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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132)화 (132/138)

외전 2, 5화



 

뤼미에르 기사단이었던 청년들을 제외한 기사들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목을 따다니, 공작 부인의 입에서 그런 거친 말이 나오니 모두 놀란 눈치였다.

“뭍으로 나온 해적들은 처리해선 끝도 없어요. 본거지를 쳐야죠.”

“하지만 본거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서던이 전설의 섬 ‘베네키아’를 떠올리며 머뭇거렸다. 서던의 생각을 읽은 듯 오스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저들의 본거지가 전설의 섬이라면서요? 그게 과장이든 진짜든 본거지는 있을 테고. 해적들도 그곳까진 배를 타고 가지 않겠어요? 우린 저 해적선을 칠 거예요.”

오스칼이 멀리 보이는 검은 해적선을 가리키며 방긋 웃었다. 서던이 놀라 입을 뻐끔거렸다. 그도 잠깐 생각해 본 일이긴 했으나, 병력도 적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 어딘가 자신이 없어 주저하던 일이었다.

“저희 이스키아 기사단은 배 위에선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는데…. 괜찮을까요.”

서던이 눈썹을 늘어뜨렸다. 오스칼이 허리에 손을 얹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도 해안에서 싸워본 건 오늘이 처음이라고요!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잖아요? 먼저 겁먹을 필요는 없어요.”

그러자 불쑥 드미트리가 끼어들었다.

“비 전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정 두려우시면 서던 경께서는 육지에 남아계시면 됩니다.”

드미트리가 당당하게 턱을 들어 올렸다. 어쩐지 그를 업신여기는 듯한 태도에 서던 역시 기세를 올렸다.

“그럴 리가요! 비전하와 함께하는데 두려울 게 없죠.”

두 남자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눈싸움을 했다. 오스칼이 만족스럽게 손뼉을 치며 쾌활하게 말했다.

“다들 의욕적이라 좋군요. 병력도 충분하니 이렇게 하죠.”

해변에 세워진 기름등 아래에서 오스칼은 모래사장 위에 주저앉아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려가며 작전을 세웠다. 오스칼과 처음 출정을 나온 이스키아와 연합군의 젊은 기사들은 칼릭스 공작 부인의 격의 없는 태도에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모르고 땀을 뻘뻘 흘렸다.

이스키아 해안을 지키는 팀, 건너편 항구를 통해 배의 후미로 접근하는 팀, 이쪽 해안에서 뱃머리 쪽으로 접근하는 팀, 세 무리로 나뉘어 움직이는 작전이었다.

“그럼 비전하께서는 육지에 남아계시는 게 어떠십니까.”

서전이 걱정스러운 눈을 했다. 그러나 오스칼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이 연합군의 사령관인데, 당연히 제가 앞장서야죠!”

“우리 비전하는 누구보다도 용맹한 기사라고!”

기욤이 우쭐한 얼굴로 이스키아 기사단을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숙영하다 동이 트면 바로 움직이죠.”

“비전하께서 이곳에서 야영을 하신다고요?”

이번엔 근위대원 중 하나가 펄쩍 뛰었다. 그 모습에 오스칼이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출정을 나왔으니, 당연하죠.”

오스칼과 처음 출정을 나온 기사들의 얼굴에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표정이 스쳤다. 오스칼은 아랑곳없다는 듯 기사들을 응시했다.

“그럼, 우리 모두 힘을 합해 미친 앵무새가 더는 울지 못하도록 목을 비틀어버리죠!”

오스칼의 손안에서 나뭇가지가 와작 부서졌다. 공작 부인의 입에서 나온 거친 단어에 청년들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오스칼은 청년들의 혼란한 감정을 눈치채지 못하고 심기를 다졌다.

***

“하하, 형님. 이게 대체 얼마 만입니까.”

“형님과 다시 야영을 하게 되다니.”

모래 위에 부지런히 텐트를 치던 청년들이 재잘재잘 수다를 떨어댔다.

“방금까진 깍듯이 비전하라더니?”

오스칼이 드미트리를 향해 장난스럽게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드미트리가 머쓱하게 웃었다.

“하핫, 아깐 이스키아 기사 녀석들이 보고 있어서 그랬죠.”

“우리 형님인데, 자꾸 ‘비전하, 비전하’ 하면서 모시니 괜히 심통이 나지 뭡니까.”

시몬이 뒤통수를 긁었다. 그 모습에 오스칼이 하하 웃었다. 덩치는 커다란 녀석들이 이럴 때 보면 꼭 어린애들 같았다.

“이러고 있으니, 형님과 함께 간 첫 번째 야외훈련이 떠오르네요. 그날 절벽에서 형님께 목숨을 구한 걸 생각하면… 일생의 은인이죠.”

기욤이 아련한 눈으로 추억에 잠겼다.

“그러고 보면 단장님이 그때부터 좀 이상하셨지? 형님께 괜히 화를 내시고 말야.”

제라드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 말을 보탰다. 오스칼이 킬킬대며 웃었다.

“사실 이제 와 고백하는데, 그날 너희가 먹은 저세상 맛 수프, 내가 만든 거였어.”

뒤늦은 오스칼의 고백에 청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에? 그럼 단장님이 형님을 감싸주시느라 둘러댔던 거였어요?”

“우린 또 이용당한 거였군요.”

“그날 이후에 전 한 달 정도는 미각을 잃었다고요!”

“이야, 어쩐지! 단장님이 그런 끔찍한 음식을 만드셨을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미트리가 고개를 저으며, 마치 그날의 음식은 떠올리기도 싫다는 듯 진저리를 쳤다. 그 모습에 오스칼이 도끼눈을 떴다.

“야, 넌 또 날 돌려서 욕한 거 같다.”

“에헴! 그럴 리가요, 비전하. 제가 어찌 감히 전하께 그런 불경을….”

황급히 말을 회수한 드미트리가 지나치다 싶게 공손한 태도로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럼 비전하, 안녕히 주무십시오.”

키득거리는 청년들의 웃음소리가 밤바람에 섞여 흘렀다. 역시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오스칼이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혼자 텐트 안에 누운 오스칼의 귓가에 철썩이는 밤바다의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고요 속에서 규칙적으로 들리는 파도 부서지는 소리가 어쩐지 아련한 추억을 불러왔다.

“이 세계에서의 첫 야영은 노숙이었는데.”

혼잣말을 중얼거린 오스칼이 슬그머니 웃었다. 샤르트르로 클로드의 심장을 찾아 다녀오는 길에 여비가 없어서 버려진 창고에서 신세를 졌었지.

추위를 타는 오스칼을 생존기술이라며 레오가 끌어안았다. 그 바람에 그녀는 레오의 품에 안겨 허둥대다 잠들어버렸었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자, 짭조름한 바다 냄새에 그의 달큰한 향기가 함께 섞여 코끝을 간지럽히는 것 같았다.

“난 엄청 두근거렸었는데…. 레오에겐 생존의… 기술이었지….”

오스칼의 목소리가 점점 얕아졌다. 온종일 말을 타고 이동하느라 지친 몸 위로 수마가 쏟아졌다. 오스칼은 그대로 까무룩 잠이 들었다.

***

수평선 너머로 아침 해가 손톱만 하게 얼굴을 내민 새벽 어스름, 기사단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형님, 보트는 모두 준비됐습니다. 반대편 항구에서 이스키아 기사단도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전갈입니다.”

“좋아! 해가 떠오르기 전에 얼른 출발하자고.”

기사들을 태운 보트가 바다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건장한 청년들이 노를 내저어 나아가는 보트는 잔잔한 새벽 파도를 가르고, 동트기 전 어두운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근해에 멈춰선 해적선은 고요하게 수면 위에 떠 있을 뿐이었다.

기사단 청년들이 은밀하게 갈고리 달린 밧줄을 갑판으로 쏘아 올렸다. 압도적인 근력을 이용해 재빠르게 배 위로 기어 올라간 드미트리가, 제 할 일을 하지 못한 채 갑판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해적 보초 하나를 단숨에 베었다.

-털썩

잠결에 변을 당한 보초는 비명도 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지난밤의 전투로 전력을 많이 잃었던 모양인지, 보초는 한사람뿐인 것 같았다. 선실 안에서 드르렁드르렁 해적들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릉-

발소리를 낮춘 기사단 청년들이 모두 배 위로 오르자, 오스칼이 검을 빼 들었다. 이스키아 기사단 역시 순조롭게 배의 후미로 오른 참이었다.

“그럼 앵무새 사냥을 시작해볼까.”

오스칼의 목소리와 함께, 기사들이 해적들이 머무는 선실로 뛰어들었다.

“뭐, 뭐야!”

“크악!”

쿵쾅거리는 소리와 검이 부딪치는 소리, 검날이 적을 베는 소리가 배 안을 가득 울렸다. 동트기 전, 새벽부터 시작된 습격에 해적들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오스칼은 부지런히 눈을 움직여 미친 앵무새를 찾았다. 갑판 아래, 거대하고 덥수룩한 주황색 남자가 서 있었다.

“너구나!”

오스칼이 그를 향해 재빠르게 달려들었다. 미친 앵무새가 거대한 검으로 자신을 향해 휘둘러 오는 오스칼의 검을 막아냈다.

챙! 챙! 챙!

두 사람의 검이 빠르게 맞부딪쳤다. 오스칼의 검에 밀려 뒷걸음질 치던 미친 앵무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흘긋 뒤돌아본 그가 등 뒤의 밧줄로 칼을 휘둘렀다.

파박!

돛에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밧줄이 잘려나갔다. 미친 앵무새는 하늘로 솟구치는 밧줄 끝을 날쌔게 붙잡았다.

홱!

미친 앵무새의 몸이 밧줄과 함께 하늘로 솟아올랐다.

“젠장! 미친 앵무새라더니 별별 재주를 다 부리잖아?”

오스칼이 얼빠진 얼굴로 미친 앵무새가 밟고 선 해적선의 가로 돛대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정말 새라도 된 듯 날아올라 높은 활대 위에서 고소하다는 듯 웃고 있었다. 활대 아래로 매달린 검은 돛이 해풍에 펄럭거렸다.

오스칼이 빠른 눈으로 그가 끊어낸 밧줄 끝을 살폈다. 여러 개의 밧줄이 커다란 도르래에 칭칭 감겨 돛과 연결되어 있었다.

오스칼은 고민할 새도 없이 도르래에 감겨 있는 밧줄 하나를 재빨리 움켜쥐었다. 심호흡을 한번 한 그녀가 결심한 듯 검으로 밧줄을 내리쳤다.

팽!

“흐억!”

짧은 비명과 함께 오스칼의 몸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그 모습에 미친 앵무새의 눈에 당혹감이 서렸다.

“혀, 형님?!”

눈 깜짝할 새 하늘로 날아오르는 오스칼의 모습에 기사단 청년들이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질러댔다.

“오, 이거 생각보다 신나는데?”

미친 앵무새가 올라선 활대 위로 사뿐하게 착륙한 오스칼이 나지막한 탄성과 함께 씨익 웃었다.

“이 거머리 같은 자식!”

미친 앵무새가 포효하며 검을 휘둘렀다. 좁은 가로돛 위에서 오스칼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으며 스텝을 밟았다. 좁은 펜싱 경기장에서 검을 휘두르며 균형감각을 익힌 오스칼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휙! 챙! 휙! 챙!

공중에서 아찔한 난투가 이어졌다. 돛대 위, 뺨을 스치는 바닷바람은 한결 매서웠다. 검이 움직일 때마다 위협적인 바람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젠장.”

망설임도 없이 그를 압박하며 검을 휘둘러오는 상대를 향해 미친 앵무새가 으르렁대는 신음을 흘렸다.

깡!

마침내 미친 앵무새의 검이 튕겨 나가 허공에서 핑그르르 돌았다. 미친 앵무새의 얼굴이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그러나 이내 비틀린 입술을 끌어올린 그가 허리춤을 내보였다. 그와 동시에 오스칼의 눈이 커졌다.

“요즘 바다 건너 유행은 검이 아니라 이거거든.”

오스칼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뜬 눈으로 미친 앵무새의 허리춤에 꽂힌 쇳덩이를 바라보았다.

저거… 설마 총이야?

옛날 해적 영화에서나 볼 법한 총이었다. 총신이 길고 수동으로 한발씩 총구에 화약을 장전하여 격발하는 구식 총이었지만, 검투 마니아 작가의 세계관에 총이 등장하다니, 반칙이었다.

작가는 본편과 외전의 검투도 모자라, 특별 외전에선 총까지 등장시키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미, 미친!”

오스칼이 특별 외전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되는 가혹한 설정에 버럭 육두문자를 질렀다.

내가 왜 며칠 전, 평화가 지루하다는 입방정을 떨었담!

오스칼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미친 앵무새가 총을 뽑아 들었다. 오스칼의 손에 든 검이 가소롭다는 듯 누런 이를 드러내며 히쭉인 남자가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비, 비전하!”

“형님!”

무시무시한 소리에 위를 올려다본 기사들이 공포에 찬 비명을 질렀다.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오스칼의 몸이 기울었다. 순식간에 균형을 잃은 몸이 허공으로 떠밀렸다.

풍덩!

새하얀 물보라가 일며 푸른 이스키아의 바닷물이 오스칼의 몸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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