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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16)화 (16/138)

16화



 

땡그랑-

어디선가 숟가락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오스칼도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옆에 있는 레오를 쳐다보았다.

“레오, 네가 이런…걸 만들었다고? 아니 그것보다, 직접 저녁을 준비했다고?”

마티스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했다.

“오스칼이 잠깐 볼일을 보러 다녀오는 동안 식사 준비가 늦어지는 것 같아서 내가 나섰다.”

“히익.”

순간의 정적과 함께, 단원들이 숨을 들이켰다. 모두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좋을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어떤 음식이든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 게 기사의 덕목이다.”

그의 눈빛에서, 음식이 상한 건 아니니 맛은 적당히 감내하고 먹으라는 듯한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크, 크흠. 이, 이 세상맛이 아니라 처, 천상의 맛입니다. 단장님.”

청년 중 한 명이 조금 전 자신의 발언을 급히 회수했다.

“어, 어, 두,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고 싶은…. 아, 아니 죽어도 모를 맛입니다.”

“그게 유, 유니크하고 센…세이션한 맛이라고나 할까요.”

청년들이 하나둘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질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자신의 입에도 숟가락을 가져간 레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간신히 앓는 소리를 참으며 목구멍으로 고깃덩어리를 삼켰다.

그리고는 결연한 표정으로 최대한 수프가 혀에 닿지 않도록 목구멍을 열어 단숨에 접시를 비워버렸다.

“전장에서 진수성찬을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먹지 못할 음식은 아니니 이것도 훈련의 일부라 여기도록.”

레오가 깨끗하게 비워진 접시를 땅에 내려놓자, 단원들도 결심한 듯 수프를 먹기, 아니 정확히는 목으로 들이붓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은….”

그 모습을 전전긍긍하며 바라보던 오스칼이 지금이라도 자신의 죄를 고백하려 입을 열었지만, 레오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이제 겨우 친해지기 시작한 단원들의 미움을 사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미안한 마음에 오스칼이 고개를 푹 숙였다.

결국, 깨끗하게 비워진 열다섯 개의 접시와 함께 저녁 시간이 끝났다. 물론 저녁 식사는 오늘 기사단이 겪은 훈련 중 가장 힘든 훈련이 되고 말았다.

수프와의 힘겨웠던 전투로 인해 녹초가 된 단원들이 하나둘 자신들의 막사로 돌아가고, 인원을 점검하던 마티스가 난처한 표정으로 레오에게 다가왔다.

“사실 이번에 예산이 빠듯해서 여분의 텐트를 사지 못했거든. 좀 좁더라도 오스칼을 기욤과 드미트리의 텐트에서 함께 재워야겠어.”

마티스의 말에 레오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셋이 쓰기엔 텐트가 좁을 텐데. 그럴 필요 없다. 오스칼은 내 막사를 함께 쓰도록 하지.”

마티스의 눈이 커졌다. 기사 단장은 혼자 막사를 쓰는 것이 관례였다.

“진심이야? 네가 오스칼과 막사를 함께 쓰겠다고?”

“난 상관없다. 원래 2인용 텐트잖나.”

레오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마티스가 감동한 듯 레오를 바라보았다. 과연 단원들을 위해 자신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훌륭한 리더라는 눈빛이었다.

“그래, 알았다. 다음번엔 텐트를 넉넉히 준비할게.”

마티스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티스의 전언을 들은 오스칼이 레오의 막사 안으로 비척비척 들어왔다.

“고마워. 덕분에 비좁게 자는 걸 면했네.”

오스칼이 쑥스러운 듯 머리통을 긁었다.

“굳이 2인용 텐트에서 3명이 잘 이유는 없으니까. 그나저나, 거기 붕대가 풀어졌는데.”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한 레오가 오스칼의 허리께를 가리켰다. 아무도 없는 곳에 숨어 혼자 끙끙대며 두른 붕대 끝이 제대로 여며지지 않아 상의 아래로 흘러나와 있었다.

“이런.”

허리를 움직이면 아픈 탓에 엉거주춤 선 오스칼이 붕대 끝을 갈무리하려 애썼다.

“하여간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이군.”

가볍게 혀를 찬 레오가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능숙한 손길로 오스칼의 허리춤으로 삐져나온 붕대를 묶어주었다.

몸 가까이에 선 레오의 손끝이 몸을 살짝살짝 스칠 때마다 오스칼이 움찔댔다. 괜히 얼굴도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고, 고마워.”

붕대 끝이 정리되자 서둘러 레오로부터 도망친 오스칼이 침낭에 제 몸을 구겨 넣었다. 레오가 옆에 누운 오스칼을 흘긋 바라보았다.

누워있는 오스칼의 모습에서 어쩐지 묘한 분위기가 풍겼다. 역시 그를 기사단 청년들 틈에서 재우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이 녀석을 혈기 왕성한 놈들과 바짝 붙여 재우는 건 좀 그랬겠지.’

‘혈기왕성한 놈’들 중 레오 자신은 제외하는 이상한 논리였으나 레오는 제 논리의 허점을 눈치채지 못했다.

좁은 텐트 안에 나란히 누운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이번에는 오스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는 고마웠어. 네가 감싸 준 덕분에 배고픈 단원들의 불평도 안 들었고.”

“네가 만든 것도… 머, 먹을 만했다.”

위로하는 듯한 그의 말에 오스칼이 쿡쿡거리며 웃었다. 자신이 만든 것이긴 했지만, 그 수프는 도저히 ‘먹을 만하다’ 라고는 말할 수 없는 맛이었기 때문이었다.

뻔한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제게 그렇게 말해 주는 레오가 고마웠다. 오스칼의 웃음소리에 레오가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아깐 제대로 말을 못 했는데 암벽 훈련 뒤에 네게 화를 낸 건….”

그가 잠시 숨을 멈추고 말을 골랐다.

“너는 항상 다른 사람을 걱정하느라, 정작 스스로를 아끼지 않는 것 같아서, 그게….”

그게 어쩐지 화가 났다. 하지만 레오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왜 내가 화가 난거지? 문득 떠오른 의문 때문이었다.

“내가… 그랬나?”

오스칼이 가물가물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침낭에 누워있자니, 당장이라도 곯아떨어질 것 같은 피로가 밀려왔다.

“그러니까 앞으론 다른 사람보다 널 좀 더 지켜.”

레오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오스칼은 더는 눈을 뜰 기력도 없다는 듯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난 여기서 지켜야 할 게 있는데….”

잠결에 중얼거리는 오스칼의 목소리가 나른하게 풀렸다. 오스칼의 의식이 꿈과 현실의 경계를 오갔다.

“뭘 지킨다는….”

“너를…. 너의 행복을 지켜야 하거든…. 그래야 내가….”

의식 너머에서 되는대로 중얼거린 오스칼은, 그 말을 끝으로 까무룩 잠이 들어버렸다. 고요한 막사 안에서 레오의 심장 소리만 쿵쿵대며 울렸다.

***

이튿날 특별 야외 훈련은 검술 대련으로 이어졌다. 기욤의 약이 꽤 효험이 좋은 것인지, 단숨에 컨디션을 회복한 오스칼은 신나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어제 온종일 체력 좋은 청년들을 쫓아가느라 허덕였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좋아, 다음 덤벼 볼 녀석 없어?”

평생 밥 먹고 펜싱 검만 휘두르며 살아왔던 까닭에, 그녀에게 대련하자 덤벼드는 기사 단원을 상대로 벌써 다섯 번째 완승한 오스칼이었다.

“헉, 헉. 형님 진짜 정체가 뭡니까?”

“검이 너무 빨라서 보이지도 않아요.”

오스칼이 진이 빠져 바닥에 퍼져있는 청년들을 내려다보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보았느냐, 내가 바로 손이 눈보다 빠른 펜싱 사브르 세계 랭킹 1위의 K-체육인이다.

마티스가 오스칼의 유려한 기술에 넋을 잃고 손뼉을 쳤다.

“방금 그건 어떻게 한 건가? 그 검술, 우리한테 가르쳐 줄 수 있나?”

가장 자신 있는 기술, ‘콩트르 파라드’와 ‘콩트르 아타크’의 연속 동작이었다. 상대의 칼을 빗나가게 해 자신을 보호하고, 재빨리 역습하는 기술.

쉽게 말해 막고 되받아치는 기술 되시겠다.

“원한다면, 물론이지.”

오스칼이 싱긋 웃었다. 기본기가 탄탄한 기사단의 청년들은 꽤 순조롭게 오스칼이 전수하는 기술을 흡수했다. 오스칼도 기사단으로부터 ‘실전형’ 검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한참을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던 기사 단원들의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오후의 뜨거운 햇살에 허덕이던 청년들이 지친 듯, 하나둘 자리에 주저앉아 헐떡였다.

“후, 정말 덥군.”

“얼른 씻고 싶다.”

오스칼 역시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손등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쳤다.

“으,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첨벙-

온몸에 오르는 열감을 참지 못한 드미트리가 상의를 벗고 근처 강물로 냅다 뛰어들었다.

“푸하, 이제 좀 살겠네.”

허리춤 깊이의 강물에 몸을 담근 드미트리가 흐르는 강물을 얼굴에 끼얹으며, 거칠게 얼굴을 문질렀다. 구릿빛의 잘 단련된 근육이 물에 젖어 반질거렸다.

“와아!”

그 모습을 지켜본 다른 청년들이 너도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벗고 강물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첨벙- 첨벙-

“으허억!”

눈앞에서 펼쳐지는 근육질 청년들의 가슴 파티에 오스칼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눈알만 굴렸다.

레오는 팔짱을 끼고 서서, 못 말린다는 듯 혀를 차며 청년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더운 날씨 때문에라도 굳이 그들을 말릴 생각은 없는 눈치였다.

“형님, 형님도 들어오십쇼!”

동료들에게 자신의 이두와 삼두를 내어 보이며 근육 자랑을 하던 드미트리가 오스칼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스칼이 손사래를 쳤다.

“어, 어. 난 됐어. 난 어제 다친 곳이 아파서 그냥 따로 세수만 할게.”

이대로 물에 들어갔다간 여자라는 것이 단번에 들통날 것이었다. 또, 물이라면 옛 기억 때문에 아무래도 꺼림칙했다.

“에이, 아까 보니까 펄펄 날아다니시던데 무슨 엄살이십니까!”

강물에서 비척비척 걸어 나온 폴이 어서 들어오라는 듯 오스칼의 손을 잡아당겼다. 오스칼이 강물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다.

“아, 아니야! 난 정말 안 내켜서 그래!”

“낄낄, 설마 형님 감추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러십니까?”

“뭐?”

의미심장한 드미트리의 물음에 오스칼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설마 저 녀석, 뭔가 눈치를 챈 건가…?

“형님, 저희한테 근육 없는 허여멀건 몸을 보이기가 부끄러우신 거죠? 남자라면 자고로 대흉근 아닙니까.”

드미트리가 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그의 우람한 가슴 근육을 잔뜩 과시했다.

“하하하…. 맞아, 내 비실비실한 몸이 좀 창피해서.”

오스칼이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그 자리에서 계속 버티다가는 괜한 의심을 받거나 정말 물에 끌려들어 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푸-어푸-

결국, 홀로 캠프로 돌아온 오스칼은 양동이에 길어 놓은 물에 얼굴을 씻었다. 아쉬운 대로 땀이 난 목덜미도 찰박찰박 물에 적셨다.

“여기.”

정신없이 양동이에 고개를 처박고 있을 무렵,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들자, 뽀송뽀송한 수건이 눈앞에 쑥 나타났다. 레오였다.

“아, 고마워.”

생각지도 못한 친절에 오스칼이 배시시 웃었다. 그는 무뚝뚝해 보여도 은근히 세심한 구석이 있었다.

레오는 고개를 한번 까딱이고는, 오스칼의 곁에 서서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물기를 머금은 오스칼의 피부가 말갛다. 오스칼이 열기가 올라 발그스름한 뺨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을 손으로 한번 훔쳐내고는 레오가 건넨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물기를 닦아 내자 보송한 솜털이 드러났다. 축축해진 셔츠 깃 안으로 젖은 목덜미가 보였다. 이틀을 내리 땡볕에서 굴렀지만, 오스칼의 얼굴이며 목덜미는 여전히 희었다.

레오가 자신도 모르게 그의 목 언저리를 만지작거렸다.

“넌 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나 보군.”

“응. 어릴 때 물에 한 번 빠진 기억이 있어서. 내가 수영을 못하거든.”

그건 사실이었다. 어릴 적 수영장에 빠져 죽을 뻔한 이후, 명색이 운동선수면서 수영만큼은 엄두도 못 냈다.

“임무 수행 시에 참고하지.”

“넌 강물에 안 들어가?”

“나까지 저 녀석들 노는데 끼라고?”

“하하하, 하긴 단장님까지 강물에서 물장구를 치는 건 모양이 좀 빠지는 것 같기도.”

오스칼이 해맑은 웃음소리를 냈다.

“크흠.”

레오는 그 웃음소리에 어쩐지 목이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어 헛기침을 한번 했다. 그리고는 오스칼과 나란히 숲길을 걸었다.

힐끔 옆을 바라보니 자신보다 머리통 하나 정도는 작은 오스칼의 정수리가 내려다보였다. 물기 어린 엷은 갈색빛의 머리카락이 햇빛에 비쳐 반짝였다.

꼿꼿한 허리와 굽은 곳 없는 어깨, 정면을 향한 곧은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어쨌든 오늘, 네 덕분에 단원들 실력이 꽤 늘 것 같더군.”

그 말에 오스칼이 번뜩, 야무진 눈으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맞아. 그래서 난 이참에 우리 기사단을 왕국 최고의 기사단으로 만들 생각이야.”

“그게 무슨….?”

“우리 목표가 국왕의 목인데, 왕실 근위대 정도는 박살을 낼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

“고작, 15명으로 근위대를 상대한다고?”

그의 표정에 의문이 서렸다. 오스칼이 당연하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당연히 인원도, 전투력도, 장비도 늘려야지.”

“하지만 그러기엔 기사단 사정이… 넉넉지 않다.”

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단장으로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창피했던 모양인지 그의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나만 믿어.”

오스칼이 레오를 향해 활짝 웃었다.

뭘 그런 걸 걱정하시나, 옆에 빙의자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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