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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38)화 (38/138)

38화



 

오스칼은 다리를 절뚝이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레오와 로잘린의 다정한 모습을 본 이후, 어쩐지 음식이 목까지 꽉 찬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연회장을 빠져나와 버린 참이었다.

성안의 사람들이 아직 모두 연회장에 있는 탓인지, 복도엔 적막만이 감돌았다. 쓸쓸한 복도에 내려앉은 달빛이 오늘따라 유독 처량한 빛을 띠었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이미 잘되고 있네. 뭐….”

레오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던 로잘린의 모습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방에 돌아온 오스칼이 옷도 벗지 않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이리저리 뒤척이던 오스칼은 이내 팔 아래에 놓인 베개에 얼굴을 푹 묻었다.

“그래도 역시…. 남주의 행복을 위해선 로맨스 파트가 확실해야겠지.”

원작의 로맨스가 빈약했던 만큼, 외전에서라도 주인공에게 빵빵하게 로맨스를 심어줘야 무사히 해피엔딩을 볼 것이 아닌가.

그래, 빙의자는 응당 빙의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법이다. 오스칼이 제 마음을 다잡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레오, 내가 너의 행복을 위해 로맨스 폭주 기관차가 되어 주겠어!”

***

오스칼은 소화가 되지 않는 기분에 밤새 잠을 설쳤다. 조금 걷기라도 하면 소화가 될까 싶어 동이 트기 무섭게 방을 빠져나와 정원을 걸었다.

서늘하게 내려앉은 아침 공기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오스칼은 정원 곳곳에 피어있는 꽃들을 구경하며 그런대로 산책을 즐겼다.

문득 오스칼의 앞으로 가느다란 실루엣이 드리웠다. 오스칼은 가던 길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오스칼의 앞을 막아선 이는 로잘린이었다.

“아침부터 산책 중이신 건가요.”

“마드모아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오스칼이 깍듯이 예를 갖추어 로잘린을 대했다. 로잘린은 이른 아침부터 상큼한 모습이었다. 어젯밤 과식으로 인해 퉁퉁 부어있는 자신의 얼굴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간밤의 연회가 길었는데, 일찍 일어나셨나 보군요.”

“연회를 잘 준비해주신 덕분에 어젯밤에 너무 많이 먹어 속이 더부룩해서요. 걸어서 소화를 좀 시킬 참이었습니다. 하하.”

오스칼이 멋쩍게 웃었다. 로잘린이 잠깐 고민하는 기색을 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 장미 온실에 가는 길인데, 괜찮으시다면 함께 걸을 겸 에스코트 해주시겠어요?”

“물론입니다. 조금 천천히 이동해도 괜찮다면요. 제가 다리가 조금 불편해서요.”

오스칼이 선뜻 팔을 내밀었다. 로잘린은 우아한 몸짓으로 오스칼의 팔을 잡았다. 두 사람은 천천히 정원을 지나 발걸음을 맞춰 걷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던 오스칼의 눈에 로잘린이 들고 있는 큼직한 바구니와 정원 가위가 보였다.

“장미를 꺾는 일도 직접 하시나 보군요.”

“저희 영지는 늘 일손이 부족하니까요. 그래서 웬만한 건 사용인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하려고 한답니다. 다른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싶지는 않아서요.”

여자주인공은 역시 뭐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었다. 오스칼은 다시 한번 그녀가 이 외전의 여자주인공일 거라 확신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노이어 성이 이토록 잘 운영되는 건 세세한 것까지 직접 챙기시는 마드모아젤 덕분인가 봅니다.”

로잘린이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어딘가 묘한 표정으로 오스칼을 응시했다.

“오스칼 경은 평범한 남자가 아니군요.”

로잘린의 말에 오스칼이 펄쩍 뛰었다.

“제, 제가요? 그럴 리가요. 전 진짜, 완전, 아주, 평범한 남자인데요?”

혹시 여인인 로잘린이 본능적으로 자신이 여자라는 걸 눈치챈 건 아닐까,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로잘린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니요. 경은 아주 특별해요. 겉모습에 연연하지 않는 심지가 곧은 남자지요.”

로잘린은 자신이 아름답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는 일이었다.

대부분 남자들은 그녀의 미모에 눈이 멀어, 환심을 사는 것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오스칼만은 그러지 않았다. 그녀의 외모보다 그녀가 가진 다른 것에 더 주목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오스칼은 겸손하게 손을 내저었다.

“에이. 전 아주 보잘것없는 놈입니다.”

문득 눈을 데구르르 굴린 오스칼이 옳다구나, 하고 레오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로잘린에게 레오의 매력을 어필할 좋은 기회였다.

“특별한 건 바로 저희 단장님이시죠. 그분이야말로 실력으로 사람을 대우하시거든요. 저같이 작은 녀석을 기사단에 입단시켜 주실 정도로 말입니다.”

“아…. 단장님이라면, 그 투구 닦기가 취미라고 하시던….”

로잘린이 눈썹을 아래로 길게 늘어뜨리며 말끝을 흐렸다.

“푸흐학. 그 녀석, 아니 단장님이 투구 닦기가 취미라고 하던가요?”

오스칼이 본분을 잊고 웃음을 터뜨렸다. 쉴 때마다 투구를 닦고 있긴 했지만, 그게 정말 그 녀석의 취미일 줄이야.

“하여간 더럽게 재미없…. 흠흠! 아니 대단히 남자다운 취미입니다.”

오스칼이 황급히 뱉은 말을 수습해보려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허둥거리는 오스칼의 모습에 로잘린이 푸스스 웃었다. 어쩐지 귀여운 청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보다 저는 오스칼 경의 취미가 알고 싶군요.”

로잘린이 작은 기대를 품고 물었다.

아버지가 자신과 엮으려는 남자들은 하나 같이 감정적인 교류는커녕, 공감대조차 찾을 수 없는 마초들뿐이었다.

심지어 이번에 아버지가 제게 들이미는 남자는 취미가 투구 닦기라는 양철 깡통 같은 남자였다.

“전 책 읽는 걸 좋아합니다.”

오스칼의 대답에 로잘린의 얼굴이 밝아졌다.

“어머, 저와 같은 취미를 갖고 계시는군요. 어떤 책을 주로 읽으시나요.”

“전 로맨스 소설을 주로 읽습니다.”

“푸흡, 정말 의외네요. 저도 로맨스 소설을 꽤 좋아하거든요.”

기사라면 병법서나 전술서를 주로 읽을 거라 짐작했던 로잘린이 의외의 대답에 기쁨을 숨기지 못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스칼은 이때다 싶어 로맨스 폭주 기관차로서 운행을 재개했다.

“오! 사실 저희 단장님이 딱, 로맨스 소설 남자주인공 같은 분이지요. 외모면 외모, 검술이면 검술. 남자 중의 남자!”

오스칼의 말에 로잘린이 옅게 웃었다. 그리고는 나긋한 어조로 대답했다.

“글쎄요, 전 소설 속 남자주인공 같은 사람이 현실에서도 매력이 있는진 모르겠어요. 후회하는 남자, 집착하는 남자, 나쁜 남자…. 소설에선 좋아하는 것들이지만, 그건 남의 사랑이니까 재밌는 거 아닐까요.”

세상에! 이분 취향 나랑 비슷하네. 후회남, 집착남, 까칠남은 못 참지. 오스칼의 얼굴에 흥분감이 서렸다.

“그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저도 치정물을 좋아하긴 하지만 제가 그런 사랑을 하고 싶은 건 아니거든요.”

“어머. 기사님, 치정물을 좋아하신다면 혹시 복수물도 좋아하세요?”

“오! 마드모아젤도 복수물 좋아하십니까? 그럼 혹시 구원 서사는….”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로맨스 소설의 A부터 Z까지 논평하며 격정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결국, 로잘린의 바구니가 장미로 가득 채워질 때까지 두 사람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취향을 공유했다.

“돌아가면 제가 동료와 함께 발간한 소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취향에 딱 맞으실 겁니다.”

“기대할게요.”

로잘린이 생긋 웃었다. 처음 그들이 만났던 성문 앞에 다다르자, 로잘린이 바구니 안에서 장미 한 송이를 꺼내 오스칼에게 건넸다.

“오늘 저를 에스코트 해주신 보답이에요.”

“감사합니다. 제가 장미를 아주 좋아하거든요.”

“그런가요. 어떤 사람들은 장미에 가시가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던데요.”

“전 아름다운 꽃이야말로 가시를 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울수록 탐내는 사람이 많은 법이니까요. 아름다움이 전부라면 그 꽃이 너무 쉽게 꺾이지 않겠어요?”

오스칼을 바라보는 로잘린의 눈이 떠오른 아침 햇살에 비쳐 반짝거렸다.

“소설 속에선 정략결혼도 참 재밌지만, 저는 마음에도 없는 결혼은 하고 싶지가 않아요. 현실에선 대화가 잘 통하는 다정한 사람에게 끌리게 마련이거든요.”

로잘린이 오스칼의 녹색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소설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내일 기사님을 티타임에 초대해도 될까요.”

“기꺼이 찾아뵙겠습니다. 저야말로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오스칼이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로잘린은 환한 미소를 띤 채 성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스칼.”

그때 하늘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오스칼이 고개를 들어 머리 위를 바라보자, 성 2층의 창문가에서 레오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스칼이 머리 위로 팔을 휘휘 저어 인사를 했다.

“레오! 거기서 뭐 해?”

“잠깐 기다려.”

창문가에서 사라진 레오가 어느새 오스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오스칼의 손에 들려있는 장미꽃을 흘긋 바라보았다.

“아침부터 로잘린 영애와 어딜 다녀오는 건가.”

아! 혹시 로잘린 영애가 아침부터 나와 함께 있었다고 질투하는 건가?

그새 질투라니. 레오가 로잘린 영애에게 빠져도 단단히 빠진 모양이었다. 오스칼이 씩 웃으며 레오를 안심시켰다.

“산책 중에 우연히 마주쳤는데, 에스코트를 해 드린 것뿐이야. 이 장미는 그 답례로 받은 거고. 다른 의미는 없어!”

“그런가.”

레오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어 아침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평소 보폭이 크고 걸음이 빠른 레오였지만, 오늘만큼은 다리가 불편해 빨리 걷지 못하는 오스칼의 걸음걸이에 맞추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생각 같아서는 그냥 번쩍 들어 올려 식당까지 옮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레오는 꾹 눌러 참았다.

어제 오스칼은 말에서 내려 자신을 방까지 안아 들어 옮겨주려는 그에게, ‘공주님 안기’는 싫다며 강하게 저항했었으니.

“로잘린 영애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영지 관리 능력도 출중한데, 그 미모는 또 어떻고!”

식당으로 가는 내내 오스칼은 레오에게 로잘린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기 바빴다. 레오의 미간에 미세한 주름이 잡혔다.

“너, 그런 타입의 여자가 취향인가?”

레오의 목소리에는 어쩐지 뾰족뾰족한 가시가 돋아있었다. 무슨 말인가 싶어 오스칼이 도로록 눈알을 굴렸다.

“음, 로잘린 영애 같은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는 없겠지? 너도 영애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하! 그래서 아까부터 영애에게 장미를 받고 신이 난 모양이군.”

레오는 어느새 노골적으로 언짢아하고 있었다. 자신이 로잘린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불쾌한 듯한 그의 태도에 오스칼이 황급히 해명했다.

“로잘린 영애는 내게 과분해! 그분께는 좀 더 남자답고 잘생기고 카리스마가 넘치고 리더십이 있는….”

오스칼이 우뚝 걸음을 멈추고 레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덕분에 한 발짝 앞에 서게 된 레오가 고개를 돌려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그, 그러니까, 로잘린 영애에게는 나보다 너 같은 남자가 더 잘 어울린다고!”

순간 레오의 입꼬리가 살짝 움직였다.

“내가 남자답고 잘생겼으며 카리스마 넘치고 리더십이 있다고는 생각하는 모양이지?”

어쩐지 자신의 속마음을 들켜버린 것만 같은 기분에 오스칼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는 애써 웃음을 삼켰다. 무의식중에 자신을 칭찬하고 얼굴까지 붉히는 오스칼이 귀여웠다.

“마, 말하자면 그렇다는 얘기야. 으악!”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스칼의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 레오가 오스칼을 가뿐히 들어 자신의 한쪽 어깨에 들쳐 메었다.

“답답해서 안 되겠다. ‘공주님 안기’는 싫다고 했으니 식당까지 어깨에 매달려서 가도록 해.”

“그냥 내려줘! 답답하면 네가 먼저 가면 되잖아. 이것도 창피하다고!”

허리가 반으로 접혀 레오의 어깨에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가 된 오스칼이 주먹으로 레오의 등을 두드리며 발버둥 쳤다.

하지만 레오는 더욱 단단히 오스칼을 제 어깨에 둘렀다. 오스칼에게 등을 두들겨 맞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온통 미소가 번져있었다.

식당으로 이어지는 복도에 오스칼의 비명이 가득 울렸다. 레오는 식당에 도착할 때까지 오스칼을 내려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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