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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109)화 (109/138)

109화



 

북부 연합이 맹렬하게 성안으로 진입했다.

“왕국을 망가뜨리는 아르투아와 이교도를 모두 쓸어버려라!”

“드디어 북부가 은혜를 갚을 때가 왔다! 모두 뤼미에르 기사단을 도와라!”

순식간에 홀 안으로 밀려 들어온 북부의 연합군은 거센 기세로 이교도와 근위대를 공격했다.

지쳐있던 기사단 청년들이 안도의 함성을 질렀다. 든든한 지원군의 등장이었다. 사방에서 날붙이가 번쩍이고,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뜻밖의 상황에 드레이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레오에게 향하던 그는 달려드는 북부인들에게 떠밀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북부라니, 이건 뜻밖인데.”

에렌이 레오를 향해 대견한 눈빛을 보냈다. 부상으로 고통에 일그러졌던 에렌의 입술이 살짝 휘어 올라갔다. 레오의 얼굴에도 반짝, 희망의 빛이 돌았다. 그가 단단히 검을 움켜쥐었다.

촤아악-

레오가 온몸으로 에렌을 보호하며, 그를 향해 달려드는 적의 급소를 베었다. 그가 에렌을 바라보았다.

여유 있는 표정이었으나 점점 창백해지는 안색은 감출 수가 없었다. 에렌의 어깨가 피로 흥건했다.

“전하를 엄호하겠습니다.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다행히 아직 죽을 땐 아닌가 보군. 오스칼에게 한 입맞춤이 이대로 작별의 키스가 되는 줄 알았어.”

스릉-

순식간에 빛이 번뜩이고, 레오의 검이 에렌의 머리 위를 스쳤다. 얼른 목을 움츠린 에렌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죽을 뻔했잖나!”

“실수였습니다.”

레오가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건조하게 대답했다.

“하여간, 자네 성격 나쁜 거 알아?”

에렌이 툴툴거렸다. 에렌의 투덜거림을 무심하게 넘긴 레오가 적 하나를 베어 넘겼다. 상처를 입은 어깨를 붙잡고서 에렌이 몸을 물려 그를 향해 쓰러지는 병사를 피했다.

“윽.”

몸을 움직이자 현기증이 이는 듯, 에렌이 휘청이며 신음을 흘렸다. 레오가 빠르게 에렌의 몸을 받아냈다. 에렌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북부 연합군의 치열한 공세에 적들의 공격이 뜸한 틈을 타, 레오가 에렌을 부축해 이동했다.

전투의 중심에서 벗어난 레오가 손수건을 꺼내 피가 흐르는 에렌의 어깨에 묶어 지혈했다.

“제 성격이 아무리 나빠도 전하보다 더 하겠습니까? 오스칼의 정체를 뻔히 알면서도 절 시험하신 분 아닙니까.”

“한마디를 안 지는군. 감히 망설임도 없이 직언하는 모습이 아주 충신이 될 상이야.”

상처의 쓰라린 감각에 눈을 찡그리던 에렌이 피식 웃었다. 그때, 두 사람 앞에 너절해진 남자가 홀로 비척비척 다가왔다.

“쥐새끼 같은 놈들!”

악에 받친 외침은 드레이코 호그의 것이었다. 그는 쇄도하는 연합군의 칼날 속에서 빠져나오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북부의 합류로 아르투아 진영의 패색이 짙어지자, 자포자기한 듯한 그의 눈에 광기가 서렸다.

“이 더러운 반역자들 같으니!”

“누가 누구더러 반역자라는지 모르겠군, 드레이코. 국왕을 지켜야 할 근위대장이 이교도와 손을 잡고 반역자 아르투아에게 충성하다니.”

웃음기가 사라진 에렌의 얼굴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오늘 내가 죽더라도, 네놈들은 함께 데려가겠다!”

드레이코가 울부짖듯 소리 질렀다. 두 사람을 향해 겨눈 검에서 살기가 넘실거렸다.

에렌을 등 뒤로 숨기고 드레이코를 향해 전투태세를 갖춘 레오의 눈매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의 손안에서 검이 단단하게 자리를 잡았다.

드레이코를 마주 본 레오의 등 뒤로 태양이 비추었다. 그 압도적인 광경에 에렌이 까슬거리는 목 뒤로 마른침을 넘겼다.

대련도, 시합도 아닌 생과 사의 경계를 가르는 지점에 선 검사의 자세. 레오의 날카로운 시선이 드레이코를 향했다.

“오늘은 검투대회 따위가 아니니, 네 목숨을 장담할 수 없겠군.”

“거, 건방진 애송이 같으니!”

드레이코가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레오에게 덤벼들었다.

챙- 카강-

간결한 그의 몸짓에 위압적인 파열음이 울렸다. 곧 고도의 기술이 이어졌다.

레오에겐 검투대회에서 드레이코를 상대했던 것보다 쉬운 싸움이었다. 상대를 살려두지 않아도 되니까. 검을 맞부딪치는 자를 배려하지 않아도 되는 검투라면, 그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섬광이 번쩍이고, 단 몇 합 만에 드레이코는 손아귀에서 검을 놓쳤다. 최후를 직감한 드레이코는 넋이 빠진 얼굴로 벌벌 떨었다.

왕국의 근위대장이라고 하기엔 초라하고 우스운 몰골이었다.

“당신은 내 아버지를 모함하고, 국왕을 배신하고, 왕국민을 위험으로 몰아넣었지. 기사도를 져버린 기사는 살 가치가 없다.”

싸늘한 음성을 끝으로 마침내 레오의 검이 드레이코를 갈랐다. 그는 일격에 드레이코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성안이 북부 연합군과 뤼미에르 기사단의 칼 소리와 함성으로 가득 울렸다. 넝마가 되어 바닥에 엎드린 드레이코의 어깨너머 전장에는 승리의 기운이 서렸다.

***

아르투아 대공저.

아르투아가 초조한 듯 종종걸음으로 방안을 돌아다니며 연신 손끝을 물어뜯었다. 왕궁에서 에르네스트를 잡았다는 전갈이 올 때가 훨씬 지난 시각이었다.

“아버지. 궁에 들어가면 전 뭘 하면 될까요?”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발사자르는 여전히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넌 내가 일일이 말해주지 않으면 네가 할 일도 못 찾는 거냐!”

답답한 아르투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눈치 없이 아둔한 소리만 늘어놓는 발사자르가 한심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에르네스트를 끝장내신다면 제가 할 일이 없는걸요. 저도 차기 왕세자가 되려면 공을 세워야 하지 않겠어요?”

“어휴.”

아르투아가 머리를 짚었다. 예전부터 지켜보았지만, 검술에도, 계략에도 특별히 재능이라곤 없었다. 가진 거라고는 반반한 얼굴이 전부인 녀석.

“넌 일이 다 끝난 후, 내 대관식 때 군중들이나 홀리도록 해라.”

“그거라면 또 제가 전문이죠.”

발사자르가 풍성한 검은 머리칼을 멋들어지게 쓸어넘겼다. 아르투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잔느는 샤르트르에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거냐? 이렇게 중요한 때에 자리를 비우고.”

“어머니가 세레나에 관심을 보이셨어요. 아, 제 말은 오스칼이요! 걔를 조사하기 위해 검은 숲으로 가신다던데.”

아르투아가 신경질적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대체 그 계집이 뭐라고 이런 때에 검은 숲 따위엘 간다는 건지.

쿠당탕-

그때,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아르투아가 고개를 돌려 문가를 바라보았다. 저택을 지키던 병사 하나가 거의 나동그라질 뻔하며 방으로 뛰쳐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허둥대는 부하의 모습에 아르투아의 눈썹이 짜증스럽게 솟았다.

“근위대가 성안으로 진입했는데 아직 국왕이 살아 있었다고 합니다!”

“뭐? 국왕은 이미 처형됐다며?”

“그게…. 잘못 전달된 얘기라고 합니다. 처형을 준비하라는 말이 와전되었다고….”

“그래서 근위대는?”

어긋난 계획에 아르투아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근위대가 성에 들어가길 기다렸다는 듯이 뤼미에르 기사단이 궁으로 진입했다고 합니다.”

“그 오합지졸 놈들은 근위대와 이교도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하지 않았더냐?”

아르투아가 땀으로 젖은 손바닥을 옷깃에 닦아냈다. 잔느가 없으니 돌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방금 들어온 급보에 따르면…. 북부 영지의 연합군이 뤼미에르 기사단을 도우러 궁으로 전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규모가 상당하답니다!”

“부, 북부라고? 그자들이 왜 이번 일에 개입하는 건가? 그래서 지금 근위대가 밀리고 있단 소린가?”

“예….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우리 쪽 지원군은 없나? 분명 레밍턴 후작, 트리스탄 백작, 지그문트 남작가에 연락하면 사병을 내어줄 거야! 당장 그쪽에 연락해!”

아르투아가 초조한 목소리로 지시하고는 목이 탄 듯 크리스털 잔에 독한 술을 가득 따랐다. 병사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게…. 이미 저희가 움직일 수 있는 모든 병력은 동원했습니다. 말씀하신 가문에는 진작 연락을 취해보았지만 전부 이번 일에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뭐? 이 간신 같은 놈들! 내게 간이고 쓸개고 빼줄 것처럼 굴더니. 성안에 있는 자들은 어찌 되었나? 에르네스트 놈의 사병은 뭘 하는 게야?”

“문제는…. 지금 에르네스트 대공이 칼릭스와 함께 우리 쪽 병력에 맞서 싸우고 있다고 합니다.”

술잔을 집어 들던 아르투아의 손이 허공에서 멎었다. 그의 입이 떡 벌어졌다.

“뭐…뭐라고?”

“성안에 남아 있던 우리 쪽 인원 역시 연락이 닿지 않고 있습니다. 인질 교환 때도 모두 제외되었답니다. 아무래도 에르네스트 대공이…. 배신한 듯합니다.”

발사자르가 입을 벌린 채 두 사람의 대화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아, 아버지, 일이 지금 잘못 돌아가고 있는 거예요?”

쨍그랑

아르투아의 손에 들린 유리잔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그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이…. 이 교활한 놈이! 날 속였어!”

“워,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소식을 전하던 병사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연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아르투아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성안의 인질은 어떻게 된 건가? 그 녀석이 미끼야. 그게 사실 에르네트스가 아끼는 계집이라고! 얼른 성안의 병사들에게 그 계집부터 확보하라고…!”

우지끈- 와장창-

아르투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무언가 요란한 소리가 대공저 안에 울려 퍼졌다. 불길한 소리에 번쩍 눈을 뜬 아르투아가 두려운 눈길로 방문 쪽을 바라보았다.

쾅!

아르투아의 눈길이 닿자마자, 집무실의 문이 부서지듯 열렸다.

“날 찾고 있었다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검을 든 호리호리한 인영이 열린 문 사이에서 아르투아의 말을 받았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 아르투아와 발사자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열린 문 바깥에서 검이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 그리고 기합 소리가 높게 울리고 있었다.

대공저 집무실의 사치스러운 아치형 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햇살이 오스칼의 날카로운 검 끝에서 부서졌다.

번쩍이는 빛 뒤에서, 오스칼이 씩 웃으며 방 안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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