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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65)화 (65/138)

65화



 

꿈 속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시공간에서, 경계심 가득한 붉은 눈동자가 주위를 살폈다.

몽환적인 바람이 불자 보송보송한 푸른 잔디와 귀여운 들꽃들이 살랑거렸다. 그사이 우뚝 선 생기 가득한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클로드의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숲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익숙했던, 먼 옛날 그리운 시절의 숲. 그가 버드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옥이라는 게, 의외로 목가적인 분위기였던가.”

클로드가 마지막 기억을 떠올렸다. 잔느가 그의 심장을 향해 칼을 내리꽂는 장면.

비로소 그의 혐오스럽던 500년의 삶이 끝난 모양이었다.

“오랜만이네.”

등 뒤에서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에 클로드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한눈에 여자를 알아보았다. 500년 전 자신과 거래했던 고대 마녀였다.

“정말 여기가 지옥인가 보군.”

클로드의 입에서 냉소 어린 목소리가 나왔다. 마녀가 소리 없이 웃었다.

“지금 네 심장은 확실히 멈추긴 했지.”

“그럼 내가 죽은 건가?”

“그래. 드디어 죽음을 맞이한 기분이 어때? 넌 늘 죽고 싶어 했잖아.”

클로드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그의 눈에는 약간의 서글픔이 묻어 있었다.

“사실 이번만큼은 죽고 싶지 않았어. 살아서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거든. 그 사람을 보면 매번 심장이 뛰었어. 계속 살고 싶은 것처럼.”

그의 목소리가 쓸쓸하게 울려 퍼졌다. 역시 자신에게는 어떠한 바람도 허용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는 ‘재앙’이었으니까.

마녀가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그래서 내 마지막 저주가 발동한 거구나.”

“무슨 헛소리야. 당신의 저주는 이미 끝났어.”

클로드가 인상을 썼다. 그러자 마녀가 웃으며 문장을 읊조렸다.

“마지막 저주가 아직 남아 있었거든. 〈불멸의 저주를 끝낸 자, 심장의 주인이 되리라〉.”

“이미…. 그 저주는 발동했어.”

쓰리게 대답하는 클로드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그 역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오스칼을 보며 심장이 뛰었던 이유가, 그 웃는 얼굴을 보며 마음이 가빴던 이유가 모두 오스칼이 저주를 끝낸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결국, 그는 좋아한다는 마음조차 뜻대로 하지 못하고 저주에 종속된 운명이었다. 서글픈 얼굴이 된 클로드를 본 마녀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흑마법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불러낼 수 없어.”

“그럼 무슨 저주가 발동했다는 거야?”

클로드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찡그렸다.

“‘불멸의 저주’는 심장에 걸린 저주를 의미하는 게 아니야. 네가 짊어진 ‘불멸’이라는 저주지. 늘 죽고 싶어 하던 네게 ‘불멸’은 저주잖아. 하지만 네가 살고 싶어지자 그건 저주가 아니게 된 거야.”

“그게 무슨 말이지?”

클로드가 초조한 얼굴로 채근했다.

“심장의 저주가 끝나고도 마지막 저주는 계속 남아 있었어. 그래서 심장이 저주에서 풀린 이후에도 너는 여전히 흑마법을 쓸 수 있었던 거고.”

“지금은 모두 끝났다는 건가?”

“죽음을 앞둔 네가 살고 싶다고 생각하자 네게 내린 ‘불멸’이 저주가 아니라, 힘이 되어 발동해 널 지켰어. 그리고 내가 걸었던 모든 저주가 풀렸지.”

“그럼 이제 난….”

“내 저주가 모두 끝났으니 넌 불멸의 몸이 아니야. 게다가 흑마법의 지배를 받지도 않겠지. 네 몸에 깃든 마력은 달라질 거야. 그래서 너와 작별하러 왔단다.”

멍한 표정으로 클로드가 중얼거렸다.

“그럼 내 심장의 주인은 오스칼인가?”

그의 말에 마녀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네 심장의 주인은 바로 너지. 어떻게 다른 사람이 심장의 주인이 될 수가 있겠어? 너 스스로 저주를 이겨냈잖아. 그저 네 심장을 뛰게 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흑마법의 지배를 받던 네 심장을 온전히 네 것으로 돌려주는 게 내 마지막 선물이야. 그동안, 네 덕분에 즐거웠으니까.”

“멈춘 내 심장은 어떻게 되는 건가?”

“널 살고 싶게 만드는 사람 곁에서 다시 뛰겠지.”

여자가 선연하게 웃었다.

“그 사람이 날 찾지 않으면?”

클로드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오스칼의 모습을 떠올렸다. 분명 자신을 죽일 기세로 방에서 내쫓았었는데. 그가 울상을 지었다.

그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지켜보던 여자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어?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로 이곳에 갇혀있는 수밖에. 그래서 난 사랑 따위 정말 질색이야.”

마녀는 혀를 내밀어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즐거운 웃음소리만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

“크, 클로드?”

오스칼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쇠사슬에 묶여 있는 남자의 얼굴 위로 길게 드리워진 은발은 틀림없이 클로드의 것이었다.

“저 자식은….”

상의가 벗겨진 채 벽에 매달려 있는 클로드의 모습에 레오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레오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세상에서 제일 꼴 보기 싫은 두 놈을 한꺼번에 마주치다니, 오늘은 운이 더럽게도 없는 날인 모양이었다.

에렌이 눈을 찡그리며 단테를 향해 물었다.

“저자가, 그 유명한 클로드 드보이스인가?”

“재앙의 상징이라는 저 끔찍한 은발, 틀림없습니다.”

“저자가 왜 여기에 저런 꼴로 있는 건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샤무아의 수장이라면 상대를 묶는 쪽인 줄 알았는데, 그가 묶이는 쪽일 거라곤….”

오스칼이 경악한 눈으로 단테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이상한 뉘앙스의 문장을 말하지 말라고!

“오스칼, 저자와 아는 사이인가?”

에렌이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어…. 아마도요.”

오스칼 역시 생경한 클로드의 모습을 바라보며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반라의 상태로 쇠사슬에 묶인 채 갇혀있는 클로드라니. 와, 이거 돈 주고도 구경 못 할 절경…. 아니 상황인데.

클로드의 모습은 이미 모진 고초를 당한 것 같았다.

그의 얼굴에 맺힌 피, 땀, 눈물……. 근데 왜 저게 저 남자랑 묘하게 잘 어울리면서 또 그게 좀 야릇….

“어흠.”

곤경에 처한 남자를 상대로 떠올려버린 불경한 생각을 떨쳐 버리기 위해 헛기침을 한번 한 오스칼이 다시 클로드의 이름을 불렀다.

“클로드! 클로드! 정신 좀 차려봐!”

결계 안의 남자는 바깥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콰앙-

요란한 폭음과 함께, 단테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 역시 머리보다는 몸이 먼저 나가는 타입인 모양이었다. 다짜고짜 검으로 감옥의 문을 내리쳤던 단테는 결계의 저항에 부딪혀 멀리 나가떨어져 버렸다.

“크흠. 무력으로 마력 결계를 깨는 게 가능한지, 그냥 한번 시도해 본 겁니다.”

이마에 난 혹을 문지르며 단테가 멋쩍은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저 변태 자식을 위해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다. 저놈 역시 흑마법을 쓰는 악인이고. 마녀와 마법사 간의 싸움에 끼어들어 좋을 게 없어. 그냥 떠나지.”

레오가 냉담하게 시선을 돌렸다.

“너…. 너무 냉정한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여길 알려준 게 저 녀석인데 저렇게 두고 가자고? 어쩌면 내가 잔느를 조사하라고 한 것 때문에 저렇게 된 걸 수도 있다고.”

레오의 몰인정한 말에 오스칼이 실망스러운 눈을 했다.

아무리 클로드가 잔인한 정보상으로 알려져 있다고 해도, 초면도 아닌 사이에 어쩜 그렇게 무정한 소리를 할 수 있냐는 책망의 눈빛이었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저놈도 그간 나쁜 짓을….”

오스칼의 냉랭한 반응에 레오가 말을 더듬었다. 에렌이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역시 그대는 마음씨도 곱군. 그대 말이 맞아.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는 게 도리인데 말이야. 저렇게 험한 꼴을 당한 사람을 두고 변태라니. 쯧쯧, 레오폴드 자네는 따뜻한 마음이라고는 없는 모양이군.”

에렌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냉큼 레오의 흉을 보았다. 레오가 그 모습을 기가 막힌다는 듯 바라보았다.

파직-파직-

관대한 미소를 지어 보인 에렌이 결계에 살짝 손끝을 갖다 댔다. 결계에서 무시무시한 기세로 붉은 스파크가 튀었다. 그가 얼른 자신의 손을 뒤로 물렸다.

“아무래도 쉽지는 않겠는데…. 일단, 다른 곳부터 확인해 볼까?”

에렌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급히 태세 전환을 했다. 오스칼에게 점수를 딸 속셈으로 마지못해 클로드의 편을 들긴 했지만, 레오의 말마따나 클로드의 꼴이 좀 변태 같긴 했다.

오스칼이 그의 이름을 ‘클로드’라고 다정하게 부르는 것도 좀 신경 쓰였고.

결계 앞에 선 오스칼이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붉은빛을 뿜는 얇은 보호막의 기운이 어쩐지 익숙했다.

‘색은 다르지만, 종탑에서 클로드가 만든 온기막과 비슷한 느낌인데. 설마 클로드의 마력인가?’

검은 숲의 마력 역시 클로드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흑마법이었다. 지하실 결계의 저주가 검은 숲과 같은 마력이라면 혹시?

심호흡을 한번 한 그녀가 천천히 손가락을 결계에 가져다 댔다.

찌릿-

오스칼의 손이 결계에 닿자, 단테의 검이나 에렌의 몸이 닿았을 때와는 다른 반응이 일었다. 결계가 은빛을 내며 살짝 갈라졌던 것이다. 뭔가 다른 것이 있음을 알아챈 오스칼이 이번에는 손바닥을 결계에 갖다 댔다.

파지직-

이번에는 더 큰 은빛의 스파크가 일었다. 마치 결계의 마력이 오스칼의 존재에 반응하는 것 같았다. 클로드의 몸이 살짝 움찔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 남자가 놀란 눈을 했다.

오스칼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검을 들어 힘차게 결계를 내리쳤다.

콰광-

결계가 갈라지며 폭음이 일었다. 강한 은빛 바람이 클로드의 몸을 감싸 안았다. 양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안에서부터 불어 나오는 바람을 막아낸 오스칼이 재빨리 감옥 안으로 뛰어들었다.

“클로드!”

오스칼이 클로드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얼굴 위로 늘어뜨린 은색 머리칼을 넘겨 올리자, 닫혀있던 그의 눈꺼풀이 서서히 열렸다.

신비한 빛을 띠는 보라색 눈동자 위에, 걱정 어린 동그란 얼굴이 비치었다. 클로드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오스칼의 얼굴이었다. 그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클로드가 부르튼 입술을 달싹여 낮게 속삭였다.

“더는 지옥이 아니구나.”

오스칼이 있는 곳이라면, 그에게 지옥일 리 없었다. 찢어져 피딱지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그의 입술이 위로 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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