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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70)화 (70/138)

70화



 

레오의 얼굴을 바라보던 오스칼은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레오의 뺨에 손을 가져다 대고 말았다. 문득 레오와 눈이 마주치자 제 행동이 부끄러워 화르르 열이 올랐다.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손을 떼어내려 했다.

“미, 미안! 나도 모르게….”

순식간에 레오의 커다란 손이 그의 뺨에서 떨어지려는 오스칼의 손을 그대로 감싸 쥐었다. 깊은 밤빛을 닮은 그의 눈동자가 짙어졌다. 그의 뜨거운 체온이 오스칼의 손에 전해졌다.

온몸의 감각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눈동자가 주체할 수 없이 떨려 오스칼이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대로 레오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졌다.

우당탕-

정원에 세워져 있던 삽이 바람에 쓰러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두 사람 사이로 팽팽한 고무줄같이 당겨졌던 긴장감이 끊어졌다.

오스칼은 번뜩 정신이 들었다.

“나, 난 추워서 이만 들어갈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오스칼이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방으로 내달렸다. 머리끝까지 오른 열감을 레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쓰러지듯 베개에 얼굴을 묻은 오스칼이 스스로를 나무랐다.

‘대체 어쩌려고 이러는 거야! 레오에게 아무것도 사실대로 말하지 못할 거면서!’

레오는 그대로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바람이 불자 오스칼이 떠난 빈 의자 위로 붉게 물든 나뭇잎이 내려앉았다. 멍하니 잎새를 바라보던 레오가 의자 뒤로 고개를 젖혀 마른세수를 했다.

뜻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멈출 수 없는 감정은 숨기려 해도 자꾸만 흘러나왔다.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실소가 나왔다.

잠들 수 없는 두 사람의 밤이 깊어졌다.

***

왕실 근위대장 드레이코 호그는 어린 시절부터 검으로 이름이 난 자였다. 이때껏 그가 자란 곳에서 그보다 강한 자는 없었다.

그러나, 그의 우쭐했던 자신감은 왕실 근위대에 입단해 세드릭 칼릭스를 마주한 순간부터 나락으로 떨어졌다.

고귀한 공작 가문의 차남에 흠잡을 것 없는 실력, 동료들의 신망까지 갖춘 세드릭은 단숨에 왕실 근위대장의 자리에 올랐다.

드레이코는 세드릭에게 참을 수 없이 질투가 났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는 늘 2인자 신세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여자가 찾아왔다. 여자는 그가 세드릭 칼릭스에게 누명을 씌운다면, 근위대장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달콤한 제안을 했다. 그는 단숨에 여자의 손을 잡았다.

결국, 여자의 장담대로 늘 고고한 곳에 서 있던 세드릭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세드릭의 자리는 드레이코의 차지가 되었다. 그는 여자와 손을 잡은 뒤, 돈도 권력도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다.

드레이코에겐 두려운 것이 없었다. 그 여자, 잔느를 제외하고는.

드레이코가 잔느의 앞에서 벌을 서듯 바짝 기합이 든 채 연신 식은땀을 흘려댔다. 그는 머리를 조아리며 잘못을 빌었다. 마치 고양이 앞의 쥐처럼 발발 떨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저택의 경비를 더 강화해야 했는데.”

“그것뿐이 아닙니다. 최근 이교도 병력의 숫자도 형편없이 줄어든 것으로 아는데요.”

“그, 그게… 근위대는 이교도를 묵인하고 있는데… 버림받은 기사단이라고 자칭하는 자들이 나서는 통에….”

“그래요! 그 터무니없는 기사단 말입니다! 그게 칼릭스 놈의 기사단이라지요? 그자가 그렇게 활개를 치고 다닐 동안 뭘 하셨습니까?”

“아, 암살자도 여러 번 보냈었는데….”

“그런 애송이 하나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쩔쩔매고 있다니 한심스럽군요!”

“이, 이번에는 확실히 처리하겠습니다. 자객을 더 보내겠습니다.”

헛소리를 내뱉는 드레이코를 향해 잔느가 경멸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왕실 근위대장이라는 자의 수준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몇 번이나 실패하고도 또 자객입니까? 무력으로 상대가 되지 않으면 권력으로 해결하셔야지요.”

“예?”

“이쪽에서 정체를 숨기고 자객을 보낸다면 오히려 맞서기 쉽지요. 허나, 왕국의 법으로 정당하게 잡아들인다면 그깟 놈이 무엇으로 저항한단 말입니까? 게다가 체포하는 중에 반항하면 그 자리에서 사살해도 되는 것 아닙니까.”

그제야 잔느의 뜻을 알아챈 드레이코가 감탄한 듯 입을 벌렸다. 그리고는 깊숙이 머리를 조아렸다.

***

전날 밤 두 사람 사이에 흘렀던 묘한 기류 탓인지, 오스칼과 레오 사이에는 어색함이 감돌았다.

“저….”

“그….”

두 사람이 동시에 말을 꺼냈다. 오스칼이 냉큼 한발 물러섰다.

“먼저 말해.”

“아, 아니 별거 아니었다. 네가 먼저 말하도록.”

오스칼이 헛기침을 한번 해 목소리를 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그게… 오늘 제라드와 인쇄소를 다녀올까 하고.”

레오와 단둘이 집에 있는 게 어색해 자리를 피하고자 제라드를 꾀어낸 오스칼이었다. 레오의 미간이 좁아졌다.

“오늘은 인쇄소를 방문하는 날이 아니지 않은가?”

“어? 응. 그렇긴 한데…. 제라드가 소설 하나를 완성했다고 해서. 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어?”

레오는 갈등했다.

충동적이었던 어제의 일을 후회하면서도, 오스칼이 계속 그의 곁에 있었으면 했다. 감정을 숨겨야 한다는 마음과, 한편으로는 오스칼이 제 감정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어지럽게 얽혔다.

그가 오스칼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조금 더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무기를 새로 사야 할 것 같은데… 시에나로 갈 거면 나도 함께 가지.”

“어? 너도 같이?”

급조한 레오의 일정에 오스칼이 당황해 눈썹을 늘어뜨렸다. 이제 와서 인쇄소에 갈 필요가 없다고 할 수도 없었다.

“저 왔습니다, 형님! 어…. 근데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아무것도 모른 채, 이상기류가 흐르는 두 사람과 무기점까지 동행하게 된 희생양 제라드는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말없이 무기를 골랐다.

‘두 분이 싸우신 건가. 원래 사랑싸움은 검으로 허수아비 베기 아니었어?’

엉뚱하게 두 사람 사이에 끼여 고통받던 제라드는 묵직한 무기 꾸러미를 어깨에 얹었다.

“단장님, 형님. 얼른 인쇄소에 가서 제 소설만 넘기고 돌아가시죠.”

이 상황을 얼른 벗어나고 싶은 제라드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겨우 도착한 인쇄소는 평소와 다르게 소란스러웠다.

“왜, 왜들 이러시는 겁니까. 저희는 모르는 일입니다.”

“시치미 떼지 마시오. 왕국 법에 따르면 불온 도서의 저자도, 발행자도 모두 처벌되는 걸 모르시오?”

험악한 표정을 한 군인들이 제라드의 첫 번째 소설책을 손에 쥐고 인쇄소의 사용인들을 윽박지르고 있었다.

“왕실 근위대가 인쇄소엔 어쩐 일입니까. 그 책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들이 왕실 근위대 소속이라는 것을 알아본 레오가 앞으로 나섰다. 오스칼이 긴장한 눈으로 병사들을 살폈다.

근위대원 중 한 사람이 딱딱한 목소리로 응수했다.

“불온 간행물을 단속 중이오. 이 인쇄소에서 발간한 소설에 대한 고발이 들어왔소.”

“그게 무슨 말입니까? 불온 간행물이라니.”

레오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의 턱은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왕실 모독 혐의.”

세 사람의 등 뒤에서 간사한 목소리가 들렸다.

근위대원들이 절도 있게 움직여 목소리의 주인에게 일제히 길을 터주었다. 그 사이로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등장했다.

“당신은?”

레오가 눈을 치켜떴다. 남자의 역겨운 낯짝에 레오가 이를 으드득 갈았다. 눈앞의 남자는 그가 왕국 기사단에 있을 때부터 알던 얼굴이었다.

왕실 근위대장 드레이코 호그, 아버지에 대한 거짓 증언을 해 가문을 몰락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자였다.

“이 책에 왕실을 비판하는 내용이 잔뜩 들어있던데. 그 소설의 작가가 네 놈이 데리고 있는 자라지? 내 말이 틀렸나, 레오폴드 칼릭스.”

드레이코가 건수를 잡았다는 듯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왕국 기사단에서 쫓겨나듯 해산된 후, 몇 년간 힘겹게 굴러가던 ‘버림받은 기사단’이 최근 무섭게 세를 불리고 있다고 했다. 드레이코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기사단의 자금 출처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늘어난 자금은 트집을 잡기에 딱 좋았다. 대개 재물에는 허물이 뒤따르는 법이니까.

그리고 드레이코는 자금의 원천인 제라드의 소설에서 좋은 먹잇감을 잡아냈다.

“제 소설에 무슨 왕실 모독이 있다는 겁니까! 그저 허구의 이야기일 뿐인데요!”

왕실 모독이라는 죄명에 당황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제라드가 항변했다.

“이 책의 내용이 25년 전 일과 유사하다는 소문이 저잣거리에 파다한데 시치미를 뗄 작정인가?

왕실 모독도 중죄인데, 반역자를 옹호하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더군. 네 놈도 아는 더러운 반역자, 세드릭 칼릭스 말이야. 바로 저자의 아버지 아닌가?”

드레이코의 저열한 도발에 레오가 주먹을 쥐었다. 참아내듯 꽉 다문 그의 입술에 핏기라고는 없었다.

“한낱 로맨스 소설의 내용을 두고 이렇게 근위대까지 출동하다니, 왕실에서 찔리는 거라도 있나 보죠?”

레오와 세드릭을 향한 모욕을 참지 못하고 오스칼이 쏘아붙였다.

이건 또 뭐야? 처음 보는 애송이의 등장에 드레이코가 한쪽 눈썹을 올렸다.

‘아, 이자가 오스칼이란 녀석인가.’

딱 보아도 다혈질인 게, 도발하기 딱 좋아 보이는 녀석이었다.

“내 앞에서 함부로 입을 놀려서 좋을 게 없을 텐데.”

그가 오스칼을 조롱하듯 비웃었다. 그리고 근위대원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왕실 모독 혐의가 있는 간행물을 모두 폐기하고, 관련자들은 모두 연행한다.”

“집행 문서 있어요? 법원의 허가는 있냐고요! 왕명이라도 받았나요?”

오스칼이 날카롭게 외쳤다.

“감히 네까짓 게 국왕의 직속부대인 근위대를 상대로 절차를 운운하며 발악하다니.”

드레이코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과거 그와 함께 근위대에 소속되어 있었던 ‘오스칼’ 역시 불쾌할 만큼 꼿꼿한 자였다. 세드릭이 파면된 후 근위대를 그만두고도, 왕이 위험에 빠지자 목숨을 걸고 구하러 달려왔었던 멍청한 자식.

그가 오스칼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 이야기는 조사받으면서 하도록 해.”

“그 손 치워요.”

오스칼이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드레이코의 손을 거칠게 쳐냈다.

‘그래, 그렇게 반항할수록 좋지. 왕실 근위대의 공무집행 방해는 즉결 처형도 가능하니까.’

속으로 중얼거린 드레이코가 오스칼을 향해 피식 조소를 흘렸다.

“다들 뭐 하고 있나? 빨리빨리 움직여!”

드레이코의 불호령에 근위대원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악스러운 손길로 인쇄소에 쌓여있던 책들을 모두 바닥에 패대기치고는 불을 질렀다.

인쇄소 곳곳이 망가지고 부수어졌다. 인쇄소의 사용인들 역시 군홧발에 수모를 당했다.

“뭐 하시는 겁니까!”

인쇄소의 사용인들이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본 제라드가 흥분해 앞으로 나왔다. 근위대는 제라드를 거칠게 저지했다.

제라드가 쓰러지며 그의 등에 매달린 꾸러미가 바닥에 떨어졌다. 쏟아져 나온 무기를 확인한 드레이코가 눈을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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