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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107)화 (107/138)

107화



 

자신이 에렌의 사람이라고 소개한 첩자는 빠르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전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레오의 눈이 커졌다.

마티스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레오가 굳은 표정으로 일갈했다.

“정말 네가 대공의 사람인가? 네 말이 진실이라는 걸 어떻게 믿지?”

“혹시 경께서 제 말을 믿지 못하실까, 대공 전하께서 이걸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에렌의 첩자가 주머니에서 천 조각을 꺼내며 낮게 속삭였다.

“이제 전하의 것이 아닌 것은 전하 곁에 남겨두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낯익은 원단에 레오의 눈매가 움찔거렸다. 오스칼이 에렌에게 빌려준 뒤 돌려받지 못했다던 재킷 조각이었다. 그가 오스칼에게 사 주었던 재킷.

“허, 참. 그 양반, 연극 스케일 한번 엄청나시네.”

마티스가 허탈함과 안도감이 뒤섞인 탄성을 냈다. 레오의 눈빛에도 복잡한 감정이 서렸다.

두 사람의 반응에 첩자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지금쯤이면 아마 오스칼 님이 뒷문을 통해 빠져나가셨을 겁니다. 저는 이 길로 아르투아 대공저로 가서 제 정보원에게 국왕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레오의 입매가 강인하게 다물렸다.

***

오스칼과 단테는 성의 뒷문을 지키던 이교도 병사들을 순식간에 쓰러뜨렸다. 단테가 미리 준비해둔 말을 타고 달리던 오스칼이 볼멘소리를 했다.

“슬쩍 언질이라도 주지 그랬어요! 하마터면 당신이 엄청 나쁜 놈이 되어버렸다고 오해할 뻔했잖아요!”

“이교도 병사가 넷이나 따라붙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일은 철저하지 않으면 금방 들통나는 법이니까요.”

“단테가 그렇게 연기를 잘하는지 몰랐네요.”

오스칼이 혀를 내둘렀다. 눈빛 연기가 어찌나 실감 나던지 진짜라고 믿어버릴 뻔했다. 단테가 못마땅한 듯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솔직히 반쯤은 진심이었습니다. 오스칼 님은 어처구니없게도 우리 대공 전하를 차버리지 않았습니까?”

‘윽. 어쩐지, 날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리얼하다 했지.’

오스칼은 냉랭한 단테의 대답에 머쓱해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단테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옅은 책망이 서려 있는 투였다.

“그런데도 전하께서는 오스칼 님을 어찌나 걱정하시던지요. 아르투아가 기사단에 자객을 보낸 걸 뒤늦게 아시고는 사색이 되어 저를 보내셨습니다. 제가 갔을 땐 이미 상황이 끝난 이후이긴 했습니다만.”

“전하는 괜찮겠죠? 왕궁 안은 온통 이교도 병사뿐인 것 같은데. 그들이 눈치라도 채면….”

“사실 전하 곁을 끝까지 지키고 싶었지만… 전하께서는 제가 오스칼 님과 함께 가길 바라셨습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오스칼이 눈을 내리깔았다. 단테가 짧은 한숨을 쉬었다.

“전하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제 일입니다. 다행히 전하는 제가 지켜드리지 않아도 될 만큼 검술에 능한 분이시기도 하고요. 물론 전하께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칭찬하시던 오스칼 님의 검술이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니까 기대하지 말아요.”

“지난번 잔느의 저택에서도 그 많은 병사를 칼릭스 경과 두 분이 해치우신 걸 보면, 겸손하실 일은 아니죠.”

단테는 덤덤한 목소리로 낯부끄러운 칭찬을 늘어놓았다. 꽤 고수임이 틀림없는 단테에게 칭찬을 들으니 쑥스러워진 오스칼이 말을 돌렸다.

“지금 우린 대공 전하의 사병과 합류하러 가는 거죠?”

“맞습니다. 전하의 사병들이 은신처에서 대기 중이지요.”

“아르투아 대공저에 들어가는 게 쉽진 않겠죠? 아무리 근위대와 이교도 대부분이 궁으로 향했다 해도, 대공저를 지키는 병사가 있을 테니….”

오스칼이 근심 섞인 목소리를 냈다. 단테가 동의하듯 눈썹을 찌푸렸다.

“그렇습니다. 병력이 저택에 진입하는 동안 아르투아와 발자사르가 달아나는 게 최악의 상황입니다. 저택을 진입할 때 총공세를 펴 최대한 시간을 단축하는 수밖에요.”

무도회 날 보았던 거대한 요새 같은 저택을 떠올리자, 고삐를 쥔 오스칼의 손이 창백해졌다.

그 과정에서 또 얼마나 많은 부상자가 생길까. 오스칼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쉴 틈 없이 말을 달린 두 사람은 아르투아 대공저에서 조금 떨어진 안전가옥에 도착했다. 무장한 채 늘어선 에렌의 사병들이 우렁찬 기세로 그들을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말에서 내리던 오스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각 잡힌 경례를 하는 에렌의 사병들 틈에 섞여 있었다.

우락부락한 병사들 사이에 서 있는, 아름답게 반짝이는 금발 머리의 아가씨.

“로, 로즈? 대체 로즈가 여긴 어떻게….”

구불거리는 머리를 하나로 높게 묶은 로잘린이 말에서 내리는 오스칼을 와락 끌어안았다.

“오스칼!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혹시 그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걱정했어요.”

“아시는 분입니까?”

단테 역시 예상치 못한 상황인지 당황한 표정으로 오스칼과 로잘린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쪽은 노이어 남작가의 따님, 로잘린 노이어 영애예요.”

얼떨떨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소개해준 오스칼이 다시 로잘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로즈, 이곳에 있으면 위험해요! 대체 왜 여기 있는 거예요?”

“오스칼이 위험을 무릅쓰고 나섰는데, 제가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요?”

“절 걱정해 주시는 건 고맙지만…. 여긴 어떻게 알았어요?”

오스칼이 곤란한 얼굴을 했다. 아무리 로잘린이 여장부라고는 하나, 지략가일 뿐 전투 훈련을 받은 무사는 아니지 않은가. 그런 오스칼의 걱정을 알아챈 로잘린이 생긋 웃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아주 대단한 지원군이 절 여기로 데려온 거니까요.”

“지원군이라니….”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오스칼은 로잘린의 손에 이끌려 안전가옥으로 들어갔다. 단테 역시 미간을 찌푸린 채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가옥 안에 들어서자, 자그마한 나무 의자에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던 귀족 부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머리를 하나로 단단히 틀어 올린, 기품있는 자태의 우아한 여인이었다.

“오스칼, 인사하세요. 이쪽은 올리비아 사르데나, 아르투아 대공비시랍니다.”

로잘린이 오스칼을 향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

단테와 오스칼의 입이 딱 벌어졌다. 아르투아 대공비라니?

“대공비 전하께서는 제라드 작가님의 넘버원 팬이시기도 하지요. 지난번 제라드 작가님의 후원회를 열어주신 큰 고객이랍니다.”

“아, 안녕하세요. 대공비 전하. 저는 오스칼이라고 합니다. 아…. 그… 지금 이 상황을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눈을 끔뻑여 대공비를 쳐다보던 오스칼이 엉거주춤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제가 지금 부인의 남편을 죽이러 가는 길입니다만…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곤란한 얼굴의 오스칼을 향해 올리비아가 차갑지만 딱 부러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 여러분들은 제 남편, 아니 그 파렴치한 작자를 없애버리러 가시는 거죠?”

“예? 예…. 뭐…. 그렇다고 말씀드려야 할지….”

오스칼이 삐질삐질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우물우물 시선을 피했다.

“저는 전적으로 찬성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돕겠어요.”

“네에?”

오스칼이 경악에 찬 탄성을 질렀다. 입매를 길게 늘인 올리비아가 품에서 붉은빛의 양피지를 꺼내 들었다.

오스칼은 그 양피지를 대번에 알아보았다. 자신이 에렌에게 맡겼던 계약서였다.

“이틀 전, 에르네스트 대공이 제게 이걸 은밀히 전해왔어요. 이 계약의 내용에 따르면 제 남편이라는 작자가 제 고향, 사르데나의 기밀을 대가로 정보상과 거래를 했더군요.”

“아….”

오스칼의 입에서 탄식이 흘렀다.

아르투아는 칼릭스 가문을 몰락시키는 일의 대가로 대공비의 고향, 사르데나 공국의 군사 기밀을 샤무아에 제안했다.

바로, 카탈리나와 사르데나의 전쟁을 촉발한 정보였다.

단테 역시 그 계약서의 존재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사실 조카인 에르네스트 대공과 그리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찾아왔을 때 조금 혼란스러웠지요. 그런데 오늘 로잘린이 저에게 만남을 요청하는 전보를 보냈더군요.”

대공비가 로잘린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로잘린은 제게 큰 의지가 되는 친구랍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지요. 그런 로잘린이 제게 해준 이야기는 에르네스트 대공이 전한 내용과 같더군요. 그리고, 그 뻔뻔스러운 작자가 이번에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대공비의 눈가가 붉어졌다. 대공비는 입술을 꾹 짓눌러 다물고는 파스텔 톤의 실크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로잘린이 말을 보탰다.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말씀드렸어요.”

로잘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공비가 손수건을 와락 움켜쥐며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천하의 나쁜 자식 같으니! 딴 여자랑 아들을 낳은 것도 쳐 죽일 일인데, 내 아버지를 팔아먹고, 이젠 감히 내 최애까지 건드려? 더는 못 참아!”

“예…?”

방금 최애라고…?

대공비의 입에서 나온 이질적인 단어에 오스칼이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로잘린에게 모두 전해 들었어요! 제라드 작가님이 그 자식이 보낸 자객들 때문에 혼수상태라면서요! 으흑, 우리 작가님 어떡해! 〈공작 아내의 유혹〉 특별 외전이 코앞이었다고요!”

“대공비 전하, 이대로 있을 순 없죠! 우리가 진짜 공작 아내의 유혹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자고요!”

가냘픈 두 여인이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목청을 높였다. 올리비아의 손에 쥔 손수건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하…하하….”

이걸 바로 덕후 대통합이라고 하는 건가….

갑작스러운 전개에 오스칼이 넋 빠진 웃음을 지었다. 단테는 대화의 절반 정도는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가 미간을 좁히고 진지한 물음을 던졌다.

“물론 대공비 전하의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만…. 비 전하께서 저희를 어떻게 도울 수 있으시단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대공비가 오만하게 턱을 들어 단테를 바라보았다. 그녀에게서 고귀한 위엄이 풍겼다.

“대공저의 비밀통로를 알려드리죠. 여러분들은 경비들의 방해 없이 저택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겁니다. 저택 내에서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지하를 통해 바깥으로 탈출이 가능한 통로가 있어요. 그리고 그 통로의 존재는 오직 저만 알고 있답니다. 대공저는 제가 결혼하며 혼수로 가져온 저택이거든요.”

올리비아의 눈에서 이채가 돌았다. 그녀는 마치 〈공작 아내의 유혹〉의 여자주인공이라도 된 듯, 바람난 남편 아르투아를 향한 복수에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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