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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136)화 (136/138)

외전 2, 9화



 

두 번째 남편…?

검을 쥔 에렌의 손에서 스르륵 힘이 빠지고, 클로드의 손끝에서 은빛 스파크가 자취를 감추었다.

꿀꺽, 두 남자의 목울대 뒤로 마른 침이 넘어갔다.

오직 레오의 얼굴만이 와락 구겨졌다. 진의 얼토당토않은 소리에 이성을 잃은 레오가 검을 휘둘렀다.

챙-

그의 검 앞을 에렌의 검이 막아섰다. 검이 가로막힌 레오가 에렌에게 항의의 눈빛을 보냈다.

휭-

이에 질세라, 은빛 바람이 선실에 흩어져있던 의자를 탁자 앞으로 끌어모았다. 눈 깜짝할 새 다섯 사람의 몸이 둥실 떠올라 탁자 앞에 둘러앉았다.

“이게 대체 무슨 짓…!”

억지로 의자에 앉혀진 레오의 입에서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잔뜩 찡그린 그의 눈가엔 두 남자를 향한 배신감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러나 에렌과 클로드는 레오의 눈빛 따위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럼, 지금부터 방금 당신이 하려던 제안이 무엇인지 들어나 볼까? 난 원래 제안을 좋아하거든.”

클로드의 보랏빛 눈동자에 기대감이 형형하게 서렸다. 마치 보물이라도 찾은 탐험가의 눈빛 같았다. 의자에 앉은 그의 등 뒤에 잔뜩 흥분한 양피지와 깃펜이 파닥거리며 나타났다.

“그래, 이자가 오스칼을 해치려던 건 아닌 것 같으니 항변할 기회를 줘야지.”

당장이라도 진을 없애버릴 것처럼 굴던 에렌이 짐짓 자비로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푸른 눈 역시, 어딘가 들뜬 기색이었다.

“폐하,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레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고 하자, 클로드의 마법이 그를 억지로 의자에 앉혔다. 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야. 내 고향 시칠리아는 일처다부제거든. 그래서…. 내가 두 번째 남편이 되겠다고 한 참이었어.”

차가운 어조로 툭, 대답을 내어놓은 진이 순식간에 안색을 바꿔 오스칼을 향해 애교스럽게 웃었다.

“그렇죠, 누나?”

꿀이라도 바른 듯 미끄러지는 목소리에 오스칼의 귓등이 달아올랐다. 잘생긴 얼굴로 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누나라고 부르는 모습엔 도무지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누나’라는 단어에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는 마법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진이 오스칼을 ‘누나’라고 부르자, 세 남자의 시선이 일제히 오스칼에게 쏠렸다.

“누, 누나라고?!”

레오와 에렌이 입을 딱 벌렸다. 심지어 오스칼이 누나라는 단어에 수줍게 반응하고 있었다.

“감히… 공작 부인에게… 무례하게…!”

레오의 목소리가 질투와 분노로 떨려 나왔다. 오스칼을 향해 작정하고 끼를 부리는 녀석을 당장이라도 베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제게 그렇게 부르라고 한 건 누나잖아요?”

제 말이 맞지 않냐는 듯 진이 오스칼을 향해 조르는 눈빛을 보냈다. 오스칼이 당황해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으응…. 그렇…긴 하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오스칼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진 레오가 안광을 뿜어댔다.

“젠장!”

에렌이 낮게 욕을 읊조렸다. 그는 진이 오스칼을 누나라고 부른 이후부터 망연자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카탈리나와의 전쟁을 마무리할 때 그가 보고 받기로, ‘세레나 자르제’의 나이는 틀림없이 그보다 어렸던 탓이다.

한편, 클로드는 잠자코 입을 다물고 앉아 열심히 지난 세월을 헤아리는 중이었다. 500년 전 저주에 속박되어 노화가 멈췄던 나이와 저주가 풀려 다시 나이를 먹게 된 햇수를 길쭉한 손가락으로 꼽아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오스칼을 향해 활짝 미소지었다.

“오스칼 누나.”

“으아아악!”

오스칼이 괴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온몸에 소름이 잔뜩 돋았다.

“이, 이 노친네가 뭐라는 거야!”

오스칼이 씩씩거리며 클로드를 향해 잔뜩 골을 냈다. 500년도 더 살아온 남자가 날 누나라고 부르는 건 범죄라고!

그러나 클로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저주로 노화가 멈춘 시점을 빼면 내가 어려. 그러니까 내게 당신은 누나야.”

클로드가 청량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오스칼을 누나라고 부를 수 있게 되어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다.

500살 먹은 흑마법사의 말도 안 되는 주장에 레오와 에렌의 얼굴이 마수처럼 흉포하게 일그러졌다.

“당장, 그 입 닥쳐!”

악마도 울고 갈 음산한 목소리가 두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재밌다는 듯 턱을 괴고 세 남자가 아옹다옹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진이 천천히 입술을 뗐다.

“그래서…. 당신들도 누나의 남편이 되고 싶은 건가?”

고개를 끄덕이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의 두 남자와, 분노에 가득찬 표정의 남자가 동시에 진을 바라보았다.

참다못한 오스칼이 진의 멱살을 붙들었다.

“야 이 자식아! 자꾸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야말로 다른 남편이 필요하다는 얘긴 아직 한 적 없거든?”

“아직?”

반항도 없이 얌전히 오스칼에게 멱살을 잡힌 진이 씩 웃었다. 그 단어에 레오의 낯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 그런 의미 없는 단어에 일일이 의미 부여하지 마!”

마음속으로 부적절한 단어를 선택한 제 주둥이를 탓하며, 오스칼이 진을 향해 꽥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세 남자를 향해 홱 고개를 돌렸다.

“당신들도 이 자식이 하는 이상한 말에 곧이곧대로 반응하지 말라고!”

오스칼이 씩씩거렸다. 해적을 토벌하러 와서 두 번째 남편이니, 누나니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었다.

“좋아요. 그럼 다른 얘길 먼저 해요. 미친 앵무새를 잡는 일은 어때요?”

진이 화를 내는 오스칼을 향해 생긋 웃어 보였다.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대화 주제에 오스칼이 팔짱을 낀 채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레오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가라앉히고 입을 열었다.

“그자를 무슨 수로 잡지? 배도 버리고 달아났다고 하더군.”

“그자의 본거지가 베네키아 섬이라고 했었나.”

오스칼이 턱을 매만졌다. 레오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섬은 존재하지 않는 섬이다. 누구도 발견한 적 없어.”

“당신들 기준으로는 그렇겠지. 하지만 난 카디브해의 귀신이거든.”

느긋하게 의자 뒤로 몸을 기댄 진이 손끝을 까딱거렸다. 그의 입가엔 오만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 말에 오스칼이 진을 향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겐 뭔가 방법이 있는 거야?”

“물론이에요. 누나가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미친 앵무새의 목을 가져올게요.”

진은 사람을 녹일 듯이 달콤하게 웃었다. 그는 다른 남자들에겐 건방진 말투로 대하면서 오스칼에게만은 고분고분하게 굴었다. 그런 태도는 세 남자의 화만 돋우었다.

“해적의 도움 따윈 사양하지. 내가 칼릭스 기사단을 이끌고 직접 나서겠다.”

“그래, 이건 라인하트의 일이야. 시칠리아 인이 나설 이유가 없어. 근위대를 더 보강해서라도….”

“아니, 나 혼자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군. 사람을 찾는 일은 내게 일도 아니니까.”

세 남자가 너도나도 미친 앵무새를 토벌하겠다고 나섰다. 문득, 오스칼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런데… 폐하와 칼릭스 공작께서는 외교회담은 어쩌고 오신 거죠?”

날카로운 지적에 레오와 에렌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설마…. 저 때문에 국사를 다 내팽개치고 오신 건 아니죠?”

“그대가 위험하다는데 일이 손에 잡히겠냐고!”

“부인이 해적에 납치되었다는데 가만히 있는 게 이상한 것 아닌가!”

오스칼이 두 사람의 항변에 눈을 치켜떴다.

“전 이곳에 기사로 왔거든요? 기사가 토벌 임무 중에 납치되었다고 한들, 일국의 국왕과 최고 대신이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 설마 둘 다 절 믿지 못해서….”

저를 걱정했다는 말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얼마나 미덥지 못하면 일까지 내버려 두고 왔나 싶어 오스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 표정에 에렌이 황급히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 아니야. 그럴 리가! 일은 그저, 잠깐, 미뤄두고 왔을 뿐이야.”

“나, 나도 국왕 폐하 없인 일할 도리가 없으니까…, 폐하를 따라온 것뿐….”

은근히 이 사태를 제 탓으로 돌리는 투에, 에렌이 황당한 눈으로 레오를 봤다. 레오가 슬쩍 에렌의 눈길을 피해 고개를 돌리자, 에렌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앞으로 레오에게 한 달간 지독한 야근을 선사하리라 다짐하면서.

오스칼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해 주신 건 감사해요. 하지만, 전 보시다시피 멀쩡하고 두 분은 당장 외교회담에 참석하셔야 하니, 해적 토벌은 제게 맡기고 돌아가세요.”

“난 회담도 일도 없거든. 그러니 같이 가, 누나.”

“한 번만 더 날 누나라고 부르면, 다시는 당신과 말 안 할 거야.”

오스칼이 사나운 기세로 째려보자, 클로드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그리고 새침하게 말을 덧붙였다.

“당신은 저 두 사람을 왕궁으로 다시 데려다 놔야 하지 않겠어?”

레오와 에렌이 뭐라고 말을 보태려다 살기등등한 오스칼의 눈빛에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진의 황금색 눈동자에 승리감이 서렸다. 그가 꾀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그럼 누나는 내 침실에서 쉬고 있어요. 내가 앵무새의 목을 칠게요.”

“누가 너더러 가져오래? 앵무새의 목은 기사단을 이끌고 내가 직접 비틀 거야. 그러니까 넌 안내만 해.”

오스칼이 단호하게 진의 말을 잘랐다. 그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진의 눈썹이 팔자로 늘어졌다.

“오스칼, 정말 저 녀석과 움직일 건가?”

레오가 울상을 지었다.

“지금은 그게 최선이잖아. 시간이 없어. 넌 폐하와 함께 외교회담에 집중해. 클로드, 얼른 이 사람들 좀 데려가.”

오스칼이 손을 휘휘 저어 보였다. 레오는 뭐라고 더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오스칼의 표정이 워낙 단호해 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실제로 외교회담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도 않았다.

“붉은 수염,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했다간 가만두지 않을 거다.”

레오가 건넨 경고에, 진이 빙글거리며 고개를 까딱 움직였다. 레오가 이를 으득 갈았다. 에렌 역시 불쾌한 듯 풍성한 금발을 잔뜩 헝클어뜨렸다.

“얼른 돌아가!”

오스칼이 채근하자, 두 남자 때문에 오스칼과 동행하지 못해 심통이 난 듯 볼을 부풀린 클로드가 잠자코 은빛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바람 너머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너흰 여기 남아서 저 건방진 애송이를 감시해.”

그 말을 끝으로 세 남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드디어 둘만 남게 되어 만족스럽다는 듯 진이 살포시 눈을 접어 웃었다.

“그럼 누나, 내가 에스코트할게요.”

오스칼이 미처 피할 틈도 없이 진의 손이 오스칼의 허리를 우아하게 감싸 안았다. 오스칼이 눈을 치켜떴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파닥파닥-

그때, 두 사람 곁으로 무엇인가가 날아들었다.

“이건… 뭐야?”

양피지와 깃펜이 두 사람 곁을 맴돌며 몸을 흔들어댔다. 진이 미심쩍다는 듯 중얼거리며 한쪽 눈을 찡그렸다. 그가 성가시다는 듯 양피지와 깃펜을 붙잡으려 했다.

푸드덕!

양피지가 재빠르게 진의 손을 피해 몸을 흔들며 찰싹찰싹 그의 얼굴을 때렸다.

“윽.”

양피지에 따귀를 얻어맞은 그가 낮게 침음했다. 깃펜 역시 오스칼의 허리를 감싼 진의 손을 날카로운 펜촉으로 사납게 공격하는 중이었다.

클로드가 남겨두고 간 것들을 알아본 오스칼이 헛웃음을 지었다.

“저 미치광이들이 마음에 들 때가 다 있네.”

“난 맘에 안 들어요….”

진이 투덜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검을 허리춤에 단단히 고정한 오스칼이 진의 등짝을 철썩 후려쳤다.

“투덜거리지 말고, 앵무새가 있는 곳으로 안내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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