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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59)화 (59/138)

59화



 

“도박 빚으로 생활고를 겪다가 몇 달 전 시에나에서 실종되었다는 신고가 접수된 자인데, 전에 일하던 농장의 잡역부에게 돈을 주고 일자리를 넘겨받았다는군요.”

얼굴을 감싸던 복면을 턱 아래로 내린 단테가 제게 묶여온 남자를 발로 걷어차며 에렌에게 아뢰었다.

에렌이 바닥으로 나동그라진 남자를 사나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의 푸른 눈에 담긴 호수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묶여 있는 남자는 단단히 겁에 질린 얼굴로 몸을 떨었다. 도망치려다 단테에게 몇 대 얻어맞았는지 그의 눈두덩이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다.

에렌이 한쪽 무릎을 굽혀 앉아, 남자와 눈을 맞추었다.

“네 놈이 말의 먹이에 약을 탔느냐?”

“그…. 그게….”

남자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우물거렸다.

“도박 빚이 있다는 놈이 굳이 돈까지 쥐여 주며 잡역부 자리를 탐냈을 리는 없고.”

에렌이 남자의 턱을 거칠게 잡아들었다.

“누군가로부터 날 해치라는 사주를 받았겠지. 배후를 말하면 아량을 베풀어 네 목숨만은 살려 줄 수도 있어.”

“저, 저는 모릅니다.”

“말을 할 수 있을 때 빨리 털어놓는 게 좋아. 내 인내심이 지금 바닥이거든.”

남자의 귓가에 나직하게 속삭이는 에렌의 목소리에서 살기가 넘실거렸다.

그 모습을 본 알랭이 위태롭게 몸을 비틀거렸다. 지금껏 한량 행세를 해 왔지만, 알랭이 알고 있는 에렌은 본디 집요하고 냉정한 성정을 지닌 사람이었다.

에렌이 젊은 나이에 엄청난 부를 손에 쥘 수 있었던 까닭도 그런 성정 덕분일 것이다.

에렌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저 언젠가부터 어디에도 진심을 두지 않게 되었을 뿐.

알랭은 비로소 깨달았다. 제 주인이 오스칼에게 진심이었다는 사실을.

가벼운 호기심 정도로 끝나기를 바랐건만…. 간담이 서늘해진 알랭이 식은땀이 흐르는 이마를 훔쳤다.

“저, 저는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에렌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에렌이 코웃음을 치고는 부하들을 향해 눈짓했다.

매부리코에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린, 잔악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가 무시무시한 도구를 들고 나타났다.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도 모를 섬뜩한 물건의 형체를 확인한 남자가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네 놈이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지켜보지.”

자비도 연민도 찾아볼 수 없는 차가운 푸른 눈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에렌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의 부하가 서서히 잡역부에게 다가갔다.

살갗에 차가운 쇠붙이가 닿자 붙들린 남자가 꽥 고함을 질렀다.

“자, 자, 잠시만요! 그, 그게. 빚 때문에 사채업자들에게 어디론가 끌려가 노예로 부려졌었는데, 누가 어떤 야, 약을 주면서 대공 전하의 농장에 잠입해서 말 먹이에 약을 타면 비, 빚도 갚아주고 절 풀어주겠다고…!”

“그게 누구였지?”

부하에게 손짓으로 물러나라고 명한 에렌이 으르렁대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눈이 찌르듯 남자를 응시했다.

“이, 이름은 모릅니다. 부, 붉은 눈을 가진 크…. 큭.”

입을 여는 남자의 눈이 뒤집혔다. 그리고는 숨이 막힌다는 듯 온몸을 뒤틀며 몸부림을 쳐댔다.

“빨리 저놈을 잡아! 죽게 놔둬선 안 된다!”

에렌의 외침에 그의 부하들이 허둥지둥 남자의 몸을 붙들고 남자의 입을 강제로 열었다. 그러나 남자의 경련은 더욱 심해질 뿐이었다. 어느새 남자의 입에서는 거품이 흘러나왔다.

“크아악!”

외마디 비명을 지른 남자의 몸에서 붉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비명을 끝으로 남자의 몸이 축 늘어졌다. 더 이상 손을 쓸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 모습을 목격한 다른 사용인들이 공포에 찬 눈으로 비명을 질러댔다. 알랭은 마치 못 볼 걸 보았다는 듯 고개를 돌려 눈을 감았다.

“젠장, 이게 대체 뭐지?”

에렌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남자의 시체를 살피던 단테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흑마법입니다. 배후를 발설하려고 하면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저주일 겁니다.”

에렌이 기가 막힌다는 듯 머리를 쓸어 넘겼다.

“흑마법이라고? 왕국에 아직 그런 사특한 것을 다루는 자가 있는 건가.”

“한 사람, 있지요.”

그 말을 하는 단테의 눈에서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에렌이 이제야 그 말을 이해했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 채 마른세수를 했다. 계약이라는 미명하에 온갖 더러운 짓을 저지르는 자.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들 준비해. 샤무아로 간다.”

***

“콜록콜록.”

“어떡해. 레오 너 밤새 내 옆에 있다가 감기에 옮았나 봐.”

“그, 그냥 기침만 조금 나는 정도다.”

꽤 컨디션을 회복한 오스칼이 레오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눈길을 건네자, 레오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오스칼이 레오의 극진한 간호로 컨디션을 되찾은 반면, 이제 레오가 연신 기침해대고 있었다.

“네가 간호해 준 덕분에 몸이 꽤 좋아졌어. 정말 고마워.”

오스칼이 레오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별것 아니었다.”

“근데 생각보다 너도 면역력이 좀 떨어져 있었나 봐, 고작 옆에 있었다고 옮은 걸 보면.”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까맣게 모르는 오스칼이 레오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크흠.”

레오가 다시 한번 기침을 쏟아냈다. 그냥 옆에 있기만 한 게 아니었으니, 감기가 옮은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간밤에 있었던 ‘생존의 기술’을 떠올린 그의 귓바퀴가 발그스름해졌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방문이 부서져 있길래 깜짝 놀랐어.”

“문이 잠겨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멋쩍은 듯 고개를 돌리는 레오를 본 오스칼이 다시 한번 웃었다. 사실 부서진 문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이마 위에 있던 물수건과 제 옆을 지키고 있던 레오의 모습이었다.

그가 자신을 밤새 간호할 줄은 몰랐는데.

다정함을 보이는 것이 부끄럽기라도 한 듯 무뚝뚝하게 구는 그가 귀여웠다.

“저어…. 잠시 들어가도 될지요?”

두 사람이 어쩐지 간질간질한 기분에 젖어 있을 무렵, 제라드가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는 빼꼼히 안을 들여다보았다.

“평소엔 제집처럼 드나들더니 갑자기 왜 격식을 차리고 그래?”

노크까지 하고 문을 여는 제라드를 향해 오스칼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 그래도 여기 단장님과 형님이 가, 같이 사시는 곳이니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갑자기?”

“예? 예예. 제가 그동안 너무 생각 없이 드나들었나 싶기도 하고….”

“소설 때문에 온 거면 그렇게 멀거니 서 있지 말고 이리와 앉아.”

오스칼이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예? 예….”

제라드가 당황한 듯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오스칼에게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다소곳이 앉았다.

오스칼이 소설에 대해 무슨 말을 시작했지만, 제라드의 귀에는 그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바로 오늘 아침 그가 목격한 일 때문이었다.

***

몇 시간 전, 이른 아침.

“단장님, 형님 안녕하십니…까?”

힘차게 문을 열어젖힌 제라드가 아무도 없는 테이블을 보며 눈을 끔뻑거렸다.

레오도 아침잠이 없는 편이었고, 오스칼 역시 이른 아침부터 운동을 시작하곤 했으므로, 이 시간쯤이면 두 사람은 분명 응접실에 앉아 있어야 했다.

“어라. 두 분 다 아침부터 임무라도 나가셨나?”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돌아 나가려는데, 어쩐지 위화감이 느껴졌다.

뭔가를 급히 뒤진 모양인지 찬장의 물건들은 쓰러져 굴러다니고 있었고, 바닥에는 물이 흥건했다. 이상함을 느낀 제라드가 문득 고개를 들어 2층을 올려다보았다. 2층 어귀, 오스칼의 방문이 열려 있었다.

제라드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항상 잠겨있던 오스칼의 방문이 열려 있다는 것은 좋지 못한 징조였다. 얼마 전 오스칼이 집을 나갔을 때처럼.

‘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제라드가 허리춤의 칼을 뽑아 들고는 한달음에 층계를 올랐다. 강제로 문을 열었는지 오스칼의 방문 입구에 부서진 나뭇조각과 깨어진 문고리의 조각들이 보였다. 제라드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흡.”

긴장감에 숨을 참고 몸을 바짝 낮추었다. 칼을 단단히 손에 쥔 그가 살금살금 걸어가 부서진 문 사이를 들여다보았다.

‘히익!’

제라드가 가까스로 터져 나오는 소리를 꾹 참아냈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침대 옆에서 오스칼의 손을 잡은 채, 구부정한 자세로 졸고 있는 레오의 모습이었다. 로맨스 소설 작가로서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있다!

당황한 제라드는 그대로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

회상을 멈추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제라드가 오스칼과 레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대체 단장님은 왜 형님의 손을 잡고 있었던 거지? 문까지 부수고 두 분이 대체 뭘 하셨던 거야?’

그의 동공이 잘게 흔들렸다.

‘서, 설마 형님이 내게 알려 준 영감의 원천이 전부 경험담…?’

제라드의 작가적 상상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레오와 오스칼이 야릇하게 뒤엉키기 시작했다.

‘아, 안돼. 뇌야 상상하는 걸 멈추라고!’

짝-

제라드가 자기 뺨을 한 대 철썩 때렸다. 오스칼이 깜짝 놀라 제라드를 바라보았다.

“으악, 제라드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저, 저는 한 대쯤 맞아도 됩니다.”

새빨갛게 부어오른 뺨을 어루만지며 제라드가 말을 더듬었다.

‘이 망할 상상력 같으니라고!’

제라드가 자신을 책망했다. 하지만 이내 얼마 전 레오가 그에게 연애니, 사랑이니 하는 것을 상담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으아악!”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제라드가 별안간 또 소리를 질렀다. 더 참지 못한 오스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자식이 대체 왜 이래? 뭘 잘못 먹었나.”

“아, 아닙니다. 형님.”

제라드가 오스칼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눈을 굴렸다. 어쩐지 그의 낯빛이 붉었다.

“쿨럭쿨럭, 제라드. 정신 사나우니까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오늘은 이만 돌아가.”

“예? 예예. 저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미간을 찌푸리며 기침하는 레오의 모습에 제라드가 허겁지겁 일어났다. 본부를 빠져나온 그가 뒤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형님. 제가 비밀은 절대 지켜드리겠습니다.”

***

빛이 들지 않는 시에나의 가장 어두운 골목, 무장한 병사들이 골목 안을 가득 메웠다. 행인들은 그 골목과 병사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으려 애쓰며 못 본 척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병사들을 헤치고 저벅저벅 걸어온 금발의 남자가 으스스한 분위기의 오크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에렌은 완벽히 무장한 상태였다.

그가 거칠게 오크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만 골목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질 뿐 대답은 없었다.

에렌의 옆에 서 있던 단테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숨을 들이쉬고는 허리춤에서 단도를 꺼내 들었다. 이내 자기 손에 작은 상처를 낸 단테가 턱을 딱딱하게 굳힌 채 말했다.

“이게 샤무아의 본성이지요. 피를 원하는 자입니다.”

에렌이 눈썹을 치켜뜨고는 단테의 행동을 미심쩍은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단테가 피가 흐르는 손바닥을 문에 갖다 대자 오크 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 괴기스러운 장면에 눈썹을 한번 꿈틀거린 에렌이 조용히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샤무아의 수장을 생포한다. 저항하는 자는 죽여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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