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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69)화 (69/138)

69화



 

저택의 폭발로부터 자신을 감싸다 오른팔을 다친 레오를 위해 오스칼은 그의 손이 되기를 자처했다. 저녁 식사 시간, 오스칼은 오른팔에 덧댄 부목 탓에 손을 쓸 수 없는 레오 옆에 붙어 앉아 연신 포크 질을 해댔다.

“자, 이것도 좀 먹어봐.”

레오는 입을 벌려 오스칼이 먹여주는 음식을 받아먹었다. 어쩐지 오늘은 푸성귀에서조차 고기 맛이 났다. 레오는 자꾸 하늘을 향해 치솟는 입꼬리를 안면근육을 총동원해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어딘가 경련이라도 일으키는 것 같은 레오의 표정에 걱정스러워 오스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직 오른팔이 아파? 아무래도 왼손으로 생활하기는 많이 불편하지? 기욤은 뭐래?”

레몬 드레싱이 뿌려진 양상추 샐러드를 삼키던 레오가 기욤의 진단을 떠올렸다.

“근육이 조금 놀란 것 같습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며칠 쉬시면 금방 나을 겁니다. 식사하시거나 씻는 데 불편함은 없으실 거예요. 단장님은 양손을 다 쓰시니까요.”

“흠흠, 당분간 오른팔을 사용하는 것을 자제하고 휴식을 취하라고 했다.”

엄밀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오스칼이 그가 양손잡이인 것을 모를 뿐.

“다친 팔이 나으려면 움직이지 않는 게 제일이야. 이따 씻는 것도 도와줄게.”

“쿨럭, 푸흡-”

그만, 씹던 빵 조각이 목에 걸려버렸다. 잔뜩 기침을 한 레오가 당황스러운 눈으로 오스칼을 바라보았다.

씨, 씻겨 준다고?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머리는 혼자 감기 어려울 거 아냐. 한 손으로는 머리를 제대로 말릴 수도 없잖아.”

“크흠, 그래 머, 머리….”

괜한 상상력만 발휘하고 말았다. 레오가 냉수라도 들이켜 속을 진정시키려는 듯 식탁의 컵을 향해 팔을 뻗었다.

“앗! 레오, 가만히 있어. 내가 해 줄게!”

오스칼이 재빠르게 레오의 눈앞에 물잔을 대령했다. 오스칼의 아낌없는 친절에 레오의 입꼬리가 자꾸만 들썩였다.

그날 밤 오스칼이 레오의 침대로 달려와 그의 이불까지 덮어주자, 그는 모레쯤엔 왼팔도 부러뜨릴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앞길이 가시밭길뿐인 남자, 레오의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짐승 같은 회복력을 원망했다. 어제까지 시큰거리던 자신의 팔 근육은 언제 그랬냐는 듯 놀랍게도 멀쩡해져 있었다.

기욤은 분명 며칠이 걸릴 거라고 했는데…. 레오가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했다.

“오늘 하루 정도쯤은 괜찮지 않나….”

그는 결국 붕대가 주는 달콤함에 굴복하고 말았다.

오스칼의 말간 눈동자는 아침식사 시간, 여전히 부목을 풀지 않은 채 나타난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오늘도 여전히 아파?”

“아무래도 오른팔을 사용하는 건…. 무리인 것 같군.”

“이거 큰일인데! 오른팔을 다치는 건 검을 다루는 사람에게 치명적이잖아. 철저히 쉬어야 해.”

오스칼이 울상을 지었다. 자신의 경험상 오른팔 부상은 그야말로 선수 생명에 치명적인 일이었다. 운동선수에게도 그러한데, 검 끝에 목숨이 달린 기사라면 더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날 감싸다 대신 다쳤잖아….’

오스칼이 미안한 얼굴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마지못해 중얼거렸다.

“오늘 아침 닭 다리는 네가 두 개 다 먹어.”

오른팔에 의미 없이 매어놓은 붕대 덕분에, 레오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달콤한 아침 식사를 만끽하는 중이었다. 오스칼이 입에 넣어주는 구운 닭 다리는 그가 먹은 어떤 요리보다 황홀하게 맛있었다.

닭 다리를 두 개 다 제게 양보하다니. 레오가 장담하건대, 그건 오스칼이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었다.

오스칼의 친절은 온종일 계속되었다. 청소부터 쓰레기 버리는 일까지 모두 도맡아 하며 레오는 손끝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했다.

결국, 저녁식사 시간쯤이 되자, 레오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과 절임을 얹은 양고기를 향해 입을 벌렸다. 만약 기사단원들이 식탁에 앉아 아기 새처럼 입을 쩍쩍 벌리고 있는 레오의 모습을 본다면 충격에 혼절할지도 몰랐다.

“뒷정리도 내가 할 테니까, 넌 앉아 있어.”

식사가 끝난 후, 주방을 정리하던 오스칼이 자신의 키보다 한참은 높아 보이는 찬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잠깐 고심하는 듯하더니, 이내 나무 의자를 가져왔다. 의자 다리 하나가 부실한 탓인지 의자 위에 올라선 오스칼의 몸이 살짝 휘청였다.

“이크.”

간신히 중심을 잡은 오스칼이 낮은 비명을 질렀다. 레오가 곁에서 그 모습을 불안한 듯 바라보았다.

“그건 나중에 내가 할 테니 그냥 두는 게 어떤가.”

“말도 안 돼! 근육 부상에 무거운 걸 들어 올리는 건 최악의 일이라고.”

오스칼이 레오를 향해 짐짓 조언하는 듯한 말투를 하고는 제일 높은 선반을 향해 손을 뻗었다.

끼익-

흔들거리던 낡은 의자의 다리에서 불길한 소리가 났다.

우지끈-

순식간에 의자가 무너져 내렸다.

“으악!”

돌발 상황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레오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는 의자 뒤로 넘어지는 오스칼의 몸을 양팔로 받아냈다. 다리가 부서진 의자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괜찮나?”

그의 양팔에 폭 안아 들린 자세가 된 오스칼이 지나치게 가까운 레오의 얼굴에 당황해 버둥거렸다.

“고, 고마워.”

어쩐지 묘한 분위기에 오스칼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레오의 오른팔이 너무나 가볍게 제 몸을 들어 올리고 있지 않은가. 아프다는 기색조차 없이!

“레오…. 너 팔 아픈 거 아니었어?”

오스칼이 눈을 치켜떴다. 다급히 오스칼을 받아드느라 솟아오른 근육에 찢겨나간 붕대 밖으로 부목이 빠져나와 달랑거렸다. 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레오의 팔이 허공에 정지했다.

“어…. 그새…. 다 나은 것 같군.”

민망함이 머리끝까지 오른 레오가 허둥지둥 오스칼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오스칼이 팔짱을 낀 채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 설마… 꾀병이었어?”

“오, 오해다. 그저 예방적인 차원에서 붕대를 감고 있었을 뿐….”

살면서 해명이라곤 그다지 해본 적 없는 그의 입에서 형편없는 변명이 튀어나왔다.

“뭐야! 난 그런 것도 모르고 널 얼마나 걱정했는데!”

아픈 척, 하루 내내 날 부려 먹고 있었단 말이야?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에 오스칼이 버럭 화를 내고 방으로 사라져 버렸다. 본전도 못 찾은 레오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오스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깊은 밤,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오스칼이 잠에서 깨어났다. 잘 손질된 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였다. 부스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창문 밖을 내려다본 오스칼이 중얼거렸다.

“저 녀석은 잘 시간에 무슨 검술 연습이람.”

오늘따라 유난히 밝은 달빛 아래, 레오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절도 있지만 유려한 검술이었다.

오스칼의 시선이 그에게 한참 동안 머물렀다. 한 자락의 예술과도 같은 그의 검술을 바라보자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것 봐. 팔을 다쳤다는 건 순 거짓말이었잖아.”

억울한 듯 중얼거렸지만, 그 목소리에는 웃음이 서려 있었다.

창가를 비추는 달이 밝아, 이대로 다시 잠이 들긴 틀렸다는 핑계로, 오스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문을 열자 싸늘한 밤공기가 코를 스쳤다.

검을 휘두르는 레오의 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마치 검에 매달리듯 몸을 움직였다. 가을밤의 냉기도 레오의 몸에서 뿜어내는 열기에 그 기세가 꺾였다. 뜨끈뜨끈해진 레오의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던 거야?”

등 뒤에서 들리는 오스칼의 목소리에 레오가 흠칫 놀라 돌아보았다. 달빛 아래에 오스칼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검을 내린 그가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머리가 복잡해서.”

레오의 대답에 오스칼이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마음이 심란할 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야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닥으로 내몰아 버린 진짜 흑막을 알게 되었는데, 아직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잔느와 아르투아의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레오가 위로의 말을 건네는 오스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녀석은 알까? 지금 자신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사실 그런 것들이 아니라고.

오스칼이 마당에 놓인 길쭉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에 몸을 한번 부르르 떨었다.

“밤바람이 차. 그러다 또 감기 걸릴 거다.”

걱정하는 그의 목소리가 다정했다. 레오는 그가 가지고 나온 커다란 수건을 오스칼의 어깨에 풀썩 둘러놓았다. 긴 의자에 약간의 간격을 두고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마당에 심어진 키 작은 활엽수의 잎이 가을바람에 살랑거렸다. 흔들리는 잎새의 끝은 예쁜 주황빛이었다.

오스칼은 괜히 발끝으로 바닥만 쓸어댔다. 성마르게 가지에서 떨어져 바닥을 구르던 가랑잎이 바스락거렸다.

“미안하다.”

갑작스러운 레오의 사과에 정신이 든 오스칼이 화들짝 시선을 그에게 옮겼다. 달빛이 레오의 검은 눈동자에 비쳐 일렁였다.

“그게 무슨….”

“팔을 다쳤다는 핑계로 널 괴롭힐 생각은 아니었다.”

“아. 뭘 그런 것 갖고 진지하게 사과까지 하고 그래. 사람이 피곤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제야 사과의 의미를 알아챈 오스칼이 킬킬거렸다.

하여간 쓸데없이 진지한 녀석이라니까.

“정직함은 기본 소양이고, 등 뒤를 맡길 동료와 신뢰를 쌓는 것은 기사의 필수 덕목이다. 그런데 그걸 아는 내가 널 속인 셈이니까… 네가 내게 실망했다 해도 할 말이 없군.”

“아….”

고작 이 정도의 해프닝에도 기사의 도리를 지키지 못했다며 자책하는 레오였다. 그 모습에 오스칼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이제 널 속이는 일은 없을 거다.”

레오의 말이 오스칼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나는 너를 끝없이 속이고 있는데. 이런 네가 내 거짓말을 안다면 뭐라고 할까?

가슴 한가운데가 찌르르 아파왔다.

지금이라도 사실대로 고백해야 하는 걸까. 오스칼이 흰 손등 위로 핏줄이 튀어나올 만큼 주먹을 꽉 쥐었다. 아직 흑막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아직 때가 아니었다. 진실을 얘기하더라도, 이 모든 게 끝난 후여야 한다.

모든 생각의 끝에서, 오스칼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레오는 대답 없는 오스칼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괴로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내 사과가 어딘가 부족했나? 좀 더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레오가 생각 끝에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널 부려 먹으려던 게 아니라…. 크흠. 최근에 에렌 경과 클로드 드보이스가 네게 자꾸 추근…. 아니 친근한 척 구는 게 참을 수가 없기도 하고…. 네가 내게 신경을 써주는 게 좋기도 해서…. 꼴사납게 굴고 말았다.”

머뭇거리는 레오의 목소리에 오스칼이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붉어진 뺨으로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달빛을 머금은 그의 옆모습이 놀랍도록 멋있어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

오스칼이 낮은 탄성을 질렀다. 그 소리에 레오가 살짝 곁눈질해 오스칼을 바라보았다. 반쯤 얼이 빠진 채로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오스칼의 모습이 귀여워 옅게 웃었다.

“흠흠. 너무 심각하게 듣진 마. 그냥, 제대로 사과하고 싶었을 뿐이다.”

시선을 정면에 둔 채, 무릎 위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쥔 레오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때, 차가운 손길이 그의 뺨에 닿았다.

그의 등줄기에서 전율이 일었다. 아찔한 감각에 고개를 돌리자, 그를 응시하는 에메랄드빛 눈동자와 시선이 얽혔다.

가을 풀벌레 소리 뒤로 두 사람의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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