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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134)화 (134/138)

외전 2, 7화



 

오스칼이 칼을 내려놓자, 진은 공손한 태도로 오스칼을 탁자 앞 의자로 안내해 몸을 데울 수 있도록 뜨거운 차를 따라주었다.

오스칼이 멍한 얼굴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피어오르는 수증기 덕분인지, 진실을 알게 된 충격 덕분인지, 마주 앉은 진의 잘생긴 얼굴이 뿌옇게 흐려 보였다.

“그러니까…. 네가 정말….”

“네, 진이요. 누나가 까마귀 클럽에서 구해준.”

붉은 수염, 아니 진이 눈을 접어 웃으며 생글거렸다. 그는 오스칼이 드디어 자신을 알아봐 퍽 기쁜 모양이었다.

‘이렇게 보면 그냥 영락없는 어린애 같은데….’

오스칼이 이국적인 향기가 나는 허브차를 한 모금 들이키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노예 경매가 벌어지던 까마귀 클럽의 지하 감옥에서 경계심 어린 눈으로 오스칼을 바라보던 소년은 불과 1년이 조금 지난 시간 동안 아름다운 청년으로 변모해 있었다.

그사이 남자답게 자란 골격으로 소년티는 벗었지만, 구릿빛 피부와 예쁘게 휘어진 눈 덕분에 그에게는 여전히 천진난만한 앳된 분위기가 남아있었다.

‘심지어 저 녀석이 그 악명 높은 카디브해의 귀신이라고…?’

오스칼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빛바랜 낡은 나무 탁자 위의 옹이 자국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긴, 생각해보면 진은 1년 전에도 린을 구하기 위해 혼자 해적들과 싸웠다고 했으니, 그때부터 보통 소년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무슨 생각 해요? 나 좀 봐요. 누나.”

부드러운 목소리가 오스칼의 시선을 애타게 갈구했다. 오스칼이 눈을 들어 진을 바라보자 진이 다시 한번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웃지 않고 있을 때는 예리한 인상이라고 느꼈었는데, 이렇게 웃을 땐 순해 보였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린은 잘 있어?”

“물론이죠. 그날 누나가 우릴 구해준 덕분에.”

“린도 네가 해적이 된 걸 알아?”

“물론이죠. 린은 제가 붉은 수염이 된 걸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워해요.”

오스칼이 말문이 탁 막혀 진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해적이 되다니!

“날 어떻게 구했어? 설마 너도 ‘미친 앵무새’와 한패야?”

그 말에 진이 말도 안 된다는 듯 푸스스 웃었다.

“그럴 리가요.”

“그런데 왜 거기 있었어? 우연히 지나가기라도 한 거야?”

오스칼이 눈을 사납게 치켜떴다.

“우연이란 건 없어요, 누나. 그저, 칼릭스 공작 부인이 미친 앵무새를 토벌하러 왔다는 소문을 들었을 뿐이죠.”

“그게 무슨 말이야?”

“미친 앵무새의 배 활대 위에서 그자와 겨루는 누나를 본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어요. 여전히 강하고 아름다워서.”

약간 핀트가 어긋난 칭찬에 오스칼이 흠칫, 머뭇거렸다. 한참 동생뻘인 녀석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민망해 콧잔등을 찌푸리자 진이 소리를 내 청량하게 웃었다.

“그, 그럼 내가 미친 앵무새를 토벌한다는 얘길 듣고 찾아온 거라고?”

“사실, 날 배신한 그자를 붙잡아 잔인하게 처형할 생각이었는데.”

생긋 웃으며 무시무시한 말을 내뱉는 진을 향해 오스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의 황금색 눈이 형형하게 일렁였다. 비뚜름한 미소를 머금은 입술이 조소를 흘렸다. 그 날카로운 분위기에 오스칼이 숨을 참았다. 그를 휘감는 공기에서 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자를 잡으러 누나가 온다는 소식엔, 용서해주고 싶을 정도로 기뻤죠. 드디어 누나를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뭐…?”

오스칼을 향해 달콤한 눈웃음을 지은 진이 오스칼을 진득하게 응시했다.

“그날 이스키아의 살롱에서 누나를 본 이후 매일, 누나를 기다렸어요. 덕분에 바다로 추락하는 누나를 누구보다 빨리 발견했죠.”

“날 구해준 건 고맙지만… 넌 대체 언제부터 해적이 된 거야? 너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거 아냐?”

오스칼이 내내 마음에 걸리던 말을 내뱉었다.

“작년 겨울에 이미 성인이 되었는걸요. 시칠리아로 돌아간 이후 단 하루도 누나를 잊은 적이 없어요. 그리고 생각했죠. 어떻게 하면 누나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추억에 잠긴 듯, 진이 눈을 살며시 올려 떴다.

“나도 강해지고 싶었어요. 누나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까. 다행히도 전 검술에 꽤 소질이 있었죠.”

“그렇다고 해적이 돼? 해적에게 잡히기도 했으면서! 더 좋은 방법도 있었을 거 아냐?”

오스칼이 어린아이를 나무라듯 눈을 뾰족하게 떴다. 비뚤어진 동생을 혼내는 투였다. 앙칼진 오스칼의 목소리에 진이 서운하다는 듯 눈썹을 길게 늘어뜨렸다.

“하지만 시칠리아의 가난한 소년이 해적 말고 달리 뭘 할 수 있었겠어요?”

“기사가 될 수도 있었을 거 아냐!”

“시칠리아엔 기사가 없어요. 그리고 전 그저 누나를 도우러 해적이 된 거예요.”

“날 돕기 위해 해적이 됐다니, 무슨 엉뚱한 소리야?”

터무니없는 진의 변명에 오스칼이 볼멘소리를 했다.

“지금까지 미친 앵무새를 포함한 다른 해적들이 칼릭스 령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막아낸 게 누구라고 생각해요?”

오스칼이 잠시 눈을 찡그렸다. 분명 드미트리가 붉은 수염은 민간인이 아닌 해적들을 상대로 노략질을 한다고 하긴 했었다.

“그럼…. 정말 네가 해적들을 막아내고 있었다고? 대체 왜?”

“당연히 누나를 위해서죠. 칼릭스 령은 누나 거잖아요.”

토라진 듯 샐쭉하게 답하는 진을 향해 오스칼이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대체 왜 진이 자신을 위해서 해적들을 상대해 왔다는 걸까.

“하지만… 넌 이스키아 사람도, 라인하트 왕국민도 아니잖아. 근데 왜… 네가 아무 관계도 없는 칼릭스령을 지킨다고….”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오스칼이 어느새 미지근하게 식은 찻물을 한 모금 삼키려던 순간.

“그야, 누나는 제 반려가 될 사람이니까요.”

“푸흐학! 콜록콜록. 뭐, 뭐라고?”

오스칼이 찻물을 뱉어내며 요란한 기침을 내뱉었다. 생리적인 눈물이 고인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진은 여전히 미소를 띤 채 그가 걸치고 있는 부드러운 실크 가운의 넓은 소맷자락으로 오스칼의 젖은 입가를 닦아주었다. 오스칼이 얼뜬 표정으로 진을 바라보았다.

“그날 해적들을 상대하던 누나를 본 순간 알았어요. 여인이 이다지도 강하고 아름다울 수 있구나. 그래서 깨달았죠. 내 반려가 될 사람은 누나뿐이란 걸.”

켁켁, 터무니없는 소리에 다시 한번 요란하게 기침을 한 오스칼이 치켜뜬 눈으로 진을 바라보았다. 황금빛 눈망울이 그녀를 사랑스럽다는 듯 응시하고 있었다. 오스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사나운 목소리로 진에게 쏘아붙였다.

“야! 쪼끄만 게 까불고 있어. 나 유부녀야. 칼릭스 공작 부인이라고! 네 반려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을뿐더러, 이미 결혼했거든?”

그러나 맞은편에 앉은 진은 여전히 생긋 미소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탁자 위에 팔꿈치를 기대고 턱을 괸 채, 자리에서 일어선 오스칼을 느긋하게 올려다보았다.

“제 고향, 시칠리아는 일처다부제거든요. 내 아버지도 어머니의 두 번째 남편이고. 그러니까… 난 괜찮아요.”

“뭐…뭐라고?”

뜻밖의 대답에 오스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연신 제게 잔소리를 쏘아붙이다 할 말을 잊고 눈만 깜빡이는 오스칼이 귀여운지 진이 쿡쿡거리며 웃었다.

진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는 이성이 마비되다 못해 정지해버린 오스칼을 향해 서서히 다가갔다. 어느새 오스칼 곁으로 바짝 다가간 그가 꾀는듯한 나직한 목소리로 오스칼의 귓가에 속삭였다.

“게다가…. 쪼그맣다고 하기엔…. 전 이렇게나 큰걸요.”

키도 덩치도 훌쩍 커버린 진이 오스칼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그가 다가서자, 그의 넓은 어깨에 오스칼의 몸이 완전히 가려졌다. 단단한 그의 몸에서 앳된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색정적인 분위기가 흘렀다.

“누, 누가 키가 작대?”

오스칼이 애써 태연한 척 눈을 부릅떠 보았지만, 훅 들어오는 그의 얼굴에 당황해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고 말았다.

그러자 금세 오스칼에게 몸을 붙여온 진이 구릿빛 손으로 오스칼의 하얀 손을 감싸 쥐었다. 진이 오스칼의 손을 한 손에 감아쥘 정도로 커다란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은근하게 미소지었다.

“다른 곳도… 커요.”

“으악!”

오스칼이 펄쩍 뛰며 얼굴을 와락 구겼다. 심장이 벌렁거리는 기분이었다.

‘상대는 어, 어린 애라고! 오스칼 정신 차려!’

세차게 도리질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는 오스칼을 향해 진이 활짝 웃어 보였다.

“시칠리아에선 남자가 결혼할 때 지참금을 내거든요. 결혼 선물로 카디브해를 바칠게요. 안되나요?”

뱃멀미 때문인지, 신종 플러팅 때문인지 현기증이 핑 돌았다. 어지러움에 휘청이는 오스칼을 향해 팔을 뻗어 허리를 감아 안은 진의 팔뚝이 단단하게 솟아올랐다.

진에게 마주 안긴 자세가 된 오스칼이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마주친 깊은 금안에 빨려들어 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너, 너 지금 무슨….”

그때, 배 바깥에서 소란이 일었다. 오스칼과 진의 시선이 동시에 선실의 문을 향했다. 발소리가 거칠게 쿵쾅거리며 문과 점점 가까워졌다.

쿠쾅!

굳게 잠겨있던 선실 문이 부서질 듯 열리고, 은빛 바람이 선실 안에 휘몰아쳤다. 불어온 거센 바람에 벽 위의 붉은 깃발이 세차게 펄럭거렸다.

스릉-

오스칼의 허리를 감아 안은 팔은 그대로 둔 채, 순식간에 반대쪽 손으로 검을 뽑아 든 진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솔직히, 네 번째 남편까지는 생각 안 해봤는데.”

제 품에 안긴 오스칼을 향해 찡긋 윙크를 한 진이 재빨리 오스칼을 그의 등 뒤로 숨겼다. 시야를 뿌옇게 가리던 은빛 연기가 사라지자 흉포한 얼굴의 세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레오, 에렌, 클로드…?”

진의 어깨너머로 세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오스칼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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