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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79)화 (79/138)

79화



 

오스칼이 눈에 보이지 않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레오가 허둥지둥 주위를 둘러보았다.

몇 걸음 뒤, 오스칼이 돼지 뒷다리, 구운 통닭, 소시지 따위를 파는 노점 앞에 붙어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가슴을 쓸어내린 레오가 비로소 픽 웃었다.

“사줄까?”

오스칼의 곁으로 다가간 레오가 웃음기 어린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오스칼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사실 평생 꼭 한번 해보고 싶은 거였어.”

노점에서 꼬치를 사 먹는 것이 평생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니. 소박하기도 했다.

둘은 각자 양고기와 닭고기 꼬치구이를 하나씩 손에 들었다. 레오의 커다란 손에 쥐어진 귀여운 양꼬치의 자태에 오스칼이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오스칼이 웃는 게 좋아서 레오도 함께 웃었다.

오스칼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으로 닭고기를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자니 열심히 입을 우물거리고 있는 오스칼의 양 볼이 부풀었다 줄어들었다 귀엽게 움직였다.

분명 평범한 음식인데, 오스칼이 먹으니까 어쩐지 특별하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길쭉한 나무 꼬챙이만 오스칼의 손에 남았다. 레오는 자신의 손에 들린, 고기가 여전히 두툼히 꽂혀있는 꼬치를 자연스럽게 오스칼과 바꾸어 들었다.

어느덧 축제가 무르익고 있었다. 빠른 박자로 연주되고 있는 흥겨운 음악 소리에, 꼬치구이로 든든해진 배 속이 기분 좋게 울렸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먹고 마시며 시끌벅적 떠들어댔다.

때마침, 축제의 연극이 막 끝났는지, 공연장 앞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순식간에 광장이 붐비기 시작했다.

“어- 어-”

넘치는 인파에 오스칼이 휩쓸렸다. 레오가 재빨리 오스칼의 손을 잡았다. 오가는 사람들에 치여 비틀거리는 오스칼을 제 쪽으로 당기자, 두 사람의 거리가 훅 가까워졌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꾸역꾸역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어느 틈에 오스칼은 레오의 품 안에 들어와 있었다. 두 사람은 오도 가도 못 한 채, 거리가 한산해질 때까지 그대로 한참을 기다렸다. 이렇게 가까이 닿아 있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유독 오늘은 좀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께에 닿은 오스칼의 숨결에 레오의 귀가 붉어지고, 코를 간질이는 레오의 달큰한 체향에 오스칼의 심장이 뛰었다. 맞닿은 체온이 뜨겁게 느껴졌다. 광장의 인파가 흩어지고, 어색함이 두 사람을 휘감았다. 쭈뼛쭈뼛 몸은 떼어냈지만, 여전히 손은 맞잡은 채였다.

“이, 이런 곳에서 떨어지면 찾을 수가 없으니까.”

레오가 괜한 핑계를 대며 오스칼의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손바닥에서 심장이 뛰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굳은살이 잔뜩 잡힌 손바닥이 저릿저릿했다.

두 사람은 그 상태로 정처 없이 한참을 걸었다. 머릿속에서는 꺼내고 싶은 말이 윙윙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혀끝에서 차마 내뱉지 못하고 삼켰다. 이 순간이 마치 꿈처럼 몽롱했다.

어느덧, 곧 불꽃놀이가 시작될 것이라는 안내가 광장 안에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은 메인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종탑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모두 불꽃놀이를 자세히 보기 위해 메인 광장으로 몰려간 모양인지 인적이 드물었다.

“으아, 꽤 오래 걸었나 봐. 다리 아프다.”

오스칼이 종탑 앞의 야트막한 계단에 털썩 주저앉아 다리를 쭉 뻗고는, 손으로 허벅지를 통통 두들기며 앓는 소리를 냈다. 늦은 오후부터 깊은 밤이 될 때까지 족히 몇 시간은 돌아다닌 셈이었다.

“돌아갈 땐 업어줄까?”

“으하하. 그게 뭐야!”

레오의 엉뚱한 말에 오스칼이 킬킬거리며 웃어댔다.

“농담 아닌데….”

그의 말을 단박에 농담으로 치부해버리는 오스칼을 향해 레오가 말끝을 흐렸다.

피융- 피융- 펑펑-

이윽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형형색색의 불꽃이 하나둘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땅에서 쏘아 올린 불꽃이 캄캄한 하늘에서 빨강, 노랑, 초록빛을 내며 터졌다.

“우와. 레오 저것 봐! 진짜 예쁘다.”

“응. 예쁘다.”

레오는 불꽃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환하게 웃는 오스칼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흘러넘치는 이 모든 감정을 너에게 전할 순 없지만, 이 정도는 허락되지 않을까?

“오스칼.”

제 이름을 부르는 고요한 목소리에 오스칼이 고개를 돌렸다. 다양한 색의 불꽃이 찬란하게 밤하늘을 수놓을 때마다, 레오의 얼굴이 노랗게, 파랗게, 그리고 빨갛게 물들었다.

“네게…. 주고 싶은 게 있다.”

폭죽 소리에 그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지 않았지만, 왠지 잘게 떨리는 것 같았다.

“뭔데?”

“손을 내밀어 봐.”

오스칼이 궁금하다는 눈으로 손바닥을 레오 앞으로 내밀었다. 그가 목에서 무언가를 풀어내 오스칼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아…!”

자신의 손바닥 위에 놓인 것을 알아본 오스칼이 낮은 탄성을 내뱉었다. 뤼미에르였다.

“이건…. 네 어머니 거잖아.”

오스칼이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제 손 위에서 반짝이는 에메랄드빛 보석을 바라보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원작의 주인공이 받았던 사랑의 징표를, 이제 그녀의 아들이 제게 주고 있었다.

오스칼 안에서 마구 뒤섞여 파도가 된 감정들이 가슴에 부딪혀 부서져 내렸다.

“어머니가 위험한 전장에서도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버지가 주신 거다. 어머니가 이걸 내게 주신 덕분에 나도 지금까지 끈덕지게 살아남았지.”

“그런데…. 그걸 내게 주면 어떡해.”

곧 울 것처럼 눈을 찌푸린 오스칼을 바라보며 레오가 미소를 지었다.

“넌 매번 위험한 일만 쫓아다니니까. 네게 더 필요할 것 같아서.”

“그럼… 너는…?”

오스칼은 여전히 뤼미에르를 손바닥 위에 올린 채 어쩔 줄을 몰랐다. 이걸 받아선 안 되었다. 레오가 머뭇거리는 오스칼의 손바닥에서 뤼미에르를 집어 들었다.

오스칼의 귓가에 그의 숨결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지자, 오스칼의 목 아래에서 연둣빛의 보석이 반짝거렸다.

레오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오스칼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물기를 머금어 반짝거리는 오스칼의 연녹색 눈은 마치 오스칼의 목에 걸려있는 뤼미에르 같았다. 그가 오스칼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쓰다듬었다.

“내겐 다른 부적이 생겼거든.”

그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달콤했다.

“네가 소중히 여기는 거잖아.”

“너도 내게 소중한… 동료니까.”

“아니야. 나는 그런….”

오스칼의 뺨으로 고였던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그 눈물에 당황한 레오가 손을 뻗어 오스칼의 눈가를 닦아냈다.

“네가 나와 기사단에 해준 수많은 일에 대한 감사의 의미야.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니까.”

그의 나직한 목소리에 오스칼은 엉엉 울어버리고 싶은 기분을 간신히 참아냈다.

“레오…. 있잖아…. 사실…. 나는….”

목 끝까지 하고 싶은 말들이 차올라, 오스칼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나는 네게 이걸 받을 자격이 없어.’

목에 걸려 차마 하지 못한 말이, 오스칼의 심장으로 떨어졌다. 오스칼은 뤼미에르가 레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대체 어떤 마음으로 제게 이것을 건넨 걸까.

레오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어머니의 유품을 주고 싶어 한 ‘그 사람’은 진짜 내가 아니다.

그가 알고 있는 이름도, 가족도, 심지어 성별까지도 모두 거짓말이었다.

오스칼이 기사단에 가입한 것도, 그를 도와 세드릭의 누명을 벗기려 한 것도, 모두 이 소설에서 탈출하기 위해서였다.

몇 번이고 진실을 밝힐 기회를 져버린 것도, 레오가 그녀를 내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그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는 레오의 곁에서 좋은 사람 행세를 하고 있는 끔찍한 위선자야.’

레오의 해피엔딩을 핑계로 해온 모든 일은 저를 위해서였다. 절망감이 밀려와 가슴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건가?”

다정한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자 오스칼은 더욱 괴로웠다. 오스칼이 입술을 깨물었다.

“레오. 있잖아. 만약 내가. 어느 날 내가, 네가 아는 사람이 아니게 되더라도…. 내게 실망하지마.”

“그게 무슨 말인가.”

그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네가 내게 실망하게 되더라도. 그냥 한 번만. 한 번만 이해해 줘. 분명히 무슨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 줘.”

그것은 절박한 진심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레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렇게… 해줄 거야?”

오스칼이 매달리듯 물었다. 그는 창백해진 오스칼의 양 볼을 자신의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따뜻한 그의 온기에 새파랗게 질려 바들바들 떨리던 오스칼의 입술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그래. 그럴게.”

어느새 준비된 불꽃을 모두 쏘아버렸는지, 주위가 고요해졌다.

“아. 이제 다 끝났나 봐. 그만, 돌아가자.”

레오에게 갑작스러운 눈물을 보인 것이 창피해 오스칼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청-

감정을 쏟아내고 힘이 풀린 다리가 후들거려 오스칼의 몸이 비틀거렸다. 레오가 빠르게 손을 뻗어 쓰러지는 오스칼의 몸을 받아냈다. 오스칼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그가 주저앉아 등을 내밀었다.

“업혀.”

“…….”

오스칼이 말없이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 다리로는 오늘 밤을 꼬박 새워 걸어도 집에 못 가. 이번에도 날 노숙시킬 셈인가.”

그가 주저하는 오스칼을 돌아보며 애정이 섞인 핀잔을 했다. 오스칼은 곤란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살며시 그의 등에 몸을 기대었다. 오스칼이 몸이 자신의 등에 닿기가 무섭게 레오가 자리에서 냉큼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오스칼이 반사적으로 탄식을 흘렸다.

“으악.”

저를 업고 일어선 그는 힘든 기색조차 없었다.

사람을 업은 채로 앉았다 일어나는 거면 곡소리 정도는 나야 하지 않나…? 업힌 쪽이 곡소리를 내다니.

“너 관절 진짜 튼튼하구나?”

“하하. 관절 칭찬을 듣게 될 줄은 몰랐군.”

오스칼의 터무니없는 칭찬에 레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농담 아닌데….”

어색했던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어느새 다시 누그러졌다. 레오의 등은 넓고 따뜻했다.

오스칼은 잠자코 그의 등에 기대어, 타박타박 울리는 레오의 발걸음을 세었다. 아직 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느새 그의 체온이 주는 안도감에 오스칼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반쯤은 몽롱한 정신에 기대 오스칼이 레오의 귓가에 속삭였다.

“미안해.”

“이럴 땐 그냥 고맙다고 하는 거 아닌가.”

레오의 말에 오스칼이 피식 웃었다. 샤르트르의 숲을 나와 헛간 같은 창고에서 밤을 보낸 날 자신이 그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건 전에 내가 네게 한 말이잖아.”

“그런가.”

그땐 몰랐다. 그가 제게 소중한 사람이 되리라고는. 레오의 낮게 울리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오스칼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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