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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24)화 (24/138)

24화



 

“인신매매의 배후라니. 내가 가장 증오하는 것이 인신매매다.”

굳은 표정의 클로드가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인신매매’라는 단어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끌려갔던 클라우디아의 얼굴이 떠올라 그의 표정이 일순간 차가워졌다.

혹시나 했던 오스칼은 그가 인신매매에 연루된 것은 아니라는 말에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쉬었다.

원작의 설정에서도 그는 흑마법을 사용하지만, 이교도들과 관련이 있는 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내 뭔가 떠오른 듯 눈을 치켜떴다.

“그런데 당신은 왜 거기 있었던 거야?”

“흠흠. 근처를 우연히 지나가던 중이었다.”

“그런 외진 곳을 이 시간에 우연히 지나갔다고?”

문득 그의 등 뒤에서 흔들거리는 깃펜의 끝이 보였다. 오늘도 깃펜은 무언가를 휘갈겨 대고 있었다.

“설마… 당신 지금까지 계속 날 스토킹한 거야?”

“아니. 난 그저 당신을 조사했을 뿐…윽!”

꽉-

상처를 치료하던 오스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상처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클로드가 신음을 흘렸다.

“야! 그게 그거거든? 앞으로 내 뒷조사하고 다니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가만히 안 두면 어떻게 할 건데?”

오스칼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진심으로 그를 어떻게든 해주기를 원한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깃펜도 그게 궁금한 듯 공중에서 가만히 멈춘 채 오스칼의 말을 기다렸다.

“이 미친놈….”

오스칼이 전의를 상실하고 중얼거렸다. 언젠간 저 미친 깃털부터 불태우겠어.

“당신 뒤만 쫓은 것만은 아니었어. 그 인신매매단은 내가 주시하던 자들이었으니까. 그들을 조사하던 내 부하가 당신이 그들에게 끌려간 것 같다는 보고를 하기에 좀 지켜봤을 뿐이야. 물론 당신은 일부러 그들에게 잡힌 것 같았지만.”

그가 묘한 시선으로 오스칼을 바라보았다. 오스칼이 눈썹을 치켜떠 그와 눈을 마주쳤다.

“어쨌든, 덕분에 살았으니까 고맙긴 한데. 그래도 앞으로 내 뒤를 밟는 건 사양하겠어.”

오스칼이 불평하듯 중얼거리고는 클로드 손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가 입을 다물고 손바닥에 약을 바르는 오스칼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오스칼은 집중한 듯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작은 손을 열심히 꼬물거리고 있었다.

“당신은 어떻게 이런 걸 할 줄 아는 거야?”

“네가 봐도 잘하는 거 같지? 내가 부상을 달고 살아서. 드레싱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거든.”

오스칼이 으스대는 말투로 말하고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러자 클로드가 답지 않게 정색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뭐가?”

클로드의 밑도 끝도 없는 물음에 오스칼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왜 부상을 달고 살았는데?”

“아… 그건 뭐, 사람이 칼 쓰고 운동하다 보면 다 그렇지. 하하하.”

오스칼이 멋쩍은 듯 웃었다. 클로드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흠. 그건 좀 별로네. 당신이 다치는 거 말이야.”

“어이구. 그렇게 내 걱정을 하는 사람이 내 목숨을 대가로 계약을 하자고 그러셨어.”

오스칼이 타박하듯 빈정거림으로 응수했다. 하지만 클로드는 그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신경을 긁던 감정의 정체는 어쩌면 호기심이 아니라 걱정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내가 당신을 구한 거였어. 걱정되어서. 그제야 의문이 풀린 듯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맞아. 난 당신을 걱정한 거야. 당신이 나를 걱정한 듯이.”

오스칼은 별 시답잖은 소리를 듣는다는 듯, 클로드를 향해 고개를 한 번 저었다.

클로드는 그의 창백한 손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붕대를 감는 오스칼의 손길에 가만히 집중했다. 오스칼의 손이 그의 손등을 스칠 때마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자, 이제 끝났어.”

오스칼이 꼼꼼하게 묶은 붕대를 들여다보며 뿌듯하게 말했다. 클로드가 손에 감긴 붕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딘가 가슴 한구석이 간질간질한 기분이 낯설었다. 어느새 심장이 불규칙하게 쿵쿵거리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심장이 있다는 게 이런 기분이었나.

생경한 감각에 오싹해진 그가 오스칼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 원래 심장이 갑자기 빨리 뛰기도 하고, 가슴 쪽이 간질거리거나 아프기도 하고 그런 건가?”

“그런 증상이 있어? 당신이 그간 심장이 없어서 미처 몰랐나 본데, 그건 나이가 들어서 그래. 사람이 장기를 오래 쓰다 보면 여기저기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거든. 당신은 500년이나 쓴 거잖아? 노년에게 심혈관질환은 항상 주의해야 할 질병이라고.”

“노…노년이라고…?”

그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분명 저주로 20대 때 노화가 멈춘 게 아니었나….

혼란스러운 심정의 클로드를 뒤로하고 오스칼이 생각났다는 듯 주머니를 뒤졌다.

“당신이 주시했다던 그 인신매매조직. 배후가 있는 것 같아.”

오스칼이 구겨진 양피지를 그에게 내밀었다. 지시사항이 잔뜩 적힌 문서였다. 그 문서에도 어김없이 이교도의 역오망성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은밀하게 처리하고, 문제 발생 시 연루자는 즉결 처리할 것…. 때가 될 때까지 몸을 숨길 것. -V-]

휘갈겨 쓴 ‘V’라는 서명이 선명했다. 오스칼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서명을 한 자가 배후인 것 같아.”

“이건 내가 좀 더 알아보도록 하지.”

클로드가 양피지 조각을 받아들자 오스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상인 그의 도움을 받는다면 진짜 배후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도 설마 대가를 지불 하라는 건 아니지?”

문득 떠오른 의문에 오스칼이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클로드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이건 내가 조사하고 있던 거니까 당신에게 대가를 받진 않을 거야.”

오, 아까부터 꽤 고분고분한 것이 오늘따라 이 남자가 순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인가. 오스칼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그럼 인심 쓰는 김에 내가 찾던 계약자의 피도 좀 주면 안 될까?”

오스칼의 질문에 클로드가 어림도 없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안 돼. 계약자의 비밀을 발설하는 수준의 정보라면 대가를 치러야지. 내게 가장 가치 있는 대가를 걸고.”

“그게 뭔데?”

오스칼의 질문에 그를 휘감고 있던 공기가 순식간에 짙어졌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당신.”

유혹하듯 달콤한 목소리였다. 그의 대답을 들은 오스칼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그럼 그렇지, 이 변태 자식.

“이 미친놈아, 날 대가로 받아서 뭘 할 건데? 삶아 먹기라도 할 거야?”

“글쎄. 내가 당신을 가지면 뭘 할 수 있을까.”

클로드가 즐거운 듯 낮게 웃었다. 상상만으로도 만족스러운지 그의 목소리가 들떠있었다. 오스칼은 잔뜩 인상을 쓴 채 대답했다.

“날 대가로 너와 계약을 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클로드가 소파에 앉은 오스칼의 몸을 가볍게 뒤로 밀어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오스칼은 소파에 누운 채 그의 양팔에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

어느새 그가 자신의 몸을 오스칼의 몸에 바짝 붙여 왔다. 단단하다 못해 외설적으로 느껴지는 그의 몸에 오스칼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가 오스칼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당신을 가질 방법이…. 정말 계약뿐일 거라고 생각해?”

“뭐…?”

“오늘 밤, 내가 당신을 무사히 돌려보내겠다는 약속은 한 적 없잖아.”

귓가에서 울리는 퇴폐적인 목소리와 색정적인 숨결이 오스칼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자신의 목덜미에 닿는 은빛 머리카락의 감촉과 제 뺨에 곧 닿을 것 같은 그의 날카로운 콧날에 오스칼이 몸을 흠칫 떨었다. 자신을 곧 삼켜버릴 듯 바라보는 남자의 붉은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이런 남자를 한순간이라도 순하다고 생각했다니. 이게 이 남자의 진짜 모습이다.

오스칼이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단단히 주먹을 쥐었다. 그가 완력으로 자신을 제압하면 일단 고자라도 만들어 볼 셈이었다.

이 변태 자식이 전체 연령가인 〈여스칼〉에서 뭐 하는 짓이야!

쾅-

그때 어디선가 무시무시한 울림이 들려왔다. 끈적한 눈으로 오스칼을 응시하고 있던 클로드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낮게 읊조렸다.

“불청객이군.”

“비켜, 이 변태 자식아!”

클로드의 신경이 흩어진 틈을 타 오스칼이 있는 힘껏 그의 어깨를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외로 그는 별다른 저항 없이 순순히 오스칼의 손에 밀려났다. 그가 오스칼을 향해 싱긋 웃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간, 당신에게 미움받겠지?”

“야, 난 이미 너 엄청 싫거든!”

콰쾅-

다시 한번 큰 소리가 났다. 클로드의 눈초리가 가늘게 올라갔다.

“난 시끌벅적한 건 질색이야. 앞으로 우리가 만날 땐, 단둘이 좋겠어.”

“앞으로 우리가 만날 일은 없거든?”

오스칼이 새된 소리를 냈다.

“당신 동료들에게 전해. 샤무아의 문은 힘으로 열리는 게 아니니까 헛수고하지 말라고.”

한쪽 입꼬리를 올린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이내 오스칼이 검은 연기에 휩싸였다.

털썩-

“아야.”

정신을 차린 오스칼이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땅에 떨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은 오스칼이 자신의 엉덩이를 문질렀다.

“혀, 형님!”

“오스칼!”

무장을 한 채 샤무아의 문을 부수려 덤비던 청년들이, 검은 연기와 함께 골목에 나타난 오스칼을 향해 몰려들었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다. 네가 샤무아의 수장에게 납치된 줄 알고 전력을 갖춰서 여기까지 온 참이야. 그 자식이 해코지하진 않았어?”

허둥지둥 달려온 마티스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오스칼의 몸을 살폈다. 다른 청년들 역시 오스칼이 걱정되었던지, 잔뜩 긴장해 굳은 표정들이었다.

“형님, 그자가 설마 인신매매의 배후인 겁니까?”

“당장 그놈의 목을 치러 들어갈까요!”

청년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오스칼이 손사래를 치며 단원들을 진정시켰다.

“샤무아의 수장이 배후는 아니야. 그가 날 납치한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좀… 변태, 아니 특이한 구석이 있어서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어쨌든 난 멀쩡해! 미안해, 아깐 다들 놀랐지?”

“우리보단 네가 더 놀랐겠지. 레오 말을 듣지 않은 걸 오늘 밤 내내 후회했어. 널 위험한 임무의 미끼로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마티스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오스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결과적으론 다 잘됐잖아.”

기사단원들이 모두 무사한 것을 본 오스칼이 웃었다. 다들 저를 걱정해 달려왔다는 게 어쩐지 기분 좋았다. 청년들도 그제야 안심한 듯 표정을 풀고 오스칼을 향해 칭찬과 격려의 말을 늘어놓았다.

“역시 형님은 대단하십니다. 거기서 빠져나오시다니요!”

“전 처음부터 형님이 무사히 탈출하실 줄 알았습니다!”

“얼씨구, 형님이 죽은 줄 알고 주저앉아 울던 놈이?”

누구의 말인지도 모를 정도로 쏟아지는 단원들의 목소리에 파묻혀 있던 오스칼이 레오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는 샤무아의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가장 먼저 달려와, ‘그러게 왜 내 말을 듣지 않았냐’고 타박을 할 줄 알았던 그는 멀찌감치 서서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자기 말은 듣지도 않고 매일 소동만 일으키니…. 이제 정말 나한테 질려버린 건가.’

그간의 사건들을 떠올린 오스칼이 심란한 듯 뺨을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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