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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116)화 (116/138)

116화



 

따스한 햇살이 눈부신 완연한 봄날. 칼릭스 공작저의 넓은 정원은 결혼식 준비로 분주했다.

융단처럼 잘 다듬어진 폭신폭신한 잔디 위에 순백의 버진로드가 깔렸다. 일자로 이어진 버진로드를 따라 달콤한 향기를 뿜어내는 우아한 꽃들이 장식되었다.

정원에 심어진 커다란 활엽수 나무들은 반짝거리는 크리스털과 실크 리본으로 꾸며졌다. 하얀 리넨을 씌운 커다란 테이블에는 반짝이는 은제 식기와 알록달록한 빛깔의 꽃이 놓였다.

“거기, 의자 수가 안 맞는다고요! 마티스! 단상의 기울기가 안 맞는 것 같은데요? 좀 봐줘요!”

로잘린이 우렁찬 목소리로 레오와 오스칼의 결혼식을 진두지휘했다.

두 사람이 결혼을 약속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로잘린은 오스칼에 대한 축복과 레오에 대한 질투로 온탕과 냉탕을 오가다, 결국 오스칼을 와락 끌어안았다.

“제가 꼭 오스칼의 결혼식은 라인하트 역사에 남을 행사로 만들 거예요!”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듯, 로잘린은 오스칼의 결혼식 준비에 호들갑을 떨었다.

신부의 들러리가 되어주기로 한 그녀는, 준비 기간 내내 신랑의 베스트 맨으로 지정된 마티스를 들들 볶아댔다. 마티스는 로잘린의 충실한 수족이 되어 그녀의 말을 고분고분 따랐다.

“주방 쪽은 문제없죠? 결코, 음식이 모자라선 안 돼요! 노이어에서 온 위스키 오크통이 쏟아지지 않게 주의하세요!”

로잘린이 준비한 결혼식에서 식사야말로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다. 라인하트 왕국의 각 지역의 특산물로 구성된 메뉴는 듣기만 해도 군침이 돌 정도였다.

가재와 새우에 허브가 곁들여진 상큼한 애피타이저부터, 주요리인 송아지와 어린양 스테이크, 그리고 브랜디와 설탕으로 만든 바삭한 비스킷 위에 올린 세 가지 맛 아이스크림 디저트까지.

물론 가볍게 집어 먹을 수 있는 핑거푸드는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게다가 로잘린은 노이어에서부터 위스키를 직접 공수해왔다. 열두 가지 종류의 최고급 위스키는 정원 한쪽에 오크통째 산처럼 쌓여 있었다.

“좋아! 완벽해.”

흠잡을 것 없이 완벽하게 준비된 결혼식장을 둘러본 로잘린이 자랑스러운 듯 어깨를 쭉 뻗었다. 그리고 씩씩하게 이동해 신부 대기실의 커튼을 걷고 빼꼼히 오스칼을 들여다보았다.

신부 대기실의 파우더룸은 가브리엘과 그녀의 조수들로 북적였다. 오스칼의 웨딩드레스를 만들어 주겠다고 자청한 가브리엘은 사흘 밤낮을 꼬박 들여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화려한 레이스 자수를 완성해 냈다.

오스칼이 섬세한 레이스 자수와 반짝이는 보석이 촘촘하게 박힌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섰다. 오스칼의 모습에 로잘린이 양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솜씨 좋은 미용사들이 온갖 기교를 부려 틀어 올린 머리는 오스칼의 청초한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녀의 미모를 더 빛내주는 고운 화장조차 완벽했다.

로잘린의 연보라색 눈동자에 물기가 어렸다.

“맙소사! 나 또 반해버렸어!”

“나보다 훨씬 아름다운 로즈가 그렇게 칭찬해봤자 하나도 안 기뻐요.”

로잘린의 감탄사에 오스칼이 양 뺨을 복숭앗빛으로 물들였다. 늘 괄괄했던 오스칼도 오늘만큼은 수줍어 보였다.

“제 일생의 역작이에요. 지난밤들을 하얗게 불태웠답니다.”

눈이 퀭해진 가브리엘이 자랑스러운 듯 외쳤다. 지친 기색이 묻어나는 목소리였지만 뿌듯해 어쩔 줄 모르는 투였다.

로잘린이 오스칼의 어깨를 꼭 끌어안았다.

“정말 완벽해요! 너무 예뻐.”

“고마워요. 로즈 덕분에 결혼식 준비가 수월했어요. 노이어 영주가 준비하는 결혼식이라니, 정말 영광이죠.”

“오스칼의 결혼식인데 당연하죠! 그나저나 신혼여행은 남쪽 바다로 간다고 했죠?”

“네, 칼릭스 대공령을 둘러볼 겸.”

로잘린이 부러운 듯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휴. 레오파드 공작은 대체 무슨 복이람.”

“레…, 레오폴드….”

“어험.”

오스칼이 작은 목소리로 레오의 이름을 정정하는 동안, 밖에서 익숙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로잘린이 레이스 커튼을 열어젖히자, 머리가 하얗게 센 남자가 새침한 표정을 한 채 안으로 들어왔다.

“오스…. 아니 예비 칼릭스 공작 부인께 전하라는 국왕 폐하의 전언이 있으셨습니다.”

오스칼이 궁금한 듯 알랭을 바라보며 신부를 위해 마련된 폭신한 의자에 앉았다.

알랭이 에렌의 메시지를 읽으려는 듯 양피지를 손에 쥐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는 국왕의 시종장으로 임명되어 궁 안의 사용인 모두를 관리할 정도로 지위가 격상된 터였다. 그러나, 에렌의 편지를 읽는 임무만큼은 여전히 그의 몫인 모양이었다.

“친애하는 오스칼. 사실 어젯밤까지도 왕국에 금혼령을 내려야 하나 고민했어. 하지만 역시 난 그대가 행복하길 바라. 날 가장 행복하게 하는 여인은 그대지만, 그대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남자는 아마 칼릭스 공작이겠지. 두 사람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

거기까지 읽은 알랭은 잠깐 머뭇거리며 그다음 문장을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했다. 그러나 왕명을 거역할 수는 없는 노릇. 크게 헛기침을 한번 한 그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공작 부인의 자리가 지루하면 언제든 도망쳐도 돼. 왕비 자리는 항상 열려있거든.”

오스칼이 웃음을 터뜨렸다. 과연 에렌다운 메시지였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런 터무니없는 편지를 읽다니, 알랭은 참을 수 없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는 곧게 허리를 세웠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한때는 오스칼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만… 그간 제가 마드모아젤에게 범한 결례를 사과드리겠습니다. 오늘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고마워요, 알랭.”

“폐하께서 두 분의 결혼 선물로 사재를 털어 오스칼 님의 이름으로 왕국민에게 음식을 풀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왕국민들이 모두 행복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폐하께 감사하다고, 그리고 늘 신세만 졌다고 전해주세요.”

에렌의 사려 깊은 선물에 감동한 오스칼이 방긋 웃었다. 어느덧 바깥에서 결혼식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가 울렸다.

“이제 슬슬 주인공께서 나가실 시간이에요.”

가브리엘의 말에, 오스칼이 긴장한 얼굴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렌의 전언을 들은 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로잘린이 다급히 오스칼의 귀에 속삭였다.

“오스칼, 노이어 남작 부인 자리도 열려있다는 걸 잊지 말아요.”

***

오스칼이 버진로드로 향하는 걸음마다 사람들이 손뼉을 치고 환호성을 질러댔다. 그들은 고운 빛깔의 꽃잎을 뿌리며 아름다운 신부를 축복했다. 드레스에 장식된 보석이 봄바람에 흔들려 찬란하게 빛을 뿜었다.

“오스칼 예쁘다!”

제일 앞줄에선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마리안느가 방글방글 웃으며 탐스러운 꽃송이를 흔들었다. 이사벨과 릴리안이 화사한 얼굴로 오스칼을 향해 손짓했다.

여기저기서 레오와 오스칼 덕에 목숨을 구한 사람들이 모여 우렁찬 함성을 자아냈다. 왕국 최고의 귀족 가문에서 열리는 결혼식이었지만, 귀족들보다 평민이 더 많이 참석한 결혼식이었다.

그때, 반짝이는 빛 가루가 사방에 흩날렸다.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작은 빛들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처럼 날아다녔다. 마법 같은 순간에 참석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에, 이게 뭐죠?”

“이 계절에 반딧불이가 있나?”

오스칼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살랑거리는 빛무리가 축복하듯 그녀의 발밑에 내려앉았다. 오스칼이 그 빛의 정체를 알아보고 살짝 미소지었다.

“결혼식엔 못 온다더니….”

참으로 클로드다운 선물이었다.

악단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선율이 정원 안을 가득 채웠다. 오스칼이 버진로드 앞에 멈추자, 양쪽으로 늘어선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오늘만큼은 근위대나 공작가의 기사단이 아닌, 뤼미에르 기사단의 정복을 입은 모습이었다.

“오스칼, 행복해라!”

“형, 아니 누님. 이제 공작 부인이 되시는군요!”

들어 올려진 검 아래를 지날 때마다 청년들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마티스, 드미트리, 폴, 시몬, 기욤, 애버트…. 한 걸음 한 걸음마다 그들과의 추억이 떠올랐다.

“누님, 부디 행복하십쇼!”

마지막으로, 완벽하게 건강을 찾은 제라드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축복의 말을 건넸다.

그리고, 버진로드의 끝에 레오가 서 있었다.

칼릭스 가의 문장이 새겨진 새하얀 예복을 입고, 검은 머리를 단정히 올린 레오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근사했다. 그의 입술은 긴장한 듯 굳게 다물려 있었다.

평소답지 않게 어딘가 삐걱대는 듯한 그의 몸짓에 오스칼이 활짝 웃었다. 그 웃음에 비로소 레오의 입꼬리도 호를 그렸다.

마침내, 레오가 자신에게 다가온 오스칼의 손을 잡았다.

“항상 예뻤지만, 오늘은 내가 정신을 잃을 정도로 예뻐.”

쑥스러운 레오의 칭찬에 오스칼의 얼굴이 빨개졌다. 몇 개월 전만 해도 레오의 입에서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팔불출 같은 문장에, 기사단 청년들이 웃음 섞인 야유를 보냈다.

결혼 서약과 맹세가 이어지고, 두 사람의 손에 반지가 끼워졌다. 결혼식에 참석한 모든 하객이 두 사람을 향해 열정적인 박수를 보냈다.

어느덧 결혼식의 끝을 알리는 폭죽이 터지고, 참석한 하객들의 자리에 애피타이저가 서빙되기 시작했다. 모든 테이블에서 너도, 나도 신랑·신부를 위한 축배를 들었다.

오스칼의 손을 꼭 붙잡고 선 레오가 봄 햇살이 비치는 오스칼의 녹색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앞으로 영원히 함께할 아름다운 사람을 향해 속삭였다.

“오스칼, 멈춰 있던 내 삶의 시간은 널 만나고 나서야 흐르기 시작했어. 내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

레오의 입술이 오스칼의 입술에 닿자 달콤한 향기가 오스칼의 코끝을 스쳤다. 오스칼이 눈을 감았다. 온몸 구석구석이 행복으로 가득 차올랐다. 마침내 찾아온 봄이었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었다.

〈Happy Ending.〉

살포시 감긴 눈꺼풀 뒤, 깜깜한 시야 너머 떠오른 문장에 오스칼이 눈을 번쩍 떴다.

꽝-

귓가에 소름 끼치는 굉음이 들렸다.

‘안 돼!’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비명을 질렀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기분과 함께 오스칼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빙의물의 마지막 법칙. 어떤 등장인물, 어떤 이야기에 빙의했건 상관없다. 언제나 빙의자가 그 소설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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