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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4화 (4/113)

제4화

띠링.

[‘외톨이 리치’의 저주로 모든 신체 능력이 10% 감소합니다.]

메시지가 나이트의 시야를 가렸다.

솜이 물을 잔뜩 머금은 듯, 그의 온몸이 무거워졌다.

한발에 5kg짜리 모래주머니를 양손, 양발에 찬 기분이었다.

“하··· 이번 던전은 글렀네, 글렀어.”

“그러게. 보스가 꽤 강한 것 같은데. 무려 10%에 달하는 디버프를 주고 말이야.”

“이 정도면 우리만으로 힘들 수도 있겠네. 이럴 때 사제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마법사도 디버프를 풀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디버프일 뿐, 지금처럼 저주와 관련된 디버프는 달랐다.

언데드가 내린 저주는 오직 사제만이 해주가 가능하다.

저주와 관련된 것들은 마법사가 풀 수 없어 사제의 힘이 필요했다.

“이래서 사제나, 뭉크 같은 사람을 원했는데···.”

“하다못해 딜러라도 왔으면 좀 좋아? 온 거라고는 그런 놈이 다니.”

그들이 던전에 들어와 언데드의 던전인 걸 알게 되었을 때, 자신들과 함께 할 사람이 사제쪽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있기를 바랬다.

그도 아니라면 딜량이라도 강한 거너나, 마법사 등의 직업을 가진 이들을 바랬다.

하지만 그들의 바램과는 다르게 들어온 사람은 ‘무’직업자였다.

‘도대체 얼마나 무능했으면 무직업자인 거야. 하다못해 범죄를 저지른 놈들도 살인자와 같은 직업을 얻는데.’

차라리 살인자나, 학살자같은 직업은 최악의 범죄자들이 ‘무’직업자들보다 낫다.

‘무’직업자는 되기가 무척이나 까다롭다.

평생을 이렇다할 것을 하지 않아야 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한 번도 노력한 것이 없이, 평범 그 이하의 삶을 살아야 한다.

히키코모리가 더 낫다고 여겨질 정도로 ‘무’능력자는 벌레 그 자체였다.

더군다나 직업이 중요한 격변의 세상 속에서 ‘무’직업자는 앞으로를 살아가기 힘들었다.

그래서 대부분 하루, 이틀을 버티지 못하고 죽는데.

“하필이면 그런 놈이 던전에 들어와서는.”

“차라리 짐꾼이라는 직업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몰라. 쓸모도 없어.”

던전은 기본적으로 던전에 들어온 인원에 맞춰 그 강함도 달라진다.

언데드 던전과 같은 디버프가 난무하는 곳이면 한 사람 당 2~4%의 디버프가 생겨난다.

던전은 그 ‘무’직업자까지 인원에 포함시켜 무려 10%라는 디버프를 선사해줬다.

심지어 그 종류마저 신체 능력 전체를 감소시키는 최악의 저주이자 디버트였다.

최상의 컨디션으로도 던전은 힘든 곳인데, 10분의 1을 잃어버린 채 싸워야 하니 그 상실감과 짜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죽이고 올까?”

“내버려 둬. 괜히 손만 더럽히지 말고. 이미 디버프를 받았는데, 죽였다가 디버프가 사라지지 않아.”

“그래도 짜증나잖아!”

“좀, 참아. 이런 적이 한두 번도 아니고, 지금껏 잘해 왔잖아.”

“짜증나니까 그렇지! 도대체 그딴 놈들은 왜 사는 거야!”

나이트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시체를 마구 짓밟았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 동굴의 벽에 검을 휘두르며 화를 쏟아냈다.

“에휴. 또 도졌네.”

“내버려 둬. 솔직히 이번 디버프가 짜증나기는 하잖아.”

“하긴 나도 순간 황당할 정도니까.”

모든 능력의 감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희귀 케이스였다.

그것에 걸린다는 것부터가 그날의 운이 최악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만하고 이제 가자! 여기 냄새 너무 고약하다고!”

“빨리 끝내고, 술이나 마시러 가자!”

마법사와 궁사가 나이트에게 다가가 위로를 해주었다.

“후우··· 그래, 어서 끝내자. 여기에 더 있다가는 홧병이 나서 죽겠다.”

겨우겨우 진정한 나이트가 동료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뒤에서 그들이 그토록 경멸하던 남자가 몰래 쫓아오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이 너머가 보스방이야.”

“어우. 뭔 문이 이리도 소름끼치게 생겼냐.”

“데코 봐라. 해골로 도배를 했네.”

“너무 피곤한데. 빨리 끝내고 가서 쉬자.”

보스 방 앞에선 그들이 문을 보며 저마다의 감상을 내뱉었다.

나이트가 피가 덕지덕지 묻은 투구를 도로 쓰며, 문에 손을 대었다.

끼이이익-

녹슨 경첩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보스방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보스방에 입장하셨습니다.]

[‘외톨이 리치’가 침입자에 몸을 일으킵니다.]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오르고, 그들이 기세 좋고 앞으로 달려가다 덜컥 굳어버렸다.

-감히, 감히! 나의 영역에서 행패를 부리다니!

그것은 무척이나 불길하고 흉흉한 아우라였다.

마주하는 것만으로 숨이 덜컥 막히는 공포가 찾아왔다.

“뭐, 뭐야 이거···.”

“이건 못 이겨. 못 이긴다고!”

“죽을 거야. 나, 난 죽기 싫어!”

보스와 마주한 나이트 일행이 절망하기 시작했다.

보스에게서 느껴지는 기세와 마나는 결코 그들이 대적할 수 있는 그것이 아니었다.

“엘더 리치가 왜 여기 있는데···.”

엘더 리치.

열 마리의 리치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마왕 다음 가는 몬스터였다.

엘더 리치는 살아온 수명에 따라 그 힘도 달라지는데, 수천 년을 산 엘더 리치는 마족 최강이라 불리는 마왕의 힘도 능가한다고 알려졌다.

기본적으로 리치는 6써클에서 시작한다.

6써클이라 하면 가히 일인군단이라 불릴 정도이며, 단신으로 작은 나라 하나는 멸망시킬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리치보다 압도적으로, 넘불 수조차 없을 정도로 강한 엘더 리치를 그들이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모든 신체 능력이 10%가 감소된 상태였다.

그들이 이길 수 있는 확률은 좋게 잡아줘야 0.1%였다.

-나의 영역을 침범한 죄!

엘더 리치가 거대한 두개골이 달린 스태프를 든 채, 그들을 노려봤다.

-나의 가족들을 해친 죄!

엘더 리치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단어가 나왔다.

엘더 리치는 감정이 없는 몬스터다.

그리고 생전에 가족이었던 이들도 실험이라는 명목하에 산채로 해부하고, 키메라로 만드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소환한 언데드들을 도구 그 이하로 여기며 죽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엘더 리치의 입에서 가족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건 놀라 팔짝 뛸 만한 일이었다.

그 말을 들었다면 그 엘더 리치가 기존의 엘더 리치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겠지만.

“뭐, 뭐라고 하는 거야?”

“우리를 찢어죽이겠다고 하는 거 아니야?”

안타깝게도 인간은 몬스터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인간에게는 몬스터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몬스터의 언어는 인간의 언어와 달랐다.

절대 인간은 알아들을 수 없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네놈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선고한다!

길고 긴 분노를 토해내며 엘더 리치가 스태프를 나이트 일행에게 뻗었다.

“정신차려!”

“이대로 다 죽을 생각이야? 도망이라도 치자고! 아직 문 안 닫혔어!”

일행의 외침에 나이트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제 몸만한 방패를 높이 들었다가 땅에 내리쳤다.

“나의 방패는 성벽과 같으니!”

땅에 내리꽂힌 그의 방패의 주위로 땅이 치솟기 시작하더니, 그들을 휘감았다.

굳건한 성벽처럼 그들을 둘러싼 흙의 벽은 그 어떠한 것도 막아낼 것처럼 단단해보였다.

-어떠한 방패도 너희들을 보호하지 못하리라! 일어나라, 죽은 군세들이여! 망자의 손길로 생자를 멸하라!

툭, 투두둑.

달그락달그락.

스태프에서 불길한 보라색 연기가 뿜어져 나와 그 일대를 휘감았다.

땅에서 새하얀 뼈손이 튀어나와 땅을 짚어 제 몸을 밖으로 끌어냈다.

으워어어어!

달그락달그락!

수 십, 아니 어쩌면 수 백에 가까운 언데드들이 스태프를 한 번 휘두르자 소환되었다.

-가라! 너희들의 증오를 표출하여라!

엘더 리치의 신호에 언데들이 괴성을 지르며, 단단히 둘러쌓인 흙벽으로 달려갔다.

팍, 팍팍팍!

그 위에 올라타 뼈가 닳아 없이지도록 흙을 긁어냈다.

“젠장, 어떻게 좀 해 봐!”

“기다려! 준비중이니까!”

나이트의 다급한 외침에 광역 마법을 준비하던 마법사가 닥치라고 소리쳤다.

“모든 것을 불태우는 화마여! 잿더미의 왕이여! 그대의 적을 불태우라! 인페르노!”

그녀의 양손에 펼쳐진 마법진에서 화염이 일렁거리더니 하늘 높이 치솟았다.

화염은 흙벽을 뚫고 나가 주변을 불태웠다.

레드 드래곤의 브레스처럼 일직선으로 뿜어지는 불은 그 근처에 언데드들을 전부 불태워버렸다.

“허억··· 허억···!”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마법을 사용해서인지, 그녀는 단 한 번의 마법 사용으로 마나 결핍증이 찾아왔다.

그녀가 마나를 회복하기 전까지는, 그녀의 마법의 지원을 기대할 수가 없다.

“좋아! 이때다. 도망치자!”

나이트가 마법사를 들쳐매며 들어왔던 입구로 달렸다.

-살려 보내지 마라!

그 뒤를 분노한 엘더 리치의 명령에 언데드들이 쫓았다.

“이, 이게 뭐야?”

나이트 일행이 보스방에 들어왔을 때 몰래 그 뒤를 따라 들어갔던 나는 주위에 펼쳐진 광경에 온몸이 굳어졌다.

사방이 불길로 일렁이고, 그 불길 속에서 언데드들이 뛰쳐나왔다.

그들의 앞에는 나이트 일행이 있었는데, 그 뒤를 언데드들이 쫓고 있었다.

‘이, 이쪽으로 오잖아!’

나이트 일행이 이쪽으로 오니, 언데드들도 덩달아 따라붙었다.

싸울 힘이 없는 나로서는 그만한 언데드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일 수는 없었다.

그에 그들처럼 도망을 치려했지만.

“네가 왜 여기에···? 야. 저놈 잡아!”

궁사가 나를 발견하고는 나이트에게 소리쳤다.

나이트가 뒤를 돌아봐 궁사와 눈빛 교환을 했다.

‘위, 위험하다!’

그 행동에 섬뜩함을 느끼며 급히 도망치려고 했다.

“어딜!”

어느새 다가온 나이트가 내 어깨를 붙잡더니 뒤로 던졌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땅을 떠난 내 몸이 언데드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쿠우우웅-

그 사이 나이트 일행이 보스방을 빠져나와 그 문을 닫았다.

‘젠장!’

그들을 원망할 시간도, 생각도 없었다.

나라도 그들이었다면 다른 사람을 먹이로 내던졌을 것이고, 그들을 원망하기에는 달려오는 좀비들의 기세가 너무 매서웠다.

곧 닥쳐올 일을 예감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

그런데 한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언데드에게 물어뜯기는 고통도, 짓밟히는 아픔도 없었다.

그저 ‘우워어어’하는 언데드 특유의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뭐지?’

이상함을 느끼며 눈을 슬쩍 뜬 나는 그대로 굳어졌다.

“···!”

고오오오!

바로 앞에서 엘더 리치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몸에서 나오는 기세가 무척이나 사나웠다.

금방이라도 숨이 막힐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졌다.

-···@#$#[email protected]!

엘더 리치의 입이 달그락거리며 무언가 말을 꺼냈다.

그런데 그 말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인간은 절대 알아들어서는 안 된다고 세상이 금지한듯한 말이었다.

이대로 죽는 건가하고 낙담하고 있을 때.

띠링!

경쾌한 알림소리와 함께.

[특정 조건을 충족시키셨습니다.]

[은행장 고유 특성-의사소통이 개방됩니다.]

메시지가 떠오르고.

-···뭐지? 어째서 아무도 죽이지 않는 거지?

-이상한 인간이다. 내 가족을 죽이지 않는 놈은 처음 봤어.

엘더 리치의 말을 이해할 수가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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