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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86)화 (86/138)

86화



 

가브리엘은 오스칼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로 만들어달라는 에렌의 당부에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는 못마땅하다는 듯 홱, 오스칼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스칼은 그 날카로운 눈초리에 살짝 기가 죽었다.

“좋아요. 한번 볼까요?”

가브리엘이 오스칼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하게 훑어보았다.

‘이런 멋쟁이 부인에게 몸을 맡길 줄 알았으면 더 깔끔한 옷을 입고 올걸.’

가브리엘의 예리한 시선에 오스칼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마치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눈대중으로 오스칼의 사이즈를 대강 파악한 가브리엘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행히 알랭을 통해 미리 받아둔 치수와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군요. 물론 그가 가져다준 치수는 남성용 슈트의 치수였지만요.”

“네?”

어리둥절한 얼굴의 오스칼을 뒤로하고 가브리엘이 손뼉을 두 번 치자, 사용인들이 달려왔다.

“정확한 치수를 재고, 몸 구석구석을 깨끗이 씻기도록 해요.”

삽시간에 여러 명의 사용인이 왁자지껄 오스칼의 몸에 달라붙었다.

“으어억.”

자신의 몸 여기저기를 더듬어대며 빠른 속도로 치수를 재는 재단사의 손길에 오스칼이 낮은 비명을 질렀다. 그 모습에 가브리엘이 이마를 잔뜩 구겼다.

“부디 제 드레스를 입고 그런 흉측한 괴성은 지르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전 제 드레스를 아무에게나 팔지 않는답니다.”

“네에….”

똑 부러지는 목소리에 주눅이 든 오스칼이 조그맣게 속삭였다.

오스칼의 정확한 신체 치수를 적은 종이가 가브리엘의 손에 넘어가고, 그녀는 서둘러 가봉을 마무리하기 위해 방을 떠났다.

그러자 대공저의 사용인들이 우두커니 서 있던 오스칼의 손을 잡아끌었다.

하녀 셋의 손에 이끌려 욕실로 안내된 오스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알몸이 되었다.

부끄러워할 새도 없이, 오스칼의 몸은 향유를 떨어뜨린 따끈한 물에 폭 담가졌다. 하녀들은 오스칼의 몸을 구석구석 세심하게 문질러 닦았다.

처음엔 당황해 어쩔 줄 몰랐으나, 오스칼은 곧 무의미한 저항을 멈추고 그들의 손길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이런 호사를 언제 누리겠나 싶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반들반들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욕조는 고급스러웠고, 금으로 칠해진 수전과 거울이 번쩍거렸다.

‘이제야 로판 빙의물 같네.’

몸을 은은하게 감싸는 목욕물의 달콤한 향기를 맡으며 오스칼이 피식 웃었다.

빙의 후 ‘아가씨 깨어나셨군요!’는 경험하지 못했지만, ‘이제 씻겨드릴게요.’ 정도는 〈여스칼〉 세계관에서도 허락되는 모양이었다.

물론 이것 역시 악당의 피를 얻기 위한 수단이라는 게 망한 로판이었던 〈여스칼〉 세계관답달까.

어느새 오스칼을 다 씻긴 사용인들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오스칼이 욕조에서 정신없이 일어나자, 하녀들은 보드라운 천으로 몸의 물기를 닦아주고는 분홍색 실크 가운을 입혔다.

오스칼의 흰 살결은 이국에서 들여온 값비싼 향유를 머금어 한결 뽀얗고 향기로워졌다. 생경한 기분에 오스칼이 팔목에 대고 코를 킁킁대고 있자 한 하녀가 얼른 그녀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하녀의 손길을 따라 오스칼은 폭신한 스툴 의자에 앉았다. 상아를 조각해 만든 화장대는 온갖 보석이 박혀 반짝거렸다. 사용인들은 일사불란하게 파트를 나누어 제 일을 시작했다.

한 사람은 얼굴에 영양분 가득한 크림을 바르고, 한 사람은 머리를 말리고, 다른 두 사람은 오스칼의 손발을 꼼꼼하게 손질했다.

피곤에 절어 푸석했던 피부는 생기 있게 살아나고, 검을 쥐어 부르텄던 손과 투박한 손톱이 어느새 깔끔하게 정돈되었다.

어느새 옆방에서 사용인들이 은으로 만든 드레스 걸이를 어깨 위로 높이 들고 등장했다. 소중한 것을 모시는 듯한 손길이었다.

“말도 안 돼….”

문득 시선을 돌려 하녀의 손에 들린 드레스를 확인한 오스칼이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금사와 은사로 짠 정교한 자수가 수놓아진 연한 라일락 빛 드레스가 찬란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고급스러운 패턴의 레이스는 꼭 필요한 부분에만 섬세하게 장식되어 있었고, 펼쳐지듯 풍성한 치맛단에는 자잘한 보석이 모래알처럼 촘촘히 박혀 반짝거렸다.

“제 일생의 역작입니다. 장차 왕비 전하께나 입혀드릴 수 있을까 했더니, 이름도 모를 분에게 입히게 되었군요.”

드레스 뒤에서 등장한 가브리엘이 새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러게요. 제가 감히 이렇게 아름다운 옷을 입어도 될지….”

오스칼이 가히 예술작품과도 같은 드레스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가브리엘이 안경을 길쭉한 손가락으로 고쳐 올렸다.

“전 대공 전하와 계약을 했고, 계약에 따라 당신에게 이걸 입힐 의무가 있어요.”

야무진 가브리엘의 손짓에 사용인들이 우르르 오스칼에게 달려들어 드레스를 입혔다. 드레스를 입은 오스칼의 모습을 꼼꼼히 살피며 가브리엘은 몇 가지 세밀한 부분을 수정할 것을 지시했다.

다시 드레스가 벗겨지고, 가브리엘의 지시에 따라 옷이 수선되는 동안, 여러 명의 전문가가 오스칼에게 달라붙었다.

미용사는 자신의 커다란 가방에서 오스칼의 머리카락 색과 가장 비슷한 색의 가발을 꺼내 오스칼의 머리에 빈틈없이 붙이기 시작했다.

능숙한 손길로 컬을 만들고, 정교한 매듭으로 머리카락을 땋아 틀어 올렸다. 마지막으로 드레스 색과 어울리는 커다란 보석이 달린 머리 장식을 달았다.

분장사는 분주하게 오스칼의 청순한 피부와 투명한 에메랄드색 눈동자가 돋보일 수 있도록 화장품의 색을 조합했다.

여러 가지 색이 섞인 팔레트를 뒤져 마침내 만족할 만한 색을 찾은 분장사는 오스칼의 얼굴에 고운 화장을 얹었다.

조금 뒤, 솜씨 좋은 재단사들이 재빠르게 수선한 옷이 파우더룸으로 들어왔다. 몸단장을 끝낸 오스칼이 드레스를 입자, 구두 디자이너가 커다란 가방을 메고 등장했다.

보석을 잔뜩 꿰맨 반짝거리는 흰색 구두가 의자에 앉은 오스칼의 발에 신겨졌다. 구두에서 어찌나 빛이 나던지 꼭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를 보는 것 같았다.

자신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알아챌 틈도 없이 휘몰아치던 몸단장이 끝났다. 정말 요정 할머니라도 다녀간 듯, 마법 같은 시간이었다.

마침내 모든 준비를 끝마친 오스칼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을 내딛자 파우더룸 밖으로 반짝이는 구두코가 빼꼼 나왔다.

“어디 한번 볼까요?”

오스칼의 치장이 다 끝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가브리엘이 소파에 앉았던 몸을 일으켰다. 가브리엘의 목소리에 오스칼은 부끄러운 듯 파우더룸에서 걸어 나와 그녀의 앞에 섰다.

“좀… 어색한가요?”

오스칼의 모습을 보기 위해 흐려진 안경을 닦던 가브리엘의 손에서 실크 손수건이 흘러내렸다.

가브리엘은 손수건을 주울 생각도 못 하고 자신의 안경을 얼른 고쳐 썼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정말…. 기대 이상이군요. 이런 결과물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녀의 깐깐한 목소리가 어느새 한 옥타브 높아져 있었다. 오스칼의 시중을 들던 하녀들 역시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소곤거렸다.

“정말 아까 왔던 선머슴 같던 사람이 맞아?”

“같은 사람이란 걸 믿을 수가 없는데?”

주위의 반응에 오스칼이 눈을 들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아.”

오스칼이 짧게 탄성을 질렀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마드모아젤이 눈앞에 서 있었다. 마치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가져오신 소지품은 이쪽에 따로 챙겨 두겠습니다.”

한 하녀가 오스칼이 입고 온 옷과 소지품을 곱게 포개어 윤이 나는 은색 트레이 위에 올려두었다.

넋이 나가 제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오스칼이 정신을 차리고 트레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반듯하게 접힌 옷 위의 반짝이는 보석에 시선이 닿았다.

“혹시, 이 펜던트를 해도 될까요?”

가브리엘이 눈을 가늘게 뜨고 오스칼이 건넨 뤼미에르를 살폈다. 남루한 평민의 소지품이라기엔 상당히 귀족적인 물건이었다. 마치 어느 공작가에서나 내려올 법한 보석.

“흠. 꽤 고급스러운 보석이군요. 세공도 훌륭하고.”

가브리엘이 반짝이는 줄에 펜던트를 꿰어 오스칼의 목에 대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이 목걸이를 착용하도록 해요.”

“감사합니다.”

오스칼의 표정이 밝아졌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낯설었지만, 뤼미에르는 그녀가 여전히 오스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주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울리고, 손님방을 찾아온 하인이 방 안의 하녀와 귀엣말을 주고받았다. 하인이 빠른 걸음으로 복도 끝으로 향했다. 그가 큼지막한 방문을 두드리자, 허리를 빳빳하게 세운 알랭이 문을 열었다.

하인이 뭐라고 속닥거리자 알랭이 고개를 한번 까딱인 후 에렌에게 다가갔다.

검은 옷감에 화려한 금사로 백합 문양을 수놓은 연미복을 입은 에렌이 하인들의 도움을 받아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었다.

백금으로 만든 단추가 그의 손끝에서 반짝였다. 긴장한 듯 재킷 소매를 잠그는 에렌의 손가락이 살짝 떨렸다.

구불거리는 벌꿀 색 금발을 격식을 차려 매끈히 넘겨 올린 그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빛이 났다. 살짝 긴장한 탓인지 붉은 입술을 지그시 다문 에렌의 얼굴은 마치 신화 속 인물을 조각해 놓은 듯했다.

그 모습에 알랭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기저귀를 갈아가며 키웠던,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잘생긴 내 새끼, 아니 주인님이 안달을 내는 오스칼이란 자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알랭이 씁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전하, 오스칼 님은 준비가 다 끝났답니다.”

“마드모아젤을 에스코트하러 갈 시간이군.”

낮게 갈라지는 음성에서 초조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들뜬 얼굴을 하고서 기다렸다는 듯 걸음을 옮겼다.

“전하께서 그렇게 애타게 찾으시던 살롱의 마드모아젤이 정말 오스칼 님이셨습니까? 솔직히 상상도 못 했습니다.”

오스칼을 향해 빠른 걸음을 내딛는 에렌의 곁에서 알랭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나마 오스칼이 남자가 아니란 것만으로 다행이라 해야 할지.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별로 위안이 되질 않았다.

왕국 최고의 신랑감에게 선머슴 같은 초라한 아가씨라니!

알랭이 착잡한 듯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알랭, 오스칼이 어떻게 변했을지 기대되지 않아?”

에렌의 푸른 눈동자에 기대감이 서렸다. 알랭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게스트룸 앞의 하인에게 눈짓을 건넸다. 그래 봐야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꾀죄죄한 여인에 불과한데.

“주인님,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실망만 커집니….”

에렌에게 문을 열어주던 알랭의 손이 그대로 허공에 멎었다. 에렌은 문을 열어주다 말고 우뚝 선 알랭을 의아하게 흘끔대고는, 그를 지나쳐 방안에 들어섰다.

“준비가 다 끝났대서 에스코트하러 왔…어.”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았다.

눈 앞에 펼쳐진 아득한 광경에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에렌이 정신없이 오스칼을 바라보았다.

“오스칼….”

잔잔한 호수에 반짝이는 보석이라도 던진 듯 에렌의 물빛 눈동자가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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