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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25)화 (25/138)

25화



 

오스칼은 마치 잘못을 저지른 후 회초리를 기다리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말 앞자리에 오스칼을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레오는 단단히 화가 난 듯 줄곧 말이 없었다. 차라리 그가 왜 또 무모하게 위험에 뛰어들었냐며 잔소리라도 하면 좋겠다 싶었다.

사과해야 할지, 자연스럽게 말을 거는 게 좋을지, 몇 번이고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키던 오스칼은 집에 거의 도착할 즈음이 되어서야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저기… 미안해. 내가 또 걱정만 끼쳤네.”

오스칼의 등 뒤에 앉은 레오의 몸이 움찔거렸다. 잠깐의 침묵 후, 그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네가 미안할 일이 아니다.”

“아냐. 역시 네 말을 들을 걸 그랬어. 이번에도 내가 너무 무모했지…?”

“….”

“네가 화를 내는 게 당연해.”

그 말에 레오가 마음속 동요를 억누르듯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고삐를 쥔 레오의 손에 힘줄이 솟았다. 얼마나 힘을 준 건지 점점 창백해지고 있었다.

“네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화가 난 것뿐이다. 널 구하기로 해놓고, 그러지 못했으니까.”

“네 잘못이 아니야! 불이 난 건 사고였고, 벽이 무너진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래도 클로드가 때맞춰 나타났으니 잘된 일이지.”

오스칼은 결코 그에겐 잘못이 없다고 말하기 위해 황급히 여러 이유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레오의 턱은 더 단단하게 굳었다.

“그래.”

그가 겨우 평소 같은 목소리를 꾸며 내 대답했다. 레오는 이를 짓씹어 간신히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참아냈다.

앞에 앉은 오스칼이 그의 표정을 볼 수 없다는 게 다행인 일이었다.

그가 아닌 클로드가 오스칼을 구했다. 게다가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자가 오스칼을 데려가는 걸 망연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러나 그것이 왜 이토록 그를 화나게 만드는지 그조차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

뤼미에르 기사단의 활약으로 시에나에서 활동하는 인신매매단의 본거지가 밝혀지고, 범죄에 가담한 자들은 모두 죽거나 체포되었다.

증거가 전부 타버린 탓에, ‘진짜 배후’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기사단의 명성이 올라간 것만으로도 수확은 있었다.

이제 명성은 얻었으니, 돈을 벌어야 하지 않겠는가.

인신매매단 소탕 작전 후, 몇 주 동안 오스칼은 제라드와의 사업준비에 한창이었다.

“제라드, 지난번에 내가 써오라는 건 다 써왔어?”

“예, 형님. 처음이라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썼습니다.”

제라드가 오스칼에게 두툼한 종이 뭉치를 내밀고는 저쪽에 앉아 있는 레오의 눈치를 한번 보았다.

인신매매단 소탕 작전 이후, 어쩐지 그의 기분은 쭉 가라앉은 것처럼 보였다.

비록 배후는 밝혀내지 못했으나, 관련자들을 일망타진한 성공적인 작전이었는데 왜 그런지는 모를 일이었다.

특히 제라드가 오스칼과 소설 이야기를 나눌 때면, 레오의 분위기는 평소보다 더 날카로워 보였다.

“수고했어! 내가 읽어보고 소감을 알려줄게.”

“예.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늘도 레오의 심기가 심히 불편하다는 것을 눈치챈 제라드가 재빨리 달아났다. 제라드를 배웅한 오스칼이 손에 쥔 원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원고는〈여스칼〉의 내용을 각색한 이야기였다.

첫 번째 소설로〈여스칼〉을 선택한 이유는 어쩌면 라인하트 왕국의 과거와 닮은 소설을 읽은 왕국민들이 국왕과 칼릭스 공작가에 대해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서였다.

물론 오스칼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했고.

오스칼이 한참 동안 말없이 원고를 들여다보고 있자, 레오가 말을 걸었다.

“정말 그런 거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건가?”

“물론이지! 로맨스 소설의 수익으로 기사단을 꾸리다니. 얼마나 낭만적이야?”

“낭만 같은 건 우리 같은 자에겐 사치일 뿐이다.”

“원래 기사야말로 낭만을 즐겨야 하는 거 아니야?”

“흥.”

레오가 배부른 소릴 한다는 듯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모습에 문득 뭔가 떠오른 오스칼이 궁금하다는 듯 눈을 빛내며 물었다.

“어엿한 기사라면 모름지기 영원한 사랑을 바치겠다고 맹세한 마드모아젤 한 명쯤은 있어야 하는거 아니야? 넌 그런 마드모아젤 같은 건 없었어?”

그러고 보니 남자주인공의 성장에만 집중하느라, 로맨스 파트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로판의 남자주인공이라면 당연히 그에 어울리는 여자주인공을 만나야 하는 법!

“크흠. 그, 그런 건 없었다. 딱히 관심도 없고.”

“왜? 너 정도면 꽤 인기가 많았을 것 같은데. 누구 사귀어 본 적 없어?”

“사, 살아남기도 힘든데 무슨 사랑 타령인가. 한 번도 그런 감정을 가져본 적 없다.”

오스칼의 물음에 얼굴이 붉어진 그가 꽤 당황한 기색을 했다.

‘오호라. 레오 녀석도 나랑 똑같이 모쏠인가 본데?’

좀처럼 보기 힘든 레오의 허둥대는 모습에 오스칼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흐음, 제라드는 사랑이 만물의 근원이라던데.”

“그 녀석, 군기가 빠졌다. 사내 녀석이 로맨스 소설을 붙들고 있는 꼴이라니.”

“사랑의 아름다움도 모르는 너랑 무슨 얘길 하겠어.”

“크흠.”

남주의 상태를 보아하니 로맨스가 실종된 원작의 기조는 외전에서도 여전히 유지될 모양이었다.

그래도 얼른 여자주인공이 나타나야 이 외전을 ‘로맨스 판타지’ 장르라 부르기라도 할 텐데.

뻣뻣한 그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오스칼은 제라드의 초고를 들고 자기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

다음 날 아침, 밤을 꼴딱 새워 눈 밑이 거뭇거뭇해진 오스칼이 책상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 이건……. 〈여스칼〉이 아니잖아?”

제라드의 소설은 〈여스칼〉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여스칼〉을 뛰어넘는 명작이었다.

‘이건 대박작이다…!’

웹소설계의 고인물인 자신의 안목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기사물다운 적절한 박진감에 고수위의 로맨스까지!

〈여스칼〉의 퀄리티가 이 정도였다면, 망작이 아니라 틀림없이 밀리언셀러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레오, 아무리 생각해도 제라드는 훈련을 시킬 게 아니라 이 집에 가둬놓고 작품만 집필하도록 해야 해.”

아침 식사 자리에서 오스칼이 한쪽 턱을 괸 채 꿈꾸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스칼에게는 지금 당장 다음 편이 필요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줄거리지만 다음 편을 궁금하게 만드는 제라드의 필력은 과연 악마의 재능이라 할 만했다.

이런 게 바로 집착 감금 로맨스의 시작인 걸까?

제라드를 두고 몽롱하게 중얼거리는 오스칼의 음성에 레오의 미간이 좁아졌다.

“뭘 하든 기사단이 우선이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심한 목소리였지만, 어쩐지 퉁명스러운 기색이 느껴졌다. 불만스러운 그의 목소리에 오스칼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냥 해본 말이야. 넌 역시 자나 깨나 기사단 생각밖에 없구나.”

“단장님, 형님. 안녕하십니까!”

타이밍 좋게도 우렁찬 인사말과 함께 제라드가 등장했다. 오스칼이 두 팔 벌려 달려가 그의 손을 붙잡고 감격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제라드. 원고는 그야말로 완벽해, 이대로 널 감금하고 싶을 만큼. 오늘 바로 책을 출간할 인쇄소를 찾아가자.”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형님께 인정받으니 정말 뿌듯합니다. 핫하하.”

“너야말로 진정한 로맨스 장인이었구나!”

오스칼의 칭찬에 제라드가 얼굴을 붉히며 쑥스러운 듯 입을 헤- 벌려 웃었다.

레오의 미간이 한층 더 좁아졌다. 다정히 손을 붙들고 로맨스 운운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레오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정체 모를 감정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제라드 자카, 오늘 훈련이 있진 않은 건가.”

레오가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레오가 기사단원 이름을 성과 함께 불렀다는 것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다는 신호였다.

“아, 아닙니다. 오늘은 훈련이 없는 날입니다. 오늘은 오스칼 형님을 뵈러 온 겁니다.”

“훈련이 없는 날에도 정진을 계속하고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바로 진정한 기사의 덕목 중 하나….”

레오의 근엄한 목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오스칼이 싹둑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아주 좋아. 그럼 당장 인쇄소를 찾으러 출발할 수 있겠는데? 레오, 그럼 넌 훈련이 없는 오늘도 기사단에 남아서 정진과 수련을 계속하고 있으라고.”

오스칼이 제라드의 손을 잡고 기사단의 문을 박차고 나섰다.

“윽….”

괜한 말을 꺼냈다 본전도 찾지 못한 레오가 두 사람의 등 뒤에서 나지막이 침음했다.

***

오스칼에게 이 세계에서의 일은 뭐하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소설의 발간을 위해서는 보증금을 지불해 주셔야 합니다.”

“이미 우리 인쇄소와 독점 계약한 작가들이 많아서요.”

“그런 부적절한 내용을 담은 소설은 인쇄할 수 없네! 썩 꺼져!”

시에나의 인쇄소들은 하나 같이 제라드의 소설을 발간하는 것을 거절했다. 거절의 이유도 다양했다.

이 정도 필력을 가진 제라드가 왜 아직까지 제대로 된 작품을 출간하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마지막 인쇄소는 시에나에서 제일 규모가 큰 곳이라 더욱 가망이 없어요. 저 같은 무명작가의 글은 보지도 않고 거절할걸요.”

“마지막까지 희망을 잃지 말자고.”

풀이 죽은 제라드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의 말을 건넸지만, 오스칼 역시 자포자기의 심정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모름지기 규모가 큰 곳일수록, 넘어야 할 벽도 높은 법이니까.

“우리 인쇄소와 거래하시려면 3년 치의 보증금을 선납해주셔야 하고, 저흰 독점 계약 작가님들하고만 일합니다. 그리고 가져오신 초고를 보아하니, 조금 불온한 내용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글쎄요, 출간이 어렵겠는데요.”

마지막으로 방문한 인쇄소의 관리인은 두 사람이 온종일 인쇄소를 돌며 들었던 말을 단번에 요약 정리해 주었다.

결국, 마지막 인쇄소에서도 거절을 당한 두 사람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관리인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혀, 형님.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아까부터 새파랗게 질려 있던 제라드가 허둥지둥 화장실을 향해 달려갔다. 하루종일 긴장했을 테니 배가 아플 법도 했다.

오스칼은 인쇄소 한쪽 구석에서 착잡한 표정으로 제라드를 기다렸다. 부아가 치밀어 괜히 구둣발로 인쇄소의 바닥만 통통 두드렸다.

“하아. 또 사이다는커녕 고구마만 한 바구니네.”

이 소설은 빙의자에게 이렇게까지 야박할 일인가? 오스칼은 야속한 심정으로 땅만 바라보았다.

그때,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스칼이 시선을 들어 주위를 살폈다.

눈길이 닿은 곳은 여신 강림, 아니 남신 강림의 현장이었다.

큰 키에 늘씬하고 탄탄한 몸매를 가진 남자가 우아한 걸음걸이로 인쇄소로 들어오고 있었다.

쨍한 쪽빛의 정장 코트엔 은사로 자아낸 영롱한 백합 자수가 반짝였고, 코트 아래 보이는 흰 드레스 바지는 똑 떨어지는 세련된 핏이었다.

과하다 싶게 호화로운 옷이었으나, 그의 완벽한 신체는 이마저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오스칼은 잠시 숨을 참고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먼발치에서도 금방 눈에 띄는 빛나는 남자였다.

그가 가까워질수록 이목구비가 또렷하게 보였다. 남자의 얼굴은 그의 몸보다 더욱 비현실적이었다.

옆으로 넘긴 반짝거리는 금발 머리와 호수같이 깊고 푸른 눈동자, 살짝 미소를 머금은 듯한 입술. 이게 바로 명화 속에서나 보던 얼굴인….

‘잠깐, 이 기분 어디서 느꼈던 것 같은데?’

어딘가 익숙한 남자의 모습에, 기억을 되짚던 오스칼의 눈동자가 커졌다.

당신이 왜 여기서 나와?

저 남자는 소설에 빙의하고 처음 만난 사람이자, 자신이 목숨을 구해주었던 바로 그….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간 엑스트라!”

오스칼은 자신도 모르게 그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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