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3화 (3/113)

제3화

텁텁했던 공기가 습해졌다.

공간 자체가 뒤바뀐 듯 뜨거웠던 온도가 차가워졌다.

예전 시골집에 놀러 갔을 때 우연히 들어갔던 동굴의 느낌이 났다.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던전 탈출 전까지 시간이 동결됩니다.]

[은행 건설을 위해 던전의 핵을 찾아 접촉하십시오.]

새로이 메시지가 떠오르고, 서서히 주위 사물에 적응이 되는 눈을 돌려 주위를 둘러봤다.

“뭐야, 어떻게 들어온 거지?”

“여기 최대 인원이 4명 아니었어?”

“오류가 있었나 보네.”

“오류라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여태까지 시스템에 오류가 생겼던 적이 없었잖아.”

“그건 모르지. 포탈 관리자라고 실수를 안하는 건 아니니까.”

“으음··· 그런가.”

현대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옷차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판타지 게임에서나 볼법한 판금 갑옷을 입은 남자와 마법사 복장을 한 여자, 딱 봐도 ‘어쌔신이네’하고 생각이 드는 온몸을 검은색으로 도배한 남자, 활을 들고 있는 여자까지.

“어이, 거기 형씨는 직업이 뭐야?”

“···.”

판금 갑옷을 입은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내 직업을 묻고 있지만, 쉽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몬스터가 설치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런 세상에서 나는 직업을 받았다.

그런 직업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말해도 되는 걸까.

함부로 직업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그렇지. 남의 직업을 묻는 건 무례한 거였지. 하도 파티만 해오다 보니까. 까먹어 버렸네.”

“···.”

“내 직업은 나이트다. 자, 내 직업을 먼저 말해줬으니 이제 말해줘도 되지 않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먼저 자신의 직업을 말했다.

딱 듣는 것만으로도 멸망한 세상에서 살기에 최적화된 직업이었다.

나 강해요 하고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리고 그 직업으로 인해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군인들이 땅을 지키는 평화로운 현대 사회에서 ‘나이트’라는 직업을 어떻게 얻은 것일까.

직업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 전체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이트를 얻을 만한 일은 생각나지 않았다.

코스프레? 아니면 게임 업종의 직원이었나.

그렇다고 해도 나이트라는 직업은 말이 되지 않았다.

아니, 그도 그렇지만 그들의 동료들도 이상하기만 했다.

“뭐야. 내 걸 말했는데 말 안하네.”

“말할 수 없는 직업인가 보지. 무직업일 수도 있고.”

“무직업이 던전에 들어올 수 있다고? 세상에 본격적으로 던전이 나타난 게 최근이라고는 하지만··· 애초에 시스템을 얻게 되면 직업은 필수잖아.”

“사람이라고 다 같냐. 시스템을 얻어도 살아온 게 개판이면, 직업도 개판이거나 아예 못 얻는 경우도 있잖아.”

“뭐야. 그럼 이놈도 그런 개 같은 놈들이란 거야?”

“그럴 확률이 높지.”

활을 든 여자, 궁사의 말에 나이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던 그의 얼굴이 사라지고,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은 상종하지 못할 인간을 바라보는 사람의 그것과 닮았다.

그들의 대화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균열이 생기기 전부터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아니 전부터 해오던 일이라는 듯 말했다.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세상에 변화가 일어난 건 불과 삼 일도 지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저처럼 행동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애초에 그들이 나와 같은 현대 사람이 맞는지부터가 수상했다.

몬스터가 생겨나고, 균열이 일어난 세상이다.

게임에나 나오는 시스템도 있는 마당에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 없을까.

그렇다면 나는 그들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 세상에서 필요한 건 식량도 식량이지만, 가장 필요한 건 정보다.

변해버린 세상의 대한 정보, 그 정보를 통해 내가 살 확률이 높아질 수도 있었다.

“당신들은 이곳이 어디인지 아시나 보군요.”

“···그건 내가 아니더라도 알 수밖에 없을 텐데. 들어오면서 메시지 못 봤어? 던전 이름 뜨잖아.”

나도 이름은 봤다.

그리고 던전이란 것도 확인했다.

그게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었다.

내가 궁금한 건 따로 있었으니까.

“그럼 이 시스템이 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던전에서는 뭘 해야 하는 건지도요.”

“뭐···?”

그가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마치, 그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던전에 들어왔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를 빤히 바라보던 그가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그렇군. 너, 신입이구나.”

‘신입?’

갑자기 여기서 신입이 왜 나오는지 의문을 품었을 때, 나이트의 등 뒤에서 탄식과 한숨 등이 터져나왔다.

“뭐야.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했더니 신입이었어?”

“쯧. 그게 맞나 보네.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저 사람이 이곳에 있는 이상하지. 애초에 이 던전은 저 사람 세계의 있는 던전이었던거야.”

“어떻게 보면 불쌍하네. 이제 막 세상이 변했을 텐데, 이곳에 들어오고 말이야.”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책임져줄 이유는 없잖아. 자기 직업도 활용못하는 놈들은 짐이라고.”

나를 보는 그들의 눈빛이 변한다.

내가 자기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갑작스럽게 바뀐 그 분위기에 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하아, 귀찮게···.”

그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너··· 소설 같은 건 안 읽어봤냐? 만화책이나. 옷을 보면 나름 문명이 발달한 곳 같은데.”

“네? 네···.”

읽어봤다.

자랑은 아니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읽었다.

판타지, 무협, 로맨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봤다.

“그럼 간단하네. 그 소설들에 나오는 거랑 비슷해. 세상이 멸망했고, 시스템이 나타났고, 던전과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거. 그게 다야.”

“···.”

“아, 다른 게 한 가지 있네. 이 세상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금을 내야 한다는 거.”

그 말을 끝으로 나이트가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나와 말을 섞기 싫다는 듯이 그가 몸을 돌렸다.

[‘외로움에 사무친 리치의 소굴’의 보스가 침입자를 인지하였습니다.]

[던전의 핵을 제거하기 전까지 던전의 출입구를 봉쇄합니다.]

그때 메시지가 떠올라 시야를 가렸다.

“아, 썩을.”

그 메시지가 나뿐만이 아니라 그들에게도 똑같이 떠올랐는지, 나이트가 인상을 팍 구기며 욕설을 뱉어냈다.

“그래서 너 직업은 뭔데?”

“···.”

대답해도 되는 걸까.

그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가 신입이라는 말에 한순간에 바뀐 그들의 분위기를 보고 나니, 직업을 말하기가 더욱 껄끄러워졌다.

그때 궁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직업을 말 못하는 걸 보니 ‘무’직업자인 거 같네. 행색을 봐. 아무리 신입이라도 저렇게 더러운 몰골은 말이 안 돼. 딱 보니까, 몬스터 피해 숨어 다닌 것 같은데. 직업이 있으면 그럴 필요가 없지. 싸움 흔적도 없잖아.”

나를 보는 그들의 시선이 차갑게 식었다.

“하, 또 송장 치우게 생겼네.”

“어떻게 된 게, 우리는 이렇게 운이 없냐.”

“하필이면 ‘무’직업이라니.”

그들은 대놓고 나를 무시했다.

도움을 기대하기는커녕 짐짝 취급하는 그들의 말에도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말이 험하기는 했지만 틀린 건 없었다.

내가 가진 직업은 전투직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것조차 은행을 건설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능력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그들이 경멸하는 ‘무’직업자와 그리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나를 욕해도 어쩔 수 없어. 애초에 내 직업은 전투직이 아닐뿐더러, 아직 사용조차 못한다고,’

직업을 말한다고 해서 변할 건 없어 보였다.

이런 상황 자체가 처음인 나와는 다르게 그들은 이 모든 게 익숙해 보였다.

갑옷과 무기에 새겨져 있는 전투의 흔적들이 그들이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어렴풋이 알려줬다.

“후우.”

많은 게 의아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와는 다르게 그들은 현 상황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왜 던전에 들어왔을까.’

나와는 거리가 너무도 먼 그들의 행동들이 나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한 번 살아보겠다고 들어왔지만, 죽는 건 똑같았다.

그들이 나를 구해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들은 남이었고, 나를 경멸하고 혐오하고 있으니까.

‘일단은 그들을 지켜보자.’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지금은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경험이 많아 보이는데. 그들이라면 던전은 클리어해주겠지.’

그들이 실패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 그들에게 묻어나 여기서 빠져나가기로 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해도 두 손 놓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뭐라도 해보고 죽어야 억울하지라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저놈은 어떻게 할 건데?”

어느샌가 ‘놈’이 되어버린 나는 살벌한 그들의 눈빛에 이를 악물었다.

“내버려 두면 죽든 말든 알아서 하겠지.”

나이트는 내게서 완전히 신경을 꺼버리라며 내게서 몸을 덜렸다.

“쯧. 하필이면 저런 놈이 들어와서는···.”

“죽게 놔둬. 어차피 저런 놈은 우리를 따라와도 죽는 건 같으니까.”

마법사가 죽을 놈한테는 신경 쓸 필요 없다며 나이트를 따라 걸어갔다.

궁수와 어쌔신마저 내게서 등을 돌리고 나이트를 따라 걸어간다.

휘오오오-

그들과 멀리 떨어진 자리, 동굴의 저편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절로 몸이 오싹해지며 온몸에 닭살이 돋아났다.

그 바람 속에 어렴풋이 괴물의 울음소리도 들려오는 것 같았다.

‘혼자 있으면 위험하다.’

급히 그들이 걸어간 곳으로 달려갔다.

“어··· 뭐야 이거?”

얼마 달리지도 않았다.

1분? 2분? 500m도 되지 않은 거리였다.

어디선가 비릿한 냄새가 나나 했는데, 그게 피 냄새일 줄은 몰랐다.

“우욱···!”

벽을 짚은 채 속을 게워냈다.

그 정도로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끔찍하고 처참했다.

시체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고블린, 오크 등의 몬스터들로 보이는 그 시체들은 형태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찢어져 있었다.

팔이 날아가고, 머리가 터졌으며, 하반신이 불에 그을려 재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체들은 오랜 시간 부패되어 있었던 시체처럼 몸 여기저기에 구더기가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다.

“허억··· 허억···!”

그중에는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시체도 있었다.

판금 갑옷을 입고 있었던 인간의 시체.

그 시체조차 부패되어 구더기로 들끓고 있었다.

“버텨야 된다. 이런 거 가지고 벌써부터 이러면 안 돼.”

크게 심호흡했다.

시체의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애써 구토를 참아내며 시체들 사이를 지나쳤다.

쾅! 콰아아앙!

때려, 때리라고!

멀지 않은 곳에서 폭음과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간 나는 급히 몸을 숨겼다.

크륵, 크르르륵.

내 앞을 몬스터가 지나쳐갔다.

작은 체구의 몬스터, 고블린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조금 이상했다.

오면서 봤던 시체들처럼, 내 앞을 지나치는 고블린의 몸이 부패해 있었다.

‘언데드?’

죽었지만 살아있는 자.

죽음을 거스르는 자.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이명으로 불리는 그것은 언데드였다.

아포칼립스물에서는 꼭 등장하는 좀비와 같은 개체.

‘빌어먹을.’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숨을 참았다.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몸을 웅크렸다.

나는 주인공이 아니다.

주인공처럼 전투에 특화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놈들을 상대할 대처법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회귀자도 환생자도 주인공도 아닌 평범하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그런 내가 소설에서처럼 바로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주인공처럼 뚝배기를 깨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주인공이 아니니까.

“야, 제대로 막아! 저놈들이 들어오잖아!”

“너나 제대로 마법 사용해!”

“뭐? 이 미친놈이 죽고 싶어?”

“시끄러워! 전투 중에 뭐하는 거야! 전투에 집중해!”

그들이 부러웠다.

언데드를 상대로 말다툼을 할 정도로 여유를 가지고 있는 그들의 힘이 부러웠다.

적어도 전투에 도움이 되는 직업이었다면, 이렇게 비참하게 있지는 않았을 텐데.

“이걸로 마지막이다!”

나이트의 검이 오크 언데드의 머리를 가격했다.

콰드득-

검이면서 둔기로 때린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오크 언데드의 머리가 형체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졌다.

“후딱 마석이나 줍고 가자고. 여기는 냄새가 너무 역해서 오래 있고 싶지 않아.”

“왠일로 마음이 다 통하네. 그건 나도 동감. 여기에 더 있으면 내 코가 썩을 것 같다.”

언데드를 모두 처리한 그들은 즐겁게 웃으며 언데드의 몸속을 뒤졌다.

“오. 이번 건 왕건인데? 못해도 10코인은 받을 수 있겠어.”

“에이, 나는 꽝이야. 1코인이나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나.”

마석.

보라색의 영롱한 보석이 그들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들은 그 보석에 묻은 오물을 닦아내며 조심스럽게 챙겼다.

‘저걸로 코인을 벌 수 있는 거구나.’

세금을 내기 위해서는 코인을 벌어야 한다.

시스템이 내게 준 빚을 갚기 위해서 코인을 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도 저들처럼 몬스터를 잡아야 하는 걸까.

내가 잡을 수나 있을까.

걱정과 두려움, 절망 등의 감정들로 혼란스러워졌다.

[언데드들의 전멸에 보스 ‘외톨이 리치’가 크게 분노합니다!]

[던전의 침입자들에게 ‘외톨이 리치’의 저주가 내려집니다.]

던전이 꿈틀거리더니 내부에 있는 기생충을 제거하려는 것처럼 보라색 가루를 뿜어냈다.

그 가루에 흠칫 놀라 도망치려던 나는 새로이 떠오른 메시지에 멍해졌다.

[당신은 단 한 마리의 언데드도 해치지 않았습니다.]

[‘외톨이 리치’가 당신을 이상하게 바라봅니다.]

[‘외톨이 리치’의 저주가 당신을 피해갑니다.]

나를 향해 다가오던 보라색 가루가 살아있는 생명처럼 방향을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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