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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83)화 (83/138)

83화



 

오스칼이 당황한 눈으로 레오를 올려다보았다. 평정심을 잃은 그의 모습이 낯설었다. 그의 손안에서 오스칼의 가느다란 어깨가 바들바들 떨렸다. 그 떨림에 흠칫, 어깨를 붙든 커다란 손에서 힘이 빠졌다.

파랗게 질린 오스칼을 본 레오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오스칼에게 제 감정을 내보이지 않으리라, 마음에 짐을 지우지 않으리라 수십 번 다짐했건만. 차마 주체하지 못하고 넘쳐흐른 그의 감정은 결국 오스칼을 몰아붙이고 말았다.

스르르, 놓치듯 오스칼의 어깨에서 손을 떼어 낸 레오가 눈을 질끈 감았다. 자제력을 잃은 스스로가 경멸스러워 입술을 짓씹었다. 참아내듯 주먹을 말아 쥔 그가 곧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쿵-

멀리서 레오의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달칵거리는 문빗장의 소리와 함께 오스칼이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곳에서 소중한 존재를 만들어선 안 돼. 곧 현실로 돌아가야 하니까. 난 이곳에 속한 등장인물이 아니야.’

오스칼은 내내 스스로 암시를 걸어왔다. 이 세계를 떠난 뒤에, 이곳에 남겨두게 될 감정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해 보아도, 그에게 향하는 마음을 멈출 수 없었다.

레오와 함께 있을 때 두근대던 심장, 그를 떠올리면 입가에 번지던 미소, 로잘린과 함께 있는 그를 보며 가라앉던 기분.

결국, 오스칼은 지금껏 애써 외면해 온 감정들을 마주했다.

‘나는… 레오를 좋아해.’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바닥에 웅크린 오스칼이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너는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가,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건가.”

정곡을 찌르는 레오의 말이 마음을 할퀴었다.

레오의 해피엔딩을 돕고 소설을 탈출하겠다는 계획이 오스칼을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

레오의 곁에 머물며 그를 도울수록 그에 대한 마음은 깊어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와의 이별이 가까워졌다.

그의 행복을 누구보다도 바라면서도, 행복해진 그를 두고 떠나야 한다는 두려움이 오스칼을 움츠러들게 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애썼던 모든 일이, 결국 좋아하는 사람을 떠나는 방법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은 못 견디게 잔인한 일이었다.

그래서 오스칼은 레오에 대한 제 감정을 부정했다. 그래야 이곳을 떠날 때 상처받지 않을 테니까.

오스칼이 젖은 얼굴을 무릎 사이에 묻었다. 고개를 떨구자 목 언저리에서 달랑거리는 녹색의 보석이 반짝거렸다. 순식간에 머리가 띵해졌다.

‘레오는 줄곧 내게 진심을 보여주었는데. 난 한 번도 진실하지 못했어.’

제게 화를 내던 레오는 상처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상처받기 싫다고, 그에게 상처를 주다니.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오스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빠른 걸음으로 정신없이 계단을 오른 그녀는 레오의 방문 앞에 섰다. 심장이 요란하게 뛰었다. 가쁜 숨을 고른 오스칼이 떨리는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레오. 정말 미안해. 내가… 나빴어.”

오스칼이 안간힘을 써, 떨리는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방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모든 게 혼란스러워서 그랬어. 내가 바보 같아서…. 용기가 없어서.”

오스칼이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바싹 마른 입술이 버석거렸다. 오스칼이 애처로운 눈으로 굳게 닫힌 레오의 방문을 바라보았다.

“네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이상한 소릴 해서 정말, 미안해. 네가 내게 화가 난 것도 당연해. 그러니까 나와서 내 말을 좀 들어주면 안 될까?”

방문 뒤에 선 레오가 머리를 헤집었다. 그는 후회하고 있었다.

제 감정을 강요하지 않기로 다짐해 놓고, 제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오스칼이 서운해 세차게 몰아붙여 버린 자신이 한심했다.

그는 차마 오스칼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복잡한 표정을 한 채 우두커니 섰다. 이대로 오스칼의 얼굴을 볼 낯이 없었다.

문을 사이에 둔 채, 적막만이 흘렀다.

오스칼은 대답 없는 문을 막막하게 바라보았다. 다짜고짜 또 로잘린 얘기를 꺼낸 제게 질릴 만도 했다.

레오는 저와는 조금도 말을 섞고 싶은 생각이 없는 듯 제 말을 무시했다. 지금껏 화를 내도 이렇게까지 저를 무시한 적은 없었는데,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오스칼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갈게, 푹 쉬어. 만약…. 네가 앞으로 계속 날 보고 싶지 않다고 하면, 내가… 떠날…….”

모든 게 다 제 잘못인 것 같아 목구멍에서 울컥 울음이 올라왔다. 오스칼이 간신히 목 언저리의 열기를 삼켰다. 푹 숙인 오스칼의 이마가 문에 콩, 닿았다.

달칵-

오스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문이 열렸다. 문에 이마를 기대고 서 있던 오스칼의 몸이 휘청거렸다. 레오의 가슴에 이마를 찧게 된 오스칼이 깜짝 놀라 몸을 가누었다.

“가긴 어딜 간다고 그래?”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조금 전처럼 차갑진 않았다.

“레오…?”

오스칼이 눈을 들어 올려 레오를 바라보았다. 그는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분명 전에 네 입으로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나와 약속한 것 같은데.”

“그건….”

그땐 그랬었지만, 이번에야말로 그가 자신에게 화가 났으리라 생각했다. 오스칼이 눈을 내리깔았다. 레오는 체념한 듯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아깐…. 기사단원으로 네가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오히려 내가 예민하게 반응해 널 곤란하게 한 것 같군. 미안하다.”

“아냐! 잘못한 건 나야. 정말… 미안해.”

잘못한 건 저인데, 오히려 그가 사과했다. 자책감에 온통 얼굴이 붉어진 오스칼이 고개를 떨구었다. 레오가 제 가슴께로 숙어진 오스칼의 정수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그 작은 머리통으로 네가 내린 결론이 그건가? 내가 화가 난 것 같으니 넌 이 집을 떠나겠다?”

“아, 아니야! 꼭 그런 건 아니고…. 네가 날 정말 싫어하게 되었을까 봐….”

꾸짖는 듯한 레오의 목소리에 오스칼이 고개를 퍼뜩 들어 올려 세차게 도리질했다. 삐뚜름하게 서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레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미, 미안해. 이제부터 잘할게.”

오스칼이 주눅이 든 표정으로 레오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 모습에 레오는 입술을 힘주어 꾹 다물었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았다. 혼이 나는 어린애도 아니고, 다짜고짜 뭘 잘하겠다는 건지.

눈치를 살피며 동그란 눈을 도로록 굴리는 게 꼭 새끼토끼 같았다. 레오의 눈에 수확제에서 달았던 토끼 귀가 오스칼의 머리 위로 둥실 떠 올랐다. 레오가 씰룩거리는 입가를 간신히 억눌렀다.

조금 전까지 격류에 휘말리듯 요동치던 서운함과 착잡함은 어디로 갔는지, 오스칼의 얼굴을 보자마자 또 이 모양이었다.

스스로도 미친놈 같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제라드 녀석이 사랑 앞에서는 더 좋아하는 사람이 약자라 하지 않았나.

오스칼을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아낸 레오는, 그 대신 손을 올려 오스칼의 머리통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내가 널 싫어할 리가 없잖아.”

“응….”

오스칼이 고개를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따뜻한 목소리에 볼이 발갛게 물들었다.

“떠난다는 말도 하지 말고.”

오스칼이 대답 대신 레오의 눈을 바라보며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촉촉하고 여린 눈매가 그를 응시하자, 레오의 등이 쭈뼛 섰다.

‘이 녀석, 설마 다른 사람들도 이런 눈으로 바라보는 건 아니겠지?’

그는 혹시라도 이성을 잃고 오스칼에게 손을 뻗게 돼버릴까 두려워 제 가슴 앞으로 단단히 팔짱을 꼈다.

“저…. 있잖아…. 레오…. 할 말이 있는데….”

홍조 띤 얼굴로 내뱉는 물기 어린 목소리에, 레오가 흔들거리는 이성을 가까스로 바로잡았다. 한번 터져 나온 감정은 쉽게 널을 뛰었다. 이대로 계속 있다간 자신이 이상해질 것 같았다.

“그…. 지금은 시간도 늦었으니 다음에 하지.”

그렇게 대답하는 레오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팔짱을 낀 채 감정을 억누르는 듯, 눈매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역시 지금 당장은 이야기조차 나누고 싶지 않을 정도로 화가 나긴 한 모양이었다.

“아…. 응, 그럴래?”

오스칼이 아쉬움을 감춘 채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는 오스칼을 피하기라도 하듯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방으로 돌아온 오스칼은 베갯잇에 얼굴을 묻었다. 도통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잘됐어. 내일 계획한 일을 무사히 끝내고 레오에게 전부 고백하면 돼. 그편이 더 좋을 거야.’

어쩌면 레오가 자신이 그를 속여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오늘처럼 곁에 있으라고 말해 주지 않을까?

그는 수확제의 밤에도 제게 약속했었다. 혹시 제게 실망하는 일이 있더라도 사정이 있었다고 이해해 주기로.

그러나 복잡한 마음이 어지럽게 맴돌아 자꾸만 몸을 뒤척였다. 그때 방안에 바람이 불었다.

“어쩐 일로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잠을 못 이루고 계실까.”

은빛 바람에 실려 온 매력적인 저음이 귓가에 울렸다. 귓가에서 흩어지는 숨결에 오스칼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신…!”

“그동안 내가 보고 싶진 않았어?”

어두운 방 안에 환한 은빛이 쏟아져 내렸다. 침대 맡에 기대어 선 남자는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의 클로드가 오스칼을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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