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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105)화 (105/138)

105화



 

“너는? 너는 다쳐도 된다는 건가?”

충혈된 레오의 눈이 오스칼을 응시했다. 마주한 그의 눈빛이 시려 애써 그의 눈을 피했다. 오스칼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이 날 죽이진 않을 거야.”

“그자가 네게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레오가 숨을 뱉듯 말을 뱉었다. 명치가 꽉 막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절망적인 눈을 하고 있었다.

마티스가 레오의 말에 동의하듯 오스칼의 손을 붙들었다.

“대공이 널 죽이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 성안을 점거한 건 이교도 군대야. 어쩌면 결국엔 대공과 너, 모두 안전하지 않을 수 있어.”

“내가 들어간 뒤 성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확실하지 않아. 하지만, 내가 들어가지 않으면 사람들이 죽게 되리란 건 확실하잖아.”

“그건…!”

“희생자 없이, 인질들을 구할 수 있는 건 나뿐이야.”

반박할 수 없는 말에 마티스가 고개를 떨구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는 레오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그는 북받치는 감정을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다.

입안의 여린 살을 어찌나 짓씹었던지, 입안 가득 피가 고여 혀가 아렸다.

레오가 간청하듯 오스칼의 팔을 꽉 붙들었다.

“오스칼…. 제발….”

“나는 분명 괜찮을 거야.”

오스칼이 제 오른팔을 붙든 레오의 손을 왼손으로 감싸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 손길에, 고통스러운 듯 레오의 눈초리가 붉어졌다.

“왜…. 왜 항상 네가…. 그래야 하지?”

레오는 모든 것을 내동댕이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왕국민의 안전도, 기사의 본분도, 그저 그의 알량한 신념이고 정의에 불과한데. 그게 오스칼과 맞바꿀 정도로 대단한 것일까?

그는 차라리 이대로 모든 것을 관두고 오스칼을 붙잡아 가두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레오의 표정에서 스친 번민을 알아챈 오스칼이 빛나는 눈동자로 그를 응시했다.

“나는 기사잖아. 그래서 가는 거야. 정의와 왕국민을 위해 싸우는 게 기사가 갖추어야 할 덕목 아니었어?”

그의 신념을 지켜주고 싶었다. 바로 그것이 제 신념이기도 했으니까.

오스칼의 또렷한 목소리에 레오의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사실 그는 줄곧 알고 있었다. 그가 아무리 반대하고, 애원해보아도 오스칼은 에렌의 제안을 수락하리라는 것을.

그가 사랑하는 오스칼은 그런 사람이었다.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해 싸우고, 애쓰는 다정한 사람.

오스칼이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기사단 청년들을 바라보았다.

도열해 제자리를 지키고 선 기사단의 청년들은 어딘가 심상치 않은 세 사람의 분위기를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었다.

마침내 결심한 듯 레오와 눈을 마주친 오스칼이 까치발을 들어 그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재빨리 그의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갰다.

“!”

오스칼의 손에 이끌려 목덜미를 아래로 떨어뜨린 그의 몸이 휘청였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오스칼을 붙든 레오의 손에서 힘이 풀어지며 그가 눈을 크게 떴다.

“상실의 고통에 빠져서 네가 지킬 수 있는 자들을 구할 기회를 놓치지 마.”

레오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오스칼의 손이 그를 놓았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단테를 향해 달려갔다.

단테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향해 달려오는 오스칼을 응시했다. 그리고 짧은 인사말을 건넸다.

“가시죠.”

단테의 곁에 선 오스칼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앞만 보고 걸었다. 레오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었다.

등 뒤에서 무언가 소란이 이는 것 같았지만 오스칼은 끝내 뒤돌아보지 않았다.

***

성안으로 발을 내딛자, 성안의 모든 시선이 오스칼에 쏠렸다.

오스칼이 경계심 어린 눈으로 성안을 살폈다. 그리고 이교도의 복장을 한 병사로 가득한 왕궁의 모습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교도 병사가 오스칼의 팔을 억세게 이끌었다.

“무장은 해제해.”

“윽.”

병사 하나가 오스칼의 몸에서 무기를 거칠게 빼앗아 들자 오스칼이 신음을 흘렸다. 그러자 단테가 병사의 팔을 강하게 잡아채었다.

“대공 전하의 사람이니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 손끝이라도 다쳤다간 전하께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날카로운 잿빛 눈동자가 병사를 쏘아보자, 이교도 병사가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런 단테의 태도에 오스칼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인질로 데려와 놓고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건 또 뭐람.’

오스칼의 무기를 조심스럽게 받아든 단테가 오스칼을 향해 입을 열었다.

“대공 전하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와 함께 가시죠.”

오스칼이 대답 없이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단테와 함께 오스칼을 데려가던 이교도 병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쪽은 알현실이 아닌데?”

“전하께서 이자는 알현실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데려오라 이르셨다.”

두 사람의 대화에 오스칼이 몸을 움찔거렸다. 에렌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한참을 끌려가다시피 왕궁의 복도를 걷고 있자니, 어느덧 단테가 붉은색으로 칠해진 거대한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들여다보이는 어두운 실내는 틀림없이 침실이었다.

“이곳입니다.”

오스칼은 비로소 단테가 자신을 그 방으로 데려온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고 말았다.

“이곳…이요?”

오스칼의 목소리가 탁, 막혀 나왔다. 애써 침착한 척 해보려 해도, 마주한 잔인한 현실엔 더럭 겁이 났다. 오스칼의 어깨가 바들바들 떨렸다.

함께 오스칼을 데려온 이교도 병사가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아하. 대공 전하께서 그렇고 그런 취미를 가졌다는 소문이 진짜였구먼.”

질 낮은 조롱에 단테가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에 이교도 병사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전하께서 이 자를 안으로 들이고 나면, 근처에 있는 사람을 모두 물리라 했다. 너희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가 있어.”

단테가 매서운 목소리로 문 앞에 선 다른 병사들을 일갈했다. 병사들이 흥미로운 구경을 놓쳤다는 듯 툴툴거리며 사라지자 단테가 오스칼의 귀에 속삭였다.

“방에 들어간 이후엔, 부디 얌전히 전하의 말씀에 따르시기 바랍니다.”

단테의 말이 끝나자 붉은 문이 천천히 열렸다. 오스칼이 마른침을 삼켰다.

어두운 방 안, 오스칼은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섰다. 침대 옆 소파에 몸을 기댄 에렌의 모습이 보였다.

에렌의 눈이 어느 때보다도 집요하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오스칼이 머뭇거리며 한 걸음을 내딛자 쾅-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오스칼이 몸을 흠칫 떨었다.

커튼으로 창문을 가려 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방. 오스칼이 묵직한 캐노피가 길게 드리워진 거대한 침대에서 애써 시선을 돌렸다.

“에렌.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아무리 태연한 척하려 해도 불안한 심정은 감출 수 없는지 오스칼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오스칼의 음성에 에렌이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야 나를 그냥 이름으로 불러주는군. 역시 왕좌 정도는 빼앗아야 그대가 내 말을 들어주는 모양이지?”

“잔느가 당신을 세뇌한 거죠? 그들의 계획을 알잖아요. 그러니까 제발, 정신 차려요.”

매달리는 듯한 오스칼의 목소리에 에렌이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 여자는 내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이건 전부 내가 원한 일이야.”

“이게 당신이 원한 거였다고요? 이교도 군대를 이용해 궁을 점거하고, 왕을 가두고, 무고한 왕국민을 인질로 삼는 그런 일이요?”

어두운 방 안, 에렌의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가 천천히 오스칼에게 다가왔다.

“아니. 내가 원한 건 그대였지.”

에렌의 콧날 위에 두꺼운 커튼 틈새로 스며든 빛이 아슬아슬하게 떨어졌다. 반쯤 윤곽이 드러난 그의 얼굴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지척으로 다가온 그가 손을 올려 오스칼의 뺨을 어루만졌다. 아직 손바닥의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않았던지, 뺨에 닿는 그의 오른손이 거칠었다.

오스칼이 움찔대며 물러나자, 에렌이 오스칼의 팔을 잡아당겼다. 오스칼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어둡게 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대는 날 원하지 않았잖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레오거든요.”

오스칼이 에렌을 쏘아보았다. 오스칼은 발사자르의 무도회에서 그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차갑게 토해냈다. 에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 그자가 나보다 더 너를 사랑할까? 지금도 그 자식은 정의의 사도 노릇을 하느라 얼굴도 모르는 자 수십 명을 구하겠다며 널 내게 보냈잖아. 내가 널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뻔히 알면서도! 나라면 언제나 널 선택할 텐데!”

격양된 에렌의 숨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오스칼이 에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맑고 푸른 눈이 젖어 있었다.

“내가 고작 나 하나 때문에 정의도 신념도 버리는 남자를 사랑할 리 없잖아요.”

오스칼이 힘주어 그녀의 진심을 내뱉었다. 그 말에 에렌의 눈매가 흔들리다가 애달프게 가라앉았다. 그리고는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내 청혼을 거절한 그 날도, 그대는 내게 그런 비슷한 말을 했었지.”

이내 동요하는 감정을 억누르듯 숨을 길게 내어 쉰 에렌이 팔을 뻗어 오스칼의 허리를 감았다.

몸을 얽어오는 손에 힘이 들어가자, 오스칼의 몸이 본능적으로 움찔 오그라들었다.

오스칼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댄 그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지만 지금 그대는 내 침실에 있지. 내가 그대를 왜 여기로 불렀는지 상상이 돼?”

오스칼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오스칼의 허리를 감지 않은 다른 손이 천천히 몸 가까이 다가왔다.

오스칼이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눈을 내리깔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것 같은 에메랄드색 눈동자 위로 연갈색 속눈썹이 드리웠다.

뜨거운 에렌의 손이 오스칼의 손에 얽혀들었다.

절그럭-

에렌의 손과 얽힌 오스칼의 손안에서 익숙한 감촉이 느껴졌다.

쇠붙이의 감각, 에렌이 쥐여준 것은 분명 검이었다. 낯익은 감각에 오스칼이 눈을 크게 떴다. 에렌이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이걸 가지고 곧장 아르투아 대공저로 가. 이 방의 뒷문으로 나가면 단테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다정하고 또렷한 목소리가 오스칼의 귓가에 흘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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