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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63)화 (63/138)

63화



 

25년 전, 아르투아 대공이 잔느를 처음 찾은 것은 단순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흑마법을 쓰는 마녀가 튈르리 감옥에 갇혔다는데, 그 마녀를 만난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미모에 홀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르데나의 공녀와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건만, 아르투아는 입맛을 다셨다.

어느 정도로 절색이기에 사람을 홀린다는 것일까.

소문의 마녀는 튈르리의 작은 첨탑에 홀로 갇혀있었다. 혹시 다른 죄수들을 홀릴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르투아 대공으로부터 몇 개의 금화를 건네받은 교도관은, 감옥의 창살 너머로 편안한 의자 하나를 마련해주고는 눈치껏 자리를 비켜주었다.

교도관은 자리를 떠나며 감옥의 열쇠를 손에 슬쩍 쥐여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미천한 몸이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아르투아 대공의 눈길에 잔느는 얼른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고작해야 그녀를 마녀로 추대하는 이교도를 이용해 저잣거리에서 질 낮은 인간들을 상대로 잡범이나 저지르던 그녀였다.

잔느는 눈앞에 나타난 왕족을 보자, 본능적으로 이것이 기회라는 것을 알아챘다.

“네 미모가 궁금해 와 보았는데…….”

아르투아 대공의 은근한 목소리에 잔느는 고개를 들어 대공을 쳐다보았다. 옥살이를 하느라 초췌한 모습이었지만 과연 듣던 대로 대단한 미녀였다.

퇴폐적인 매력이 가득한 또렷한 이목구비, 검은 머리칼과 붉은빛이 도는 눈동자는 과연 미색으로 사람을 홀린다 할 만했다. 아르투아 대공의 입가에 은근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에 잔느의 붉은 눈이 번뜩였다. 잔느의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갔다. 그녀가 아르투아 대공을 향해 웃음을 흘렸다.

“직접 보니 어떠신지요? 저를 취하고 싶은 마음이 드시나요.”

“네가 요망한 혓바닥으로 사람들을 꾄다더니 그것이 사실인가 보구나.”

웃음기 어린 호통이었다. 당돌한 것이 퍽 마음에 들었다.

“제 몸뚱이 정도야 얼마든지 바칠 준비가 되어 있지요. 하지만, 저는 그것보다 더 고귀한 것을 대공께 드릴 수 있습니다.”

아르투아 대공은 한쪽 눈썹을 올려 잔느를 바라보았다. 죄인 주제에 오히려 그를 시험해보는 듯한 태도였다.

“네깟 계집이 내게 무엇을 준다는 말이냐.”

잔느가 아르투아 대공의 검푸른 눈을 바라보았다. 눈동자 뒤에 비친 끈적한 욕망과 뒤틀린 열등감을 꿰뚫어 본 그녀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대공 전하께서는 태양의 자질이 있으시나, 한낱 태어난 순서 덕분에 그 뜻을 펼치지 못하시는 게지요. 저를 정부로 삼으십시오. 제가 전하께서 원하시는 것을 품에 안겨드리겠습니다.”

“네가 실성을 한 것이지.”

뻔뻔한 잔느의 요구에 아르투아 대공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어딘지 모를 묘한 기대감에 그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왕좌는 그가 언젠가부터 음험하게 마음에 품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나 빌어먹을 왕국의 승계법은 셋째인 그에게는 왕의 자격을 부여하지 않았다. 고작 몇 년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아둔하고 우유부단한 첫째 형이 왕위에 올랐다.

첫째 형의 아들 샤를, 그리고 둘째 형 루이스터, 루이스터의 아들들까지. 승계법에 따르면, 수많은 왕위계승자들이 제 앞을 끝도 없이 가로막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막내라는 이유로 형들보다 작은 영지와 적은 수의 병사들만을 물려받았다. 형들에게서 왕좌를 빼앗아 오기엔 미약한 힘이었다.

입으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일축했지만, 잔느의 말을 들은 아르투아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저 여자가 소문처럼 마녀라면 무언가 계책이 있어 내게 저런 제안을 하는 걸까?

아르투아의 얼굴에 갈등의 빛이 서리자, 잔느는 재빨리 그의 마음에 생긴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나보다 강한 상대와 싸워 이기는 방법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내가 더 강해지는 거 아닌가.”

“아니지요. 더 강한 자들끼리 싸움을 붙이는 겁니다. 그리고 둘 다 힘이 빠졌을 때 모두 없애버리는 거지요.”

“그게 무슨 소린가?”

아르투아가 초조한 듯 손을 마주 잡아 주물렀다.

“국왕과 루이스터 대공이 서로를 죽이면, 전하께서 합법적으로 왕위를 잇는 겁니다. 반역자로 손가락질받지 않아도 되지요. 반역자는 루이스터 대공이 될 테니까요.”

“어, 어떻게…?”

아르투아가 관심을 비추자 잔느가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품에서 작은 구슬을 꺼내 대공 앞에 내밀었다.

사람들은 잔느가 미색으로 사람을 홀린다고 여겼고, 그녀를 추앙하는 이교도들 역시 그녀가 특별한 능력을 가진 마녀라 믿었다. 하지만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욕망과 열등감을 빨아들여 사람의 정신을 조종할 수 있게 하는 마도구입니다. 이 마도구가 루이스터 대공을 조종해 반역을 일으키게 할 겁니다.

“이것이 마도구라고….”

대공이 홀린 듯 쇠창살 가까이에 다가서 구슬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닿자 검은 구슬이 붉게 물들었다.

“아, 이런. 대공 전하의 마음속에도 그것들이 있군요.”

잔느가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를 냈다. 순식간에 아르투아의 눈빛이 탁해졌다. 그가 홀린 듯 중얼거렸다.

“국왕과… 루이스터 형님을… 서로 싸우게 만들어….”

“네, 바로 그겁니다. 절 믿으세요, 대공.”

잔느가 철창 사이로 팔을 뻗어,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아르투아의 손을 어루만졌다. 아르투아의 손에서 힘이 스르르 빠져나가고 마침내 그녀의 손에 열쇠가 떨어졌다. 잔느의 얼굴에 승리감이 번졌다.

왕족을 손아귀에 넣었으니, 반역 정도는 꾸며야지. 그녀는 세상을 발아래에 둘 계획을 세웠다.

다음 날 새벽, 텅 비어 버린 첨탑에 남은 것은 잔느를 감시하던 교도관의 시체뿐이었다.

***

다시 현재.

잔느의 저택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된 자들이 각자의 생각으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에렌이었다.

“역시 이 저택을 좀 더 조사해봐야겠어. 아르투아와 잔느를 연결할 만한 단서가 있을 거야.”

“저와 레오가 조금 전까지 저택을 다 뒤졌지만, 특별한 걸 찾지는 못했어요.”

오스칼이 허탈하다는 듯 콧잔등을 찡그렸다. 그 표정에 담긴 뜻을 이해한 에렌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저택의 지하실도 확인해 본 거야?”

“지하실이 있어요? 아무리 둘러봐도 이 저택 안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은 없던데요?”

오스칼이 무슨 말이냐는 듯 에렌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에렌을 대신해 단테가 대답했다.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저택엔 지하실이 존재하지만, 입구가 숨겨져 있습니다. 물론 그 사실을 아는 자의 입을 열기가 쉽진 않았지요.”

어딘가 살벌한 문장에 오스칼의 뒷덜미가 서늘해졌다. 열기 힘든 입을 대체 어떻게 열었다는 걸까. 오스칼의 동공이 흠칫 떨리는 것을 본 에렌이 변명하듯 화제를 바꾸었다.

“그,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어? 참, 그러고 보니 소개가 늦었군. 오스칼은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겠지. 여긴 내 오랜 벗, 단테야. 그리고 단테, 이 두 사람은 나와 사업파트너로 알게 된….”

“압니다. 오스칼 그리고 레오폴드 칼릭스. 뤼미에르 기사단의 기사들이지요.”

단테가 조용히 읊조렸다. 제일 처음 두 사람을 조사해 에렌에게 보고한 것이 바로 그였다.

“아, 그렇겠군.”

그제야 단테에게 지시했던 일이 떠오른 에렌이 머쓱하게 뒷덜미를 쓰다듬었다. 레오와 오스칼에게 인사라도 하듯 고갯짓을 한번 까딱한 단테는 저벅저벅 주방으로 향했다.

단테는 벽면을 가득 차지하고 있는 주방의 식료품 찬장을 눈으로 꼼꼼하게 뜯어보았다. 그리고는 주방에 놓인 냅킨을 한 장 뽑아내 찬장 근처를 서성이며 틈새마다 대어 보았다.

그의 손에 들린 냅킨이 찬장의 어느 한쪽 귀퉁이 근처에서 팔랑거렸다.

“이곳이군요.”

그가 찬장을 있는 힘껏 밀어냈다. 그러자 벽면에 붙어 있던 찬장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끼이익-

지하실로 통하는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비밀 통로였다. 오스칼이 신기한 듯 입을 딱 벌렸다. 입구 아래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한 공간이 펼쳐졌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너머에서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귓등을 스쳐 가는 기분 나쁜 냉기에 오스칼이 몸을 살짝 떨었다. 그 떨림을 눈치챈 레오가 오스칼의 표정을 슬쩍 살폈다.

예전부터 인간보다 형체도 없는 귀신을 더 무서워하는 희한한 녀석이었다. 레오가 잘게 떨리는 오스칼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 안았다.

“무서우면 넌 가지 않아도 돼. 나 혼자 다녀오겠다.”

“그럴 순 없어.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귀신 이야기 따위에 질 수 없지.

오스칼이 초조함을 감추려 의욕적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긴장감으로 말아 쥔 손끝이 차가웠다. 오스칼의 어깨를 감싼 레오의 팔에 에렌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제가 먼저 내려가겠습니다.”

어느새 주방 한쪽에서 등잔을 찾아 불을 붙인 단테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런 단테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던 에렌이 그의 뒤를 따라오는 오스칼을 돌아보았다.

“발밑이 어두운데, 내가 에스코트 해줄까? 자, 내 손을 잡아.”

에렌이 다정한 목소리를 내며 오스칼의 한쪽 손을 감싸 쥐었다. 오스칼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오스칼의 뒤를 따라오던 레오가 먼저 대꾸했다.

“제 동료는 제가 챙길 테니, 경께서는 그쪽 동료나 신경 쓰십시오.”

그러고는 넌지시 오스칼의 팔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본의 아니게 계단 위에서 두 남자에게 팔 하나씩을 잡힌 채 사이에 낀 모양새가 된 오스칼이 눈썹을 찡그리고 톡 쏘아붙였다.

“제가 알아서 갈 수 있거든요? 두 사람 다 본인 발아래나 조심해요.”

“윽.”

“큭.”

오스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남자가 동시에 휘청이며 신음을 흘렸다.

오스칼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느라 미처 앞을 확인하지 못하고 발을 헛디딘 탓이었다. 오스칼이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계단이 끝나자 음습한 지하 공간이 나타났다. 과거 감옥으로 쓰던 장소였다. 깊은 동굴 같은 지하에서 음산한 기운이 흘렀다. 지하실의 복도를 따라 녹이 슨 쇠창살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네 사람은 본능적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레오, 어쩐지 검은 숲이 생각나지 않아?”

발아래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냉기와 스산한 공기. 이렇게 섬뜩한 기분은 샤르트르의 검은 숲 이후 처음이었다.

“삿된 것이 있는 것만은 확실하군.”

레오가 자신의 검을 단단히 붙잡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주인님, 저기!”

무언가를 발견하고 다급하게 에렌을 찾는 단테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길게 이어진 지하실의 복도 끝 창살 너머 안쪽에서 희미한 붉은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수상쩍은 빛을 확인한 네 사람이 빠르게 달렸다. 붉은 결계로 가로막힌 감옥 안, 반라의 모습으로 쇠사슬에 팔이 묶여 매달려 있는 사내가 보였다.

죽은 듯 고개를 늘어뜨리고 있는 남자를 확인한 오스칼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큼지막해졌다.

“크, 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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