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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131)화 (131/138)

외전 2, 4화



 

“이거, 정말 옛날 생각나는데?”

말 고삐를 단단히 틀어쥔 오스칼이 신나게 웃었다. 드미트리가 동의하듯 콧김을 뿜었다.

“이렇게 형님과 다시 한번 출정을 나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신입 기사들이 대체 비전하가 어떤 분이시길래 이렇게 난리냐고 다들 궁금해하지 뭡니까.”

“크으, 형님의 검격은 함께 싸워본 자만 알죠. 다들 기대하고 있을걸요.”

“근위대에서 지원군을 꾸릴 때, 일등으로 자원했지 뭡니까.”

청년들은 잔뜩 엄한 표정을 지은 레오의 시야에서 벗어나기가 무섭게 오스칼을 형님이라고 부르며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다들 추억에 젖은 모습이었다.

“공작님 앞에서 형님을 형님이라고 부르면 도끼눈을 뜨시잖습니까. 얼마나 눈치가 보이는데요.”

“맞아요. 형님은 형님이신데 말입니다.”

“공작님 소리는 금방 입에 붙는데, 왜 비전하란 호칭은 입에 안 붙나 모르겠어요.”

청년들은 서로 오스칼 곁에서 말을 몰고자 했다. 한 사람씩 오스칼 옆으로 다가와 너스레를 떨 때마다 오스칼은 킬킬거렸다.

“나도 아직 그 호칭에 적응 못 한 건 마찬가지야. 그나저나, 누님도 아니고 형님이라니! 너희도 정말 못 말린다니까.”

오스칼이 웃음이 담긴 핀잔을 놓았다. 공작저에서의 복잡한 규칙과 예의범절은 벗어던지고 기사로 출정을 나가니 한결 마음이 편안한 기분이었다.

“어쨌거나 형님이 함께하시니 두려울 것도 없죠.”

기사단과 근위대의 대장 격인 드미트리와 시몬이 싱글거렸다. 다들 오스칼과의 출정을 잔뜩 기대한 기색이었다. 이스키아까지는 하루를 꼬박 달려야 하는 여정이었지만, 선두에 선 오스칼과 그녀의 뒤를 따르는 연합군은 지친 기색은커녕 단단히 사기가 올랐다.

“다들 이스키아까지 전속력으로 달리자고!”

오스칼이 우렁차게 외쳤다.

***

이스키아의 해안가.

“하아, 하아.”

어둠 속에서 가쁜 숨소리가 이어졌다. 숱 많은 암갈색 머리카락 사이로 땀방울이 주르르 흘렀다. 서던의 갑옷은 이미 핏자국으로 얼룩덜룩했다. 서던이 이끄는 이스키아의 기사단은 쉴 틈 없이 계속되는 전투로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서던 단장님, 지원군은 언제쯤 오는 겁니까. 헉헉.”

젊은 기사들이 반쯤 풀려버린 눈으로, 텅 빈 언덕 너머를 바라보았다.

“전보가 갔으니 곧 지원군이 올 거다. 칼릭스 공작 전하와 국왕 폐하께서 조치를 취하셨을 거다. 조금만 더 버티게!”

서던이 애써 희망 섞인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 역시 잔뜩 지친 탓에 자꾸 갈라져 나왔다.

해적들은 요 며칠 동안 집요하게 이스키아를 침격해왔다. ‘미친 앵무새’는 이름 그대로 미친 자가 틀림없었다. 그는 곱슬곱슬하고 지저분한 오렌지색 긴 머리칼 위에 오색빛깔 현란한 두건을 둘러쓴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북슬북슬한 주홍 수염은 보기만 해도 끔찍했다.

그는 코브라 모양의 커다란 해적 칼을 양손에 쥐고 휘둘러대는 전사였다.

이스키아의 기사들은 최선을 다해 응전했지만, 끝도 없이 몰려드는 해적들에게는 역부족이었다. 겨우 승기를 잡았다 싶으면, 그들은 바다로 줄행랑을 쳤다. 수평선 너머로 정박한 해적선이 보였지만, 육지를 사수하는 일마저 힘에 부친 이스키아의 기사들은 바다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젠장, 언제 또 이렇게 모아온 거야?”

이스키아 기사단의 청년이 욕을 내뱉었다. 달아난 해적들은 늦은 밤이면 인원을 보강해 살그머니 배에서 내려와, 다시 이스키아 해안 마을을 노략질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땅거미가 내려앉자마자 해적들은 뭍으로 올라왔다. 덕분에 며칠째 밤을 새워가며 해적들을 막아내던 기사들은 눈에 띄게 지쳐있었다.

“이 자식들은 잠도 없나!”

서던이 절망스러운 눈으로 중얼거렸다. 이미 여러 번의 전투로 많은 기사를 잃은 참이었다. 서던은 입술을 짓씹으며 검을 휘둘렀다.

카강!

그의 검으로 해적 둘이 달라붙었다. 서던이 노련하게 해적의 검을 흘려보내려 했지만, 피로가 쌓인 그의 팔근육은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크윽.”

“으히히히, 기사 놈들을 전부 박살 내버려!”

이가 누런 해적들은 눈을 번뜩이며 서던을 몰아붙였다. 기름이 덕지덕지 낀 검은 곱슬머리가 서던의 눈앞에 바짝 다가왔다.

“윽. 이대로 끝인가….”

이를 악다문 서던의 눈에서 생리적인 눈물이 흘러내렸다. 해안가 마을은 여기저기 화마에 휩싸여 있었고, 주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해적들의 칼날을 피해 달아나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울부짖는 소리, 여인들이 애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까가강-

서던의 검이 해적의 거대한 칼날에 찢어지는 파열음을 내며 갈려 나갔다. 해적의 날카로운 칼은 무시무시한 위력을 자랑했다. 서던이 울음을 삼켰다.

푸슉!

그 순간, 서던을 공격하던 해적이 피를 뿜으며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서던이 눈을 번쩍 들어 올렸다. 너울거리는 엷은 갈색 머리가 그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서, 설마… 비전하?!”

흰 말을 타고 검을 휘두르는 호리호리한 인영에 서던의 표정이 밝아졌다.

다그닥- 다그닥-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해안가를 가득 채우고, 동시에 기사들의 늠름한 기합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 지원군이다!”

이스키아 기사단의 청년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이마에선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연합군은 매서운 기세로 해적들을 베어 넘겼다. 사기가 오를 대로 오른 그들의 검날에 해적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스릉-

오스칼이 말 위에서 검을 내지르자 해적 한 사람이 피를 뿜었다.

“역시 형님 실력은 여전하십니다!”

드미트리가 유려한 기술로 적을 베는 오스칼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오스칼이 다시 한번 검을 내리치며 건조한 목소리로 응수했다.

“집중해 드미트리! 전장이잖아.”

갑자기 나타난 지원군에 당황한 해적들이 우왕좌왕하며 퇴로를 찾았다.

첨벙첨벙!

이미 몇몇 해적들은 잽싸게 해안에 정박시켜둔 보트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근해에 정박해 둔 해적선으로 달아나는 것이었다.

“도망치게 두지 마라!”

오스칼의 외침과 함께 연합군의 기사들이 말을 달려 그들을 뒤쫓았다.

“이 자식들!”

뒤처진 해적 하나가 횃불을 들고 기사들을 위협했다. 한 손에는 해적 칼을 한 손에는 횃불을 들고 기사들이 탄 말을 향해 휘둘러댔다.

히이힝!

쉬익쉬익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횃불에 말들이 겁을 먹은 듯 거친 투레질을 했다.

“워어, 워어!”

기사들이 말고삐를 잡아당기며 말을 진정시키는 사이, 해적들이 줄행랑을 놓았다. 오스칼의 말 역시 다른 말들처럼 혼비백산하며 뒤로 물러났다. 말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달래보던 오스칼이 결심한 듯 훌쩍 뛰어내렸다.

역시 아직까진 승마보단, 검술이 더 자신 있었다.

“형님!”

말을 달래던 제라드가 깜짝 놀라 오스칼을 불렀다. 오스칼은 아랑곳하지 않고 횃불을 든 해적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캄캄한 해안가, 횃불의 불꽃이 오스칼의 예리한 검날에 일렁이며 비치었다.

“뭐, 뭐야 이 녀석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애매한 차림새를 한 오스칼을 향해 해적이 눈알을 굴렸다. 오스칼이 쏜살같이 해적의 옆구리를 파고들어 횃불을 든 팔을 베었다.

“크윽.”

횃불을 손에서 놓친 해적이 비명을 지르자, 오스칼이 순식간에 해적의 검을 튕겨내며 빠르게 공격했다. 눈 깜짝할 새 해적은 오스칼의 검에 쓰러져 모래사장에 처박히고 말았다. 하지만 이미 몇몇 해적들은 보트를 타고 해적선으로 꽁무니를 뺀 뒤였다.

“제길! 몇 놈을 놓쳤잖아.”

오스칼이 분하다는 듯 바다를 향해 노를 저어가는 해적을 바라보며 발을 굴렀다. 다행히 해안에 남은 해적은 없는 듯했다.

“비, 비전하!”

서던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모래에 군홧발이 푹푹 파묻혀 어기적거리는 모양새였으나, 그는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오스칼의 앞에 당도했다.

“서던 경! 오랜만이에요.”

검을 허공에 휘둘러, 칼날에 묻은 핏방울을 떨쳐낸 오스칼이 서던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서던이 오스칼의 앞에 서서 허리를 굽히고 숨을 헐떡였다.

“비전하가 직접 오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칼릭스 공작 대신 제가 온 거예요.”

서던이 오스칼을 경외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뒤로 이스키아 기사단 청년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비전하!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역시 저희를 잊지 않으셨군요!”

땀과 핏물로 얼룩진 얼굴을 환하게 밝히며 청년들이 오스칼을 둘러쌌다. 지난번 오스칼이 이스키아를 방문했을 때의 활약상을 잊지 않은 그들은 존경 어린 얼굴로 오스칼을 응시했다.

그런 그들 곁으로 연합군 청년들이 다가왔다.

“칼릭스 기사단과 왕국군이 연합군을 꾸렸어요. 이쪽은 칼릭스 기사단장 드미트리, 이쪽은 왕실 근위대의 부단장 시몬이에요.”

드미트리와 시몬이 기사의 예를 갖추어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그들은 어딘가 경계심 어린 눈으로 서던을 봤다.

“비전하! 당장 이스키아 성으로 모시겠습니다.”

서던이 초롱초롱한 갈색 눈을 빛내며 오스칼을 에스코트하려 하자 드미트리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비전하는 공작가 기사단인 우리가 모시겠소.”

오스칼이 근엄한 목소리로 격식을 차리는 드미트리를 뜨악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드미트리의 굵직한 목소리에 흠칫 고개를 돌린 서던이 우람한 어깨의 드미트리에게 지지 않으려 어깨를 쭉 폈다.

“이스키아 영지에 오셨으니, 비전하는 이스키아 성의 기사인 제가 모시는 게 예의입니다.”

“우리 비전하의 안전은 공작가 기사단에서 책임져야 하오.”

“이스키아 기사단 역시 엄밀히 칼릭스 공작가 휘하입니다만.”

드미트리와 서던 사이에 얽힌 시선에서 묘한 불꽃이 튀었다.

“국왕 폐하께서 비전하를 틀림없이 저희에게 모시라 명하셨소. 왕명에 따라 근위대에서 비전하를 호위하겠소.”

드미트리와 서던 사이로 시몬이 불쑥 끼어들었다. 오스칼이 한쪽 눈을 찡그리고는 세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오스칼을 사이에 둔 기사단장들의 은근한 견제에 딱히 할 말이 없었던 제라드가 슬그머니 오스칼의 곁에 와 붙어섰다.

“누, 누가 비전하를 모시든 제가 동행하겠습니다.”

오스칼은 기사들의 기 싸움에 아랑곳하지 않고 딱 잘라 말했다.

“아 다들 됐고. 오늘 밤은 이스키아 성으로 들어가지 않을 거예요.”

오스칼의 말에 서던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손사래를 쳤다.

“예? 하지만 이렇게 오셨는데 성에 방문하지 않으시면 소영주님께서 공작님을 뵐 면목이 없습니다.”

“물론 이스키아 자작님을 만나 뵈어야죠. 해적들을 모두 처리하고 난 후에요.”

오스칼이 빙긋 웃으며 멀리 바다 위에 떠 있는 해적선을 가리켰다. 드미트리와 시몬 역시 의아하다는 듯 오스칼을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날이 밝는 대로, ‘미친 앵무새’의 목을 따러 가죠.”

“예?”

이스키아의 기사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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