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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129)화 (129/138)

외전 2, 2화



 

로잘린이 노이어 영지의 일로 에렌과 독대하는 동안, 오스칼은 아름답게 꾸며진 방으로 안내되었다. 국왕인 에렌의 명에 따라 오스칼은 언제든지 왕궁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오트밀 색 대리석으로 만든 우아한 테이블 위에 시원한 허브차와 달콤한 케이크가 놓였다. 왕궁의 시녀가 깍듯이 인사를 하고 떠나자, 알랭이 새침한 얼굴로 말을 붙였다.

“시간이 흘러도 공작 부인께 다과를 준비하는 건 제 몫이군요.”

“고마워요, 알랭. 괜히 왕궁에 들러서 알랭만 수고스럽게 한 게 아닌지 걱정이네요.”

어딘가 불만스러운 알랭의 말투에, 오스칼이 살그머니 그의 눈치를 살폈다.

“뭐, 엄밀히 따지면 공작 부인 때문은 아닙니다. 문제가 있다면 폐하시겠지요.”

알랭의 눈썹이 잔뜩 구겨졌다. 필시 에렌은 아직 오스칼을 마음에 두고 있는 거였다. 차마 겁이 나 더 묻진 못했지만, 분명 취향이 뭐냐고 물었다면 이렇게 대답했겠지.

“목소리도 크고 검도 잘 쓰고 나한테 할 말 다 할 정도로 맹랑하면서, 무모한 편이지만 정의로운데 또 한편 귀엽고 어여쁘기도 한 그런 영애 있잖나.”

알랭이 팔불출 같은 에렌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벌컥!

그때, 방문이 열리고 우아한 걸음의 구둣발이 넓은 보폭으로 성큼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알랭이 걸음의 주인공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세상에, 정말 오랜만이군!”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띤 에렌이 단숨에 오스칼의 앞에 섰다. 국왕의 등장에 자리에서 일어난 오스칼이 치맛자락을 들어 예를 갖추었다.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그대가 요조숙녀처럼 구는 건,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돼. 그리고 늘 말해두지만, 그대는 날 이름으로 불러도 상관없다니까.”

에렌이 제법 귀부인 태가 나는 오스칼을 향해 킬킬거렸다. 그런 채신머리없는 태도에 알랭의 미간이 한층 좁아졌다. 에렌은 오스칼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오스칼에게도 앉을 것을 권했다.

“로즈…. 아니 노이어 남작은요?”

“노이어 남작이 아주 수완이 좋아. 꼭 중요한 업무 얘길 할 땐 그대를 데려온다니까? 그대가 옆방에 와있다고 알려준 것도 남작이었어. 남작은 지금 행정관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어.”

“노이어 남작이 왜 저를…?”

오스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완이 좋은 것과 저를 왕궁에 대동하는 게 무슨 상관이냐는 투였다.

“그야, 옆방에 그대가 와있다고 하면, 내 마음이 급해져 남작이 요구하는 일을 더 잘 들어주게 되니까?”

로잘린은 에렌이 오스칼에게 약하단 사실을 간파하고는 노련하게 이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국왕에게 노이어 영지에 필요한 지원을 요청할 땐, 꼭 오스칼을 왕궁에 대동하곤 했다.

“크흐흠!”

알랭이 도저히 못 들어주겠다는 듯 크게 헛기침을 했다. 에렌이 모르는 척 말을 이었다.

“그대는….”

“폐하, 예의를 지키십시오. 그대라니요,”

알랭이 에렌의 말을 싹둑 잘랐다. 그 말에 눈썹을 늘어뜨린 에렌이 시무룩한 목소리로 호칭을 정정했다.

“공작 부인은… 오늘 같은 일이 아니면 왕궁에 잘 방문하지 않으니까. 왕궁에 갇혀서 대신들과 업무만 하는 일이 얼마나 지루한지 알아? ‘폐하’란 호칭이 얼마나 부담스러운데….”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에 오스칼이 짠한 눈으로 에렌을 봤다.

짊어진 무게는 전혀 다르지만, 공작 부인 소리를 들으며 지루한 귀족 부인의 업무를 해야 하는 자신과 에렌의 처지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국왕이 되어 사용인들과 수다를 떨 새도 없을 테니, 때로는 편하게 이야기할 사람도 필요하겠지.

“저라도 도움이 된다면 종종 들를게요.”

그 말에 에렌의 눈이 크게 휘어졌다. 그리고는 기쁜 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케이크 맛은 여전하지? 인쇄소의 다과가 전부 왕실 전용 베이커리 거였다고.”

“이제 와 고백하자면 폐하께서 준비해주는 다과 때문에 인쇄소에 가는 날을 기다린 적도 있었어요.”

길고 늘씬한 다리를 꼬고 앉아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는 에렌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그런 주군의 모습을 바라보는 알랭의 얼굴은 반대로 착잡해졌다.

‘저렇게 좋아하시는데….’

똑똑

예의 바른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관이 찾아와 곧 국무회의가 시작될 것을 알렸다. 에렌의 눈썹이 실망감으로 축 늘어졌다.

“휴, 그대…. 아니 공작 부인과 있으면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가.”

“투정 부리지 마시고 얼른 국무회의에 참석하세요. 전 이만 돌아갈게요.”

오스칼이 싱긋 웃으며 장난스럽게 타박을 주었다. 에렌은 입매를 늘어뜨리고는 잠시라도 오스칼과 더 있고 싶은 마음에 머리를 굴렸다.

“국무회의엔 칼릭스 공작도 참석할 테니 잠깐 인사라도 나누고 가.”

에렌의 자충수에 알랭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공작 부인을 직접 남편에게 데려다주어도 그에게 좋을 것도 없을 텐데.

그러나 그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그가 말없이 에렌의 뒤를 따랐다.

***

국무회의가 열리는 집무실 앞에서 느닷없이 오스칼을 마주한 레오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는 오스칼의 팔짱을 낀 채 우아하게 에스코트하는 에렌을 향해 눈썹을 움찔거렸다.

“국왕 폐하께서…. 왜 제 부인과….”

레오의 꽉 다문 잇새에서 최대한 격식을 차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에렌이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와 가볍게 티타임을 하고, 자네에게 인사를 할 겸 온 거야.”

“예…. 그렇습니까.”

어딘가 못마땅한 얼굴의 레오가 에렌의 팔에서 오스칼을 자연스럽게 떼어냈다. 오스칼이 레오를 향해 생긋 웃으며 가벼운 인사를 건네곤 에렌을 향해 예를 갖추었다.

“고맙습니다, 폐하. 덕분에 즐거웠어요. 그럼 전, 노이어 남작을 기다렸다 돌아갈게요.”

에렌이 아쉬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으나, 레오가 넓은 어깨로 에렌의 시야를 철벽처럼 차단했다. 오스칼에게 눈인사를 한 레오가 에렌의 등을 떠밀어 국무회의가 열리는 대회의장으로 냉큼 들어가 버렸다.

쿡쿡대며 웃은 오스칼이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멀리서 근위대원 한사람이 회의장으로 달려왔다. 숨을 헐떡이는 게, 허둥지둥 달려온 기색이 역력했다.

“시몬! 어쩐 일이야?”

근위대의 부단장으로 있는 시몬이었다. 그는 육아휴직을 낸 근위대장 마티스를 대리해 근위대를 관리하고 있었다. 그는 오랜만에 만난 오스칼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엇? 형…. 아니 비전하께서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전 지금 급히 국무회의에 전달할 전보가 있어서 달려온 참입니다.”

“전보라니…?”

오스칼의 물음에 시몬은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대답을 해주었다.

“칼릭스 공작령의 일이니, 비전하께 먼저 말씀드려도 괜찮겠죠. 이스키아 해안을 해적들이 점령했답니다.”

“뭐어?”

오스칼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스키아에 들어온 애꾸눈 미친 참새 일당을 박살 낸 게 1년 전 일인데 또 해적이라니?

뭔가를 더 물을 새도 없이 시몬은 빠르게 국무회의장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스칼이 왕궁의 복도를 슬쩍 둘러보았다. 딱히 이쪽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어 보이자, 회의장의 문에 귀를 바짝 가져다 댔다. 시몬이 국왕에게 보고하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이스키아의 병사는 해적을 막아내기에 턱없이 부족해서 왕국군과 칼릭스 기사단의 지원을 요청한 상황입니다. 공교롭게도 칼릭스 기사단의 절반 이상이 북부에 출정을 나가 있어 왕국군의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칼릭스령 내의 일이니, 제가 직접 기사들을 이끌고 출정하겠습니다.”

시몬의 보고에 이어, 레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에렌이 레오의 말을 잘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당장 아스가드 제국과 외교회담이 사흘 앞인데, 자네가 전장에 나가면 어쩌란 건가? 자네가 없어도 칼릭스 기사단은 충분히 강해. 모자란 병력은 왕국군을 파견해 지원하지.”

그러자 벼르기라도 한 듯 다른 대신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레밍턴 후작과 트리스탄 백작이었다.

그들은 아르투아가 실각한 이후 빠르게 태세를 전환해 아르투아와 선을 그어 가문을 보전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평민 신분에서 하루아침에 공작이 되어 에렌의 신임을 받는 레오를 아니꼬워하고 있었다.

“하오나 폐하. 왕국법상 귀족령에 왕국군을 지원하려면 반드시 땅의 주인이 함께 출정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사병을 아끼고 왕국군으로 영지를 보호하려는 몰염치한 귀족들 때문에 라인하트 8세께서 제정하신 법입니다.”

“예, 그러니 칼릭스 공작령이 왕국군 지원을 받으려면, 칼릭스 공작께서 직접 출정을 하셔야 하므로 아스가드 제국과의 외교회담에 불참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꼭 외교회담에 칼릭스 공작께서 참석하셔야겠다면, 칼릭스 령 내에서 자구책을 마련하셔야겠지요.”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그들의 얼굴엔 고소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뛰어난 능력으로, 정치나 외교에서 그들보다 영향력이 강한 칼릭스 공작에 두 사람은 속이 뒤틀리던 터였다.

“이스키아는 라인하트의 해양 국경선이 있는 영지 아닌가? 그곳을 지키지 않으면 내륙도 위험한데 왕국군을 파견하지 말라니 제정신인가?”

“하지만 지엄한 국법이 존재하는 일입니다.”

수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들의 간언에 에렌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왕국법을 들먹이며 반대를 하는 통에, 반박하기도 애매했다.

“하지만 제국과의 회담에 칼릭스 공작이 빠져선 안 돼.”

에렌이 단호하게 천명했다. 가뜩이나 아스가드 제국과의 국혼을 거절한 이후라, 이번 회담은 매우 중요했다. 레오 역시 곤란한 표정으로 입술 끝만 씹었다. 턱을 뻣뻣하게 굳힌 에렌이 비서관을 향해 명령했다.

“하지만 왕국법에도 예외가 있을 거야. 분명 이번 일처럼 영지 수비와 국정 운영이 겹칠 경우를 대비한 예외조항이나 선례가 있을 거다. 가서 법무 대신을 데려와.”

“예.”

비서관이 짧은 눈인사 후 법무 대신을 소환하기 위해 회의실 문을 열었다.

쿠당탕!

문이 열리며 일어난 소란에 모든 대신의 이목이 쏠렸다.

문에 바짝 기대어 방안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오스칼이 비서관이 잡아당긴 문과 함께 집무실 안으로 쓰러졌다. 소동의 주인공이 오스칼이라는 것을 확인한 레오와 에렌의 눈이 커졌다.

“오, 오스칼?!”

너무 당황해 격식을 차리지도 못한 두 남자의 입에서 오스칼의 이름이 그대로 튀어나왔다.

바닥에 넘어진 오스칼이 창피해 붉어진 얼굴로 대신들을 향해 엉거주춤 인사를 건넸다.

“아니, 칼릭스 공작 부인 아니십니까?”

레밍턴 후작이 한쪽 눈을 찡그렸다. 트리스탄 백작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칼릭스 공작 부인이 오랜 평민 생활로 ‘귀족적’이지 않다는 건, 라인하트 사교계의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레오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오스칼에게 달려갔다. 드레스 자락에 걸려 허우적대는 오스칼을 부축해 일으켜 세운 레오가 자그맣게 속삭였다.

“오스칼, 대체 뭘 하고 있던….”

“이스키아 출정, 제가 갈게요.”

레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스칼이 회의장의 대신들을 향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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