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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42)화 (42/138)

42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오스칼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말쑥한 연미복 차림의 레오가 테라스의 유리문 앞에 서 있었다.

“네가 여긴 웬일….”

오스칼이 뜻밖이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레오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남작이 어찌나 말이 많은지, 겨우 빠져나왔어. 어딜 가나 했더니,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잘 잡았군. 나도 시끄러운 건 질색이라.”

그는 평소 같은 무심한 목소리로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귀족과의 대화에는 이제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머리를 한번 쓸어 넘겼다.

포마드를 발라 말끔하게 고정된 그의 머리가 헝클어졌다.

레오는 오스칼의 옆에 자리를 잡고 난간에 몸을 기대어 섰다. 오스칼이 제 옆에 선 레오를 올려다보았다. 피곤해 보이지만 그의 옆모습은 여전히 그린 듯이 잘생겼다.

“로즈는 어쩌고 빠져나온 거야?”

“정말 영애를 ‘로즈’라고 부르기로 한 건가?”

오스칼 입에서 나온 로잘린의 애칭에, 레오가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로잘린 영애를 로즈라고 부르는 게 싫으면, 나도 이제 널 레오폴드라고 부를게.”

“네 논리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레오가 미간을 찌푸렸다. 레오의 표정을 본 오스칼이 장난과 심술이 섞인 목소리를 냈다.

오늘 아침만 해도 저를 슬슬 피해 다니던 녀석이 저를 쫓아 나와 한다는 말이, 로즈에게 친하게 굴지 말라는 타박이라니.

“제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른다는데 논리가 어딨습니까, 레오폴드 경. 경도 내킬 때만 제게 와서 말을 걸지 않습니까?”

“윽.”

오스칼의 예의를 갖춘 정중한 말투에 레오가 질색한 표정을 했다. 그 표정을 본 오스칼이 입을 벌려 웃었다.

“그런데 레오폴드 경께서는 정말 무도회는 어쩌고 이렇게 나오신 겁니까?”

“네가 도망치는 걸 봤거든. 나도 빠져나갈 기회만 엿보고 있었는데, 마티스가 로잘린 영애에게 춤 신청을 하길래 그 틈에 도망쳤지.”

어젯밤엔 사내 녀석을 두고 이상한 생각을 한 것 같아 애써 오스칼을 피했건만, 눈에 안 보이니 그건 그거대로 조급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레오의 눈은 연회장에서도 정신없이 오스칼을 좇았다.

자신을 따라 나왔다는 투의 대답에 오스칼이 살짝 달아오른 뺨을 긁었다.

“본인의 마드모아젤을 다른 기사에게 맡기고 나오는 건 기사의 도리가 아니죠, 레오폴드 경.”

오스칼이 부러 핀잔을 주었다. 레오의 미간이 한층 더 좁아졌다. 그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로잘린 영애가 왜 나의 마드모아젤이라는 건가?”

“오늘 무도회에서는 로즈가 레오폴드 경의 파트너니까요,”

“제발, 그 레오폴드 경이라는 소리 좀 그만할 수 없나?”

그렇게 말하는 레오의 눈썹이 팔자로 내려와 있었다. 어쩐지 레오를 놀리는 것이 즐거워 오스칼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오스칼이 장난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기사단원들은 모두 단장님이라고 부르고, 여기 계신 다른 분들은 모두 레오폴드 경이라고 부르던데. 저도 그렇게 불러야 하는 게 맞지 않나요, 레오폴드 경?”

“나는 네가 나를 레오라고 부르는 게 좋아.”

돌연 내뱉는 그의 솔직한 말에 오스칼의 연갈색 속눈썹이 움찔거렸다. 그의 입에서 나온 ‘좋아’라는 단어의 울림이 지나치게 달콤해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오스칼이 대꾸도 잊은 채 레오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너는 나를 레오라고 불러.”

그는 사탕을 달라고 조르는 어린아이 같은 눈빛으로 말했다. 오스칼의 심장이 다시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오스칼이 황급히 그의 눈을 피했다.

“아, 알았으니까, 그렇게 쳐다보지 마.”

“이름은?”

“알았어, 레오….”

보채듯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얼굴에 열이 올랐다. 멋쩍게 그의 이름을 부른 후 화끈거리는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고 있자니, 살짝 열린 테라스의 문틈 사이로 연회장의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까까지 경쾌한 왈츠곡이었던 음악은 이제 서정적인 멜로디로 바뀌어 있었다.

레오가 흘긋 연회장 안을 바라보더니 짐짓 무심한 투로 입을 열었다.

“넌 로잘린 영애에게 춤을 신청하지 않을 건가. 영애가 파트너까지 되어 달라고 부탁했었는데.”

“난 춤 같은 거 춰본 적 없어서 로즈에게 폐만 끼칠 거야.”

그 말에 살짝 입꼬리를 올린 레오가 불쑥 손을 내밀었다.

“그래도 연회에 참석했으니 좀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오스칼이 레오의 커다란 손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뭐야. 지금 여기서 춤추자고? 나랑?”

“내가 아니면 누가 지금껏 춤 한번 춰 본 적이 없다는 너와 파트너를 해주겠나.”

오스칼을 놀리듯 말하는 그의 귓가가 불그스름했다.

“나 정말 춤 못 춘다니까! 완전 민폐야. 거기다 남자끼리 춤을 추고 있으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네가 내게 끼친 폐가 한두 개가 아닌데, 하나쯤 더 늘어난다고 달라질 것도 없지. 게다가 보다시피 여긴 아무도 없어.”

레오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재촉하듯 오스칼에게 손을 다시 내밀었다. 오스칼이 마지못해 레오의 손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거칠지만 따뜻한 손이 제 손을 단단히 감싸 쥐었다. 순식간에 오스칼의 몸이 레오의 몸과 가까워졌다.

“으악!”

오스칼이 나지막하게 비명을 질렀다. 오스칼의 머리가 가볍게 레오의 가슴팍에 닿아 부딪혔다.

이내 레오의 다른 손이 오스칼의 허리를 감아 들어왔다. 레오의 손길에 오스칼의 몸이 움찔거렸다.

“꼬, 꼭 이런 자세로 시작해야 해?”

눈에 띄게 허둥거리는 오스칼의 모습에 레오가 쿡쿡거리며 웃었다. 낮고 부드러운 웃음소리였다.

“원래 검술도, 춤도 기본자세가 중요한 법이야.”

레오가 웃음을 머금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까이 다가선 그에게서 달콤한 향이 느껴졌다. 오스칼의 귀가 붉어졌다. 삐걱대는 오스칼의 팔과 다리를 레오가 능숙하게 리드했다.

“끙.”

스텝이 꼬여 레오의 발을 밟은 오스칼이 앓는 소리를 내며 민망한 듯 레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분명 아팠음이 분명할 텐데도, 레오는 그저 웃고 있었다.

“검술 스텝과 다를 게 없어, 리듬에 맞춰 움직이면 돼.”

오스칼이 집중하듯 입술을 앞으로 내밀고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잠시 뒤, 오스칼은 제법 춤이라고 할 만한 동작을 해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둘 곳을 모르고 방황하던 오스칼의 눈동자가 레오를 바라보았다.

“나 지금 꽤 잘 추고 있는 거 맞지?”

스스로가 대견한지 오스칼이 해사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레오의 눈매도 곱게 휘어졌다.

오직 두 사람만의 공간에서 부드러운 선율이 잔잔하게 흘렀다. 혼자뿐이라고 생각했던 오스칼의 세계에 레오가 있었다.

***

에르네스트 대공저의 집무실, 짙은 색상의 마호가니 책상 뒤에 앉은 에렌이 정교하게 조각된 의자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어 앉았다. 어둠 속에서 은밀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르투아 대공이 최근 정부(情婦)에게 저택을 하사했다는군요.”

“그걸 그렇게까지 은밀한 목소리로 말할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에렌이 한쪽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만스럽게 대꾸했다.

“숙부가 바람둥이라는 건, 왕국이 다 아는 사실 아닌가.”

심복인 단테에게 아르투아 대공에 관한 조사를 지시한 것은 맞지만, 그가 정부를 들이는 ‘아주’ 일상적인 일까지 일일이 보고하라는 뜻은 아니었다.

아르투아 대공은 라인하트 왕가의 상징인 금발 머리와 푸른 눈을 가진 샤프한 외모의 미남으로, 왕자였던 시절부터 바람둥이로 유명했다.

사르데나 공국의 공녀와 정략결혼을 한 이후에도, 뭇 여성들과의 염문이 끊이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런지라, 그가 정부에게 ‘조금’ 비싼 선물을 한 것은 특별한 일이라 할 수도 없었다.

“그리 단순한 추문이 아닙니다. 이미 그 정부와의 사이에서 장성한 아들까지 두었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에렌의 눈이 커졌다. 그가 보랏빛 머리의 사내에게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지금 왕가의 사생아가 있다는 얘기인가? 하지만 왜 여태껏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지?”

“정부와 아들은 지금까지 카탈리나 공국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20년 이상 지속된 것 같습니다만. 지금까지 철저하게 숨겼더군요.”

“지금까지 흔적도 없이 숨어지내던 그들이 왜 갑자기 라인하트에 나타난 거지?”

“그래서 이 일이 단순한 추문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르투아 대공이 곧 그들을 세상에 공개할 거라는 거지요.”

에렌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숙부에겐 딸만 둘 뿐이었지. 설마, 그 정부의 아들을 정식으로 후계자로 들일 생각인가?”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귀족들이 자신의 사생아를 후계자로 들이는 일은 흔치 않았다. 대개 정략결혼을 하는 귀족들이었기에, 부인과 부인의 가문에서는 남편의 사생아를 후계자로 들이는 것을 절대 용인하지 않았다.

“대공비가 가만히 있을까? 외손자에게 작위와 재산을 물려줄 수 있는데 정부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후계자로 들인다니.”

“사르데나 공국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 것도 한몫했을 겁니다.”

사르데나가 국경을 맞댄 카탈리나와 전쟁 중인 사정을 말하는 것이었다. 대공비의 고향 사르데나는 적국 카탈리나의 공격으로 국력이 쇠약해진 상태였다. 에렌이 츳, 하고 혀를 찼다.

“교활한 인간 같으니. 대공비의 뒷배가 약해진 틈을 노린 거군.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정치적 부담이 큰일이야. 위험을 무릅쓰고 숙부가 정부의 아들을 후계자로 들이려는 이유가 따로 있겠지.”

에렌의 손가락이 초조한 듯 책상 가장자리를 잘게 두드렸다.

“정부를 무척 사랑한다거나…하는 이유를 생각해 볼 수도 있겠죠.”

단테의 말에 에렌이 피식 웃었다.

“자네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겠지? 하루가 멀다고 여자를 갈아치우던 숙부님이 이제 와서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

“저는 그저 그것 외의 다른 이유가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는 결코 정부 따위를 위해 위험을 부담할 성정이 못 돼. 아들에게만 물려줄 수 있는 대단한 게 생겼다거나, 아들을 후계자로 들이는 대가로 정부와 모종의 거래를 했을 수도 있겠지. 점점 날 암살하려던 게 숙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되는군.”

에렌의 말에 단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정부 쪽을 좀 더 조사해 보겠습니다.”

“후계자를 내세울 거라면 분명 뭔가를 준비하는 중일 거야, 그쪽도 확인하도록 해.”

“존명.”

고개를 숙인 단테가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단테가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에렌이 고개를 기울였다.

“정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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