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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101)화 (101/138)

101화



 

“어휴, 갑자기 비가 쏟아질 게 뭡니까.”

“겨울비는 질색이야. 춥고, 질척거리고.”

훈련 중, 비 세례를 맞은 기사단원들이 본부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응접실 벽난로 앞에 옹기종기 모여 흠뻑 젖은 머리카락과 몸을 털어냈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열정적으로 훈련에 임한 청년들의 건장한 몸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이런, 단장님과 오스칼 형님도 비를 쫄딱 맞으셨겠네.”

“일이 있다고 중간에 나가셨는데….”

단원들이 하나둘 걱정의 말을 보탰지만, 대수롭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제라드만큼은 심각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먹구름 낀 하늘 탓에 바깥이 한밤처럼 캄캄했다.

연무장에서 보았던 오스칼의 어두운 표정에 미루어 짐작해 볼 때, 두 사람은 분명 심상치 않은 이유로 자리를 비운 것이 틀림없었다.

‘아르투아 대공이 준비하고 있다는 반역 때문인가.’

생각만으로도 오싹한 주제에 제라드가 흠칫 몸을 떨었다.

우르릉- 꽝-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축이 울리더니, 이내 거센 바람이 불었다. 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본부 안을 울렸다. 발걸음 소리도, 비명 소리도 묻힐 것 같은 뒤숭숭한 뇌성이 이어졌다.

“이크. 무섭게도 몰아치네.”

“이래서야 오늘 훈련은 더 못하겠는데.”

마티스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러자 드미트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부단장님은 역시 훈련 생각뿐이십니다. 이 날씨에 훈련을 재개하실 생각을 하셨다니요.”

“그나저나, 본부 지붕을 수리해야겠어요. 계단 근처에서 물이 좀 새는 거 같은데요?”

미간을 찌푸리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천장을 살피던 기욤이 양동이를 들고 나타났다.

휘이잉-

지붕에 난 구멍 틈을 비집고 새어 들어오는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본부 안을 채웠다. 아직 신입 티를 벗지 못한 애버트가 몸을 움찔거리며 두리번거렸다.

“이렇게 비바람이 시끄러워서야, 밖에 누가 와도 모르겠네요.”

“하하. 원래 이런 날에 무슨 일이 생기곤 하잖아. 천둥소리에 기척을 숨기기 좋거든.”

시몬이 농담처럼 내뱉은 말에, 순간 제라드의 등에 한기가 돌았다.

온종일 심각했던 오스칼의 얼굴, 최근 눈에 띄게 주위를 경계하던 레오의 모습, 그리고 어딘가 달라진 이교도의 움직임. 본능적인 불안감이 몸을 엄습했다.

“이런 날엔 저희도 경계를 풀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제라드가 애써 긴장감을 감추며 벗어둔 보호장구를 껴입자, 드미트리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빗물이 다 마르지도 않았잖아? 갑자기 왜 그래?”

“단장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는 게 기사의 덕목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이야, 요즘 본부에 붙어살더니 단장님 다 됐는데?”

“하하, 요즘 제라드가 단장님께 기합을 자주 받더니 달라졌어.”

제라드의 유난스러운 태도에 청년들이 웃음 섞인 농담을 던졌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신경이 곤두선 얼굴이었다.

“특히 다 같이 모여 있을 때 기습이라도 당하면 더 위험하니까요….”

“뭐, 맞는 말이긴 하지. 요즘 제라드 녀석이 제법인데?”

마티스가 껄껄 웃으며 제라드의 등을 팡팡 두들겼다.

“예예, 그럼 제라드 단장님의 분부를 받잡겠습니다.”

장난스러운 얼굴로 보호장구를 주섬주섬 집어 드는 시늉을 하는 드미트리를 향해 다른 기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몇몇 청년들 역시 제라드를 놀리며 보호장구를 착용했다.

역시 만면에 웃음을 띤 채, 보호장구를 모두 갖춰 입은 마티스가 농담을 던졌다.

“제라드 단장님. 이 정도면 만족하십니….”

쨍그랑-

마티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본부의 유리창이 부서져 내렸다.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청년들의 얼굴에 서렸던 평화로운 웃음기도 산산조각이 났다.

깨어진 유리창 사이로 곧바로 둔탁한 물체가 날아왔다. 바닥에 떨어진 둥근 물체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코를 찌르는 매캐한 화약 냄새에 마티스가 소리를 질렀다.

“폭약이다! 다들 엎드려!”

꽝-

고막을 찢을 듯한 거대한 폭발음이 터졌다. 건물이 흔들리고, 가구가 튀어 올랐다. 뒤이어 부서진 벽돌조각과 나뭇조각들이 공중에 흩날렸다. 갑작스러운 폭발의 충격에 청년들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바닥을 굴렀다.

“크윽. 다들 무사해?”

마티스가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훔쳤다. 조금 전 장난처럼 꿰입은 보호장구가 그의 몸을 보호한 덕분에 등을 벽에 부딪치고도 그는 큰 상처를 피했다.

“부단장님! 이 녀석들 의식이 없습니다!”

지척에서 드미트리가 다급한 목소리로 마티스를 불렀다. 미처 보호장구를 입지 못한 청년들은 폭발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기절한 모양이었다.

“맥박은 있는 거야?!”

“아, 아직 살아 있습니다.”

드미트리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폭발의 연기로 시야가 흐렸다. 그는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의식이 없는 자들은 제가 옮기겠습니다! 얼른 방어태세를 갖추십시오. 습격입니다!”

부서진 테이블 아래에서 몸을 일으킨 제라드가 손등으로 턱에 맺힌 핏물을 닦아냈다.

쿵쾅 쿵쾅-

순식간에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가 실내를 가득 메우고, 검은 복장의 사내들이 연기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복면 위로 드러난 눈동자에 살기가 넘실댔다.

“싸울 수 있는 녀석들은 모두 대비해!”

드미트리의 외침에 비로소 정신을 차린 몇몇 청년들이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들을 에워싼 복면 자객들이 소리를 지르며 덤벼들었다.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죽여라!”

***

오스칼은 세찬 폭풍우를 헤치며 빠르게 말을 달렸다. 쏟아지는 겨울비가 살을 에는 듯 차가웠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 따위 없었다.

앞이 분간되지 않을 정도로 퍼붓는 비를 뚫고 달리며 오스칼이 이를 악물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뤼미에르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회색 연기는 굴뚝이 아닌 창문에서 새어 나왔다. 오스칼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우르릉- 꽝-

울부짖는 듯한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내리쳤다. 어두운 하늘을 가르며 내리꽂힌 섬광에, 부서진 대문과 짓밟힌 정원이 시야에서 번쩍였다.

“제길!”

오스칼과 레오가 동시에 검을 빼어 들었다. 차가운 비바람에 검을 쥔 손이 뻣뻣하게 얼어붙었다. 몸을 던지듯 말에서 뛰어 내린 두 사람이 본부로 달려 들어갔다.

아비규환이었다.

부서진 가구와 자욱한 연기로 성한 곳이 없는 응접실 이곳저곳에서 섬뜩한 칼바람 소리가 났다. 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와 날카롭게 찢어지는 비명이 난무했다.

“마티스!”

“레오! 오스칼!”

사정없이 자객을 베어 넘기고 있던 마티스가 애끓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목소리엔 분명 안도감이 묻어있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정신없이 칼을 휘두르던 다른 청년들 역시, 두 사람이 나타나자 사기가 올랐다.

레오와 오스칼은 대답할 틈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끄어억…!”

“컥!”

두 사람의 매서운 검날 아래, 침입자들이 쓰러져 나갔다. 뜨거운 핏방울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그러자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던 괴한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검을 든 자를 상대하지 마라! 개죽음이다!”

“2층으로 가! 의식이 없는 놈들부터 없애! 최대한 많은 놈을 죽여야 한다!”

이대로라면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침입자들이 작전을 바꾸었다.

그들의 임무는 뤼미에르 기사단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임무를 완수할 수 없다면 하나라도 더 죽여 최대한 기사단의 힘을 빼야 했다.

채앵!

괴한의 칼을 거칠게 받아내던 드미트리가 오스칼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형님! 2층에 쓰러진 단원들이 있습니다!”

오스칼이 퍼뜩 층계참으로 눈을 돌렸다. 제라드가 난리 통 속에서 의식을 잃은 청년들을 둘러업고 하나씩 2층으로 옮기는 동안, 시몬이 그를 엄호하며 계단 아래를 막아서고 있었다.

지시를 받은 침입자들이 계단을 지키는 시몬을 향해 몰려들었다.

“이 비열한 자식들!”

오스칼이 침입자들을 재빠르게 쫓았다. 앞에 보이는 몇 명의 등 뒤를 날카롭게 베어낸 그녀가 쓰러진 적들을 휙휙 뛰어넘으며 계단 아래로 향했다.

계단 아래를 지키던 시몬은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그의 이마와 어깨에선 피가 뚝뚝 흘렀다.

시몬이 힘에 부친 듯 간절하게 2층을 올려다보았다. 의식을 잃은 청년들을 모두 레오의 방으로 옮긴 제라드가 방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는 모습이 보였다.

비로소 긴장이 풀린 시몬이 탈진해 바닥에 주저앉자, 그의 머리 위로 칼이 날아들었다. 시몬이 눈을 질끈 감은 순간,

사악-

살을 베는 소리와 함께, 시몬을 공격하던 남자가 쓰러졌다. 괴한을 단칼에 쓰러뜨린 오스칼이 날카로운 눈으로 다음 상대를 쏘아보았다.

“젠장할!”

어느덧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 괴한의 눈매가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욕을 내뱉은 그가 결심한 듯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 물건을 확인한 오스칼의 눈이 커졌다.

폭약이었다.

순식간에 부싯돌을 튕겨 불씨를 만들어낸 남자가 폭약에 불을 붙였다. 타닥타닥 튀는 불꽃 아래로 도화선이 짧아졌다. 남자의 손에서 내던져지듯 폭약이 빠져나갔다.

“안 돼!”

남자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챈 오스칼이 날카롭게 외쳤다. 저 폭약이 여기서 터지면, 모두 무사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어둠 속을 가르며 날아가는 불꽃에 오스칼의 심장이 빠르게 쿵쾅댔다.

손에 쥔 검마저 던져버린 오스칼이 남자의 손에서 떨어지는 폭약을 향해 몸을 날렸다. 바닥을 구르며 두 손으로 폭약을 받아낸 오스칼이 다급한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근처에 빗물이 고인 양동이가 눈에 들어왔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생각할 틈도 없이 오스칼이 손에 쥔 폭약을 양동이를 향해 냅다 집어 던졌다.

푸시식-

도화선의 불꽃이 양동이 속에서 사그라들었다. 물에 젖은 폭약이 제 기능을 잃고 수면으로 동동 떠올랐다.

폭약의 불꽃이 꺼졌다는 안도감도 잠시, 등 뒤에서 요란한 발소리와 외침이 뒤섞여 소란이 일었다.

“건방진 자식! 죽어라-!”

날카로운 외침에 본능적으로 방어태세를 취하려던 오스칼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검을 들어 등 뒤의 적을 막아야 하는데, 양손이 허전했다. 조금 전, 폭약을 받아내느라 검을 손에서 놓아 버렸던 탓이었다.

“형님!”

급한 대로 팔이라도 들어 올려 머리 위를 막는 오스칼의 앞으로 누군가가 뛰어들었다.

촤악-!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뒷모습이 오스칼을 향해 무너져내렸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오스칼은 그녀의 몸을 덮치는 묵직한 무게감에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제 다리 위에 쓰러진 청년의 얼굴을 확인한 오스칼이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뿌옇게 된 시야 너머, 레오가 그녀를 공격하려던 괴한을 베어내고 있었다. 바닥으로 쓰러지는 괴한의 손에 들린 피 묻은 칼이 정지 화면처럼 눈에 들어왔다.

오스칼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품에 안은 청년의 몸을 흔들었다. 하얗게 질린 손이 청년의 가슴에서 솟구치는 붉은 피로 얼룩졌다.

“아, 안 돼….”

오스칼이 멍한 눈으로 저 대신 온몸으로 검을 받아낸 청년을 응시했다. 청년의 가슴에서 울컥울컥 뜨거운 피가 쏟아져 나왔다. 오스칼의 얼굴 위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제라드… 안 돼. 제발… 제발!”

오스칼이 서럽게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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