듯이 리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네요.”

    리치가 뒤로 물러나니 무직업자가 앞으로 나섰다.

    한결 여유로워진 얼굴로 놈이 입을 열었다.

    “어째서 저를 버리신 거죠?”

    “···?”

    “아니지. 이렇게 물으면 잘 모를 수도 있겠네요.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은 저를 인간방패로 사용하셔야 했습니까?”

    “···.”

    그들은 무직업자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인간방패로 사용했다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그들이 엘더 리치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나이트가 무직업자를 미끼로 던졌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그들이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리치가 그의 편으로 보이는 지금, 그에게 조금이라도 밉보이면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괜히 그를 건드렸다가 나이트처럼 무슨 일이든 당할 수가 있다.

    “뭐··· 대답하기 힘들겠죠. 당신들은 그저 살기 위해서 그랬을 뿐인데. 그렇죠?”

    끄덕끄덕.

    그들이 황급히 머리를 흔들었다.

    그의 말을 이해하려 머리를 쓸 수도 없었다.

    조금만 대답이 늦어진다 싶으면 옆에 있는 리치가 인상을 쓰며 손을 들어 올렸기에.

    그 행동 하나하나가 무서운 그들은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들의 행동이 잘했다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겠네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을 방패로 쓸 수 있습니까? 잘못했죠?”

    “네···.”

    “그럼 벌을 받아야겠네요.”

    “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분위기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대로 있으면 꼼짝없이 당할 것 같아 황급히 입을 열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갑자기라니요. 그럼 당신들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겁니까? 와··· 이거 진짜 어이없네요. 사람을 미끼로 던져놓고 잘못한 게 없다?”

    “아, 아니 그게···.”

    “하···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이거 어떻게 생각해요?”

    그가 고개를 돌려 리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행동에 그들이 화들짝 놀라 다급히 소리쳤다.

    “아닙니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그들의 외침에 그가 그들을 향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죠? 잘못했죠?”

    “네! 그렇습니다!”

    “그럼 벌을 받는 것에 반대는 없겠네요?”

    “그, 그건···.”

    “음··· 안 되겠네요. 리···.”

    “반대 없습니다!”

    리치의 ‘리’자만 나와도 그들이 경기를 일으키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럼 우선 가진 거 다 내놓는 거부터 시작하죠.”

    웃으면서 말하는 그의 말에 그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

    “이 정도면 충분하겠네요.”

    그들이 꺼낸 것들을 보며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석부터 시작해서, 처음 보는 것들이 내 앞에 나열되어 있었다.

    그들이 전부 내놓지 않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리치의 앞에서 숨길 정도로 그들이 배짱 있어 보이지 않았고, 무엇보다 놀랍게도 리치는 상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었다.

    자신보다 수준이 낮은 자의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마법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나이트 일행은 숨기는 거 없이 전부 내놓았다.

    “이, 이거면 됐습니까?”

    “네.”

    내 대답에 거무죽죽하던 그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환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죠.”

    “···?”

    그들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리치에게 물건들을 챙기게끔 부탁하며 허공에 떠오른 메시지를 훑어봤다.

    [특정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경비원 고용- ‘노예’가 개방되었습니다.]

    그들이 내게 머리를 숙인 그 순간에 떠오른 메시지였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경비원 고용’의 특성에 추가적인 능력이 붙었다.

    [경비원 고용]

    합당한 대가를 지불···.

    특성

    1.노예:대상을 굴복시켜 대가 없는 노역을 시킨다.(은행장의 권한으로 해방시킬 수도 기한을 늘릴 수도 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상대를 노예로 부릴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노예로 부릴 수가 있었다.

    안 그래도 은행을 운영하려면 많은 일손이 필요하다.

    자산도 없는데, 무료로 일꾼을 구할 수 있다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사람을 죽여 심력을 낭비하는 것보다 이렇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을 하는 게 더 낫다.

    ‘그 전에 해야 할 게 있지.’

    노예로 부리기 전에 그들에게 받아내야 할 게 한 가지 더 있었다.

    코인.

    마석이나 다른 물건과는 다르게, 코인은 거래가 불가능했다.

    코인을 거래하려면 시스템 상점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던전에서 나가 안전지대로 가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그들을 보낼 수도 없는 노릇.

    그들에게 코인을 받아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었다.

    “저를 따라오세요.”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그들을 데리고 은행으로 돌아왔다.

    “···!”

    “이, 이게 어떻게···!”

    은행으로 들어온 그들이 은행의 모습에 기겁했다.

    소름끼치던 보스방의 모습은 사라지고, 현대에서나 볼 법한 사무 공간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지나쳐 창구로 들어가 그들을 불렀다.

    “그렇게 멍하니 있지 말고, 여기로 오세요.”

    그들이 어색한 몸짓으로 창구 앞에 섰다.

    그런 그들을 잠시 대기시킨 채 창구를 살펴봤다.

    그들에게서 코인을 얻어낼 방법이 있는데, 참으로 멍청하게도 그 방법을 어떻게 쓰는지 몰랐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하는 거지?’

    막상 창구에 왔지만 할 수 있을 만한 게 없었다.

    현대의 은행처럼 따로 서류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무언가 설명을 해줄 설명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참을 살피던 그때 시야를 가리는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경쾌한 소리와 함께 보이는 그 메시지에 나는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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