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22)화 (22/138)

22화



 

오스칼이 탄 짐 마차를 쫓아 건물 앞에 당도한 기사단은 적당한 때를 기다렸다.

레오의 신호에 따라 일제히 건물로 난입한 단원들은 순조롭게 인신매매단을 제압했다. 느닷없는 기습에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려던 자들은 모두 기사단에 붙잡히고 말았다.

“네 놈들이 데려온 사람들은 어디 있나?”

“지, 지하실에 있습니다.”

레오의 추궁에 입을 연 남자는 덜덜 떨며 지하실 입구를 가리켰다. 남자의 몸을 수색해 열쇠를 찾아낸 레오가 단원들 몇 명과 함께 남자가 가리킨 곳을 향해 달려갔다.

“오스칼!”

레오가 지하실에 들어서자마자 다급하게 오스칼의 이름을 불렀다.

지하실에 갇힌 자들은 다섯. 모두 입에 재갈을 물고, 손발이 묶인 채 떨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오스칼이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챈 레오가 오스칼과 함께 마차에 올라탔던 여자를 붙들었다. 재빨리 그녀의 입에서 재갈을 빼낸 그가 다급하게 물었다.

“당신과 함께 온 청년, 혹시 어디 있습니까?”

“그, 그 사람은 위층으로 끌려간 거 같아요.”

젠장! 속으로 욕을 중얼거린 레오가 빠르게 지하실을 빠져나갔다.

“단장님! 건물에 불이 났습니다!”

기욤이 얼른 건물 밖으로 대피하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나 레오는 기욤이 가리킨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우지끈-

정신없이 계단을 오르던 그의 앞으로 불에 타 부서진 구조물들이 쏟아져 내렸다.

“단장님! 더 오르시면 위험합니다.”

건물 3층을 수색하다 위에서부터 번지는 불길을 피해 계단을 내려오던 제라드와 시몬이 레오를 붙들었다.

“너희들 오스칼을 보지 못했나? 오스칼이 위에 있다.”

레오의 눈동자에 붉은 불길이 일렁이며 비치었다. 레오가 두 사람의 손을 뿌리치며 곧 무너지려 하는 계단을 향해 발을 딛자 시몬이 강하게 그를 만류했다.

“지금 올라가시는 건 위험합니다. 위는 모두 불타버렸습니다.”

레오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일그러졌다. 제라드 역시 그를 막아섰다.

“단장님, 일단 피해야 합니다. 오스칼 형님이라면 분명 빠져나가셨을 겁니다.”

제라드가 간절한 목소리로 레오를 달랬다. 부디 그러기를 바라며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불길은 건물의 상층부를 모두 태워버린 뒤였고, 그들은 이 건물 안에서 오스칼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제라드는 이미 울먹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레오를 건물 밖으로 끌어내듯 데려 나왔다. 바깥에는 불타는 건물에서 탈출한 기사단원들이 구출한 사람들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몇몇 생포한 인신매매단의 일원들은 무릎이 꿇린 채 묶여 있었다.

레오가 다급한 눈으로 모여있는 자들을 훑었다. 그곳에서도 오스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스칼은? 아무도 못 봤나?!”

레오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설마…. 오스칼이 없어?”

오스칼을 찾아 위층으로 갔던 레오가 혼자 돌아온 것을 안 마티스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미 건물 내부는 불길에 휩싸여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오직 돌로 된 건물의 외벽만이 간신히 건물을 지탱하고 있었다.

제라드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으허헝. 형님!”

기사단의 청년들이 일제히 멍한 눈빛으로 타오르는 건물을 바라보았다.

***

그 시각, 오스칼은 홀로 외로운 싸움 중이었다. 불길에 휩싸인 4층 방의 창문을 깨고 나온 오스칼은 건물 뒤편 외벽에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젠장. 마티스가 왜 암벽 훈련을 준비했는지 이제야 알겠네.”

오스칼은 석조 건물 외벽의 틈새에 단검을 꽂아 넣고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풀 한 포기 없는 딱딱한 흙바닥이 아찔했다. 여기서 뛰어내렸다가는 성한 곳이 없을 듯싶었다.

결국, 오스칼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목이 터져라 소리만 질러댔다.

“누가 여기 좀 와줘!”

결코, 목청이 작은 편도 아니었건만, 불행히도 오스칼의 목소리는 불이 건물을 집어삼키는 소리에 묻혀 건물 반대쪽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건물 뒤에 사람 있어요!”

오스칼이 마지막 힘을 쥐어 짜냈다. 더 소리를 지르다간 매달려 있을 힘도 전부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있어요!

바람을 타고 들려온 목소리에 레오의 귀가 움찔거렸다. 창백해진 낯빛으로 불타는 건물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 레오가 홀린 듯 몸을 움직였다.

“레오! 어디 가는 거야?”

마티스가 허둥지둥 레오의 뒤를 쫓았다. 레오는 필사적으로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달렸다. 그들이 건물의 모퉁이를 돌았을 무렵, 반대쪽 벽에 매달린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오스칼!”

레오와 마티스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그 외침에는 안도감과 놀라움, 간절함이 뒤섞여 있었다. 오스칼을 발견한 마티스의 눈에는 눈물이 찔끔 맺혀 있었다.

“여기야! 나 좀 구해줘!”

반가운 목소리에 오스칼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레오와 마티스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본 오스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을 찾아냈다는 기쁨도 잠시, 건물의 외벽마저도 화마에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었다.

오스칼이 꽂아 넣은 단검 주위의 돌이 조금씩 갈라졌다. 오스칼이 불안한 눈으로 부서져 가는 외벽을 바라보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면 되는데….”

오스칼이 간절하게 중얼거렸다. 레오와 마티스가 제 아래에 오기까지는 불과 몇 걸음만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운은 여기까지인 모양이었다.

쩌어억-

오스칼이 매달린 건물의 외벽이 불길한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오스칼이 간절하게 단검을 붙잡아 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무너져 내린 벽에서 단검이 빠졌다. 오스칼의 몸이 단검과 함께 그대로 허공을 향해 떠밀렸다.

“으아악!”

몸을 잡아당기는 중력에 정신이 아찔해진 오스칼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안 돼!”

레오와 마티스의 공포에 찬 고함이 들린 그 순간, 오스칼의 몸이 중력의 영향을 벗어나 낙하를 멈추었다.

“당신, 정말 날 신경 쓰이게 하는 재주가 있어.”

깜깜한 밤, 달빛 같은 남자의 품에서 오스칼이 번쩍 눈을 떴다.

오스칼을 가볍게 들어 안은 클로드가 공중에 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오스칼과 함께 추락하던 단검 역시 클로드의 손안에 들어와 있었다.

오스칼을 예리한 검날로부터 보호하려는 듯, 단검을 칼날째 감싸 쥔 채로.

“으아, 살았다!”

세상에, 이 변태 같은 남자의 얼굴이 이렇게 반가운 날이 오다니.

오스칼이 마치 안전장치라도 되는 양, 클로드의 목덜미를 정신없이 양팔로 꽉 끌어안았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맨몸으로 허공에 내몰린 기분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목을 감아오는 오스칼의 손길에 클로드의 붉은 눈이 자신도 모르게 사르르 휘어졌다. 그가 만족스러운 듯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당신의 신체 정보는 완벽하게 수집할 수 있을….”

“오스칼!”

클로드의 뒷말은 오스칼의 이름을 부르는 거친 포효 소리에 묻혀 더 들리지 않았다. 레오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두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잔뜩 사나운 빛을 띠고 있었다.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오스칼이 클로드의 목을 감고 있던 자신의 팔을 풀어 아래를 향해 신나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레오! 마티스! 난 무사해! 단원들은 다들 무사한 거지?”

클로드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제 팔에 안겨 있는 주제에 다른 사람을 향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천진난만하게 팔을 휘적거리는 모습이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오스칼이 반갑게 손을 흔드는 상대가 거슬렸다. 또, ‘칼릭스’로군.

“저자들은 당신의 동료인가?”

어딘가 심사가 뒤틀린 듯한 목소리였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취한 오스칼은 그 목소리의 온도가 조금 낮아진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응 맞아! 그러고 보니 인사도 못 했네. 날 살려줘서 진짜 고마워. 당신 생각보다 꽤 의리가 있었구나? 그러니까 이제 날 저 아래에 좀 내려줄 수 있을까.”

클로드는 대답하지 않고 서늘한 표정으로 눈을 살짝 내리깐 채 레오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자신의 팔에 안겨 있는 오스칼을 바라보았다. 그의 한쪽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당신을 구한 건 나니까, 어디에 내려줄지는 내가 정할 거야.”

“뭐……. 뭐?”

“당신이 저 자들에게 한 말처럼, 오늘 밤 당신은 정말 무사할 수 있을까?”

“그게 무슨 뜻이야?”

오스칼이 화들짝 놀라 클로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스칼의 눈빛을 외면한 클로드가 그를 노려보고 있는 레오를 차가운 눈으로 일별했다. 그리고 곧, 클로드와 오스칼은 검은 연기 뒤로 사라져버렸다.

“오스칼!”

두 사람이 사라진 허공에 레오의 공허한 외침만이 흩어졌다. 마티스가 황당하다는 듯 머리를 헤집었다.

“뭐, 뭐야? 지금 저놈이 오스칼을 데리고 사라진 거야?”

“저자를 쫓는다.”

레오의 목에서 쇳소리가 났다. 입안에선 비린 피 맛이 느껴졌다. 그가 건물 앞을 향해 내달렸다. 마티스 역시 그의 곁을 바짝 따랐다.

“방금 그 남자, 샤무아의 수장이지? 그 머리 색, 불길한 재앙의 상징이잖아. 그놈이 인신매매의 배후인 거 아니야? 이교도 놈들이 숭배하는 흑마법을 쓰는 자라고!”

마티스가 분한 듯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레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티스의 말처럼 그자가 인신매매의 배후라면, 본거지를 엉망으로 만든 기사단을 그대로 두고 오스칼만 데려갈 이유가 없었다.

레오가 샤무아에서 오스칼을 바라보던 클로드의 묘한 눈빛을 떠올렸다. 분명 위험한 종류의 눈빛이었다.

“제길!”

레오가 거칠게 욕을 내뱉었다. 어느새 건물 앞에 도착한 마티스가 기사단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헉헉, 오스칼이 샤무아에 납치된 것 같아. 빨리 움직여야 해!”

“예에?”

“인신매매단이 아니라 샤무아라고요?”

“샤무아라면 흑마법사가 수장인 정보상 아닙니까?”

오스칼을 화마에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슬픔에 잠겨있던 청년들이 뜻밖의 이야기에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모두 당장 샤무아로 간다. 폴과 시몬만 여기 남아서 마무리해.”

“예, 알겠습니다. 부단장님.”

마티스의 침착한 지시에 청년들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레오, 얼른 출발…. 어… 레오?”

레오는 벌써 떠난 뒤였다.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지는 그를 보며 마티스가 얼빠진 얼굴을 했다.

‘젠장.’

레오가 말을 힘껏 채찍질하며 이를 으득 씹었다. 고삐를 쥔 그의 손이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