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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82)화 (82/138)

82화



 

“뭐……. 뭐?”

에렌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처음에 그는 뭔가를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오스칼이 돌아가거든 오늘 아침 해가 어느 방향에서 떴는지 알랭에게 물어보리라 다짐한 그가 눈을 깜빡였다.

“전하께서 발사자르의 무도회에 초대받았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맞아. 사실 무도회엔 불참할까 생각 중이었어. 이제 와서 내가 그들의 면을 세워줄 이유는 없으니까. 물론 그렇게 되면 사교계는 또 이러쿵저러쿵 한바탕 난리가 나겠지만.”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한 에렌이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래서, 제가 늦은 시간에 실례를 무릅쓰고 전하께 부탁드리려고 찾아온 거예요. 발사자르의 무도회는 샤무아의 계약서를 확인할 절호의 기회가 될 것 같거든요.”

“계약자의 피가 필요하다는 그 증거 말인가?”

에렌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오스칼이 긍정하듯 똘망똘망한 눈으로 에렌을 바라보았다.

“증거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계약자나 직계후손의 피가 필요해요. 아르투아 대공저에서 열리는 파티라면 아르투아와 발사자르가 참석하겠죠. 무도회라면 호위가 따라다니지도 않을 테니, 두 사람의 피를 얻기에 제격이에요.”

에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장한 자가 있으면 파티의 분위기를 망친다는 이유로, 초대장으로 참석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나면 대개 파티장 내부의 경비는 허술한 편이었다.

“그래서…. 그대가 내 파트너로 무도회에 참석해서 둘 중 한 사람의 피를 얻겠다?”

“네.”

오스칼이 단호한 목소리를 냈다. 예상치도 못했던 제안에 에렌이 헛웃음을 흘렸다.

“파트너라면…. 그대가 여장, 아니 그건 그대에게 적절한 표현이 아니지. 아무튼, 마드모아젤로 참석하겠다는 거야?”

“그럼 제가 뭐로 참석하겠어요? 대공 전하의 기사…?”

오스칼이 눈을 찡그리고 에렌을 올려다보자, 그 모습이 귀여워 에렌이 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것도 일리가 있긴 하네.”

“전 진지한데요.”

저를 놀린다고 생각한 오스칼이 부루퉁한 목소리를 냈다. 에렌이 겨우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하게 응수했다.

“미안해. 비웃거나 한 건 아니었어. 생각만 해도 좋아서. 그대와 함께 파티를 참석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거든.”

“발사자르가 대공 전하를 초대해서 다행이에요. 껄끄러워 초대하지 않을 줄 알았더니.”

“내가 이래 봬도 사교계의 왕자라 불리거든. 날 초대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나면 파티의 명성이 크게 떨어져.”

에렌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간 한량 행세를 한 보람이 있는 순간이었다.

“절 데려가 주시면, 제가 두 사람 중 하나에게 접근해서 어떻게든 피를 내 볼게요.”

오스칼이 다짐하듯 비장한 표정을 했다. 문득 에렌이 인상을 찌푸렸다.

“잠깐. 접근한다니. 설마…. 그자들을 상대로 그대가 미인계라도 쓰겠다는 거야?”

에렌의 노골적인 표현에 오스칼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미, 미인계라니요?! 뭐, 그,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여인의 모습이라면 그들도 경계심을 풀지 않겠어요?”

에렌의 표정이 잔뜩 심각해졌다.

“내 파트너로 참석한 그대가 다른 놈한테 접근하는 걸 내 눈으로 보란 거야?”

“그놈에게 접근하려고 전하의 파트너로 참석하는 건데요?”

오스칼의 대꾸에 에렌이 팔짱을 낀 채 입술을 내밀었다. 그의 내면에서 여러 감정이 싸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골몰하던 그가 마침내 못마땅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절대 무리해선 안 돼. 그게 조건이야. 위험해지면 무조건 도망치거나, 내게 도움을 요청해. 그것도 아니면…. 그냥 베어버리는 거야. 그대가 잘하는 거잖아.”

“무도회장에서 왕족 시해죄로 즉결 처형당하고 싶진 않으니…. 베어버리는 것만 빼고, 명심할게요.”

에렌의 터무니없는 조언에 오스칼이 푸스스 웃었다.

아르투아 대공저에서 아르투아와 그 아들을 베었다간 오히려 더 위험해질 것 같은데.

그러나 에렌은 진지한 낯빛으로 다시 한번 당부했다.

“좋아. 약속은 꼭 지켜.”

“그럴게요. 그리고 전하께 한 가지 더 부탁드리고 싶은 건…. 음…. 전하도 아시겠지만 제가 혼자서는 무도회 참석을 준비할 상황이 아니라서요….”

“그대를 마드모아젤로 변신시켜 줄 요정 할머니가 필요하다는 거지? 지금부터 준비하기엔 시간이 빠듯하겠지만 걱정 마. 전에도 말했다시피 난 평범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의 아름다운 눈이 찡긋 윙크를 건넸다. 오스칼이 안심한 듯 숨을 내쉬고,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았다.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와 전하가 그 무도회에 참석하는 건, 절 아는 사람들…. 그러니까, 기사단 사람들에겐 꼭 비밀로 해주세요.”

“그러지.”

쭈뼛거리며 말하는 오스칼을 보며 에렌이 씨익 웃었다. 그도 바라던 바였다. 오스칼의 진짜 모습은 그 혼자만 알면 충분했다.

***

어느덧 시간은 빠르게 흘러, 제라드의 후원회 날이자 발사자르의 무도회를 하루 앞둔 저녁이 되었다. 해질녘인데도 불구하고 뤼미에르 기사단은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작가님. 신작 준비되셨죠?”

“네! 준비 완료했습니다.”

“마티스. 살롱 대관도 완료됐고요?”

“예, 영애.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스칼, 그때 말했던 ‘굿즈’라는 것도 준비했나요?”

“그럼요. 후원금 액수에 걸맞은 엄청난 걸 준비했지요.”

오스칼이 소설 속 등장인물을 본뜬 솜뭉치들과 소설의 삽화가 그려진 엽서를 들어 올렸다.

후원회를 위한 준비가 완벽해 보이자 로잘린이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렸다. 로잘린은 단 몇 주일 만에 기사단을 휘어잡고 능수능란하게 업무를 지휘하고 있었다.

“아주 좋아요. 마지막으로 레오폴드 경. 투구는 다 닦으셨나요?”

“…시내에서 영애의 호위를 하는 정도라면, 굳이 투구까지 안 써도 됩니다.”

레오가 못마땅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두 사람은 몇 주 내내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로잘린은 레오의 불평 어린 목소리를 가볍게 무시하고 후원회를 준비 중인 청년들을 향해 손바닥을 두어 번 맞부딪쳐 이목을 집중시켰다.

“자자, 이쯤 되면 내일 제라드 작가님의 후원회 준비는 완벽한 것 같군요.”

“로즈, 전에 말했던 것처럼 내일 고향에서 아주 친했던 친구가 시에나에 방문한다고 해서…. 후원회에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해요.”

오스칼이 발사자르의 무도회에 참석하는 일은 철저히 비밀이었다. 그녀는 기사단 청년들이 후원회를 도우러 간 틈을 타, 무도회 준비를 위해 에렌의 저택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로잘린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산뜻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고향 친구인데 당연히 만나야죠. 그런데…. 그 친구는 남자인가요, 여자인가요?”

로잘린이 어딘가 은근한 질문을 던졌다. 덩달아 레오의 귀가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아…. 친구요…. 하하하…. 나, 남자겠지요…?”

“아, 그러시구나. 친구분이 여자라면 다른 데서 만날 필요 없이 제라드 작가님의 후원회에 함께 방문하시는 건 어떠냐는 말씀을 드리려 했죠.”

로잘린이 생긋 웃었다. 물론 오스칼이 친구랍시고 낯선 여인을 후원회에 데려갔다간 뼈도 못 추리게 될 거라고 말하는 듯한 미소였다. 어쩐지 오스칼은 등골이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준비가 다 됐으면 이쯤 하고 다들 돌아가지.”

어둑해진 창밖을 확인한 레오가 모두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어느덧 시끌벅적했던 기사단은 레오와 오스칼만 남아 고요해졌다. 겨우 한숨을 돌린 오스칼이 응접실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올리고 턱을 괸 채 물끄러미 레오를 바라보았다.

“역시 로즈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

“뭐가.”

레오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오스칼이 자랑스러운 친구를 소개하는 것처럼 말을 이었다.

“몇 주일 만에 우리 기사단의 문제를 반쯤은 해결해 줬잖아. 이젠 나보다 기사단 사정을 더 잘 알지도 모르겠어. 단원들도 로즈를 꽤 잘 따르는 것 같고.”

“뭐. 그런 것 같군.”

레오가 담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뜻밖이라는 듯 턱에 괸 손을 푼 오스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웬일이야? 네가 순순히 로즈를 칭찬하다니?”

레오가 그 정도로 놀랄 일이냐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오스칼에게 고갯짓을 보냈다.

“로잘린 영애가 대단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영애가 기사단을 위해 한 일들은 모두 단장으로서 깊이 감사할 일이지.”

그 말에 오스칼이 맞잡은 손을 테이블 위에서 꼼지락거렸다.

내일 무도회에서의 일이 잘되면 칼릭스 공작가가 반역 누명을 벗고, 아르투아의 죄가 밝혀진다. 물론 칼릭스 공작가의 복권을 위한 재판이 열리고, 아르투아와 잔느를 제대로 처벌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건 굳이 오스칼이 나설 일은 아니었다.

즉, 외전에서 주인공을 위해 그녀가 할 일은 모두 끝났단 거다. 어쩌면, 곧 이 세계를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오스칼이 눈을 내리깔고, 테이블 위에 올린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음…. 있잖아…. 넌 혹시 로즈를 어떻게 생각해?”

로잘린은 북부 영지를 규합해 하나의 의견을 끌어낼 정도로 정치력이 뛰어났다. 또한, 그녀는 두말할 것 없이 훌륭한 경영자였다. 기사단의 청년들도 로잘린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그녀라면 공작가를 되찾은 레오에게 큰 힘이 될 사람이었다.

그 질문에 담긴 의미를 알아챈 레오가 눈을 사납게 치켜떴다.

“또 지난번처럼 황당한 소릴 늘어놓을 거라면 그만둬.”

“사실 이곳에서 너와 로즈만큼 잘 어울리는 한 쌍도 없을 거야.”

오스칼이 눈을 내리깔았다.

로잘린과 레오의 인연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있었다. 노이어에서 로잘린이 오스칼에게 무도회의 파트너 신청을 했지만, 결국 자연스럽게 레오가 로잘린의 파트너가 됐다.

이번엔 발사자르의 무도회와 제라드의 후원회가 겹쳤다. 오스칼이 증거를 찾기 위해 무도회에 참석하게 되자, 후원회에서 로잘린의 호위는 레오가 맡게 되어버렸다.

이 모든 게 과연 우연일까?

이 세계에서 운명은 두 사람을 집요하게 엮고 있었다. 어쩌면 이 외전이 원하는 결말일지도 몰랐다.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 이어지는 것. 그게 소설의 법칙이다.

“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화가 난 목소리였다. 오스칼이 레오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며 말을 이었다.

“내 말은…. 앞으로 로잘린 영애와 네가 좋은 감정으로 미래를 그린다면…. 서로 큰 힘이….”

오스칼은 자신의 뻔뻔함에 절망했다. 스스로 내뱉은 말인데도, 가슴이 저릿했다.

끼이익- 쾅!

오스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레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오스칼이 놀란 눈으로 레오를 올려다보았다.

“넌 지금 네가 얼마나 무례한 말을 하는지 알고 있는 건가?”

“아니…. 난….”

“넌 나와 로잘린 영애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군!”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가,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건가.”

심장이 무언가에 찔린 듯했다. 오스칼이 주춤주춤 몸을 일으키며 힘겹게 변명했다.

“그저 난…. 너와 기사단에는 로즈가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필요하다고? 네가 언제부터 사람을 필요에 따라 구별했지?”

격양된 레오의 목소리가 오스칼의 귓가에서 윙윙대며 울렸다. 심장이 두근거려 현기증이 났다.

“레오, 내 뜻은 그런 게 아니….”

“그래, 좋아. 네가 바라는 대로 정말 내게 필요한 사람이 누군지 나눠볼까?”

그의 눈빛과 목소리가 무섭도록 차가웠다. 어느새 레오는 오스칼에게 바짝 다가서 있었다. 그를 휘감고 있는 묘한 열기에 오스칼이 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레오는 제게서 물러나는 오스칼의 어깨를 와락 잡아당겨 쥐었다. 오스칼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이 거세게 일렁였다.

레오가 거친 숨을 내뱉듯 말을 뱉었다.

“내게 필요한 건 로잘린이 아니라 너야.”

그 말에 오스칼이 숨을 멈추었다. 강렬한 눈빛이 오스칼을 찌르듯 응시했다.

“그럼, 넌 어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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