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노이어 성에서의 흥겨운 무도회가 끝나고, 다음날 기사단은 영지민들의 열렬한 환송을 받으며 노이어를 떠났다.
그리고 귀갓길에 오른 청년들에게 최고의 화젯거리는 뭐니 뭐니 해도 로잘린과 오스칼의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형님. 연애 경험이 없으시다더니 대체 언제 로잘린 영애의 마음을 사로잡으신 겁니까?”
“역시 세상일은 모르는 겁니다. 단장님이 아니라 오스칼 형님이라니요!”
노이어를 떠나올 때, 로잘린이 오스칼의 손을 꼭 붙잡고 눈물지은 일을 두고 청년들은 내내 호들갑을 떨어댔다.
“숙맥인 척 무도회 때는 어디 숨어서 나오지도 않더니, 뒤에서 은밀하게 움직였던 모양이군?”
마티스 역시 놀리듯 말했다. 그는 내심 안심하고 있었다. 레오 녀석이 안타깝긴 했지만, 오스칼이 여자를 좋아한다면 레오는 어쩔 수 없이 제 마음을 단념할 것이다.
마티스는 레오가 남색가라는 사실을 죽을 때까지 혼자만의 비밀로 지킬 작정이었다.
“윽, 놀리지 마. 로즈는 그저 우정의 의미로….”
“로즈? 로즈요? 이미 애칭까지 부르시면서! 그리고 남녀 사이에 우정이 어딨습니까?”
제라드의 열변에 오스칼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사실 가장 당황한 것은 오스칼이었다.
티타임에서부터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로잘린이 레오가 아닌 자신에게 관심을 보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다들 허튼소리는 그만해.”
어딘가 심기 불편한 레오의 목소리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녀석…. 시작도 못 해보고 와장창 차여버리는구나.’
마티스가 레오를 짠한 눈으로 바라보던 그때, 기욤이 큰소리로 외쳤다.
“어? 본부 앞에 마차가 서 있는데요? 저 남자는 누굽니까?”
말 위에 올라탄 청년들의 이목이 일제히 집중되었다. 붉은 장미 꽃다발을 든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
화려한 붉은 장미 꽃다발을 손에 든, 단정한 슈트 차림의 머리가 하얗게 센 남자. 오스칼은 그 남자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에렌의 집사, 알랭이었다.
“오스칼님, 드디어 오셨군요. 에렌 님의 심부름으로 왔습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였다. 그는 예의 바르지만, 냉랭한 눈빛으로 오스칼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못마땅해 보이기도 한 표정이었다.
낯선 남자의 입에서 에렌의 이름이 나오자, 레오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여긴 어쩐 일로 오신 건가요.”
오스칼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주인님께서 사업문제로 뵙고 싶어 하십니다.”
“겨우 그것 때문에요?”
그런 일이라면 지난번처럼 심부름꾼을 보내면 될 텐데, 이곳에 집사까지 보낼 일인가?
“크흠. 오스칼 님께 전하라는 물건과 말씀이 있었습니다.”
오스칼이 뭐라고 대답도 하기 전에, 알랭은 재킷의 안주머니에서 곱게 접혀 있는 고급스러운 종이를 한 장 꺼내 들었다. 그 종이 뒤로 언뜻 ‘사직서’라고 적힌 봉투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종이를 펼쳐 든 알랭은 쪽지에 쓰인 단정한 필체의 메시지를 큰 소리로 또박또박 읽어 전해주었다.
그리운 오스칼, 비즈니스 미팅을 위해 인쇄소에 방문해 주기만을 기다리겠어. 나의 마음을 담아 그대를 닮은 아름다운 꽃을 보내니 다시 만날 때까지 그 꽃을 보며 날 떠올리길 바라지. 물론 그대가 꽃보다 아름답겠지만.
–늘 그대를 생각하며, 에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