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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21)화 (21/138)

21화



 

호기롭게 미끼가 되겠다고는 했으나 막상 그들의 소굴로 들어가려니 오스칼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무심결에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댄 오스칼이 검이 없어 허전한 자신의 옆구리에서 흠칫 손을 멈추었다.

긴장한 표정으로 마차에 오른 오스칼은 연신 자신의 손바닥을 주물러댔다.

어느덧 그들을 태운 마차는 도심 외곽에 있는 4층짜리 건물 앞에 당도했다.

“이곳에서 저희가 일을 하게 되나요?”

함께 온 비쩍 마른 여자가 건물을 올려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건물 앞에 나와 있던 남자가 그들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뭐. 비슷하긴 하지. 일단 몸수색부터 해야 해. 이 건물엔 위험한 물건은 들고 들어갈 수 없거든.”

“네?”

낯선 남자가 자신의 몸수색을 한다는 말에 여자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통과 절차야. 그러니 협조하쇼.”

여자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몇몇 남자가 다가와 우악스럽게 여자의 몸을 더듬어 댔다.

“꺅. 이러지 마세요.”

“아니, 거 살살 좀 하죠?”

오스칼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여자의 몸수색을 하던 남자가 비아냥거렸다.

“얼씨구. 벌써 오는 길에 둘이 정이라도 들었나.”

여자의 몸에는 별다른 것이 없는 것을 확인한 남자들이 오스칼의 몸도 거칠게 더듬어 댔다.

다행히 두 배로 동여맨 붕대 덕에, 자신이 여자라는 것은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그들은 오스칼의 허리 뒤에 꽂혀있던 자그마한 단검을 찾아냈다.

“이걸로 과일이라도 깎아 먹으려고? 이런 건 안 돼.”

남자가 오스칼에게서 빼앗은 단검을 그의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젠장. 오스칼이 낮게 욕을 중얼거렸다. 만일을 위해 챙겨온 날붙이마저 빼앗기자 더욱 초조한 기분이 되었다.

남자들이 두 사람을 건물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1층은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응접실이었다. 아무래도 평소에는 평범한 사무용 건물로 위장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문득 발소리가 들려왔다. 한 남자가 절뚝거리며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새로 들어온 녀석들이다. 오늘 쓸 만한 건, 이 둘뿐이었어.”

오스칼을 붙든 남자가 계단을 내려오는 남자를 향해 말했다. 계단의 남자는 최근 심하게 넘어지기라도 했는지 걸음이 불편해 보이고, 얼굴엔 커다란 멍이 들어있었다.

“제길. 역시 내가 공들이던 여자보다는 확실히 별로야. 아까워 죽겠다니까. 둘 다 적당히 묶어서 지하실에 가둬.”

오스칼은 남자의 투덜거리는 듯한 거친 목소리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문득 가까이 다가온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오스칼이 자신도 모르게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저놈은, 며칠 전 그 멸치 대가리잖아?’

분명 자신과 결투를 했던 바티스타였다. 오스칼의 낯빛이 사색이 되었다. 며칠 전 체포되어 근위대에 연행되었을 놈이 어떻게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는 거지?

오스칼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변장을 했다고는 하나, 어설픈 탓에 저 남자가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기라도 하면 낭패였다. 다른 남자의 손에 붙들린 여자는 남자들의 심상치 않은 대화에 겁먹은 얼굴이 되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가두다니요…?”

“어이구, 이 아가씨가 눈치가 없네. 하긴 그러니까 여기까지 따라왔겠지만. 아가씨,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이렇게 덥석덥석 모르는 사람들을 따라오고 그러면 안 돼.”

여자의 목덜미를 쥔 남자가 낄낄거리며 여자를 조롱했다.

“놔, 놔주세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여자가 남자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자 남자가 여자를 거칠게 잡아끌었다. 순식간에 여자를 제압한 남자는 여자를 데리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바티스타가 눈을 찌푸려 오스칼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바티스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오스칼을 가리켰다.

“이 멍청하게 생긴 놈은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했나 봐. 별 반응도 없네? 시끄럽지 않아 좋긴 하다만.”

오스칼을 붙들고 있던 남자가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리고 오스칼의 목덜미를 거칠게 잡아끌었다.

오스칼은 입을 꾹 다물고 저항할 생각이 없다는 듯 순순히 남자의 지시에 따랐다. 목소리라도 냈다가는 바티스타에게 정체를 들킬 것 같았다.

어차피 곧 기사단이 들이닥칠 테니 얌전히 지하실에서 기다리는 게 나을 터였다.

고개를 푹 숙이고 남자를 따라 지하실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바티스타의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너. 잠깐 이리 와봐.”

오스칼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오스칼을 데려가려던 남자가 의아한 듯 바티스타를 바라보았다.

“뭐야, 너 이놈한테 할 말이라도 있어?”

“사내놈이 제법 곱상하잖아. 대장에게 한번 데려가 보려고.”

“낄낄. 대장 취향은 여전한가 봐?”

“잔말 말고 그놈 데리고 4층으로 올라와.”

오스칼의 표정이 구겨졌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다행이지만, 악당 놈들이 가지가지 한다 싶었다. 당장이라도 눈앞의 놈들을 베어버리고 싶었지만, 검이 없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기사단이 올 때까진 꾹 참기로 했다.

오스칼이 끌려간 방은 이런 악독한 놈들이 쓰기에 아까울 정도로 화려한 방이었다.

벽면은 여러 가지 자수를 수놓은 태피스트리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고, 멋진 벽난로 위에는 동양풍의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도자기와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방 한가운데 놓인 암갈색 책상 위로 고급스러운 양피지 서류 뭉치들과 값비싸 보이는 장식용 목검이 보였다.

반들반들한 책상 뒤로 뒤룩뒤룩 살이 쪄 탐욕스럽게 생긴 남자가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는 남자들의 손에 붙들려 들어오는 오스칼을 아래위로 게걸스럽게 훑었다.

“오! 오늘 새로 들어온 상품인가.”

“예, 대장. 구매자에게 넘기기 전에 먼저 한번 보시라고 데리고 올라왔습니다.”

오스칼에게 흥미를 보이는 대장의 모습에 바티스타가 우쭐한 표정을 했다.

“역시, 바티스타 자네는 눈치가 빠르군. 며칠 전에 있었던 일도 고일 그놈만 아니었다면 그리 큰일로 번지지 않았을 거다.

그 자식이 그렇게 나서지만 않았어도 내가 ‘그분’께 체면을 구기는 일이 없었잖아! 어쨌든 이번 일이 잘 해결된 건, 그분께서 신경 써주신 덕분이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란 오스칼과 두 남자가 벌인 골목에서의 결투를 말하는 게 분명했다.

‘그분이라면… 요컨대, 저놈들의 뒤를 봐주는 자가 있단 소리군.’

오스칼이 최대한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시선을 땅에 고정하고 그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대장이라는 작자가 오스칼에게 휘적휘적 다가와 입맛을 다셨다.

“꽤 예쁘장한 녀석이로구먼.”

뚱뚱한 손가락이 오스칼의 얼굴을 향해 다가왔다. 소름 끼치는 감각에 오스칼이 대장의 손을 피하자 남자가 오스칼의 뒷덜미를 콱 움켜쥐었다. 오스칼이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냈다.

“윽.”

“얼굴을 좀 볼까.”

남자가 오스칼의 안경을 거칠게 벗겨냈다. 그리고는 오스칼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콱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투둑-

오스칼의 머리 위로 어설프게 얹어져 있던 가발이 남자의 손에 딸려 올라갔다. 가발 아래로 오스칼의 갈색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제 손에 대롱대롱 매달린 붉은 물체를 확인한 남자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찰나의 정적이 흘렀다. 방 안에 있던 세 남자는 당황해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뭐, 뭐야!”

“어, 이 새끼?”

그제야 오스칼의 얼굴을 알아본 바티스타의 얼굴에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듯한 기색이 스쳤다. 그와 동시에 아래층에서 소란이 일었다.

요란한 발걸음 소리, 검이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스칼의 눈이 반짝 빛났다. 드디어 기사단이 이 건물에 들이닥친 모양이었다. 반면, 심상치 않은 소리에 남자들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서렸다.

오스칼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목덜미를 붙들고 있던 남자의 발을 콱 밟았다.

“으헉!”

갑작스러운 발등의 통증에 놀란 남자가 오스칼을 잡고 있던 손을 놓치고 말았다. 남자의 손아귀에서 재빠르게 빠져나온 오스칼이 민첩한 동작으로 방에 들어오면서부터 눈여겨보았던 책상 위의 목검을 낚아챘다.

따악-

목검이 순식간에 뚱뚱한 남자의 목덜미를 가격했다.

“켁.”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졌다. 목덜미의 고통에 몸부림치던 남자의 팔이 늘어서 있던 도자기들을 쓰러뜨리자 형형색색의 액체가 흘러나왔다. 양탄자를 적신 액체는 뒤섞여 강렬한 향을 뿜어냈다.

쓰러진 대장을 본 다른 남자들이 허둥지둥 검을 꺼냈지만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오스칼은 거침없이 고꾸라져 있는 남자의 푸짐한 뱃살을 쿡 밟고 뛰어오르며, 자신을 붙들었던 남자의 머리를 노렸다.

따악-

단단한 목검이 경쾌한 소리를 내자, 남자는 머리통을 움켜쥐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오스칼은 다시 한번 목검으로 자리에 주저앉은 남자의 등을 가격했다. 그가 신음을 내며 바닥을 굴렀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바티스타가 갈팡질팡하는 사이, 오스칼이 잽싸게 방금 쓰러진 남자가 놓친 검을 주워들었다.

아래층에서부터 시작된 소란이 점점 가까워지는 걸 보니 기사단의 작전 역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우린 구면이지?”

드디어 제 손에 무기를 쥔 오스칼이 씨익 웃었다. 검을 든 오스칼과 다시 한번 마주한 바티스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오스칼이 빠르게 바티스타의 측면을 파고들었다. 이번엔 더 쉬웠다. 이미 오스칼에게 호되게 당해 몸이 성치 않던 바티스타는 미처 검을 제대로 들기도 전에 쓰러졌다.

쨍그랑-

쓰러지는 바티스타의 몸은 방 안에 놓인 작은 탁자를 부수며, 그 위에 올려진 등잔불을 깨트리고 말았다. 날카로운 파열음을 향해 고개를 돌린 오스칼의 눈이 커졌다.

화르르-

등잔에 남아 있던 불꽃이 바닥의 양탄자에 빠르게 옮겨붙었다. 방안을 채웠던 강렬했던 향이 어느새 매캐한 냄새로 바뀌고 있었다.

조금 전, 대장이 쓰러지며 넘어뜨린 도자기에서 쏟아진 액체가 향유였던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방 안이 검은 연기로 가득 찼다.

“흡.”

오스칼이 옷깃으로 자신의 코와 입을 가렸다. 바닥에 쓰러진 남자들은 이미 유독가스에 의식을 잃은 듯했다. 쓰러진 남자의 허리춤에서 아까 빼앗겼던 자신의 단검을 회수한 오스칼이 문을 향해 달렸다.

“어쨌든 이번 일이 잘 해결된 건, 그분께서 신경 써주신 덕분이다.”

오스칼의 뇌리에 그 말이 번뜩 스쳤다. 이놈들의 뒤를 봐주는 자가 있다. 오스칼이 문으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고 뚱뚱한 남자가 앉아 있던 책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흐트러진 서류 뭉치 중 몇 장을 집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차용증에도 이교도의 문양을 떡하니 박아넣는 놈들이니, 대장이라는 남자가 읽던 서류에 뭔가 배후에 대한 단서가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오스칼이 책상을 살피는 동안 바닥에 깔린 양탄자와 벽면의 태피스트리를 불쏘시개 삼은 불이 빠르게 방 전체를 삼키고 있었다.

“윽. 콜록, 콜록”

문으로 빠져나가려던 오스칼이 강한 불꽃에 뒷걸음질 쳤다. 방안에 번지는 불길이 거세, 도저히 문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었다.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흩날리는 불씨에 머리카락이 그을려 쿰쿰한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다.

오스칼은 연기를 마시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오스칼이 탈출구를 찾아 빠르게 방안을 훑었다. 이제 숨을 참는 것도 한계였다.

“젠장!”

아무리 둘러보아도 퇴로는 한 곳뿐이었다. 오스칼이 결심한 듯 숨을 내쉬고 그대로 창문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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