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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97)화 (97/138)

97화



 

삽시간에 손이 묶여 마차에 태워진 오스칼이 눈을 부릅떴다. 눈앞의 남자를 알아본 오스칼이 악에 받쳐 발버둥을 쳤다.

“읍-읍-”

그러나 입에 물린 재갈에 묻혀 밭은 신음만이 새어 나올 뿐이었다.

마차 의자에 다리를 꼬고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던 남자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콧등에 새파란 멍 자국이 보였다.

“재밌네. 네 꼴이.”

질 좋은 슈트를 차려입은 발사자르가 조소를 머금었다. 오스칼을 제압했던 복면 쓴 사내들이 양쪽에서 오스칼의 어깨를 강하게 짓눌렀다.

오스칼은 고개를 들어 형형한 눈으로 발사자르를 쏘아보았다.

“네가 날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말야. 처음 만난 날도 그렇게 묶여있었는데, 그땐 좀 더 순종적인 눈빛을 하지 않았나?”

그를 쏘아보는 오스칼의 눈빛에 움찔 놀라면서도, 발사자르는 조롱 어린 말을 던졌다. 그는 오스칼의 턱을 잡고 좌우로 돌려가며 훑는 시선으로 얼굴을 살폈다.

“남장이라니, 깜찍한 짓을 하네. 혹시나 해서 에르네스트 대공저 근처에 사람을 풀었는데, 진짜 네가 나타날 줄이야.”

발사자르는 무도회 이후 세레나를 찾기 위해 사람을 풀었다.

그리고 오늘, 대공저 근처에서 잠복하던 끄나풀이 세레나와 닮은 청년이 대공저에 들어갔다고 알려왔다.

“우-읍읍!”

오스칼이 뭐라고 악을 썼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해진 발사자르가 한쪽 눈썹을 올렸다. 그가 눈짓하자 오스칼 옆의 사내가 입에 물린 재갈을 풀었다.

“이 시베리아 십장생 $%^#$! 같은 @[email protected]%!”

욕이 용암처럼 터져 나왔다. 귀에서 피가 흐를 정도로 화통 같은 목소리였다. 생전 처음 듣는 단어에 멍하게 입을 벌린 발사자르가 손짓을 하자 오스칼의 입에 다시 재갈이 물렸다.

“너…. 진짜 사고를 당하면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네가 진짜… 세레나라고?”

발사자르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나름대로 거친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괴한들도 오스칼의 지독한 욕지거리를 듣고 질린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발사자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오스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오스칼이 질세라 그를 쏘아보았다.

“난동부리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재갈은 풀어줄게. 나도 궁금한 게 많아서.”

오스칼이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콧김을 뿜어댔다. 하지만 이를 꽉 깨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발사자르의 고갯짓에 미심쩍은 눈을 한 그의 수하가 다시 재갈을 풀어주었다.

“푸하!”

오스칼이 답답했던 듯 숨을 뱉어냈다. 발사자르가 오스칼을 빤히 바라보았다.

“너, 에르네스트와는 설마 그 살롱에서 만난 거야?”

“그래. 전부 당신 덕분이지.”

오스칼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발사자르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지금껏 남장을 하고 그자와 만나온거고? 설마 그놈의 남자 애인이란 게 너야?”

“당신 눈에 인간관계란 전부 그런 식으로 보이나 보지?”

“그럼, 에르네스트와 아무 사이 아니야?”

“내가 그와 무슨 사이건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하긴, 상관없지. 어차피 넌 내 여자니까.”

발사자르의 어처구니없는 발언에 오스칼의 이성이 또 한 번 끊어졌다.

“뭐어? 이 식빵에 포도씨유 발라서 쌍화차랑 드링킹… @#$%^….”

터업-

못 들어 주겠다는 듯 이번에는 발사자르가 그의 손바닥으로 오스칼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가 한쪽 눈매를 잔뜩 찡그렸다.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다들 너를 가지지 못해 안달하는 거야? 듣자 하니, 네가 레오폴드 칼릭스와도 엮여 있다며? 게다가 내 어머니도 네게 관심이 많더라고.”

뭐? 잔느가 왜 내게 관심이 있어?

잔뜩 분노를 담아 발사자르를 노려보던 오스칼의 눈에 의문의 빛이 서렸다. 그 눈빛에 아랑곳없이 발사자르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봤자, 넌 내 거야. 다른 놈들한텐 못 주지. 널 제일 먼저 알아본 건 나니까.”

발사자르가 그녀의 입을 막지 않은 다른 손으로 오스칼의 머리칼을 헤집듯 천천히 쓰다듬었다.

에르네스트 대공저로 들어간 청년에 대해 발 빠르게 수소문한 부하 녀석은 발사자르가 마차에서 대기하는 동안 세레나에 대한 몇 가지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녀가 어떤 이름, 어떤 신분으로 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머니가 최근 샤르트르의 검은 숲에 다녀온 부하들을 통해 세레나, 아니 ‘오스칼’을 조사해왔다는 것까지도.

“네가 무슨 이름으로 살고 있든, 넌 세레나잖아. 자르제 집안의 쓸모없는 밥버러지, 세레나.”

“읍읍.”

한쪽 입꼬리를 올려 비열하게 웃는 발사자르를 죽일 듯 노려보며 오스칼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어찌나 안간힘을 썼는지 눈가에 생리적인 눈물이 흘렀다.

“아무도 못 찾는 곳에 널 가둘 거야.”

여전히 오스칼의 입을 틀어막은 발사자르가 오스칼의 목덜미를 쓸었다. 땀에 젖은 오스칼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발사자르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덜컹- 덜컹-

마차가 비포장도로를 빠르게 달리며 덜그럭거렸다.

“그러니까 넌 앞으로 내 말만 잘 들으면 돼. 알았지, 세레나? 아, 네가 요즘 쓴다는 ‘가짜’ 이름이 뭐라더라? 아, 오스….”

“오스칼!”

누군가 마차 밖에서 오스칼의 이름을 포효하듯 불렀다. 익숙한 목소리에 오스칼이 눈을 번쩍 들었다.

덜그럭- 쾅-

덜그럭– 콰쾅 -

순식간에 마차에 커다란 충격이 가해졌다. 당황한 표정이 된 발사자르가 창가로 고개를 돌리며 무슨 일인지 살폈다. 오스칼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제 입을 막은 발사자르의 손바닥을 콱 깨물었다.

“아악! 젠장!”

발사자르가 피가 나도록 씹힌 손을 후다닥 떼어냈다.

“레오!”

발사자르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오스칼이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우지끈- 콱-

객차에서 오스칼의 목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나무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마차의 문짝으로 날카로운 검이 꽂혔다. 마차가 요동치자 오스칼을 붙든 괴한의 몸이 함께 출렁거렸다.

퍽-

오스칼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오른쪽 남자의 아랫도리를 발로 걷어차 버렸다.

“컥.”

밀려드는 고통에 남자가 허리를 앞으로 숙이자, 그의 팔을 뿌리친 오스칼이 마차에 꽂힌 검 끝으로 달려들었다. 날렵하게 손에 묶인 밧줄을 끊어낸 오스칼이 허리춤의 단도를 빼 들어 괴한의 급소를 찔렀다.

콰직-

또 한 번의 파열음과 함께 부서진 나뭇조각이 흩날렸다. 객차 안으로 날아든 나무토막에 정통으로 머리를 맞은 사내 하나가 기절했다.

오스칼을 결박하던 부하들이 의식을 잃자, 발사자르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사색이 되어 눈알만 굴려댔다.

오스칼은 단도를 고쳐 쥐었다. 부서진 문짝 너머 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내달리는 레오의 모습이 보였다. 마차의 곁에 바짝 붙어 달리는 그는 무시무시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스칼이 반쯤 남아 있는 나무 문짝을 향해 힘껏 발길질했다.

우지끈-

문짝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마차 밖으로 떨어져 나가 뒤로 나동그라져 산산조각이 났다. 레오는 능숙하게 말을 움직여, 무서운 기세로 스쳐 지나가는 나무 파편을 피했다.

휙-휙-

덜컹 덜컹-

다그닥 다그닥-

마차 바퀴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세찬 바람 소리와 뒤섞여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오스칼이 얼른 레오의 위치를 확인했다.

마차는 바퀴가 크고 차체가 높아 마차 문 앞에 서는 것만으로 낭떠러지 앞에 서는 양 위압감이 느껴졌다. 발아래로 땅이 빠르게 지나가는 모습이 한눈에 보였다.

오스칼이 결심한 듯 눈을 부릅떴다.

“레오! 나 여기서 뛰어내릴 거야!”

오스칼의 외침에 레오의 눈이 커졌다. 놀란 이는 레오뿐만이 아니었다.

“너 미쳤어?”

발사자르가 오스칼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마차 앞의 마부를 향해 고함을 쳤다.

“게오르그! 전속력으로 달려!”

그러나 오스칼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차에서 뛰어내릴 자세를 취했다. 발사자르가 오스칼의 팔을 덥석 움켜쥐었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죽어!”

“너 따위한테 갇히느니, 여기서 떨어져 죽는 게 낫지!”

날카롭게 쏘아붙인 오스칼이 단검으로 제 팔을 움켜쥔 발사자르의 팔을 찔렀다.

“으윽! 이게!”

발사자르가 피가 흐르는 팔을 움켜쥐고 괴로워하는 새, 오스칼이 레오를 향해 몸을 날렸다.

“레오!”

레오는 손에 들었던 검도 집어던진 채, 그에게로 뛰어드는 오스칼을 받아냈다. 전속력으로 달리던 말이 제게 달려드는 오스칼에 놀라 거친 투레질을 해댔다.

히이힝!

말이 비명을 지르듯 울었다. 고삐까지 내려놓고 오스칼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은 레오의 무게 중심이 흔들렸다. 휘청이던 레오의 몸이 그대로 말 등에서 떨어졌다.

쿠당탕-

풍덩-

두 사람의 몸이 길가에 흐르는 개울에 처박혔다. 그 소란 중에도 레오의 팔은 오스칼의 몸을 단단히 감싸고 있었다.

“오스칼! 괜찮나!”

얕지도 깊지도 않은 개울물 덕에 크게 다친 곳 없이 몸을 지탱하고 선 레오가 품에 안은 오스칼을 다급하게 불렀다.

“푸하! 이번엔 진짜 죽는 줄 알았네.”

물을 흠뻑 뒤집어쓴 오스칼이 얼굴 위로 쏟아진 젖은 머리칼을 쓸어냈다. 그리곤 말간 눈으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비로소 한시름을 놓았던지, 숨을 몰아쉰 레오가 오스칼을 향해 걱정스러운 타박을 했다.

“달리는 마차에서 뛰어내리는 녀석이 어디 있나!”

“마차를 세울 방법이 없어 보이더라고. 그리고, 너라면 괜찮을 것 같았어. 분명 날 받아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거든.”

오스칼이 그를 향해 배시시 웃어 보였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레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분명 그가 저를 지켜주리란 생각이 들었다. 레오가 애가 타는 눈빛으로 오스칼을 바라보았다.

“넌 정말… 날 제정신으로 있게 두질 않는군.”

그가 품에 안은 오스칼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었다.

***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멋대로 일을 꾸미다니 네가 제정신인 게냐?”

발사자르는 호된 꾸지람을 듣는 중이었다. 그가 이교도 몇을 데리고 오스칼을 납치하려 했다는 보고를 받은 잔느는 한달음에 발사자르를 찾아가 불같이 화를 냈다.

“전 그 애가 그렇게 중요한 미끼인 줄 몰랐죠!”

“그러다 자칫 그 계집이 죽기라도 했으면 어쩌려고 했느냐? 애써 짜놓은 판이 다 어그러질 뻔했어!”

잔느가 차가운 눈으로 발사자르를 바라보았다.

에렌을 제대로 이용하려면, 일이 마무리될 때까진 오스칼이 무사해야 했다. 그래야 미끼를 차지하려 짐승이 움직이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이후엔 제가 그 계집을 조사하고는 죽일 생각이었다. 예가네초프의 말에 따르면 그 계집이 클로드 드보이스의 저주를 푼 자라지 않나.

발사자르가 부루퉁하게 입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 애는 세레나 자르제라고요! 일이 끝나면 그 애는 제가 가질 거예요.”

“뭐…?”

“모르셨어요? 아, 하긴 어머니는 세레나를 직접 본 적이 없구나.”

그 오스칼이란 계집이 자르제 백작가의 딸이었다고? 전혀 뜻밖의 정보였다.

잔느가 눈썹을 추켜세웠다.

“그래서 네가 그 아이를 찾았던 게냐?”

“네! 근데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딴 사람 같아요.”

“그게 무슨 뜻이냐?”

“날붙이는 보기만 해도 무서워하던 애가, 이런 검을 지니고 다니는 것도 모자라 단검으로 절 찌르기까지 했거든요.”

발사자르가 에르네스트 대공저 앞에서 부하들이 주워다 바친 오스칼의 검을 허공에서 흔들어 보였다. 잔느가 눈을 가늘게 뜨며 석연찮은 콧숨을 쉬었다.

“흠.”

“정말 다른 사람의 영혼이라도 씐 줄 알았다니까요?”

발사자르의 말에 문득 눈을 크게 뜬 잔느가 차디찬 손끝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다른 영혼이 씐 것 같다라….”

잔느의 머릿속에서 검은 숲의 버드나무에 새겨져 있던 저주가 스쳐 지나갔다.

〈이 땅의 영혼은 저주를 깰 수 없을 것이니, 저주는 영원하리라.〉

“설마….”

발사자르가 건넨 오스칼의 검을 만지작거리는 잔느의 눈이 붉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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