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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49)화 (49/138)

49화



 

“내가 남색가였다니.”

레오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간 제라드가 에렌을 두고 남색가가 틀림없다고 흉을 보았을 때, 왜인지 마음이 뜨끔했던 까닭을 이제야 알 것도 같았다.

그는 착잡한 얼굴로 ‘남색’이라는 단어에 펄쩍 뛰던 오스칼의 모습을 떠올렸다. 오스칼은 기사단원들이 에렌이 그에게 관심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말할 때마다 몸서리치며 싫어했다.

만일 마음을 들켜 오스칼이 그를 경멸하는 눈으로 바라본다면….

쿵-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오스칼은 질색한 얼굴로 그의 곁을 떠나버릴 것만 같았다.

마음 한구석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따끔거렸다. 조금 전까지 손과 발에서 느껴지던 찌릿함이 어느새 가슴으로 옮겨갔는지 아프게 저릿저릿했다.

‘절대 내 마음을 들켜선 안 돼.’

그 생각이 레오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는 오스칼이 여자든, 남자든, 심지어 인간이 아니라 할지라도 상관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저 오스칼이라는 존재일 뿐이었다. 제 옆에 오스칼이 있다는 것, 그것만이 중요했다.

***

늘 그런 법이다. 이성은 감정을 이길 수 없다. 들키면 안 된다고 생각할수록, 사랑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거짓말처럼 몸은 의지를 반한다.

제라드가 진단한 ‘사랑의 열병’은, 자각한 후엔 진행이 걷잡을 수 없이 더 빨라지는 병인 모양이었다. 간헐적으로 그를 괴롭혀 오던 열병의 증상은 이제 오스칼을 마주할 때마다 나타나고 있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오스칼을 한번 의식하게 되자, 지금까지 자신이 오스칼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며칠 전 오스칼이 높은 곳에 있는 접시를 꺼내 달라고 할 때였다.

“레오, 나 손이 안 닿아서 그러는데 저 접시 좀 내려줘.”

까치발을 들고도 손이 닿지 않아 낑낑거리는 귀여운 오스칼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던 레오는 순식간에 뻣뻣해졌다.

오스칼의 어깨너머로 손을 뻗던 그의 목 언저리에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닿았던 것이다. 오스칼에게서 풍기는 바닐라 향이 그의 코를 간지럽히자 핑 현기증이 돌았다.

아찔한 기분에 레오의 하반신이 자신도 모르게 겸손해졌다. 찬장을 향한 팔 아래, 그의 몸이 최대한 오스칼에게 닿지 않도록 멀찍이 물러났다. 엉덩이를 뒤로 쭉 뺀, 터무니없이 엉거주춤한 자세였다.

“단장님. 화장실이 급하십니까?”

마침 본부로 들어온 제라드가 눈치도 없이 지껄였다. 그 목소리에 오스칼이 뒤를 돌아보았다.

“응? 너 화장실 가고 싶어?”

“윽.”

오스칼의 얼굴이 자신을 향하자 레오가 펄쩍 뛰어오르며 뒷걸음질을 쳤다. 새삼스러운 그의 태도에 오스칼이 눈을 찡그린 채 레오를 바라보았다.

“나, 나는 바쁘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제라드에게 부탁하도록.”

이미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자신의 낯빛을 들킬까, 레오는 마치 화장실이 급한 사람처럼 황급히 도망쳐버렸다.

식사 시간도 다를 게 없었다.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오스칼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기도 모르게 자꾸 오스칼의 분홍빛 입술에 시선이 갔다.

“그래서 마티스가 기욤에게 뭐라고 했냐면….”

오늘 있었던 일을 신나게 이야기하는 오스칼의 입가에 고기 소스가 묻어있었다. 레오는 테이블 위에서 초조하게 손가락만 두드렸다.

저걸 닦아주어도 될까? 그의 행동이 ‘자연스러운 동료 사이의 친절’이라고 받아들여질까? 닦아주다가 혹, 식사 시간 내내 제 입술만 쳐다보고 있었다고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그는 냅킨에 손을 가져갔다 말았다 안절부절못했다.

“으하하, 오스칼! 너 입 근처에 뭐 묻었다. 바보 같아!”

지나가던 마티스가 오스칼을 향해 웃어댔다. 그리고는 휴지를 들고 다가와 오스칼의 입가를 쓱 닦아주었다. 오스칼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레오를 향해 투덜거렸다.

“아 뭐야! 레오 넌 내 앞에 계속 있었으면서 왜 알려주지도 않은 거야? 너무 나한테 무관심한 것 아냐?”

“그게 아니라….”

그는 억울한 마음으로 오스칼의 원망스러운 눈빛을 받아냈다.

마음을 자각한 후로 그의 일상은 이런 식으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물론, 절정은 막 샤워를 하고 나온 오스칼을 마주친 오늘 저녁에 일어났다. 오스칼이 머리칼 아래로 뚝뚝 물을 흘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레오, 너 열이 나는 것 같은데. 괜찮아?”

젖은 머리칼과 그 아래 드러난 흰 목덜미를 본 레오의 얼굴엔 화르륵 열이 올랐다. 오스칼이 가까이 다가가 그의 낯빛을 살폈다. 막 세수를 마친 말간 얼굴이 걱정스러운 듯 그를 응시했다.

가까이 갈수록 점점 더 붉어지는 레오의 뺨에 고개를 한번 갸우뚱한 오스칼이 불쑥 자신의 손을 레오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뭐, 뭐 하는 건가!”

레오가 이마에 닿은 오스칼의 손을 뿌리치며 몸을 뒤로 물렸다. 레오의 요란한 반응에 오스칼이 왜 그러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열은 없는 거 같아 다행인데…. 너, 왜 그래?”

“귀, 귀찮으니까, 나한테 신경 쓰지 마!”

당황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 레오가 제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오스칼은 그 모습을 황당한 듯 바라보았다.

“쟤가 갑자기 왜 저래? 요새 나한테 불만 있나…. 설마 귀찮으니 이제 나가 달라는 건 아니겠지?”

이 집에 온 첫날, 거처가 정해지면 나가 달라는 그의 말을 떠올린 오스칼이 눈썹을 늘어뜨렸다. 그동안 기약도 없이 꽤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긴 했다.

오스칼은 곰곰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터덜터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마티스는 레오의 방 한쪽 의자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와 함께 기사단의 예산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살림이 꽤 넉넉해져서, 예산 운용에 여유가 생겼어.”

“잘된 일이군.”

서류를 훑어보던 레오가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두 사람은 복잡한 숫자들을 내려다보며, 한참 동안 머리를 맞댔다. 어느 정도 논의가 끝났을 무렵, 마티스가 문득 말을 건넸다.

“그나저나, 요즘 오스칼과 한집에서 지내는 건 좀 어때?”

“뭐?”

마티스의 입에서 오스칼의 이름이 나오자, 줄곧 담담하던 레오의 목소리에 미세한 변화가 생겼다.

“오스칼과 함께 있는 게 어떠냐고.”

왜 마티스가 내게 그런 걸 물어보지? 설마 요즘 내 상태를 눈치챈 건가? 레오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목이 바짝 탔다.

“그, 그 녀석이야 늘 성가시지. 빨래 가지고 조잘조잘 시끄럽게 잔소리나 하고, 할 줄 모르는 것도 많아 손도 많이 가서 귀찮고, 덮어놓고 여기저기 나서는 통에 신경도 쓰이고….”

레오가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았다. 그는 제 본심을 필사적으로 숨기려 애썼다. 마티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좋아하는 것과 함께 사는 것은 다른 문제인가….

“흠, 아무래도 여태 혼자 살던 네가 누구와 함께 지내는 건 쉽지 않지?”

“그게 무슨 뜻인가?”

“예산이 넉넉한 김에 오스칼의 거처를 따로 마련해 줄까 해서. 따지고 보면 예산을 벌어온 것도 그 녀석이니까.”

“뭐?”

오스칼과 함께 있는 게 어떠냐는 질문이, 같이 사는 게 불편하지 않냐는 뜻인 모양이었다. 괜히 찔려 딴소리로 받아들인 레오가 마른침을 삼켰다. 문득 어디선가 쿵쿵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사실 오스칼은 이곳엔 임시로 있기로 한 거잖아? 너도 그 녀석과 따로 살길 원했고. 이제 오스칼도 슬슬 다른 곳에 보낼 때가 됐지.”

“그 녀석을 보내길 어딜 보낸다는 건가?”

레오의 목소리가 불쑥 높아졌다. 그러자 마티스가 한쪽 눈썹을 올리고는 레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네가 방금 오스칼과 함께 사는 게 성가시다며?”

“성가시긴 하지만 불편한 건 아니다. 불도 제대로 못 피우는 녀석이라 혼자 지내는 게 쉽지 않을 거다. 따로 거처를 구하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고.”

레오가 변명하듯 주절거렸다. 마티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역시 이 녀석….

“그래서 네 말은….”

“그러니까, 크흠. 오스칼이 굳이 이 집에서 나갈 필요는 없다는 거다.”

제 본심을 사실대로 이야기하기 민망한 듯 레오의 귓불이 발그스름해졌다.

똑똑-

“단장님. 정찰 보고를 드리러 왔습니다.”

드미트리가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레오의 방으로 들어왔다. 레오는 순식간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빈틈없는 얼굴로 드미트리를 맞이했다. 드미트리는 인근 지역의 치안 상태를 꼼꼼하게 보고했다.

“그래서, 다른 특이점은?”

“기사단에서 자주 순찰하는 덕분에 어느 정도 정리는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이교도 잔당들이 하나둘 출몰하는 듯합니다.”

“꾸준히 정찰해서 점검하지. 인근 지역뿐만 아니라 치안이 좋지 않은 국경 지역들도 도움 요청이 있는지 확인하고.”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오스칼 형님은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

드미트리의 뜬금없는 질문에 레오가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마티스 역시 무슨 말이냐는 듯 드미트리를 바라보았다.

“아까 제가 본부로 들어오는 길에 오스칼 형님을 마주쳤는데, 짐꾸러미를 들고 씩씩대며 나가시지 뭡니까. 어디를 가시냐 물었더니 답은 안 하고 ‘성가시다고?’라고 소리치시던데요.”

“뭐?”

레오가 책상을 짚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허겁지겁 방을 나선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문이 활짝 열린 오스칼의 방이었다. 어질러진 물건 하나 없는 깨끗한 방.

“늘 잠겨있어서 오스칼 방은 처음 보는데…. 원래 이렇게 생활감이 없는 방이야?”

뒤따라 나온 마티스가 신기한 듯 아무것도 없이 깨끗하게 정리된 오스칼의 방을 휘- 둘러보았다.

오스칼이 깔끔떠는 성격이긴 했지만 지나치게 깨끗했다. 아니, 이 정도면 집을 나간 듯 텅 비어있었다.

“오스칼이 짐을 싸서 나가는 것 같았다고?”

레오가 초조한 얼굴로 드미트리를 향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묻어있었다.

“예? 예…. 짐가방 같은 걸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그게 언제였나?”

“제가 단장님을 찾아뵙기 직전입니다.”

레오가 조급한 손으로 옷장 문을 열어젖혔다. 옷장엔 양말 한 짝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마티스와 대화를 나누는 도중 들려왔던 쿵쿵대는 소리. 혹시 그게 오스칼의 발걸음 소리라면…!

“그, 그 녀석이야 늘 성가시지. 빨래 가지고 조잘조잘 시끄럽게 잔소리나 하고, 할 줄 모르는 것도 많아 손도 많이 가서 귀찮고, 덮어놓고 여기저기 나서는 통에 신경도 쓰이고….”

자신이 내뱉은 말이 떠오르자 레오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설마…. 그럴 리가.”

레오가 망연자실한 표정이 되어 우두커니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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