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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6)화 (6/138)

6화



 

오스칼이 레오폴드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표정이 묘했다.

“네가 내 어머니를 알고 있다고?”

벽창호처럼 다른 말은 들어 먹지를 않더니, 그는 어머니 얘기가 나오자 이제야 대화를 할 마음이 든 모양이었다.

좋아, 그렇다면!

오스칼이 재빠르게 회심의 일격을 준비했다. 이 기세를 몰아 더 확실한 방법을 쓸 필요가 있었다.

듣고 나면 더 듣고 싶어서 도저히 자신을 살려두지 않고는 못 배길 그런 이야기.

“네 어머니의 이름은 오스칼. 왕실 근위대였지만 루이스터 대공의 반역군을 막다가 돌아가셨을 거야.

네 목에 걸린 목걸이는 아버지가 어머니께 남긴 뤼미에르 보석이고, 그 보석의 이름을 딴 이 기사단 본부는 어머니가 살던 집 맞지?”

그는 당혹감과 충격이 뒤섞인 형용할 수 없는 얼굴을 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가 세드릭 칼릭스의 아들이란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그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어머니는 끝까지 세상에 본인의 정체를 숨겼다.

목걸이에 대한 자세한 사연 역시,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었다. 모든 것은 이 세상에서 그 혼자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 넌, 대체 누구인가.”

오스칼은 비로소 한숨을 쉬었다. 내가 누구긴 누구야? 애독자지.

***

오스칼은 ‘자신의 아버지는 그의 어머니에게 큰 신세를 진 절친한 친구였다.

오스칼이라는 제 이름은 아버지가 고마운 친구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며, 얼마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친구의 아들을 찾아 은혜를 갚으라는 유언을 남겼다’라는 허술하지만, 그럴싸한 주장을 늘어놓았다.

‘이런 허접한 설정에 순순히 걸려들까.’

웹소설 좀 읽었다는 짬으로 급히 갈겨낸 인물 설정이었지만 어쩐지 아쉬움이 남았다.

내가 너의 숨겨진 형제였다, 정도는 되어야 확실히 이놈이 날 안 죽일 텐데.

“내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레오폴드가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좋아! 순순히 걸려들었어.’

오스칼은 처음으로 원작의 설정값에 감사했다. 허술한 설정이 난무했던 원작 탓에, 외전에서도 이 정도 설정은 자연스럽게 허용되는 모양이었다.

내가 가진 정보를 풀었으니, 이제 네가 가진 정보도 내놓으시지.

“그런데 있잖아…. 우리 가족은 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는 수도 일에 관심을 끄고 살았거든.”

레오폴드는 뜬금없이 가족에 관한 TMI를 풀어 놓는 오스칼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지난 25년간 이야기는 통 알 수가 없어서 말이야.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것은 흡사 정보를 캐려는 하이에나의 눈빛이었다.

***

원작의 주인공, 오스칼의 활약으로 목숨을 부지한 국왕은 철저하게 영웅을 외면했다.

주인공의 존재는 기록에서 사라져 버렸고, 칼릭스 공작가도 반역 누명을 벗지 못하고 완전히 몰락해 버렸다.

결국, 그는 부모를 모두 잃고 유모에 의해 뤼미에르 가옥에서 길러졌다.

국왕은 공작가의 재산을 몰수하고 가문과 연관된 사람들의 작위를 박탈하여 칼릭스 가문의 모든 손발을 잘라냈다.

어린아이일 뿐인 레오폴드를 살려둔 건 반역자의 본보기를 다른 가문들에게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이름뿐인 가문에 얽혀 철저히 권력층에 외면을 받는, 오도 가도 할 수 없는 반역자의 최후를.

아무리 무예가 뛰어나도, 반역자의 핏줄은 결코 왕국의 주요 기사단에 등용되지 못했다. 그를 평민 기사단에 등용한 이유는 단순했다.

반역자의 후손을 휘하에 두고 감시하기 위함이었다.

“몇 년 전 라인하트 9세가 죽고 10세가 즉위한 이후 사정이 나빠졌다. 우리 기사단은 변방의 험지로 내몰렸지. 마치 우리가 죽길 바라는 것처럼.

어떻게든 매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 돌아왔지만 결국 우린 평민이라는 이유로 버려졌다. 선왕과 달리 현왕은 나를 살려둘 생각조차 없는 모양이더군.”

“정말 라인하트 10세마저 너희 가문이 반역자라고 믿는다고? 그럴 리가… 적어도 왕세자는 선왕보다 현명했는데….”

“국정에서 멀어져 사치만 일삼는 왕을 말하는 건가?”

“뭐어…?”

그의 표정이 씁쓸했다.

그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살렸던 샤를 왕세자는 국왕이 된 후 사치와 향락만을 일삼을 뿐, 국정에는 관심이 없었다.

기사단에 쓸 예산은 모두 왕실의 사치품 구매에 쓰였다.

“국왕은 여전히 칼릭스 가의 유일한 후손인 나를 위협하고 있어. 그래서 오늘도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 같군. 네게 무례하게 대한 것을 사과하지.”

원작이 끝난 후 25년. 눈물 없이는 못 들을 사정이었다.

“…너, 설마… 우는….”

그리고 과몰입 요정 오스칼은 실제로도 박 터지게 우는 중이었다.

“흐어어엉- 허어엉-”

왕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부모님, 그러나 그들을 배신한 왕실. 부모님의 뒤를 이어 왕국 기사단에서 변방을 지켰지만, 그 역시 국왕에게 버림받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국과 백성을 위해 기사단으로 활동하는 가시밭길 전문 남자주인공이라니!

드디어 외전의 스토리를 찾은 오스칼의 눈에서 안도와 감동의 눈물이 흘렀다.

‘정말 기구한 인생…이지만 이건 되는 서사야, 서사 맛집이라고!’

오스칼이 그의 사연을 듣고 오열하자 레오폴드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그가 당황한 듯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왜, 왜 이렇게까지 우는 건가…? 멈, 멈춰라.”

“네 이야기가 너무 맛… 아니, 마음이 아파서…훌쩍.”

휴, 하마터면 맛있다고 할 뻔했네.

“어…어….”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오스칼의 모습에, 그는 어쩐지 당황해 말문이 막힌 듯했다. 오스칼이 코를 팽 풀고 레오폴드를 바라보았다.

“흡… 내가 앞으로 널 적극적으로 도울게. 나만 믿어.”

옷소매로 눈물을 훔친 오스칼이 그의 두 손을 덥석 붙잡았다. 갑작스럽게 붙들린 손에 그가 눈도 깜빡이지도 못한 채 굳었다.

[그래서 그동안 도움을 받고 싶었던 독자님의 손을 빌리려고 합니다.]

작가가 부탁한 게 바로 이것이었나보다. 주인공을 도와 외전의 스토리를 전개할 것.

아마 외전을 무사히 끝내면 소설을 탈출시켜 주지 않을까?

오스칼이 희망에 찬 미소를 지었다.

이제부터 남자주인공의 가시밭길을 꽃길로 바꿔 깔아 주기만 하면 외전은 해피엔딩이요, 자신은 소설 탈출이다.

다만 문제는, 이 소설이 고구마 설정에 주인공의 사망 엔딩까지 내버린 망작, 〈여스칼〉 외전이라는 거다.

앞으로도 전개가 이따위라면, 〈여스칼〉 외전의 운명은 해피엔딩은커녕 상업성 사망 선고를 받고 출간조차 못 될 것이 뻔했다.

미출간 외전에 갇힌 애독자가 될 수는 없다.

‘아드님, 제가 멱살 잡고 해피엔딩 봐 드릴게요. 저만 믿으세요!’

***

“다들 조심해서 가! 기욤, 제라드, 드미트리, 시몬, 그리고 마티스까지-!”

오스칼이 마치 계속 이곳에 살았던 사람인 것처럼, 뻔뻔스럽게 손을 흔들어 귀가하는 기사단원들을 배웅했다.

레오폴드는 무표정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응접실 한편에 서서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미간에 잡힌 두 개의 주름이 그의 언짢은 기분을 대신 이야기 해주고 있었다.

여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는 그가 이토록 못마땅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엄마 친구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수상한 녀석을 기사단에 덜컥 가입시킨 것도 모자라, 이제 자신의 옆방까지 그 녀석에게 내어주었다.

가문의 내력과 현재의 처지 때문에 경계심이 강했던 레오폴드는, 자신을 길렀던 유모가 10년 전 세상을 떠난 이후 단 한 번도 다른 누군가가 이 집에서 지내는 것을 허락한 적이 없었다.

이곳은 기사단의 본부로 임시로 사용하는 공간일 뿐, 기사단의 거처가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해 보아도, 오스칼이라는 녀석은 갈 곳이 없다는 이유를 대며 막무가내로 유모가 쓰던 방을 차지하고 눌러 앉아버렸다.

‘내가 어디에 홀린 건가.’

레오가 미간을 좁힌 채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쩐지 사람의 혼을 빼놓는 재주가 있는 녀석이었다.

“이제 가서 쉬면 돼? 따로 알아둬야 하는 건 없어?”

저택 곳곳을 둘러보며 오스칼이 제집인 양 여유로운 태도로 물었다.

“기사단 훈련은 일주일에 세 번이고, 훈련이 없는 날에는 자유롭게 개인 정비를 할 수 있다. 기사단의 보급품은 창고에서 가져가도록.”

오스칼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는 듯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네가 이곳에서 나와 함께 지낸다거나, 네가 내 어머니에 대한 일을 알고 있다고 해서 기사단에서 널 특별하게 대우할 생각은 없다. 그러니 거처가 구해지는 대로 이 집도 나가도록 해.”

“윽. 그건 좀 곤란한데.”

“예외는 없다.”

오스칼이 간절한 얼굴로 레오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오스칼의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버렸다.

“흥, 엔딩을 보기 전까진 내 발로 순순히 나갈 순 없지.”

오스칼은 다짐하듯이 내뱉고는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으아아-”

비로소 혼자가 된 오스칼이 맥이 풀린 듯 앓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방 한쪽에 놓인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살롱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영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풍성했던 결 좋은 갈색 머리카락은 투박하게 짧아졌고, 초라한 옷은 피와 땀으로 얼룩져 더욱 남루해 보였다.

“빙의 한번 지독하게 했네.”

오스칼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레오폴드가 깨끗한 옷가지를 손에 들고 서 있었다.

“새 옷이 필요할 것 같아서 들고 왔다. 내가 예전에 입던 옷이지만.”

오스칼이 미처 고맙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오스칼의 팔에 옷을 안겨주고는 방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드님, 영 무뚝뚝한 줄만 알았더니 제법 다정한 구석이 있었네.’

뜻밖의 호의에 오스칼이 씨익 웃었다.

***

빙의 둘째 날 아침, 오스칼은 기욤에게 받아 둔 붕대를 꺼냈다.

자신이 빙의한 영애는 굳이 분류하자면 마른 편에 속했고 몸매가 그리 풍만한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앞으로 계속 남자로 살아가려면 몸의 굴곡은 적당히 감춰둘 필요가 있었다.

가슴을 붕대로 두르고 새 셔츠를 입었다. 정말 그가 어린 시절에나 입던 것이었는지, 자신의 몸에도 적당히 맞는 크기였다.

“이런 전쟁통 같은 세계관에서 살아남으려면 체력은 필수지.”

빙의 전에는 근육으로 다져진 몸을 가진 대한민국의 국가대표 운동선수였지만, 빙의한 영애의 몸은 말랐을뿐더러, 상당히 가녀린 편이었다.

체력부터 키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오스칼은 당장 선수용 근력 훈련을 시작했다.

이른 아침부터 후들거리는 다리로 스쿼트를 하고 있자니, 문간에서 레오폴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식사, 할 건가.”

아드님은 왜 당연한 걸 묻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오스칼이 반색하며 테이블에 앉았다. 근력 운동의 핵심은 영양 보충에 있으니까.

“사실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어. 어제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거든.”

아침 운동까지 끝내고 나자 시장기가 느껴졌다. 응접실의 테이블에는 빵, 치즈, 수프, 구운 야채 따위의 식사가 차려졌다.

하지만 고깃덩어리 하나 없는 초라한 식단에, 다시 한번 남주의 기구한 인생이 실감이 났다.

저 덩치를 풀로 키웠단 말이야?

짠한 눈으로 그를 바라본 것도 잠시, 성질 급한 한국인의 영혼은 차려진 음식을 순식간에 전부 해치우고 말았다.

먹성 좋은 오스칼이 접시를 핥아먹듯 싹싹 비우는 동안 레오폴드의 접시에 놓인 음식은 별로 줄어든 것 같지 않았다.

오스칼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의 이름을 불렀다.

“레오.”

오스칼의 부름에 그의 미간이 좁아졌다. 세상에서 그를 친근하게 레오라고 부르는 사람은 유모와 마티스뿐이었다.

그가 호칭을 정정해 주려고 입을 열었다.

자신을 레오라고 부르는 것을 허락한 적 없으니, 기사단에 가입한 이상 자신을 ‘단장님’으로 불러야 한다고 말하려는 찰나였다.

“우리 국왕의 목을 따러 가자.”

“푸흐학, 크억, 쿨럭쿨럭.”

식기가 그릇 위로 요란하게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레오의 마른기침 소리가 식당 안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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