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130)화 (130/138)

외전 2, 3화



 

“뭐?”

레오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에렌 역시 오스칼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물론 그들보다 더 놀란 건 회의장에 둘러앉은 대신들이었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공작 부인?”

“부인께서 출정을 하신다니….”

오스칼이 옷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어내며 다시 한번 또렷한 눈으로 회의장의 깐깐한 대신들을 둘러보았다.

“왕국군을 지원받기 위해선 땅의 주인이 직접 출정을 해야 한다죠? 칼릭스 영지의 주인은 칼릭스 공작과 공작 부인입니다. 공작께서는 회담에 참석하셔야 하니, 칼릭스 영지를 지키기 위해 제가 출정하겠어요.”

“부인,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한 가문의 공작 부인께서 영지를 지키기 위해 출정하신 전례는 없습니다.”

트리스탄 백작이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차마 못 들을 걸 들었다는 투였다. 그 말에 오스칼이 당당하게 맞섰다.

“왜 말이 되지 않죠? 전 정식으로 기사 작위를 받은 기사예요. 게다가 칼릭스 공작가의 안주인이고요. 제 자격에 문제가 되나요?”

“그, 그건….”

트리스탄 백작과 레밍턴 후작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틀린 말이 없었다. 칼릭스 공작 부인이 ‘귀족적’이지 않다는 말에는 그녀가 라인하트의 유일무이한 여기사라는 내용도 포함이었으니까.

“하하하, 역시 칼릭스 공작 부인은 대단해. 부인께서 기가 막힌 해답을 내놓으셨군!”

에렌은 오스칼이 출정을 하겠다고 선언한 그 순간부터,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다. 그는 어깨를 들썩여가며 말을 이었다. 갖은 트집을 잡아 칼릭스 공작가를 흠집 내려 애쓰던 트리스탄 백작과 레밍턴 후작이 똥이라도 씹은 표정을 한 꼴이 볼만했다.

레오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표정으로 오스칼을 응시했다. 그 표정에 오스칼이 어깨를 으쓱하며 레오와 눈을 맞추었다.

에렌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대신들을 바라보았다.

“그럼, 법무 대신을 불러 왕국법을 해석할 필요도 없겠군. 이스키아에 왕국군을 파견하는 것으로 해. 그리고 왕국군과 칼릭스 기사단 연합군의 총 책임자는 칼릭스 공작 부인, 아니 오스칼 경으로 임명하겠어. 이 왕명이 국법에 어긋나는 내용이 있다면 지금 의견을 개진하도록.”

연합군을 이끄는 공작 부인이라니!

괴상한 상황이 분명했지만, 공작 부인의 말처럼 법으로나 형식적으로나 문제 될 것이 없어 대신들이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대신들을 죽 둘러본 에렌이 눈짓하자, 서기관이 급히 왕명을 받아 써 내려갔다. 레오가 얼떨떨한 얼굴로 에렌과 오스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오스칼의 얼굴에 환한 빛이 서렸다.

“왕명을 받잡겠습니다.”

오스칼이 생긋 웃으며, 드레스 자락을 잡고 예를 갖추었다. 회의장의 대신들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버린 일에 그저 눈만 끔뻑일 뿐이었다.

***

칼릭스 공작저의 집무실.

우아한 떡갈나무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칼릭스 공작 부부와 그 옆에 정자세로 선 남자 사이로 기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아무리 공작령이 곤란한 상황이었다 해도, 나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출정에 나간다고 하면 어떡하나?”

레오는 반쯤은 걱정스럽고, 반쯤은 화가 난다는 얼굴이었다. 오스칼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스키아가 위험하다는데, 한시라도 빨리 출정을 가는 게 우선이지. 아까 레밍턴 후작과 트리스탄 백작은 왕국군 지원을 결사반대할 작정이었다고!”

“하지만… 어떻게든 내가 해결할….”

“어떻게 해결해? 그렇다고 중요한 회담에 네가 빠질 수도 없잖아. 그 자식들, 틀림없이 널 곤란하게 하려는 속셈이었잖아.”

반론의 여지가 없는 정답에 레오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 혼자 이스키아로 출정을 보내고 내가 잠이라도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은가.”

“혼자가 아니지! 칼릭스 기사단도 함께 갈 거고, 왕국군도 지원받을 거잖아. 예전엔 지원군도 없이 출정을 나갔었는데 뭘.”

“그땐, 내가 네 곁에 있었잖나.”

“넌 자꾸 날 과보호하려는 경향이 있어. 난 네 생각만큼 약하지 않아.”

오스칼이 못마땅하다는 듯 팔짱을 끼고 샐쭉한 얼굴을 했다.

“널 무시하는 게 아냐. 그저… 혹시 내가 없는 곳에서 네가 어떻게 될까 봐….”

“어떻게 안 된다니까!”

오스칼의 날카로운 대꾸에 레오의 눈매가 아래로 쳐졌다. 그가 갈등의 빛이 서린 얼굴로 열중쉬어 자세로 늠름하게 선 드미트리를 흘긋 바라보았다. 드미트리의 콧구멍이 아까부터 눈에 띄게 벌름대고 있었다. 레오가 한쪽 눈썹을 추켜세웠다.

“드미트리, 넌 아까부터 꽤 들떠 보이는군.”

레오의 목소리가 불만스럽게 가라앉았다.

“예? 공작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공작령이 위험한 상황에서 들뜨다니요. 오해십니다.”

그러나 드미트리의 목소리는 분명 상기되어 있었다. 레오는 오랜 기간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해온 동료의 기분도 파악하지 못할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그가 미심쩍은 눈으로 드미트리를 보았다.

“이스키아의 상황은 어떤지 확인했나.”

“예, 해적들이 심상치 않은 규모로 결집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카디브해 인근 도시 중 부유한 지역인 이스키아를 약탈하고 있습니다. 영지의 기사들이 막아내고 있지만 불리해지면 해상으로 후퇴하는 통에 방어가 쉽지 않다는군요.”

오스칼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해적들의 대장은 누구야?”

“잔악하기로 소문난 ‘미친 앵무새’입니다.”

오스칼이 입을 딱 벌렸다. ‘애꾸눈 미친 참새’를 해치운 지 1년 만에 나타난 ‘미친 앵무새’라니. 해적들은 미쳐버린 조류가 아니면 이름을 짓지도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본거지는 어디지?”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베네키아 섬’이랍니다. 그런데 그 섬은 전설에서나 나오는 섬이라서, 정확한 정보인지는 의문입니다.”

“베네키아 섬이 뭔데?”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섬이지요. 해적들의 섬이라는 전설이 전해지지만 실제로 확인한 자는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해적들의 소탕도 어렵고 대응도 어려운 거고요. 본거지를 확인할 수 없으니까요.”

레오가 찌푸린 얼굴로 보고서를 들여다보며 책상 위를 손가락으로 잘게 두드렸다. 본거지를 치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노릇이었다. 문득, 그가 보고서에 적힌 이름을 들여다보았다.

“‘붉은 수염’이라는 자는 뭔가?”

“그자는 시칠리아를 본거지로 하는 해적입니다. ‘미친 앵무새’와 대립하고 있는 자입니다. 지금 카디브해의 패권자로 해적왕이라 불리는 자인데, 바다의 귀신이라는 별명이 붙었더군요. 워낙 신출귀몰한 데다, 소름 끼칠 정도의 검술을 구사한답니다.”

“‘붉은 수염’은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는 건가?”

“네, 원래 그자는 해적들을 상대로 노략질을 해 왔답니다. 해적들의 해적인 셈이지요.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그자에게 불만을 품은 해적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붉은 수염’에 반기를 든 해적들이 미친 앵무새인지 미친 카나리아인지에 붙었다?”

“예.”

레오가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보고서를 심각하게 보던 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행히 얼마 전 칼릭스 기사단의 북부 출정에 드미트리가 빠진 덕분에, 그에게 오스칼의 보필을 맡길 수 있었지만,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왕국군은 내일 새벽에 도착하기로 했어. 우리 기사단은 즉시 왕국군과 합류해서 이스키아로 향한다. 그리고… 오스칼이 연합군의 사령관이다.”

체념한 듯 읊조리는 레오를 향해 드미트리가 예를 갖추어 경례했다.

“예! 그럼 즉시 출정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드미트리의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그는 이 상황이 기뻐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스칼과 함께 하는 출정은 레오와의 동행 못지않게 든든했기 때문이었다.

레오가 불만스러운 눈으로 보고서를 읽을 동안 남몰래 오스칼과 눈빛을 교환한 드미트리가 얼른 집무실을 나섰다. 오스칼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나도 얼른 출정 준비를 할게.”

총총걸음으로 집무실을 나서는 오스칼을 레오가 간절한 목소리로 불렀다.

“오스칼!”

“응?”

거추장스러운 풍성한 치맛자락을 움켜쥐고서 오스칼이 뒤를 돌아보자, 레오가 내내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을 끄집어냈다.

“막사는… 꼭 혼자 써.”

터무니없는 걱정에 오스칼은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다음날 새벽, 머리를 높게 틀어 묶고 오랜만에 기사 옷에 보호장구를 착용한 오스칼은 공작저 앞에 모인 기사들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세상에! 너희들 뭐야?”

“형, 아니 공작 부인께서 출정을 하신다는데 당연히 나서야지요.”

왕국군과 칼릭스 기사단이 모두 모인 출정식 대열의 가장 앞에 선 시몬, 기욤, 애버트, 폴이 빙긋 웃었다. 심지어 그중에는 제라드까지 섞여 있었다.

드미트리가 뿌듯한 얼굴로 오스칼을 바라보았다.

“시몬이 비전하가 출정한다는 소문을 낸 덕분에, 이 녀석들이 죄다 자원해서 몰려왔어요.”

오스칼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세상에! 제라드까지 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누님이 가시는데 제가 빠질 수 있겠습니까? 저도 간만에 몸 좀 풀어야죠.”

제라드가 넉살 좋게 웃었다. 이런 상황은 레오도 뜻밖이라는 듯 청년들을 바라보았다.

“네 녀석들도 참….”

“공작 전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비전하는 저희가 단단히 지켜드리겠습니다.”

“까불고 있어! 실력 차이란 게 있는데, 내가 너희들을 지키는 거지!”

“하하하, 그것도 맞습니다. 형…전하.”

오스칼이 오랜만에 만난 청년들에게 농담 섞인 타박을 늘어놓으며 기분 좋게 낄낄거렸다. 청년들이 쾌활하게 웃는 오스칼을 따라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내 레오의 무서운 표정을 보고 다들 헙- 하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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