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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126)화 (126/138)

외전 1, 9화



 

이스키아 자작은 오스칼의 설명을 듣고 입을 딱 벌렸다.

“그러니까… 비전하와 서던 경이 함께 해적 떼를 소탕하러 오셨다고요…?”

“그… 엄밀히는 해적 떼를 소탕하려던 건 아니고, 아이들을 구하러….”

오스칼이 머쓱한 듯 콧잔등을 문질렀다. 그러자 손에 묻은 그을음이 번져 그녀의 코 아래가 거뭇거뭇해지기 시작했다. 이스키아 자작과 서던은 오스칼의 행동을 말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눈알만 굴려댔다.

“풉.”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오가 어깨를 들썩이며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대충 눈치로 상황을 파악한 오스칼이 창피한 듯 얼굴을 붉혔다.

이스키아 자작에게 저녁 만찬에서 예법에 어긋난 엉망진창인 꼴을 보인 것도 모자라, 급기야 이런 남루한 행색까지 보이다니. 이제 칼릭스 가문의 가신들 사이에서 공작부인의 평판은 나락으로 떨어질 게 뻔해 보였다.

오스칼이 고개를 푹 숙였다.

“허… 비전하께서 응당 제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주셨군요. 정말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감사합니다.”

자작이 깊이 허리를 숙여 오스칼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했다.

“아… 그, 제가 도리어 폐를 끼친 게 아닌지….”

오스칼이 어찌할 줄 몰라 손사래를 치려는데, 레오가 오스칼을 가로막았다.

“그럼 마무리는 자작께 맡기겠습니다.”

레오가 자작을 향해 짤막하게 지시하자, 자작이 예를 갖추어 인사를 했다. 서던 역시 레오와 오스칼을 향해 경례를 올렸다.

레오를 따라나서며 오스칼은 조마조마한 심정이 되었다. 또 무모하게 그가 없는 곳에서 혼자 나섰다고 단단히 혼이 날 각오를 한 참이었다. 그는 현장을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특별히 말이 없었다.

오스칼은 그와 한 발짝 떨어져서 레오가 걷는 방향을 졸졸 따라갔다. 곧장 성으로 돌아갈 줄 알았으나 그는 성이 올려다보이는 해변을 향해 뚜벅뚜벅 걸었다.

“역시, 그 해적선의 솜씨는 너였군.”

마침내 인적이 없는 해변에 이르자 우뚝 멈춰선 레오가 입을 열었다. 깊은 어둠 속에서 잔잔한 파도 소리만 조용히 울렸다. 바닷가에 세워진 아름다운 청동 가로등 위에서 기름등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으응…. 또 혼자 나서서 미안해. 해적들이 이스키아에 들어온 걸 알았는데, 성에 아무도 없어서…. 오늘 밤 중에 해적들이 떠날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어.”

오스칼이 멋쩍은 듯 잔뜩 헝클어진 머리를 풀어 손으로 빗으며 귀 뒤로 넘겼다.

“오늘 낮에 성으로 먼저 돌아왔을 때, 자작이 이스키아 영지 안에서 해적이 주도하는 노예매매가 벌어지는 것 같다는 보고를 하더군. 첩보가 있었던 모양이야.”

“아… 역시. 내가 또 성급하게 굴었네. 이미 너와 자작이 확인한 일인데.”

오스칼이 시무룩하게 어깨를 늘어뜨렸다. 레오와 자작이 기사단을 꾸려 진행하던 일이었다면, 그녀가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나서지 않았어도 될 일이었다.

괜히 저를 따르던 서던만 다칠 뻔했다는 생각에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이 밀려들었다.

그를 따라 걷자니 해변의 모래로 발이 푹푹 꺼졌다. 오스칼의 대답에 레오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잘못된 첩보였지.”

“응?”

오스칼이 눈을 들어 레오를 바라보았다.

“제보자는 클럽에서 한참 떨어진 곳을 경매장으로 지목했어. 전력을 갖추고 갔더니 허탕이었지. 뭔가 착오가 있었거나,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흘렸던 거다.”

레오가 얕은 한숨을 쉬며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았다. 아득하게 펼쳐진 밤하늘에 별들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그런데 어떻게 제대로 된 경매장을 찾은 거야?”

“허탕을 친 걸 알고 돌아오던 중에, 항구 근처에 정박한 배에서 수상한 흔적을 발견했거든.”

“아… 혹시 나와 서던 경이 갔던 해적선?”

“그래, 전투의 흔적이 있어 배를 수색했는데, 해적의 시체에 남은 상흔이 어딘가 낯이 익더군. 그때까지만 해도 설마 하는 심정이었지.”

레오가 옅은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웬 아이들이 항구 쪽을 서성이더군. 그들이 그 살롱을 알려준 거고.”

“그런 거였구나! 다행이야. 때맞춰 네가 오지 않았다면 큰일이었을 거야. 정말 운이 좋았어.”

레오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오스칼을 바라보았다.

“운이 좋은 게 아니라, 네가 해낸 거야. 네가 아니었다면, 나도 자작도 경매장을 찾지 못하고 허탕을 쳤을 거다. 네 판단이 옳았어.”

또 그 없이 나섰다고 한 소리를 들을 줄 알았던 오스칼이 뜻밖의 칭찬에 눈을 깜빡였다.

레오가 오스칼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네가 처음부터 린이란 아이를 구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지. 그러니 넌 너 자신에게 좀 더 자부심을 가져도 돼.”

레오가 오스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른거리는 기름등 불빛 아래 비친 오스칼은 아주 익숙한 모습이었다.

남자 같은 복장은 치열한 전투의 흔적으로 너저분해져 있고, 얼굴 이곳저곳에는 검댕을 잔뜩 묻힌 차림. 온몸 구석구석, 다른 사람을 위해 제 몸을 아끼지도 않고 뛰어든 흔적이 가득했다.

바로, 그가 사랑해 마지않던 그녀의 모습이었다.

뚫어지게 자신을 살펴보는 그의 시선을 알아챈 오스칼이 뺨을 붉혔다. 아무리 함께 산전수전 다 겪어가며 험한 꼴을 보였다고는 하나, 그에겐 예쁜 모습만 보이고 싶었는데.

오스칼이 부끄러운 듯 샐쭉한 목소리를 냈다.

“앗. 그러고 보니 지금 내 꼴은 엉망진창일 텐데. 창피하니까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보지 마.”

“사랑해, 오스칼.”

뜻밖에 돌아온 고백에 오스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곧 쑥스럽다는 듯 녹색의 눈동자를 아래로 내리깔았다.

“가, 갑자기 뭐야….”

“넌 내게 최고의 공작 부인이야.”

그의 다정한 목소리에 오스칼이 눈을 올려 뜨자 레오가 허리를 숙여 입을 맞추었다. 레오가 품 안 가득 오스칼을 안고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땀 냄새와 그을음이 섞인 바닐라 향이 그를 행복하게 했다.

그의 입맞춤과 손길이 점점 노골적으로 깊어졌다. 그에게 안겨 있던 오스칼이 문득 정신을 차리고 달뜬 숨을 몰아쉬며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

“레, 레오 그만! 밖에서 뭐 하는 거야!”

“우린 부부인데 뭐 어떤가?”

“그, 그래도! 공작 체면이 있잖아! 영지 내에서…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오스칼의 타박에 불만스러운 듯 입술을 내민 레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한 발짝 떨어져 선 오스칼을 번쩍 들어 어깨에 짊어졌다.

“으악!”

외마디 비명을 내지른 오스칼이 그의 어깨에 허리가 접혀 대롱대롱 매달렸다.

“너 뭐 하는 거야? 얼른 날 내리지 못해?”

오스칼이 손바닥으로 레오의 등짝을 팡팡 두들기며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그 저항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스칼의 다리를 제 가슴 앞으로 단단히 고정한 레오가 장난 가득한 목소리를 냈다.

“부인께서 밖에 있는 것이 싫다고 하니, 빨리 성으로 돌아가야지.”

“그럼 그냥 내 발로 걸어가도 되잖아!”

“오늘 이곳저곳 바삐 돌아다니느라 피곤할 거 아냐. 그리고, 항상 느끼는 거지만 네 걸음은 느려서 답답해.”

“뭐? 그럼 적어도 이렇게 짐짝처럼 매달지 말고, ‘공주님 안기’라도 해달라고!”

오스칼이 창피한 듯 그의 어깨에 매달려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오스칼을 둘러매고 뚜벅뚜벅 이스키아 성 방향으로 향하던 레오가 즐거운 듯 쿡쿡 웃었다.

“언제는 ‘공주님 안기’가 싫다며?”

“그땐 명색이 기사였잖아! 지금은 공작부인이고.”

“지금도 여전히 넌 기사잖나. 그것도 국왕 폐하로부터 정식으로 작위까지 받은.”

“그건….”

그 말에 오스칼이 문득 발버둥을 멈추었다. 레오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 공작부인이라는 단어에 너무 얽매이지 마. 넌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오스칼이 뭔가를 깨달은 듯 조용해졌다.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지 지나치게 신경 쓴 나머지 진짜 중요한 게 뭔지를 잊고 있었던 게 아닐까.

대답이 없는 오스칼을 종용하듯 레오가 오스칼의 몸을 반대쪽 어깨로 가뿐하게 옮겨 들었다. 오스칼의 몸이 무겁지도 않은지, 그는 힘든 기색조차 없었다. 오스칼이 칭얼거리듯 그를 재촉했다.

“레오, 알았으니까 얼른 내려줘.”

“뭘 알았다는 거야? 난 이대로 성까지 갈 거다.”

애원하는 듯한 오스칼의 목소리에, 놀리듯 싱글거린 레오가 이제 해변을 달리기 시작했다.

발이 푹푹 파묻히는 해변의 고운 모래 위를 달리는 일이 버거울 텐데도 그는 한껏 신나 보였다.

그의 어깨에 매달린 채 손발을 파닥거리던 오스칼이 웃음을 터뜨렸다. 엉뚱한 장난을 치는 게 꼭 어린애 같았다. 평소엔 근엄한 레오가 제게만 보여주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대체 누가 이 모습을 ‘칼릭스 공작’이라고 생각하겠어?

“레오, 정말 정말 좋아해.”

오스칼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 고백에 레오의 입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검은 눈동자가 천진난만한 웃음을 담았다.

“그렇게 말했으니, 넌 그 말에 책임져야 할 거야. 오늘 밤은 네가 아무리 피곤하다고 해도 기필코 안 재울 거니까.”

그 나지막한 속삭임에 오스칼의 귓가가 화르르 달아올랐다. 그는 정말로 작정한 듯 이스키아 성까지 쉬지도 않고 내달렸다.

비로소 그들의 진짜 신혼 첫날밤이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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