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30)화 (30/138)

30화



 

클로드의 말에 소름이 돋을 만큼 섬뜩한 기분이 든 오스칼이 후다닥 그에게서 떨어졌다.

클로드는 재미있다는 듯 오스칼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흡사 잡아먹기 전 먹잇감을 가지고 노는 맹수의 눈과 같았다.

“서, 설마 당신…. 진짜 그런 게 가능한 거야?”

오스칼이 눈에 띄게 겁먹은 표정을 짓자, 클로드가 나지막하게 웃었다.

“당신의 반응을 보니 내게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게 아쉽군. 아마 그 여자가 가진 마도구에 사람의 정신을 세뇌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을 거야.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그런 마도구를 얻게 되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 말에 오스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흑마법의 작동 원리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남자가 자신의 정신을 조종할 수는 없다는 말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오스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인신매매단 배후에 흑마법을 쓰는 이가 있다면 혹, 본편에 잠시 등장했던 잔느와 관련 있는 사람일까? 가령, 잔느에게서 그 마도구를 물려받은 자라든가.

“잔느가 화형당한 이후에 그 마도구는 어떻게 됐을까?”

“그 여자는 죽지 않았어. 튈르리에 갇혀있다가 곧 탈옥했거든.”

“뭐?”

“그 여자를 마녀랍시고 추종하는 이교도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탈옥쯤은 일도 아니었겠지.”

오스칼의 눈이 커졌다. 뜻밖의 이야기였다.

주인공이 잔느를 처치하는 짧은 에피소드 뒤로 소설은 잔느의 최후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았다.

잔느가 등장하는 에피소드 후에 세드릭의 반역 누명과 더불어 악역인 루이스터 대공의 반란까지 메인 스토리가 폭풍처럼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잔느가 살아있다니! 오스칼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빙의물의 다섯 번째 법칙. 빙의했는데 내가 알던 원작의 내용이 달라졌다면, 그건 시그널이다.〉

빙의자가 원작에 집착하는 것도 망하는 지름길이지만, 원작과 달라진 내용을 그냥 넘겨서도 안 된다.

게다가 그게 죽은 줄 알았던 악역이 살아있다는 것이라면, 시그널 중에도 특급 시그널이다. 애독자의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인신매매단의 배후가 바로 그 여자 아니야? 이교도들이 추종하는 여자라며!”

“흠.”

클로드가 뜻밖이라는 듯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오스칼이 간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잔느를 조사해 봐야 해!”

“사실 난 귀족 중에 흑마법에 손을 댄 자, 그리고 이니셜 ‘V’를 쓰는 자를 중심으로 조사하고 있었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면…?”

클로드가 묘한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에 오스칼이 아차, 싶은 기색을 애써 숨기고 눈을 부릅떴다.

“내가 부탁했으니 또 뭔가를 대가로 바치라고?”

“그 여자에 대한 걸 알아 온다고 하면, 당신이 날 더 예뻐해 주려나.”

클로드가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은근히 몸을 오스칼에게 바짝 붙여 왔다.

이쯤 되니 테러, 인신매매단, 11명의 칼 든 괴한보다 500년 만에 심장을 되찾은 마법사가 더 무서울 지경이었다. 오스칼은 질린 얼굴로, 틈만 나면 제게 질척거리지 못해 안달이 난 클로드의 등을 냅다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야! 당장 떨어져. 예뻐하긴 무슨!”

“흠. 예민해진 걸 보니 잘 시간인가?”

클로드가 시간을 살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 3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언제 나타난 것인지, 허공에 떠오른 깃펜이 전에 기록했던 내용을 보라는 듯 양피지에 밑줄을 쫙쫙 쳐댔다.

[새벽 3시 전에는 보통 취침함. 잘 시간이 지나면 예민해 짐.]

“아오. 저 망할 깃펜! 야, 알고 있으면 당장 돌아가.”

그 모습에 오스칼이 빽- 소리를 질렀지만, 어느새 그는 제 침대인 양 자연스럽게 오스칼의 침대에 몸을 누이고 있었다.

“당신, 잘 거면 내 품에서 잠을 청하는 게 어떤….”

스릉-

침대에서 팔을 벌리며 오스칼을 끈적한 눈으로 바라보던 그는 결국 말을 제대로 끝맺지 못했다. 오스칼이 다시 한번 칼을 뽑아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말로 할 때 듣자.”

“흥. 정말 인색하다니까.”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투덜거린 클로드가 검은 연기 뒤로 사라져 버렸다.

***

오스칼은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연신 졸린 눈을 비벼댔다. 요 며칠간 제라드의 소설을 읽느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는데, 어젯밤엔 클로드까지 나타나 저를 괴롭혀댔다.

오늘은 종일 기사단의 훈련이 이어질 예정이기에 아침을 제대로 먹어두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 것이었다. 입안이 까끌까끌했지만 억지로 소시지 조각을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었다.

“여어, 좋은 아침!”

“어, 마티스. 좋은 아침.”

시원한 목소리로 아침 인사를 하는 마티스를 향해 손을 들어 보인 오스칼이 차게 식은 당근을 입으로 가져갔다. 레오가 그런 오스칼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오늘, 네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 같은데.”

레오의 말에 마티스가 눈을 크게 떴다.

“오스칼, 몸 상태가 별로야? 음. 식욕은 왕성한 거 같은데.”

뭘 모르는 듯한 마티스의 말에 레오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무슨 말인가. 식사를 거의 안 했는데.”

“응? 식사를 안 했다고? 이거 오스칼 접시 아니야?”

마티스가 콩 한 톨 남지 않은 오스칼의 접시를 들여다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 봐. 오늘은 소시지를 겨우 세 개만 먹었어. 저 녀석 보통 땐 아침으로 소시지를 일곱 개쯤은 먹어치운다고.”

레오가 큰 접시에 남아 있는 소시지 개수를 헤아리며, 마치 큰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굴었다. 자신을 걱정하는 건지 흉보는 건지 모를 그의 말에 오스칼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원래 아침을 많이 먹어야 건강하댔어! 그리고 오늘은 채식 위주로 했다고.”

“하하하, 오스칼 목소리가 우렁찬 걸 보니, 컨디션 괜찮은데?”

“흐음….”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을 한 레오의 곁에서 마티스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둘 다 이럴 때가 아니야, 훈련에 늦겠어! 단장이랑 부단장이 단원들에게 모범을 보여야지. 얼른 나가자고.”

오스칼이 두 사람에게 눈을 흘기며 등을 떠밀었다.

***

반짝-

그늘 하나 없는 훈련장에 들어서자, 눈부신 햇살이 피로에 찌든 오스칼의 얼굴에 정통으로 쏟아졌다.

“흐앗.”

핑- 현기증이 돈 오스칼이 머리 위로 손을 올려 빛을 가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영혼이 반쯤 햇볕에 녹아버린 기분이었다.

벌써 며칠이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오스칼은 천근만근 무거운 팔다리를 간신히 움직였다.

“역시, 오스칼의 기본기는 검술 교본이라 할 만해!”

기초 검술 훈련을 담당하는 마티스가 연신 오스칼을 칭찬했다. 워낙 익숙한 기술들뿐이라 오스칼의 자세엔 흠잡을 것이 없었다.

이 때문에 기사단의 누구도 오스칼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단장님, 제 자세 좀 봐주십시오.”

“….”

“단장님?”

오직 레오만이 자꾸 오스칼 쪽을 흘끔거리며 훈련에 집중하지 못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오전부터 몇 시간째 뙤약볕 아래에서 검을 휘두르던 오스칼이 멈칫, 스텝을 멈추었다. 코에서 무언가 흐르는 듯한 기분이 들더니 윗입술에서 찝찌름한 맛이 느껴졌다.

주르륵-

“어엇! 혀, 형님. 코에… 피!”

오스칼과 마주 본 채 검을 휘두르고 있던 신입 단원 애버트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헙.”

당황한 오스칼이 나지막이 신음하고는, 자신의 손을 코로 가져갔다.

그러나 미처 오스칼이 제 코를 틀어막기도 전에,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아차! 싶은 순간, 시야가 빙그르르 돌았다.

“어-어-?”

몸이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다리에 힘이 풀려 몸이 휘청였다. 제 의지와 무관하게 목부터 뒤로 꺾여 넘어가는 통에, 오스칼의 시야가 찬찬히 하늘을 향해 뒤집혔다.

‘마, 말도 안 돼. 이대로 뒤로 넘어지면 최소 뇌진탕이라고!’

오스칼이 제대로 가누어지지 않는 몸뚱이를 향해 마음속으로 다급하게 외쳤다.

“혀, 형님!”

쓰러지는 오스칼을 향해 청년들이 손을 뻗어왔다. 하지만 눈 깜짝할 새 일어난 일이라, 그 누구의 팔도 오스칼의 몸에 닿지 못했다. 단 한 사람, 레오를 제외하고.

덥석-

줄곧 오스칼에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레오는 오스칼의 몸이 휘청이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챘다.

삽시간에 오스칼 쪽으로 몸을 날린 레오가 뒤로 넘어가는 오스칼의 허리를 한쪽 팔로 감아 받아냈다. 그리고 다른 쪽 팔로 오스칼의 팔을 잡아 끌어안듯 제 가슴으로 당겼다.

“괜찮나?”

두 사람의 얼굴이 지척에 놓였다. 레오는 얼른 자신의 손으로 오스칼의 얼굴에 흘러내리는 핏물을 훔치며 코를 잡았다.

“고, 고마어.”

레오의 손에 코와 입이 막힌 오스칼이 웅얼거렸다.

“마티스, 네가 훈련을 마무리해. 난 이 녀석을 데리고 들어갈 테니까.”

그가 낮게 혀를 차는 듯싶더니 이내 오스칼의 목을 제 손으로 받치고는 훈련장 근처의 개수대로 이끌었다. 개수대에 다다르고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린 오스칼이 피 묻은 얼굴을 씻어냈다. 레오가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후. 아깐 그대로 황천길로 가는 줄 알았네.”

개수대에서 고개를 든 오스칼이 해쓱해진 얼굴로 레오를 바라보며 힘없이 웃었다. 피가 흐르는 얼굴을 손으로 닦아낸 탓인지, 레오의 소매며 옷깃이 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반면, 오스칼의 옷은 핏자국 하나 없이 멀쩡했다. 울상이 된 오스칼이 미안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나 때문에 네 옷에 온통 피가 묻었네, 미안해.”

“기사가 옷에 피를 묻히는 건 특별한 것도 아니지. 너야말로 이 정도로 몸이 나쁜데 미련하게 훈련을 받은 건가.”

“처음엔 괜찮은 줄 알았지….”

오스칼이 머쓱한 듯 뒤통수를 긁었다.

“제라드의 소설 때문에 요즘 잠을 못 자는 것 아닌가.”

“어? 그런가?”

물론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건 소설 때문이 아니긴 했다. 하지만 사정을 알 리 없는 레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네가 고생하는 것 같아서.”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뜻밖의 말에 오스칼이 눈을 깜빡거렸다. 그의 시선이 개수대 아래의 붉어진 물에 닿자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기사단의 자금을 모으는 건 단장인 내가 할 일인데…. 내가 못난 탓에 네가 나선 것 같아서.”

“아니야! 이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왜 그런 생각을 해!”

“네겐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레오가 오스칼의 눈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촉촉하게 반짝이는 그의 눈빛과 나긋한 목소리에 오스칼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레오의 입에서 이렇게 낯간지러운 말이 나오다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아?

어쩐지 다시 한번 현기증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우, 우리 사이에 무슨 그런 말을 해. 어… 이제 난 방에서 좀 쉬어야겠어. 하하하.”

당황한 오스칼이 허둥지둥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현기증 때문인지 몸이 비틀거렸다. 레오가 얼른 오스칼의 팔을 붙잡았다.

“걸을 수 있겠나?”

“어…. 내 방까지 잠깐 부축만 해줘.”

오스칼이 레오의 팔뚝에 몸을 기대었다. 그의 옷소매에 묻은 울긋불긋한 핏자국에, 어쩐지 자신의 얼굴도 울긋불긋해지는 것만 같아 오스칼이 고개를 푹 숙였다.

레오가 지친 듯 고개를 숙이고 걸음을 옮기는 오스칼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럴 게 아니라 그냥 이 자그마한 몸을 내가 번쩍 안아 들어 방까지 옮겨주면 편할 텐데.

“흠흠.”

머릿속에 떠오른 자신의 발상이 스스로도 겸연쩍은지 그는 괜스레 헛기침했다. 그는 오스칼의 방으로 향하는 내내 오스칼을 안아 들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간신히 참아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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